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한번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
"왜 여러분들은 성당에 와서만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빌어요? 자신들이 잘못한 사람들한테 가서 용서부터 받고 오세요. 딸랑 말로만 때우지 말고, 마음속 깊은 곳에 진심 담아서, 누룽지 긁듯이 박박 긁어서. 가서 사과하고 오세요. 잘못한 사람들한테 결재받아야, 하느님 도장 받아요. 그 도장 우리가 대신 찍어주면 안 되냐고? 절대 안 돼요. 왜? 우리는 결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류 배달하는 사람이거든요." (1회, 김해일 신부의 강론 중에서)
'그들이 하느님에게 용서받았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느님을 생각할 때마다 밀양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서, 때론 크고 작은 관계에서 지은 죄들이 보일 때면 고해소에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느님에게 냉담한 것은 크게 부끄럽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조차 안 하고 고해하는 것은 죄란 생각이 들었다.
김해일 신부의 강론에 신자들은 신부의 강론이 이상하다고 한다.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안다. 극 중 사람들은 때론 성직자에 많은 기대를 한다. 차분해야 하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에겐 더더욱 그럴듯한 착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나 책임감, 착함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착각의 대가는 크다.
기대한 배려가 지켜지지 못하면 화살은 내가 믿는 신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신은 그럴듯한 착함이 있는 이는 아니다. 사리 분별을 명확히 할 줄 아는 이였다. 나 또한 방황과 상처 속에 헤맸지만 다시 성당으로 돌아간 이유는 하나였다. 성당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는 변함없는 단순한 사실. 그 사실 하나만 마음에 둔다면, 일어나는 일련의 관계는 큰 상처가 되지 않았다. 되려 성전보단 사회에서 더 많은 선과 악을 마주해야 했다. 이 글은 그 사회가 담긴 회고록이다.
<열혈사제>의 캐릭터설명과 초반 배우들의 인터뷰에 보면 '분노조절장애'란 말이 나온다. 왜 김해일이란 캐릭터에 분노조절장애란 단어가 쥐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정당한 분노가 치유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지켜져야 할 정의를 회피하는 데 도움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사건과 사고를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극 중 이영준 신부의 사건이 '사고'로 둔갑한 것처럼 말이다.
김해일은 자신의 은인이었던 이영준 신부의 죽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숨죽여야 하는 날들이 더 많았을 일상에 김해일의 분노는 카타르시스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열혈사제>는 현실성있지만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처럼 뜨겁게 메시지가 와닿는다. 드라마 속 드러난 사회와 드라마란 판타지 요소와 함께하는 김해일의 분노는 무엇일까. 사회에 그토록 결여된 정의에 대해 김해일에 동요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경험에 빗대어 말해보고자 한다.
1. 공적 분노도 뺑뺑이 돌려진다.
"싸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느님. 몇몇 이들이 많은 사람들을 큰 고통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이 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릅니다."
-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까! 한 아이가 불량급식을 먹고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죽어가고 있다고요!'
- 이게 관할 구청 쪽 일이라, 우리 시청에서 관여할 수 없습니다.
- 그래도 또 올 겁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약한 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힘을 약한 자 위에 군림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실과 정의의 눈을 가리고 그릇된 심판을 일삼고 있습니다. 태어나 딱 한 번만 주님의 뜻을 거스르려 합니다. 잠시 용서는 접어두고, 이들의 죄를 세상에 밝히고자 합니다. 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주님께서만 알겠지만, 제 힘이 남아있는 날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하느님만 믿는 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닌,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4회, 이영준 신부님의 수첩에서)
이영준 신부는 보육원에서 일어난 식중독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발로 뛰어다니며 식품업체의 책임을 묻는다. 공공기관에 가서 차분히 따져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여기 관할이 아니다는 대답이다. 하지만 피해자인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피해자도 분명하고, 가해자도 분명한데 가해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현실적이라 느끼는 것은 비단 극 중 이영준 신부만 겪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며 범죄가 접수조차 되지 않았던 때가 떠올랐다. 2년 전 불법 촬영 목격자로 진술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피해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성이 피해자를 주시하고 있다가 촬영을 한 것이다. 목격한 자리에서 제지하고 사진을 지우게 했지만 몇 장의 사진이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현장을 떠나 사건을 접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증언하는 데만 다섯 차례 이상 진술을 해야 했다. 사건 초기 어떤 형사는 당시에 법으론 처벌할 방법은 없다며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접수하지 않는다'에 가까웠다. 그에 따져 물었다. 다른 사람의 신체가 담긴 사진에 성적의도를 가지는 사진이 따로 있나 사진이야 자르면 그만이고, 찍힌 정황도 확실하고, CCTV, 교통카드 태그 이력 모두 확실하고 증언해 줄 다른 목격자도 다분한데, 그럼 내가 피해자여도 똑같냐고 묻자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법을 만든 게 아니잖아요?'
2. 이영준 신부와 김해일 신부가 외친 '원칙'과 '정의'
"원칙? 당신들이 언제부터 원칙대로 일했는데? 똑바로 일하면 내가 이런 얘기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여기는." (2회, 경찰서에서 김해일)
원칙이 상실된 곳은 경찰서였다. 이영준 신부와 김해일 신부는 서로 다른 톤으로 정의를 따져 묻는다. 그들이 정성 들여 따진 원칙과 정의, 공익이 중시되어야 할 보호기관은 그들을 무시했다. 비리와 개인의 사리사욕이 자리 잡은 곳에서 적당히 그럴듯한 모양새로 서둘러 피해자와 목격자를 돌려보내고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 최소한의 인권이 져버리는 사각지대가 보호기관이라는 아이러니함에 부정할수록 내게 던져진 '현실적이다'라는 말들은 지친 마음을 더 지치게 했다.
원칙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데 사건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는 현장에서 나는 피해자가 되어도 보호받지 못할 거란 무력감을 갖게 되었다. 추후 다른 경찰서에 사건이 접수되면서 사건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었지만, 첫 번째로 찾아간 형사가 있던 경찰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무력감이 저곳을 다녀갔을까.'
"에헤이. 이런 자잘한 것까지 신경 쓰면, 사건은 언제 해결해." (2회, 경찰들의 대화 중에서)
3. 혼란스러울 지언정, 쓰러지지 않는다.
"너한테 처음 고백하는 건데, 나도 화가 치밀 때가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하지만 억지로 참는 이유는 화가 화로 끝나는 게 싫어서야. 사제의 분노는 온전히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야만 해. 그런데 네 분노는 너만을 위한 거다. 하지만, 너는 언젠가 진짜 무언가를 위해 분노하고, 그걸로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할 일을 해낼 거라 믿는다."(2회, 이영준 신부님이 해일에게 쓴 편지 중에서)
정말 오래전 한 기관사의 절규를 들은 적이 있었다. 승객들에게 5분의 시간을 양해구한 기관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언론에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동료 기관사의 죽음에 무력해야 했으며, 부당한 인사발령, 부조리한 노동환경에 고통받고 있었다. 몇 번이고 결심했을 기관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방송을 마쳤다. 스크린도어가 닫히는 알림과 함께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한숨과 탄식을 내뱉었다.
배터리가 없었던 탓에 조금밖에 녹음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친구의 제안에 제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다음날 글은 해당 포털사이트 순위권 게시글에 올랐고, 시민들의 제보로 녹음 파일은 완성되었다. 유명한 다른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다. 하지만 어느 방송사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시끄러웠을 텔레비전마저도 고요했다. 30초 남짓한 짤막한 보도, 텍스트로 보도된 기사에서 기관사의 절규는 단순한 불만으로 포장되었다. 베스트 게시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기관사 이야기는 오후가 되자 내려갔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지하철을 타야 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더 어린 날들에 벽에 걸렸던 현수막에 적힌 글들을 떠올렸다. 기계가 인력을 대체한다는 말들.
기계는 완벽하지 못했고, 노동자는 갈아 넣어져야 했다. 지하엔 진실이 있었고, 나는 편하게 이용했다. 지나쳐온 어떤 이들의 말들은 내 몫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나의 안전과 관련되어있었다. 부채감에 시달리며 학교로 향했다. 타인의 고통을 무시한 대가는 컸다.
정의를 찾아야만 했다. 정의의 시작을 좇아갔다. 인권을 알려주었던 은사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외우고 잘 푸는 것보다 제 생각을 담긴 글과 말을 더 중요시했던 은사님이셨다. 나조차 몰랐던 나의 인권을 위해 싸워주신 분이셨다. 당시 교육과정으론 아무도 알려주지 않던 일제강점기의 깊은 이야기들과 사회에 대한 정의, 그리고 자유와 방종을 따져 물었던, 그 어린 초등학생에게 정보공개의 선택권은 너희들에게 있다고 알려주었던 은사님. 은사님은 선행학습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계셨던 것도 기억한다.
교실에 들어서자 어린 키의 친구들이 모여 물었다. "어디 대학 다녀요? S대?"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칠판을 보니 수능 수학 문제가 적혀있었다. 방과 후 학습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달라진 은사님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생각과는 달리 은사님은 내게 미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그들에게 내가 당한 것들을 따져 물으라고. 지금은 참으라고.
교육과정 중엔 쓸데없는 교수님의 압박이 더러 있었다. 소위 말하는 열정페이가 다분했으며 교육과 상관없는 성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시각을 부끄럽지도 않게 말하는 교육자, 일제강점기를 도모한 일본의 누구누구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들…. 너무 분했다. 학점이 걸려있어서, 더 당당하게 따져 묻지 못했다. 소시민의 모습을 누군가 바로 잡아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다.
은사님 마저 그런 마음은 감추어 두라고 했다. 은사님의 차를 타고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은사님은 창문 너머로 말씀하셨다. 자신도 그랬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었다고. 은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뒤로 돌아서며 나는 나의 정의를 찾아야 했다. 나는 그 '지금'이 너무 불편하고 불안했다. 이제는 은사님께 물려받은 정의를 곧이곧대로 가지 말아야 했다. 나의 정의는 무너져야 했고, 다시 일어서야 했다.
4. 냉소를 넘어서서
"나요. 아주 엉망인 집안에서 살았어요. 아무 개뿔도 없으면서 보증서고, 맨날 사기당하고. 나 진짜 이 악물고 공부했었거든. 나 잘살아 보려고. 나, 남한테 관심 없어요. 나 잘사는 거 중요하지. 다른 게 뭐 그렇게 중요해. 근데, 문득. 내 그런 과거가 내 미래를 망쳐놨단 생각이 들더라고 (중략) 신부님 과거는 신부님 미래를 망치지 않았어. 나처럼 완전 잘못 나갈 수도 있는데, 우리 신부님은 진짜 용기 있게 여태까지 너무너무 잘 살아왔다고. 그니까 어디 가든, 맘 편하게 살아요. 바보처럼 죄책감 가지면서 살 필요 없어. 어깨 펴고. 그리고 또 우리는 뭐, 잘 살다 보면은, 언젠가 또 만나게 되지 않겠어요." (16회, 박경선과 김해일의 대화 중에서)
사람들은 이따금 원칙이 지켜져야 할 곳에 이해타산을 따져 묻고 이득이 되지 않는 일들엔 신경 쓰지 않는 것을 우러러본다. 냉소는 멋있어 보인다. 나는 이렇게나 혼란스러운데 그들의 냉소는 굳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모순이 '현실'이라 포장되는 냉소를 직시해야 한다. 냉소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리가 굳건해 보이는 이유도 같다.
냉소는 혼란스러운 수고를 덜어준다. 자신의 공적 역할을 자신의 사적 영역에 두고 일하면 번거로운 민원도 적게 처리할 수 있고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극 중 무력감에 뜨겁게 데워지는 등장인물들에 동요되는 이유, 김해일 신부를 '정의롭다'고 말하는 이유도, 아마 우리들 마음속에 젖어 든 냉소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5. 현실에 조연은 없다. 우리가 주연이다.
"주님. 저는 지금까지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었습니다. 다 알면서도 눈 감고 있는 자들을 깨우는 건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자신의 의지로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는 척하지 않을 겁니다." (16회, 김해일의 독백)
<열혈사제> 속 조연인 캐릭터들은 주연처럼 튀어 오른다. 여타 드라마들에서 주연과 조연이 확실히 구분된 것과 달리 <열혈사제>의 조연들은 하나씩 특색을 갖고 활약한다. 좀 더 생각해보면 그들이 극에서 뚜렷한 이유는 그들이 곧 자신들이 처한 현장/현실에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내 반경의 작은 사회에서 주인공이다.
<열혈사제>가 통하는 지점은 사회에 결여된 정의로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열혈사제는 지금 깨어나야 할 냉소와 무력감을 데워주었다. 냉소와 무력감을 잘 아는 이들은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당함을 말하려면 힘과 명예, 돈을 가져야 한다고. 더 높은 학벌,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자를 주변에 두어야지만 부당함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야만 대우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되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만든 사회 속에서 얼마나 행복했었냐고.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국가에서 일어난 부조리한 역사들은 대체 무엇이냐고. 역사 속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바로 잡은 것은 국민이었지, 힘 있는 몇 사람이 아니었다. 권력의 영향력만 맹목적으로 기대어 나의 정의마저 무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구대영의 동료가 죽지 않을 수 있고, 이영준 신부님이 죽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만 한다. 한 사람만의 사회가 아닌 '우리' 주변의 원칙과 정의가 깨어나야 한다. 현재와 미래에 자본과 권력, 명예가 없어도 보호받고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에 가까워질수록 내 주변 환경(노동 환경)이 개선되고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과거나 능력을 갖춘 신부님, 수녀님, 형사, 쏭삭, 요한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쥔 박 검사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극히 자신다운 모습으로 정의를 지킬 수 있다.
책임지는 사회로, 죄가 있는 곳에 스스로 먼저 용서를 구하고, 서로가 바른길을 가도록 응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세상을 바꾸면 되는 거야."
(3회, 이영준 신부님 회상장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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