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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Mar 12. 2024

주변 사람들과 일하면 안되는 이유

흔히 사이드 프로젝트나 혹은 프리랜서로 나와서 새로운 일을 기획해 보려고 할 때 주변에서 협업자를 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니면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일이 없어 주변에서 부탁하는 작은 일들부터 처리하는 경우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일이 잘 진행된 경우도 있겠지만 12년차 프리랜서의 경험으로는 뜯어 말리고 싶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지인은 서로 거래처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 그 외의 경로로 만나게 된 사이를 이야기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지인과 '일'로 엮이면 감정 소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당연히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기대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혹은 자신도 모르게 더 편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서로가 전문가의 입장에서 의견을 교류해야하는데 이 와중에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의견 교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프로페셔널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능할 지 몰라도, 생각보다 연차가 쌓여도 이런 언급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되면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고 서로 쓸데없는 고생만 더 하니 결과적으로 얻는 게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두 번째 이유는 기여도의 차이다. 주변 사람들과 직접 일로 엮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 지 알 수 없다. 겉보기엔 일을 잘하는 것 처럼 보여도 실제로 함께 일해보면 다를 수도 있다. 어느정도 일의 기여도에 따라 권한이 더 주어진다거나, 프로젝트의 성과를 더 많은 비율로 나눠 갖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인 사이에서 '내가 더 일을 많이 하니 이 만큼의 몫을 더 많이 가져가겠다' 혹은 '내가 책임자처럼 행동하겠다' 라고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사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이런 부분이다, 감정 소모에 관한 부분은 안좋은 말을 숨길수록 더 독이 되는 걸 깨달은 후로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했으나 기여도의 차이는 좁히기가 힘들다. 나는 오랜 프리랜서 기간동안 잡다한 일들을 많이 해왔고, 덕분에 기획/디자인/제작/마케팅 등 정말 못하는 거 빼고는 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게 많으니 더 많이 담당하게 되고, 심지어 기획과 마케팅 마저도 내가 더 능숙하여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경우가 생겼다. 차라리 혼자 했더라면 속이 편하기라도 했을텐데, 상대방에 맞춰주면서 일까지 과하게 소화해내다 보니 현타가 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웬만하면 지인과의 협업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세 번째 이유는 인맥 관리다. 기존 지인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인맥을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다. 보통 사람을 검증하기 힘들어서 주변 지인에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앞으로도 협업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사람을 구하고 검증하는 것 또한 본인이 키워야 할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기존 인맥에 갇히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쉬운데 새로운 협업자를 구하여 인맥을 늘려감으로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항상 지인보다 외부에서 구한 협업자가 낫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리랜서 생활에서 항상 강조하고 싶은 건 '고립 되지 말라'는 것이다. 


참고로 주변에서 다 뜯어 말리는 협업을 무작정 진행하면서도 '우리는 다르다'라는 착각은 하지 말자. 협업하고 깨진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는 협업,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봤고 이번에는 지인과의 거래(외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보겠지만, 아마 다른 프리랜서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타 업체에 외주를 맡겨봤으나 지인인 내게 맡기려는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일을 맡는다. 지인이라는 이유로 저렴하게 진행을 원해서 맡기려는 사람들은 전부 거절한다. 특히 초보 프리랜서 시절에는 자신이 쌓고 싶은 포트폴리오와 전혀 다른 방향의 일이 들어와도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낮은 페이에 포트폴리오로 쓰지도 못하는 일들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딱 한 번 정도는 경험할 만 하다. 다신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깨달음을 주는 용도로 말이다. 그다음 내 실력을 믿고 의뢰를 맡긴 사람이고, 페이가 내가 원하는 수준인 경우에는 다른 의뢰자들과 동일하게 진행한다. 간혹 조금의 서비스를 주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다른 의뢰자들과 구분 없이 진행하는 편이다. 공과사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편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지인들은 모두 거절한다. 하다 못해 업계 사람들 중에서도 후려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사람들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에게 내 일이 왜 이 정도 금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봤자 간단한 작업이라며 몇 만원, 혹은 밥 한 끼로 퉁치려는 사람들도 대부분이다. 다시 의뢰를 하지도 않고 내게 좋은 클라이언트가 되어주지도 않을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하는 시간은 낭비다,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깔끔하게 일을 거절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럼에도 기분을 상하게 하는 지인도 있다. 어느날 1년에 한 번도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친구에게 페이가 얼마인지, 일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도 없이 떡하니 자신이 곧 결혼하니 청첩장을 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었다. 이런 부분부터 일반적인 거래처와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거래처는 페이와 일정을 물어보는 것이 기본 예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에둘러서 거절했음에도 우연히 마주친 어느 날, 다른 친구들 앞에서 또 대놓고 청첩장 해줄 수 있냐는 말을 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겠지만, 12년간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나를 이용해 먹는 사람들을 수없이 겪어 온 나는 웃으며 청첩장 전문 디자이너에게 찾아가보라고 이야기 했다.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옆 친구는 거절하는거잖아, 라며 상황을 정리해줬다. 분위기는 너무 딱딱하지 않게 마무리한 채로 대화를 끝냈다. 그 친구가 작정하고 무례하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타인의 생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요청하는 것은 굉장한 실례이다. 그 친구도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느꼈길 바란다. (물론 이 친구가 그냥 지인 수준이었기에 거절했으며 주변의 정말 가까운 친구가 결혼한다면, 내 재능을 살려서 최선을 다해 작업해줄 의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조심스럽게 부탁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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