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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Sep 14. 2023

인문학의 존재 이유

      

오이디푸스, 지독한 운명의 주인공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지독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테바이 왕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신탁의 예언 때문에 세상에 나오자마자 산속에 버려진다. 하지만 목동에게 발견되어 요행히 살아남는다. 이웃나라의 왕자로 성장하여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테바이의 왕위에 올라 어머니와 결혼해 자녀들을 낳는다.     

오이디푸스가 죽자 왕권을 놓고 그의 두 아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1년에 한 번씩 나라를 교대로 통치하기로 했으나 형 에테오클레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생 폴리네 이케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둘은 전투 중에 서로의 칼에 찔려 죽는다. 이들의 외삼촌이었던 크레온이 졸지에 왕위에 오른다. 크레온은 자신의 편이었던 에테오클레스의 시신을 수습해 성대한 장례를 치르도록 하지만 정치적 반대세력이었던 폴리네 이케스의 시신은 들판에 방치한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폴리네 이케스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들판에서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오빠의 시신을 거두는 것이 ‘신의 법’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녀는 오빠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법정에 선다. 법을 어긴 사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안티고네는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결국 죽음에 처해진다. 산채로 매장당하는 명령을 받았지만 자살한다. 안티고네를 사랑한 크레온 왕의 아들 하이몬(안티고네의 외사촌)도 안티고네를 살리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생각하게 만들고 질문하게 만들다


참 비극적인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소포클레스(BC 496~BC 406)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까.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 권력도 인생도 무상하다는 것, 사랑은 감성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 뭐 대충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무튼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사람이 뭔지, 사랑이 뭔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게 만들고 질문하게 만드는 것. 이게 인문학의 본질이다. 만족과 치유 차원을 넘어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안온한 삶을 뒤흔든다. 깊고 넓게 파고들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만든다. 질문은 속성상 맹목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행위다. 질문을 거부하는 사회에 인문학이 불편한 이유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


인문학의 핵심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공부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인문학이다. 사람공부의 시작은 질문이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앎은 이해의 전제조건이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야 한다. 마치 질문에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낸 소크라테스처럼. ‘너 자신’을 알 때까지. 그리고 질문의 창끝이 향하는 ‘너 자신’의 ‘너’는 대부분 ‘나’다.     

질문을 던지면 대상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희미하던 본질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확연히 드러난 본질은 ‘성찰’이고 ‘깨달음’이다. 질문은 이처럼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사막을 적시는 오아시스처럼 삶을 촉촉이 적시고 풍요롭게 만든다. 질문을 던지되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 질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학문


하버드대학이 2007년 학부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낸 보고서는 ‘질문’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고서는 “하버드 교육의 목적은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실시하는 데 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리버럴 에듀케이션’(liberal education)의 목표는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겉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들의 아래와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키며,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리버럴 에듀케이션’은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탐구와 교육’이다. 기존의 틀 깨기, 비판적 사고력 함양,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상상력, 호기심, 이해력의 자극과 확대가 골자다. ‘리버럴 에듀케이션’은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질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학문이다. 질문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을 고민하다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조류가 된 디지털과 빅데이터, AI(인공지능)는 인문학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학자이자 《사피엔스》의 저자인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인간이 ‘2류 생명체’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간이 AI나 무기물 생명체인 사이보그인간에 밀린다는 것. 그는 “인류는 점점 똑똑해졌지만 한정적 지식만 필요한 인간 개인은 개미와 벌처럼 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될 것 같아 불안감이 은근히 온몸을 감싸고 옥죄어온다.     

원래 ‘죽음’은 인문학의 궁극적 관심사다. 이제 그 ‘죽음’마저도 공학의 문제가 됐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애초에 불안의 씨앗을 뿌린 존재가 인간이니 아이러니컬하기까지 하다.     

온 나라에 인문학 열풍이다. 인문학 강좌가 줄을 잇는다. 이제 인문학은 ‘힐링’ 차원을 넘어 ‘근원’(根源)에 대한 질문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인문학을 통해 죽음과 사랑, 인류의 존재 이유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이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다. 오이디푸스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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