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형 템플릿 숏폼 콘텐츠 속에서 창의성을 살려내는 방법
본 글은 숏폼 플랫폼 시대에 살아남으려는 마케터와 기획자로서의 고민과 성찰 그리고 '존코바'라는 닉네임을 가진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오프라인 클래스 후기입니다. 완전한 내돈내산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반박은 받지 않습니다.
이 글을 찾아온 당신께 이 문장을 바칩니다.
'하세요. 대신 기능만 배우지 마세요. 선생님의 태도를 배우세요.'
영상과 홍보 마케팅, 기획과 디자인 영역을 잇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꿈에서 멀어지던 때.
손쉽게 콘텐츠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어플들의 등장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겐 무기가 필요했다.
마침 그때 본 게 존코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의 유튜브였다.
숏츠폼이 대세가 되면서 <Canva>를 비롯해 사용자가 제작에서부터 업로드까지 하는 어플이 대량 생산되었다. 마케터는 어떻게 이것들에 대처해야 하는지. 디자이너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비슷한 템플릿을 사용하는 때에 과연 어떤 차이를 둘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숏폼 주력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맞추어 퀄리티있는 템플릿을 제공하는 어플들이 대거 늘어난 지금. 상업적 이용도 가능한 템플릿도 등장하면서 과연 소비시장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했다. 지금도 콘텐츠 관련 강연에 가면 취업계에 뛰어들었던 4년 전부터 궁금해했던 유튜브 차세대 플랫폼에 관해 질문하곤 하는데, 빅데이터 쪽 한 관계자는 이에 관해 제작부터 업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아마 차세대 플랫폼으로 선택받을 거로 답했다.
<Canva>를 시작으로 정말 많은 소셜 미디어 맞춤형 템플릿을 제공하는 어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어플들 몇 개를 추려서 소셜 미디어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을 이용해서 숏츠를 만들어 보는 실험을 계속했다. 조회수와 도달률, 그리고 어떻게 해야지 더 많은 조회수를 끌어 낼 수 있을지를 계속 실험했다. 그러다 모두가 똑같은 템플릿을 사용하고, 비슷한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영상에 질린 나는 해당 어플들이 아닌, 직접 만든 모션 그래픽디자인 영상이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해당 어플들은 유료와 무료로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해당 어플들의 기능들을 활용해서 만들어 보면, 결국 비슷비슷한 공장식 영상을 대량 생산하는 것에 불과할 뿐인데, 이보다 열심히 기획해서 만든 영상이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음 콘텐츠 제작은 두 갈래의 방향으로 나뉠 게 뻔하다.
예전 나영석 PD님의 프로그램이 유행했을 때 우후죽순 생겨난 여행이나 음식 장사 프로그램들처럼 앞서 흥행한 프로그램 제작을 흉내 내는 것에서 끝나는 콘텐츠, 아니면 좀 더 비튼 창의성이 가미된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느껴질 프로그램이 나올 것이었다. 정말 전통적이게도 이 두 갈래의 방향 중에서 지금 유튜브를 기준으로 보면 CJ ENM이나 JTBC의 프로그램처럼 그저 화제성에 따른 동일한 클립을 여럿 생산해서 많이 노출시키는 것 외엔 기존 방송사들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들이 이색 점을 갖고 화제성을 갖기란 더 어려워졌다. 일반인 사용자가 모여있던 플랫폼에서 거대 기업들이 더 고해상도와 유튜브 맞춤형 팀들을 만들어 오면서 챌린지 외엔 다른 일반인들의 크리에이티브 콘텐츠가 성장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해당 어플들에서 제공되는 템플릿들은 전문가들이 만들어 냈기 때문에, 퀄리티도 떨어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각 콘텐츠의 라이센스에 따라 많은 템플릿이 상업적 사용으로도 가능하여 디자인 비전문가도 쉽게 디자인 영역까지 섭렵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을 기준으로 자사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이나 타 어플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을 사용했을 때, 퀄리티도 조회수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스크롤 하며 넘기는 템플릿은 모두 이란성 쌍둥이 같은 모습이었다.
틀에 박힌 말이긴 하지만, 마케터든 기획자는 콘텐츠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듯이 뒤가 툭 튀어나왔던 TV와 PC 세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작한 질문에 관한 답처럼 끊임없이 기능을 익히고, 트렌드를 알아야 하는데 이젠 그 주기가 너무 빨리 바뀌었다는 게 문제다.
침착맨과 나영석 PD가 나눈 대화처럼 이젠 영상에 관한 접근성과 창작이 쉬워져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들은 유튜브에 그 형식을 그대로 끌고 오려 하고 있고, 이미 너도나도 창작자가 될 수 있던 기회의 플랫폼이었던 유튜브는 더 짧은 호흡의 숏폼에 주력하면서 챌린지로 뒤덮였다. 이전엔 개인 브랜딩이 그렇게 인기더니, 이젠 TV에서 유행어가 등장하면 끝물이 되는 소셜 미디어만의 유행어가 난무하고,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와 연예계 가십거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과연 알고리즘은 퀄리티가 좋은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을까? 지금 과연 나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젠 흥행 주기마저 짧아져 단발성 콘텐츠만 되어버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년이란 시간 동안 꾸준히 퀄리티를 유지해 오며 구독자 수 40.1만 명(23.08.09. 오후 7시 22분 기준)에 달하는 유튜버이자 디자이너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나의 질문을 두고 시작했다. 4주로 완벽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는 될 수 없을 테니, 비싼 오프라인 수업을 통해서 나는 딱 하나 배우고자 했다. 바로 그의 작업 태도였다.
평범한 사람이 모험하기엔 비용은 비싼 편이다. 599,000원으로 거의 60만 원의 가량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 4주에 한 회당 3시간으로 치면, 1시간 당 5만 원가량의 수업료를 내는 것이다. 그의 경력에 비하면 시간당 5만 원이란 돈은 어쩌면 저렴한 축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기본기를 이토록 잘 알고 실무에 적용하고, 끊임없이 트렌드를 따라잡으며 인사이트를 제공하려는 콘텐츠 공급자는 얼마 없다. 심지어 그는 유튜브와 <클래스101>의 소비층을 다르게 두고, 좀 더 전문적인 영역은 <클래스101>에 콘텐츠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의 말을 좀 더 생각해 보면, 유튜브의 퀄리티는 떨어져야 하는 게 맞지 않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유튜브를 통해서 그가 기본기가 정말 뛰어난 디자이너이자, 잘 알려주고 설득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고, 위에 올린 해당 영상을 통해 그로부터 내게 부족했던 사회생활 태도를 좀 더 엿보고 싶었다.
기능은 '클래스101'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그러니 오프라인으로 가는 자. '태도'를 배우자.
한 분야에서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 CJ ENM, OCN, 굵직하고 살아남기 힘든 곳에서부터 공중파 3사 SBS, MBC, KBS까지 거치며 디자인 경력을 다지고, 잘하는 것도 모자라 회사에 나오고 나서도 유튜브를 통해 퀄리티있고 자세하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정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독자를 이렇게 모으는 것도 그의 재능일터.
숏츠로 존코바(이하 선생님)를 접했지만, 나는 그의 4년 전 콘텐츠부터 지금까지의 콘텐츠를 보면 퀄리티와 내용의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초반엔 당신이 직접 기획과 편집까지 도맡아 하셨다고 하는데, 그 퀄리티 또한 지금과도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역시나 영상 분야에서 오래 있던 경험과 경력이 괜히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사회생활'에 관해 팁을 준 것처럼, 사람이기에 하나라도 더 해가는 게 좋다. 여기까지 찾아와 리뷰를 보고 오프라인 수업 참여를 앞둔 사람이거나 지금 진행 중인 사람이라면, 소규모 수업이라는 것을 감안해 좀 더 가져갈 수 있는 데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로만 오고 가는 건 제대로 된 질문이 되지 못하니 꼭 뭐라도 보여드리며 조언을 얻는 것이 좋겠다. 시도조차 없는 생각만 있는 디자인엔 조언할 순 없다. 디자인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을 가져가야 한다. 잘하지 못해도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해가서 귀한 조언을 받았으면 한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렇게 업계에 잔뼈가 굵은 이에게 조언받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나이에 '열심히'만 남아버린 나는 너무 늦었음을 알고 있디.
사회는 냉정해서 '열심히'만 한다고 독려받는 것은 없다. 잘해야 한다.
무엇을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상사의 마음에 들게 만들었다고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다 수용해서 클라이언트가 만족했다면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같은 과업을 수행해도 '잘했다'로 평가받는 사람과 '다시 찾고 싶은 사람'의 간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간격 차이는 태도로부터 온다. 4주간 수업을 받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는 갑이 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피드백 받을 때도, 냉정한 피드백 대신 사려 깊다고 느꼈다. 그가 유튜브에서도 말했듯,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나는 좀 더 태도를 갖추기로 했다. 이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았고,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더 발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릇 학생 때도 그렇 듯 좀 더 발전하고 싶다면, 더 끈질기게 해야 한다. 준비한 게 있는 상태. 주어진 것보다 더했을 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내용과 질문을 추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다행히도 좋은 사수를 만나 배웠다고 하시지만, '좋은 사수'를 만든 것은 그의 태도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직접 말했듯이 처음부터 지금의 태도를 갖춘 것은 아닐 수도 있으나. 결국에 지금, 그에게 여러 클라이언트가 작업의뢰를 하고, 구독자가 그의 영상에 반응하는 것은 그는 자기반성을 할 줄 알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고자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과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포기를 해왔던 나는, 이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사람이 궁금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은 대답을 얻을지 몰랐다. 오프라인 클래스로 가게 된 이유기도 하지만, 쉽게 결정한 선택은 아니었다. 댓글로 긴 물음을 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이고, 오프라인 클래스를 듣기엔 비용도, 장비도 문제였다.
생활비가 없어서 할부로 결제를 했다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취소하고 7월이 되는 첫 번째 날에 결제를 하기로 했다. 7년간 쓴 노트북으로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지 물으니 다행히 사무실에 수업 때만 대여할 수 있는 노트북 한 대가 있다고 해서 양해를 구했다. 난 해당 클래스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반복하는 동안 번뇌가 찾아왔다.
'과연, 이 클래스를 이 비용을 내고 듣는 게 맞을까? 난 디자이너도 아닌데...'
'단지, 흥미롭다고 듣는 게 좋을까? 그렇다고 집에서 뭘 할 건데...'
7월 1일이 아침. 페이지에 접속하자 '마감'이란 글자가 보였다. 그렇다고 유튜버를 믿지 않는 나로선 애걸복걸하며 한 자리 더 열어달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운이 좋게도 밤이 될 때쯤에 공석이 생겨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생활비도 걱정했었는데, <행복한 왕자>가 물어다 준 왕자 조각상의 보석처럼 때마침 들어온 근로 장려금 소식에 넉넉한 돈은 아니었지만, 나는 <행복한 왕자> 속 작가가 보석을 발견하고 소리치는 장면처럼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난 이 모든 우연을 수업에 맞추기로 했다. 필연처럼. 하지만 큰 기대는 안 했다. 어차피 나만의 기대이기 때문이다. 20대에 큰 기대로 무너져 본 경험들이 있다 보니, 칼같이 수업을 끊고, 더 이상의 인연을 만들기 싫어하는 종류의 수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마음가짐은 갖춰야 실망이 덜 할 듯했다.
첫 주엔 사무실에 모기들이 날아다녀 잡아주신다고 애쓰셨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었다. 진도를 어떻게 나가는지 더 보고 싶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첫 주 수업이 끝난 뒤엔 유튜브에서 보았던 '직장생활의 조언'처럼 내가 뭐라도 하나 더 해갔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첫째 주 과제에 힘을 실었다.
이전엔 어떤 식으로 과제를 했었는지 사람들의 게시글을 보았고, 흐름에 맞춰서 과제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기능적인 것만 따라 하여 좀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도록 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내가 과거에 두고 온, 어쩌면 포기했었던 '직접 디자인 소스 만들기'였다. 노트북은 집까진 대여할 수가 없어 지금 쓰고 있는 오래된 노트북으로 느리더라도 하나씩 만들었다.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상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탓인지, 아니면 내가 변했던 탓일까. 학부생일 때는 직접 돈을 사거나, 클라이언트로 파트너를 고용해서 제작하는 게 더 효율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드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점점 만질수록 좀 더 어필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아졌고, 보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뉴진스의 '파워 퍼프걸'> 쇼츠다.
만드는 동안 즐거움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긴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다. 과제가 나왔을 당시 맞춰 나온 '뉴진스의 뉴진스(NewJeans)' MV(뮤직비디오)는 파워 퍼프걸 캐릭터 형태를 응용한 애니메이션이 많이 사용된 상태였고, 소스를 더 넣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민희진 프로듀서의 감성과 참여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으로 꽉꽉 찬 영상이었다. 만일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더 이상 나는 할 수 없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기존의 뮤직비디오에서 뭔가를 조금만 더 가미한 영상을 제작했을 것이다. 혹은 더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재해석해서 음악에 맞춘 다른 동작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그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좀 더 난이도를 높이되 방법은 쉽게 가보기로 했다. 기존의 뮤직비디오에서 수업에서 배운 대로 키워드를 떠올렸다. '스마트폰'과 '파워 퍼프걸 캐릭터' 그리고 색 선정은 멤버별로 분장 된 색상을 키 컬러(Key Color, 주색)로 선정했다.
① 로고와 키 컬러 응용하기
3D와 2D가 섞인 뮤직비디오의 느낌을 따와 뉴진스로고를 가짜 3D(일명 fake 3D)로 만들었다. 계속해서 기존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를 관찰하며 캐릭터들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 해당 동작을 취할 때 어떤 효과들이 등장하는지 발견했다. 캐릭터는 그냥 등장하지 않았다. 게임처럼 '반짝!'하고 등장했고, 어떤 동작을 취할 땐 반동과 좀 더 다양한 표정을 취했다.
스마트폰은 선생님이 알려주신 공간감을 줄 수 있도록 두께감을 주었다. 대신, 주변부의 밀도가 주 오브제보다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외부의 버튼들은 따로 넣진 않았다. 스마트폰 오브제는 파워포인트에서 도형 다루듯 쉽게 가고, '모션그래픽'에 걸맞게 캐릭터에 힘을 주기로 했다. 카메라에 찍히듯 한 효과를 주었고,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올라오는 듯한 효과를 팔에 주었다.
② 반응 보기
배경 색상은 멤버 색상과 선생님의 주 컬러인 '파랑(Blue)' 버전을 만들어 업로드를 했다. 파란색 배경이 좀 더 알고리즘을 잘 탔고, '좋아요'와 조회수가 잘 나왔다. 그래서 다음에 캐릭터에 동작을 더 줄 때 영상 소스는 파란색 배경의 버전의 영상을 원본 소스로 사용하였다.그리고 난생처음으로 5분도 안 되어서 조회수가 1,000을 넘어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좋아요'도 끊임없이 늘어났다.
③ 인사이트 얻기
모션이 가미되었을 때, 알고리즘에 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인사이트)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궁금증. '공장형이지만 퀄리티 있는 템플릿에서 과연 창의성은 유효할까?'란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답도 얻었다.
2주 차 피드백을 시작으로 난 소셜 미디어는 템플릿들에 지배당하고 말 거란 편견이 있었음을 깨닫고, 더 많은 실험과 잘해보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3주 차 때까지도 큰 무리 없이 과제를 했다. 부모님의 잔소리와 함께 옛날에 생각으로만 남겨두었던 시사성을 지닌 디자인을 진행해 보고 싶었다. MBC의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207회 - 2023 청년보고서 ‘희망 금지’ (23.04.23) 편에서 영감을 받아 영상을 만들었다.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림이라도 그려놔야지 후에 영상을 만들지 못하는 사태가 되더라도 뭔가 하려고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정신을 붙잡고 24시 스터디카페에서 밤을 새워 영상을 만들었다. 스케치도 정말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하지만 피드백 시간에 레퍼런스를 찾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4주 차에선 어떻게 하나의 영상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단계를 소개하는데, 그동안 놓친 게 정말 많다는 것을 알았다.
주마다 다른 팀원들의 과제 속에서 피드백을 듣고 나니 역시 기본기가 부족함을 알게 됐다. '레이아웃(배치), 시선의 흐름을 끌어내기 위한 기본기들(텍스트 선정, 키 컬러(주색) 설정, 공간감, 투명도)'들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들이 다 끝나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워낙 유명한 디자이너고, 난 이 수업을 받는 '초보'니 칭찬받을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혹여 칭찬을 받는다면, 그냥 '열심히'한 것.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도 받는 그중 '하나'라고만 생각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의 바우하우스셔요."
진실로 선생님은 나의 바우하우스였다. 기본기를 알아가는 동안 다시 흥미를 느꼈다. 20대 초반. 책을 찾고, 그 속에서 디자인에 관한 명제와 역할들이 무엇인지 알고, 유명한 대학교에선 어떻게 배우는지 알려고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슬펐다. 어쩌면 내가 20대 초에 회의감을 가지며 가야 했던 곳은 서점의 미술 코너 아니었을까. 어쩌면 전시였을지도 모른다. '모두 다 똑같아.'라고 냉담하게 평가하기보다, 좀 더 진취적으로 나아갈 순 없었을까. 디자인과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한 이후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후회했다.
내가 이렇게 디자인을 좋아했던가? 어쩌면 포기했던 것은 그냥 '디자인과'가 아니라. '더 잘하고 싶었던 나' 아니었을까?
너무 어린 나이부터 영상업계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은 지금에 나는 걱정이 많았다. 유튜브며 비핸스(Behance), 비메오. 그렇게까지 안 가더라도 소셜 미디어에서 계속 보이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고 있다면,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포기가 더 빠른 방법이었다. 지금의 경험은 그냥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녹이는 정도로 쓰여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만의 행복으로만 끝나는 인생에 만족하기가 싫었다. 지금 내게 다가온 '흥미'란 찰나를 놓치기 아까웠다. 솔직히 선생님은 냉정하게 '늦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후회할 필욘 없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이 성장할 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뭔가를 했을 테고, 몸담았던 분야에서 성장했을 거라고. 선생님 당신도 마찬가지로 단계별로 올라갈수록 센스있는 디자이너는 정말 다양하고, 매번 단계에 올라설 때마다 자극받게 된다고. 하지만 남들의 창작물을 보면서 좋은 자극이 아닌 스트레스가 될 땐 보지 않는 것도 답이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취감 한 편으로 꿈 많던 20대의 모습에 멈춰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참 질문이 많았었는데, 어느새 질문조차 겁이 나기 시작한 나이를 마주한 나는 새까만 콩처럼 작아져 있었다. 열심히 살긴 살았는데, 대체 뭘 했다고 말할 수 있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없는 갖가지 일들을 겪고도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후회 같은 건 없었다고 늠름하게 살아왔는데. 정작 그 하루하루가 모인 시간에 서 있는 지금 내겐 뭐가 남아있나.
수업을 들을수록 과거에 질문을 던졌다. 왜 나에겐 존코바 선생님 같은 교수님이 없었지? 왜 내 동기 중엔 존코바 선생님 같은 사람이 없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내 인생은 좀 더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바뀔 수 없는 과거는 '나이'란 정량적 숫자와 함께 슬픔의 늪지에 계속 가라앉게 했다.
내 후회의 시작은 어쩌면 '인정'이었을까. 업계 최고 디자이너에게 스케치를 잘한다고 평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단 한 번의 인정으로 이렇게 슬플 일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달랐다.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아르바이트해서 열심히 돈을 모아 왔다던 고등학생보다 '미성숙한 나'. 디자인과 진학을 꿈꾸는 20대 초반의 동기들…. 그에 비해 '열심히'만 남은 심하게 나이 들어 버린 나….
마치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에 나오는 사무엘의 노래처럼 '밤처럼 늙어버린, 다 읽어버린 책'과 같은 가사처럼 어느새 이렇게 나이 들었다는 생각에 슬펐다. 그 슬픔을 결정해 왔던 것은 나였다. 슬픔을 자초한 게 나였다는 생각에 나는 낭만적으로 끝날 줄 알았던 마지막 수업을 향해가는 동안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꾹꾹 눌러가면서 작업했다. 이까지 설움 따위에 지지 않겠다고. 다시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슬퍼졌다.
과제를 안 할 순 없었다. 개인적인 일로 인해 4주 차엔 그 전 시간에 비해 떨어진 퀄리티의 영상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공지사항엔 '재미있게' '부담감 없이'하라고 되어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왠지 더 잘하고 싶은 고점(High mark)을 다시 포기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정신력에서 무너지고, 과제를 제출하며 질문을 남겼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어떻게 전진할 수 있을까요?'
'제 스케치 실력을 살려 보자고 하셨는데, 살릴 수 있는 방향이 뭐가 있을까요?'
'레퍼런스를 찾을수록 비슷한 양산형 일러스트 스타일이 많이 보이는데, 과연 저의 스케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질문을 다 읽으신 선생님은 숙연해졌다며 다음 피드백을 이어 나가셨다. 유용한 피드백이었다. 욕심을 눌러 담은 하나의 영상보다 개별의 영상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하는 피드백이었다. 정말 놀랍게도 선생님의 피드백은 내가 인용한 작품의 오브제들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질문에 관한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저 상황이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과제를 제출하며 질문을 작성하여 선생님에게 대답을 얻을 수 있었는데, 어떤 때엔 질문이 왜곡되어 해석되거나 타인이나 선입견에 의해 피드백 시간에 제대로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꼭 남았다. 질문이 폭주하는 날엔 엄청 정정하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도 있을 때가 많았지만, 3시간 수업이니, 진도를 빠르게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할당된 피드백 시간은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양해를 구하고, 일찍 오거나 남아 질문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 남아 긴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듣고, 다들 돌아간 자리에 남아서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마지막 4주 차에 해결되지 못한 질문들이었다. 내 스케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아트워크가 뭐가 있는지 찾아보라 하셨다. 르네 그루오의 그림을 내밀자, 선생님은 모션그래픽으로 표현할 순 없는 일러스트에 가까운 형식이라고 알려주셨다.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작가이기 때문에 당연하였지만, 모션 그래픽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표현가능한 범위가 어떨지 모르는 나는 최대한 나만의 감성에 가까운 작가를 고른 것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장 한장 그려서 진행하는 것(frame by frame)이 아닌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s)를 사용하는 모션 그래픽 범위 내에선 내가 추구하는 일러스트는 모션 그래픽에 적합한 일러스트는 아니었다. 애프터 이펙트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어서 내가 핀터레스트에서 보았던 비슷비슷한 방식의 벡터 형식의 일러스트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게 답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는 가능하지 않을까요?'라며 아직도 인상 깊게 알고 있는 f(x)의 <4walls> 무빙포스터를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방향들을 말씀해 주셨다. 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는데, 마음은 무겁기보다 설레었다. 학부생 때 <바우하우스>에 설레었던 때처럼.
선생님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코너인 <디자인 참견러>와 같이 수업 참여 멤버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주셨다. "자신을 너무 믿고 있는 것 같아요. 레퍼런스를 많이 찾고, 모방부터 해요. 모방에서부터 시작하고 나서 나만의 캐릭터 가치를 찾을 수 있어요. 처음부터 나만의 것을 만들 순 없어요."
나는 다시 고점에 섰다. 나는 다시 뒤돌아 다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추신
아직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어쩌면 아직도 '존코바'란 사람의 수업에 관해 신뢰가 안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로부터 발견한 태도는 '그냥 하는 사람이 아니다.'란 것이다.
4주의 수업이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수강생들이 물어본 문의 내용과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추려 커리큘럼과 영상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공유해 주었다.
하나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짜는 것부터 시작해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고 응용하기 위한 예제를 만드는 것, 그 외에 어떻게 수업할 건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열심히 했을 때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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