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A" (악곡·악장 등의) 종결부
"CODA" (악곡·악장 등의) 종결부[코다]
- 옥스퍼드 사전 발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위험할 것 같은 원전 지역에 가서 피아노를 만지고, 비가 오는 날엔 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자연의 소리를 느끼려 하는 사카모토의 모습은 분명 괴짜스러웠다.
사카모토의 젊은 시절이 중간에 나오기 전까진 그저 괴짜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였다. 몰랐던 그의 젊은 시절의 음악엔 신디사이저며 여러 악기로 두루두루 시험해 온 류이치 사카모토가 있었다. 이제 그가 그답다고 생각한다.
후쿠시마 제한 구역에서 그는 동사무소에 쓰인 사람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읊는다. 그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사카모토는 대자연의 한 순간에 쓸려간 사람들과 아픔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맞선다. 사람을 더 생각한 사카모토는 원자력 발전소 반대 시위에도 참여한다.
그는 암에 걸리고도 원전 지역에서 가져온 피아노가 자연이 만들어 낸 소리라고 하며 버리질 않았다. 어떤 종류의 피아노도 결국 사람에 의해 조율된 소리이며 우리의 귀엔 익숙할진 몰라도 자연스럽지 않다며 자연이 덮치고 간 피아노의 소리에 집중한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안 그는 서서히 죽음을 준비한다. 살아가려고 먹고 이를 닦고 점점 세상에 없어질 사람의 모습을 보일 때면 울적했다. 사랑이라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그의 사랑스러운 행동들 속에서 웃을 때도 있었다. 영화 OST를 작업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불러 녹음을 막 진행하려는데, 감독이 갑작스레 전화 와서 음악이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꾸자고 했다는 것이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해주던데?“라고 해서 20여 분 만에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카모토의 모습에서 '거장도 클라이언트/파트너의 요구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보다'라며 웃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초반부에 어디를 가도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여 10년 동안 봉인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눈에 밟혔나 보다. 사카모토는 자신의 규칙을 깨고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연주한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 추모비에 향을 꽂고 잠시 추모를 한 뒤, '리쿠젠타카타 중학교 - 재해 당시 대피소'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을 연주한다. "추우면 서서 뛰어다녀도 된다."며 부디 편하게 들어달라고 말하는 사카모토는 어떤 마음으로 연주했을까. 인간이 도구화된 세상 속에서 그는 참으로 숭고하다.
"저는 앞으로 암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21년 1월, 류이치 사카모토
지난주 <피크닉>에선 류이치 사카모토의 추모전 연장 전시가 있었다. 사카모토의 자서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발췌한 몇몇 글귀와 함께 영상이 연주되고 있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라는 말에 보름달이 비추듯 긴 조명이 내리쬐인다.
옆으론 당장 죽음을 앞두고 힘겹게 써 내려갔을 문장 단위의 글귀가 하얀 벽에 빼곡히 적혀있다. 전시는 백남준을 시작으로 친구에 관한 글귀로 시작한다. 영상은 사카모토의 12개월을 담은 작은 디스플레이의 영상, 피크닉 개관식 때 연주된 신디사이저와 함께한 영상, Shiro Takatani의 인스톨레이션 영상, 온라인으로 연주된 한 곡씩 모여 만들어진 온라인 콘서트 중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연주 영상이었다. (Shiro Takatani의 인스톨레이션 영상 정보를 알려준 피크닉 관계자 및 각 영상마다의 정보를 알려준 피크닉 관계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Shiro Takatani의 <Full Moon> 속 숲이 우거진 나무들이 지나가고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내레이션이 지나면, 거친 돌들 사이로 사카모토의 거친 음악이 들린다. 마치 두꺼운 거문고의 현을 마구잡이로 뜯는 듯하다. 이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해 마지막 날을 갔었다. 오직 피크닉에서만 볼 수 있던 영상은 이제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지만, 후회됐다. 넓은 공간에서 그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있으나, 더 경이롭지 않았을까.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연주되는 큰 디스플레이를 지나면, 원자력 발전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카모토의 모습들과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카모토의 모습이 전시장에서 가장 작은 디스플레이에 담겨있다. 벽에 기대고 있으면, 하얀 벽에 적힌 사카모토가 죽음을 앞두고 힘겹게 써 내려갔을 글귀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바라던 자연의 소리와 함께 많은 이가 사랑하고, 그도 사랑했을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소리가 섞인다.
마음속으로 작디작은 화면 속, 이젠 없는 이에게 물어본다.
'이것이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소리였을까요?...'
전시 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있는 한 개의 디스플레이에선 피크닉 개관식 때 사카모토의 모습이 계속 재생된다. 너무나도 야위지 않은 모습에 아이같이 웃는 모습, 내 기억 속 '사카모토 류이치'란 이름을 지닌 음악가의 외형이 계속 비치고 있으니, 마치 그가 계속 살아있는 것 같았다. 황금빛 샹들리에가 가득한 곳에서 사카모토는 이리저리 다니며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자신의 음악에 관해 이야기한다. 스피커가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한계가 있어 그러지 못했음을 얘기한다. 간혹 보이는 미디어아트 쪽에선 비를 표현하는 듯한 장치, 물방울을 운반하는 듯한 장치들도 보인다. 사카모토는 통역사를 옆에 두고 계속해서 얘기한다. 준비한 자신의 몇 곡을 연주하며 미공개 곡을 '피크닉으로 할까'하며 농담도 하며 웃는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악기 파트를 실제로 누군가가 연주한다든지, 전자음이 실제 악기에서 나오고 있다든지, 누군가 걷고 있다든지, 그러한 것이 본래의 모습이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 피크닉 개관식 아티스트 대화 중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말 기록
중학생 시절, 싸이월드의 주류 음악이기도 했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류이치 사카모토를 알게 됐다. 1년에 한 번 연락해도 받아주는 친구의 친구가 어린 입으로 말했다. 자기 친구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너무 좋아해서 그의 음반을 빠짐없이 모으고 있다고.
그 시절엔 음반도 유통사가 들어오기 전이라 대행업체를 통해 구해야 했었다. 그런 수고를 건다는 건, 얼마나 사랑하는 일인가. 사카모토의 부고가 들렸을 때. 나는 본 적도 없는 그의 음반을 모으던 중학생의 말간 얼굴을 하고 설레며 택배 상자를 여는 중학생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여전히 사카모토의 음악을 좋아하고 있을까.
부고 소식에 때맞춰 라디오에서 <A Flower is Not A Flower>라는 곡이 나온다. 몰랐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인지. 그의 곡을 많이 들어본 적 없다는 증빙이겠지. 나는 그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진 줄도 모르고 '참 좋다'고 생각하며 프로필 음악으로 걸어두었다. 후에 알았다. 중국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 '백거이'의 시 <화비화>를 읽은 뒤 만든 곡이라 한다.
화비화(花非花) - 백거이(白居易)
花非花(화비화) 霧非霧(무비무) - 꽃은 꽃이 아니고 안개는 안개가 아니더라
夜半來(야반내) 天明去(천명거) - 밤 깊어 왔는데 날 밝아 떠나가더라
來如春夢幾多時(내여춘몽기다시) - 봄 꿈처럼 왔던 것이 얼마나 되던가
去似朝雲無覓處(거사조운무멱처) - 아침 구름처럼 떠나고는 찾을 곳이 없더라
올해 7, 8월은 잔인하리만큼 너무 많은 밤들을 보냈다. 낮에는 낮이라는 이유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튼튼하고 씩씩하던 어머니 곁에서 오랜만에 누웠다. 사카모토가 간신히 얻어냈으리라 짐작하는 1살 보다 적은 나의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자장가 삼는다. 당신이 떠난 후 걱정되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들은 모처럼 위로가 됐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계속 잠재우지 못하는 문장들로 아침을 맞이했다.
친구끼리는 사상이나 신념, 취미가 달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기댈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이 많지 않을지언정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 "인센 라이브 영상 옆, 류이치 사카모토, 알바 노토 26분 10초(서울 버전) 옆에 쓰여 있던 사카모토의 일기
악몽 같던 7, 8월이 지나가고 내게 아직 화가 나 있던 친구를 위로하려던 때. 마치 악마의 먹잇감이 된 듯 3일 이상 제대로 자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큰일이 일어났다. 해결할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었다. 빨래를 돌려놓고 멍하니 발코니를 바라보았다. 마케팅도, 기획도 열심히 해야 해서 지긋지긋해진 SNS를 해야 했던 난 이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사이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SNS에 게시글을 올릴 시간에 연락 한번 주지 않았다고, 실망했다며 막말로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고 차단했다. 그의 메시지는 화로 가득 차서 뜨겁고 너무 아팠다. 나는 계속 움직여야 했고, 이따금 펑펑 울지도 못하는 눈물을 흘리며 끅끅 울어댔다. 그는 어쩌면 우연히 나의 글을 보고 기뻐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준 상처에 아파하고 있다는 문장을 보고 있을 테니.
메시지는 내가 그래서, 어떤 성격이라서, 무엇 때문에 '친구가 없다.'는 말들과 함께 조롱 같은 말들로 뒤범벅 되어있었다.
사카모토의 일기장이자, 마지막 원고가 된 그의 저서 초반엔 친구로 시작한 전시 이야기처럼,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은 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름 세어보니 행복한 관계로 지내는 몇몇 사람들이 꽤 있다고…고맙다고….
메신저 프로필에 곡을 걸어 둔지는 한참 됐는데, 마치 음악은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인연의 허무를 맞이하는 듯 8월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눈물을 삼켜도 세상은 여전히 자전한다. 신난 축제가 열린 공연장 위로 떠오른 간신히 떠오른 듯한 달이 먹구름에 가리어진다.
집에 오면 친구라 생각했던 이에게 주려고 했던 책과 전시장에서 들었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들은 욕심으로 남아 신간들 사이에 있다. 마치 오래된 골동품 같다. 욕심의 대가로 아침마다 친구였던 이의 목소리가 말을 건다. ‘이따위 사람…‘
죽음 앞에선 부질없다고 생각하며 늘 살아왔는데, 삶은 계속되고,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달은 초라한 나이가 된 나는 메시지를 응시했다. 새벽. 사카모토의 죽음을 생각하며 후회 없을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쓴 손 편지는 구겨지고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몇 시간을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사카모토의 글귀를 생각하며 한편으론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의 <모래로 지은 집>이 생각이 났다.
음악을 모르던 이가 오선지에 친구란 음표들을 써놓았다. 이따위 사람은 심장에서 불려 나온 붉은 것들을 응시하며 하나의 말을 덧붙인다. 그의 욕심으로 이어온 인연이 끝난다.
A flower is not A Flower : CODA.
보다 높게. 보다 빨리 이런 식의 경쟁에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우생사상에 가깝다.
그렇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고 싶다.
- 류이치 사카모토의 일기 중에서
부랴부랴 집을 나서며 어머니의 필름 카메라를 꺼내는데, 한 번도 깨진 적 없던 향수병이 깨진다. 유리 파편들이 이곳저곳에 눈처럼 흩날렸다. 마지막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 나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버스에서 내리며 한 번도 떨어뜨린 적 없던 아이패드를 떨어뜨린다. 모서리가 여기저기 흠이 가고 망가졌다. 내부는 어떻게 되었는지 점검하러 또 시간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번잡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전시장은 마지막 시간이 지나 철거 중이었다.
사카모토의 추모전의 마지막이 아직인 <피크닉>에 가는 동안 또 나는 버스 안에서 카드 지갑을 떨어뜨린다. 버스 출입문 틈에 간신히 껴있는 카드 지갑을 낑낑대며 많은 걱정을 하며 꺼낸다. 그대로 빈틈으로 지갑이 떨어진다면, 6차선 대로변에서 어떠한 도움도 받기 힘들었을 부서진 카드 지갑이 될 뻔했다.
이 모든 일에도 살아있는 게 어디냐며 다행이라고 여기며 나는 또 친구였던 이가 보낸 메시지가 생각난다. 왜 자꾸 아끼던 것들이 손에서 떨어질까.
'실수(失手)는 손을 놓치는 것이다.'
나는 계속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헤매다 전시장에 도착했다. 들어서니 사람들로 북적이는 틈 가운데, 평일엔 보이지 않던 글귀가 보인다. '보다 높게. 보다 빨리 이런 식의 경쟁에 열광하는 것….'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삐 움직이고 있었을까. 그러는 순간에도 세상은 멈추질 않았다.
연신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으로 찰칵대는 소리가 들렸다. 어떠한 제지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연주되는 가장 큰 디스플레이 앞에 모여 영상을 찍기 바빴다. 직원은 미러리스를 든 나를 제지하며 스마트폰은 되는데, 내가 들고 있는 전문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다 했다. '나의 작품도 될 수 없는 것을, 아주 작은 셔터 소리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찰칵'하고 작은 별관 전시장을 울리는 소리. 이에 질세라 누군가 찍으면 모여든다. '찰칵!'
피크닉이 달리 보였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만든 포토존과 인증샷 이벤트, 마구잡이식의 인원수용이 없어 사랑해 마지않던 전시장, 무음 촬영만 가능했던 본관과 다르게 사카모토의 전시장은 마치 인증 사진으로 가득 찬 세상 같았다.
스마트폰도, 카메라도 반입이 금지되었더라면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서둘러 별관 전시장을 나왔다.
공사장 같은 소리가 연이어진다. '찰칵! 찰칵!'...
문을 닫고 마지막을 추모하며 나온다.
이 이후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사카모토가 본 세상들에 대한 말들로 대신 한다.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 <Shiro Takatani의 "Fullmoon"의 내레이션 중에서" 기록>
사카모토의 일기 중에서
2021년 5월 12일
예전에는 사람이 태어나면 주변 사람들이 웃고, 사람이 죽으면 주변 사람들이 울었다. 미래에는 점점 더 생명과 존재가 경시될 것이다. 생명은 점점 더 조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을 보지 않고 죽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2021년 7월 31일
보다 높게. 보다 빨리 이런 식의 경쟁에 열광하는 것은 지극히 우생사상에 가깝다. 그렇지 않은 사회를 지향하고 싶다.
2021년 11월 21일
벽을 부수자!
2022년 3월 11일
311 대재해로부터 12년/ 전기를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미완성인 기술, 원자력 발전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022년 3월 20일
내게는 음악이 마루턱의 찻집 같다/ 아무리 지쳐 있어도 그것이 보이면 달음박질하게 되고,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남은 절반의 등산도 문제없다.
2022년 4월 18일
이렇게 된 이상 어떤 운명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2022년 6월 16일
NY에 / 잠 못 드는 밤 / 아름다운 아침
2022년 10월 11일
산다는 건 귀찮다.
2023년 3월 16일
음악 보름달
2023년 3월 24일
기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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