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meat?
이 글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글을 읽다 작품을 감상하실 준비가 되셨다면, 멈추고 얼른 작품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심볼(Symbol)이란 말을 알려준 '스타'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Blonde)>는 그녀를 소재로 한 소설 원작의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금발의 백치미, 환풍구에서 올라오는 치맛자락을 어설프게 가리며 "How Delicious"라 외치는 그녀에게 집중한 대중들. 영화연출 곳곳엔 그녀가 연예계며 대중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인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그녀의 대표적인 사진들과 구도가 펼쳐진다.
'마릴린 먼로'라는 인물이 궁금해서 보게 된 <블론드>는 그녀의 인생처럼 썩 유쾌한 영화는 아니었다. 일부에서는 마릴린 먼로라는 인물을 두고 꼭 그렇게 연출했어야 하냐며 후반부에 나오는 불필요한 정사장면에 관해서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왜일까.
'사랑받는 사람'이란 명사보단 '버려진'이란 형용사가 잘 어울리는 그녀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남자들로 인해 망가지고 이용당했다.
<블론드>는 포르노가 아니다. 부모란 부재로 의지할 곳 없는 곳에서 펼쳐지는 성폭력들에 관한 언급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을까. <블론드> 속 먼로는 신음하거나 즐기는 섹스 장면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정상급의 스타가 되어도 거구의 남자들에게 끌려가며 "Am I meat?(제가 고기인가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대사는 강렬했다. 사랑과 이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여성으로서그녀의 덜 자란 결핍의 모습만 보였다. 그리고 결핍을 이용하는 더러운 추악한 사람들의 욕망들.
영화 연출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인생을 이만큼이나 잘 표현한 영화가 있었을까. 영화는 부족할 수 있을지언정 홍보마케팅이 잘못됐다. 기사를 찾다 보면 넷플릭스가 이 영화를 '최고의 수위, 어마어마한 수위의 영화'라고 홍보마케팅 한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집에서 보면서 딸이나 치라고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고, 스낵무비는 더더욱 아니다. 넷플릭스의 홍보마케팅인지, 그렇게 보이고 스트리밍되길 원했던 기자들의 소망이 이 영화를 추잡한 포르노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왜 '포르노'의 화살이 마릴린 먼로를 향하는가. 마릴린 먼로는 포르노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기구하고 추잡한 포르노 같은 인생을 만든 건 마릴린 먼로가 아니다. 마릴린 먼로를 보고 섹스할 생각만 가진 남자들이었지. 마릴린 먼로는 그런 인생과 행동을 원하지 않았다. 마릴린 먼로는 꿈이 많았고, 정직하게 살고 싶었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그뿐이다.
나는 <블론드> 이후에 넷플릭스에 있는 <마릴린 멀론 미스터리 : 비공개 테이프>(2022)를 보았다. 물론 <마릴린 멀론 미스터리 : 비공개 테이프>도 완벽한 리얼리티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블론드>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촬영이 끝나고도 연기수업을 하러 가는 먼로, 책을 좋아하는 먼로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블론드>는 과연 강 간판타지로 만들어진 영화일까. 강간판타지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영화가 있다. 바로 <한공주>다. <한공주>의 강간씬이 난 더 역겨웠다. 괴로워하며 우는 표정에 집중하는 연출은 극장을 역겹게 만들었다. <블론드>는 신음하지 않는다. 이상해지는 정신줄을 잡느라 괴로운 사람이 있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실제인지 영화인지 헷갈리는 불쌍한 여자. <블론드>가 소설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할지라도, 마릴린 먼로라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세상이 잔인할까 싶을 정도로 속이는 사람이 가득한 삶일지 몰랐다.
로맨틱한 재즈 음악에 맞추어 먼로의 기구한 삶은 흑백영화로 계속 이어진다. 영화관의 커튼이 닫히고 열리고, 영화가 시작하고 박수를 치고, 받고, 계속 계속….
문제가 된 대통령과의 정사씬에선 먼로는 계속 말한다. "내가 영화를 찍고 있는 건가? 이게 영화라면 연기할 수 있어." <블론드> 속 먼로는 계속 미쳐가는 정신줄을 붙잡느라 스케줄을 강행하면서 약을 맞고, 백치미스럽게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괴기한 모습들을 유유자적 스쳐 가며 모두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기를 지켜주겠다던 첫 번째 남편은 먼로에게 집착을 넘어서 폭력을 저지르고, 믿었던 작가 남편은 먼로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고, 촬영장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이웃들이 모인 장소에서조차도 먼로는 비웃음당한다. 점점 주변이 괴기해지고, 흉측해지고 알 수 없이 얼굴이 깨져 보인다. <블론드>를 다 보고 나면, 먼로의 삶을 망친 사람들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2022년 지금도 그루밍 범죄며 부모의 부재와 결핍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마릴린 멀론 미스터리 : 비공개 테이프>를 보고 나선, <블론드>가 그렇게까지 소설이었을까 싶었다. 강간판탄지를 보느라 혹시 그녀가 꿋꿋이 살아내려고 정신줄을 잡는 장면들 속에서 읊은 대사들이 들리지 않은 것일까? 그녀의 삶이 누구로 인해 피폐해지고 엉망이 되었는지 명확한데, 비난의 손가락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블론드>는 죽어서까지 스타로서 상징성과 화제성을 가지는 이 기구한 팔자소관을 가진 누군가의 삶을 집에서 안락하게 보는 게 참 이상한 기분이 드는 영화다. <블론드>를 보면서 내가 보았던 건 추악한 사람들 보다는 제대로 살고 싶었던 한 여자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의 <Nxde>란 곡이 나왔다. 마릴린 먼로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 곡은 규정된 생각 박스 속에 가둔 게 누구냐며, 변태는 너라고 말한다. 이 말이 맞다.
모든 매체가 하나의 영광만을 비출 순 없기에, 나는 만나본 적 없는 마릴린 먼로에 관해서 알려면, 영화 <블론드>, <마릴린 멀론 미스터리 : 비공개 테이프>, (여자)아이들의 <Nxde>는 같이 세트처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로를 이해하려는 사람을 과연 누굴까. 역겨운 사람은 과연 누굴까.
까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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