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봤어?”
이 한마디 말로 우리 가슴에 도전정신을 각인시킨 고(故) 아산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에게 1953년은 혹독한 한 해였다. 현대건설은 그해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 복구공사를 수주했다. 하지만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물가가 120배나 폭등했다. 건축 자재가격도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신용을 목숨처럼 여겼기에 힘들게 공사를 마쳤지만 일가족 집 4채를 팔아야 했다. 그 빚 갚는 데만 20년이 걸렸다.
미국의 유명 슈퍼마켓 체인 마켓바스켓의 CEO(최고경영자) 아서 T 디물러스는 2014년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 해고당했다. 고객 200만 명은 불매운동을 벌였다. 납품업자들은 공급을 중단했다. 지역 의원들도 지지행렬에 동참했다. 결국 그는 복귀했다. 그가 이토록 열렬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고객과 직원, 지역사회를 우선한 그의 경영철학이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아산 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 성공 신화와 아서의 마켓바스켓 CEO 복직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밑바탕에 신뢰가 깔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뢰는 그런 것이다. 신화를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신뢰의 값은 얼마일까?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신뢰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비행기를 탈 것이며, 고층아파트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신뢰가 안 가는 사람에게 막중한 일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밥을 먹는 것도 길을 걷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다 안전할 것이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루어지는 행동들이다.
2016년 9월, 삼성전자가 10개국에서 판매된 ‘갤럭시노트7’ 일부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250만 대 전량을 교환 환불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돈보다 신뢰’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금액으로 2조 원이 넘는다. 신뢰를 위해 조(兆) 단위 손실을 감수한 것이다.
이처럼 신뢰는 모든 행위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행동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으면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콧방귀 뀌며 경멸한다. 심지어는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 토대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신뢰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헌신한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규범도 지킨다. 반대로 조직을 불신하면 우리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어떠한 희생이나 위험도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대충과 적당이 판을 치게 된다.
사회에서도 다를 바 없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정한 특혜를 누리거나 부도덕한 벼슬아치들의 야심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면 그 사회의 신뢰 수준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구분으로 사회 분열만 심해진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게임 이론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범으로 잡힌 두 용의자가 끝까지 침묵을 지키면 범인을 찾지 못해 둘 다 1년 징역을 살게 된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 상대방에게 죄를 씌우면 본인은 무죄로 풀려나고 상대방은 4년 징역을 살게 된다. 만약 둘 다 상대방에게 죄를 씌운다면 각자 3년 징역형을 받는다.
용의자들은 ‘둘 다 침묵’ ‘한 명이 배신’ ‘둘이 서로를 배신’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지. 상대방은? 나만큼 착하고 현명할까? 나는 약속한 대로 끝까지 침묵을 지키겠지만 만약 상대방이 나를 배신한다면? 의리를 지킨 나는 4년 감옥살이를 하고 상대방은 자유인이 된다? 그럴 순 없지! 내가 먼저 배신해야지. 어차피 나를 배신할 사람을 먼저 배신하는 건 배신이 아니니까! 나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어일 뿐이야!’
대부분 용의자들의 의식의 흐름이다. 결국 배신이 두려워 먼저 배신하게 된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언제나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신뢰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전 문학은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의 《줄리어스 시저》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대사 때문이다.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는 셰익스피어가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완성한 사극(史劇)이다. 기원전 44년에 폼페이를 정벌하고 권력을 잡은 로마의 독재자 줄리어스 시저와 그의 친구이자 로마 집정관인 브루투스의 반역 음모가 극의 소재다.
브루투스는 시저가 로마 공화국을 군주국으로 바꿀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반란을 꾀하는 원로원들 그룹에 가담하게 된다. 브루투스의 행동은 명예와 애국심에 의한 것으로 그려진다. 시저는 3막에서 암살된다. 원로원에 나온 시저를 반역자들이 칼로 찌른다. 브루투스가 등장한다. 이때 시저는 그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아니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를 내뱉고 “이제 시저는 죽는다(Then fall, Caesar)”라고 말하며 숨을 거둔다.
브루투스는 대중에게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시저를 죽였다”라고 연설한다. 후에 브루투스가 필리피 전투를 준비할 때 그날 밤 시저의 유령이 나타나 브루투스가 패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전투에서 이긴다. 다음날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전투에 다시 나갔다가 진다. 그리고 자살한다.
‘브루투스, 너마저?’ 이 말은 이제 우리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우리 사회의 신뢰가 그만큼 무너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 사상가였던 공자(孔子, BC 551~BC 479)도 신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공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무기와 식량과 신뢰.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먼저 무기를 포기하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식량을 포기하라고 했다. 신뢰만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신뢰가 사라지는 순간 지켜야 할 공동체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와 관련된 명문장 두 개만 더 소개한다.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족하다.”(It takes 20 years to build a reputation and 5 minutes to ruin it.)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경고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A person who trusts no one can't be trusted.) 제롬 블래트너가 한 말이다.
상대로부터 받는 신뢰의 원본 출처는 나 자신의 진실성이다. 인생의 목표가 ‘더 진실한 내가 되는 것’이어야 하는 이유다. ‘진실한 나’만이 진정한 성공의 길,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어 줄 것이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신뢰받을 수 없다면 실력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이기는 세상을 살고 싶다면, 단어 하나만 붙잡으면 된다. 신뢰! 그리고 먼저, 신뢰할 일이다.
생각해 본다. 나는 신뢰하는가?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