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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Sep 19. 2023

좋은 친구의 조건

        

시간과 공간의 공유


“국어사전이 있길래 뒤적거려 보니까 친구라는 말이 한자더라. 나는 친구라는 말이 우리말인 줄 알았는데. 친할 친(親) 자에 옛 구(舊) 자를 써서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고 써놨더라.”     

영화 <친구>에서 준석(유오성)이 다른 조직에서 위협적으로 커가는 동수(장동건)를 제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상택(서태화)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친구’에 대한 설명이다. 준석의 표현대로 ‘친구’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개념이 함께 들어 있다. 하나는 오래된 시간, 다른 하나는 가까운 거리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공유’가 핵심이다.     

우리는 같이 놀고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를 친구라 부른다. 끈끈함으로 묶인 한 덩어리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친구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내 자아의 다른 모습(alter ego)이라고나 할까.     



친해진다는 말의 의미


친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물들어간다. 좋은 친구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다. 파리를 따라다니면 화장실로 가게 되고 꿀벌을 따라다니면 꽃을 만나게 되고 거지를 따라다니면 구걸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물론 나 자신도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친해진다고 하는 말은 서로 물들어간다고 하는 말과 같은 의미다. 친구는 그 물듦의 과정을 통해 어제가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 같은 시간이 내일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관계다. 그래서 친구에는 과거 시제가 없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밀레의 친구 루소


만종(晩鐘)이라는 그림이 있다. 프랑스 화가 밀레의 작품이다. 해 질 녘에 농부가 수확을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유명한 그림이다. 친구 이야기 하다가 만종을 들먹인 건 밀레에 얽힌 친구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밀레는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그림을 눈여겨봐 왔던 것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밀레의 친구인 루소였다. 제네바 출신 자연주의 학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사람이다. ‘인간 회복’을 외쳤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활이 궁핍해진 밀레에게 어느 날 루소가 찾아왔다.     

“여보게 축하하네!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다네.”     

밀레는 루소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밀레는 작품을 팔아 본 적이 거의 없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이었다.     

“밀레, 좋은 소식이 있네. 내가 화랑에 자네의 그림을 소개했더니 적극적으로 구입 의사를 밝히더군. 이것 봐! 나더러 자네의 그림을 골라달라고 선금까지 맡기더라니까.”     

루소는 이렇게 말하며 밀레에게 300프랑을 건네주었다. 입에 풀칠할 길이 없어 막막하던 밀레에게 그 돈은 생명줄과도 같았다. 밀레에게 희망이 생겼다. 자신의 그림이 드디어 인정받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밀레는 생활에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전보다 그림에 더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밀레의 작품은 화단의 호평을 받아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소의 집을 방문한 밀레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에 루소가 다른 사람의 부탁이라면서 사간 자신의 그림이 거실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밀레는 그제야 친구 루소의 깊은 배려를 알고 그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가난에 찌들어 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사려 깊은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그림을 사주었던 것이다.     

《짧은 동화 큰 행복》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문을 조금 각색했다. 밀레를 향한 루소의 우정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다. 친구는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미안해질 일이 없도록 배려하는 관계가 진짜 친구다.     



좋은 친구의 본질


영국 작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 네 가지’를 말했다. 오래 말린 땔나무,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옛 친구. 공감이 가는지 모르겠다.     

친구와 관련한 좋은 표현이 있다. ‘진정한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편한 느낌이 없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이야기다. 불편감이 없다는 것이 너와 나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간섭하지 않는 거다. 상대가 원할 때 딱 그만큼의 거리에 서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좋은 친구는 바로 이런 친구다.     

좋은 친구는 상대의 작은 실수나 무례를 비웃거나 타박하지 않는다.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배고파, 밥 줘!’라고 씩씩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 또 그렇게 찾아온 친구에게 군말 없이 라면을 끓여주면서 소주 한 병 같이 내놓을 수 있는 친구. 참 멋지지 않은가.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사상가이자 교육자, 언론인, 시인이었던 고 함석헌 옹(1901~1989)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는 친구의 정수를 보여준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양보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어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관계는 ‘관심’을 먹고 자란다


볼수록 의미가 깊어지는 시다. 어떻게 해야, 얼마나 노력해야 ‘그 사람’을 가질 수 있을까. 관계는 ‘관심’을 먹고 자란다. 관계는 한 번 형성되면 영원히 지속되는 ‘자동 시계’가 아니다. 수시로 애정과 관심으로 보살펴 주지 않으면 멈춰 서 버리는 ‘수동 시계’다. 서로 기대며 평생 동안 함께 갈 친구는 그냥 만나지는 게 아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정’이 있어야 한다. 혹시 그런 친구를 한 사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도 “야, 인마” “이 자식이”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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