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동안 집안의 월세며, 각종 공과금 이체는 내 몫이었다. 엄마가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나와 엄마 사이엔 많은 것들이 정돈되었다. 수술 당일 언니는 내게 너의 귀찮은 몫들도 ‘엄마 덕분에’라는 말을 했다. 무슨 말이고 하니, 엄마니 너에게 연락이 오는 거지, 그게 너를 챙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 크게 상처 입은 말이었다. 엄마와 다투며 서럽고 힘든 탓에 친척 언니나 고모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자 엄마는 크게 호통을 쳤다. “어디다 전화를 걸어? 엄마가 없으면 고모가 너를 챙겨줄 것 같아?” 엄마의 말은 엄마의 가치관이었다. 이 세상에 ‘엄마가 없으면’이라는 명제는 내 존재를 갉아먹는, 오랫동안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말이었다.
오롯이 인생을 살아가는 건 너의 몫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오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만은 갑작스레 30분 일찍 대기실에 들어간 엄마를 보지도 못한 나는 그 말이 못 매 서러웠다. 과거에 이웃 사람들이며 엄마를 보는 가족들은 항상 나보다 엄마였다. 나<엄마. 그 탓에 나는 엄마가 아주 많이 미웠었다.
이제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 불쑥 커버린 나는 엄마와 같이 자라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엄마가 지금의 엄마가 되기까지 정말 힘들었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롯이 혼자서 일어나야 하는 강인한 성격은 외가의 내력이었다. 외가는 좀처럼 독립하지 않고서야 어른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어릴 때부터 교육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릇 자기가 해내야 하는 것이었고, 지원이라 함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뚝뚝하다고 보일 만큼 정 없어 보일 수 있는 엄마의 차가움엔 내력이 있었다. 그 내력은 엄마의 탓이 아니었다. 지금의 엄마가 되기까지, 엄마의 가치관이 부서지고 다시 맞춰질 때까지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행이었다. '엄마를 용서하기로 했어'라는 말을 하는 나를 상상하며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었으니까. 보고싶고, 용서한다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살아계셔서. 살아생전 과거의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는데. 엄마를 용서할 수 있게 됐다. ‘엄마만 아니었다면’ 하는 일들은 이제는 ‘엄마도 노력했구나’가 되었다.
왠지 나는 그 얘기를 하면 우리 둘이 코끝이 찡해질 줄 알았는데, 엄마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다행이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알아서." "이해…? 아하. 이 '해'!" 그녀의 똘은 엄마가 입원해있는 동안 언제서부터인가 늘 그랬듯이 엄마를 부둥켜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잠은 잘 자라고 인사를 했다.
반대편 침대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인사를 했다. "역시 딸이 최고야. 잘 가요". 그녀의 똘은 꾸벅 인사를 하며 병실 밖을 나섰다. 해가 참 눈부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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