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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Apr 27. 2019

신년인사 주고받는  상냥한 영화<무뢰한>

복이 없는데 어떻게 받아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아라. 씨발○아."


복이 없는데 어떻게 받아요.  

ⓒ 영화 <무뢰한> 스틸컷, 김혜경(전도연 분)

너무 긍정적인 사람이라 탈이다. 친절도 하다. 상냥하다. 어쩌면 너무 배려심이 많은 탓인지 모르겠다. 상인에겐 "많이 파세요."란 인사말도 잊지 않는다.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한다. 하루가 꽉 찬 인생을 살아가는데, 질은 낮다. 사회 겉에서 보면 혜경의 인생은 지긋지긋한 것들이 눌어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말을 더 잘 믿는 혜경은 비언어적인 것들에 말한다. "진심이야?"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자 애쓰는 혜경은 너무 상냥하다. 여기 나오는 남자들은 혜경에게 거짓을 말할 때 말로 하고, 진실일 때 이미 저지르고 본다. 원래 진심은 말보다 몸이 더 빠르게 배인다.


혜경 씨의 신청곡, NRG의 <할 수 있어(I Can Do It!)> 틀어드립니다. ⓒ 영화 <무뢰한> 스틸컷, 우 박준길(박성운 분)
(준길) "혜경아 나 배신하지마."
(혜경) "배신 안 해"
(준길) "같이 갈 거지?"
(혜경) (고개를 끄덕인다.)
(준길) "그래서 말인데, 돈 좀 마련해 볼 수 없겠니? 한 삼천만 준비해봐. 할 수 있지?"


너가 벌어  새끼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혜경은 마련해본단다. 지켜줄 사람 없는데 지켜줄 거라 믿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이 삶을 지탱하게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렇게 배려할까. 이런 혜경을  아는 이들은 혜경을 이용하기만 한다. 기다리게만 하고,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알고, 팔고,  구슬리는 남자들만 달라붙는다. 재곤(김남길 )이나 준길(박성운 ) 마찬가지다.  가끔 진심일 때도 있다. 웃어야   같은데 웃지 못하겠다. 웃으라고 만든 장면인데 웃지 않더라는 감독의 인터뷰를 봤다. <영화는 수다다> 나온 오승욱 감독의 유쾌함을 발견  했더라면  영화,  봤을  같다. 너무 뻔한 노란장판 감성의 영화는 굳이 시간내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뢰한> 보다가 이거 시간 엄청  가고 있는  아냐? 하고 재생바를  하니 30분밖에  남은 영화다.  이렇게 <무뢰한> 시간은 빨리 갈까.


혜경아. 눈을 봐라. 그럴 사람이다. ⓒ 영화 <무뢰한> 스틸컷


일상적인 것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음악, 연기, 배우


어떤 장면은 꼭 90년대 영화 같다. 뭔가 보이려고 한 장면들 말이다. 재곤이 적색 셔츠를 입고 혜경의 수금 자리에서 민영기(김민재 분)에게 인사하는 장면. 배우 김남길이 한 인터뷰 중에서 <후회하지 않아> 때가 생각나는 영화라 했는데, 내겐 다른 의미로 꼭 그 시대만 담고 있었던 품이 보였다. 하지만 촌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대상화되지 않은 여자를 보여주기 위해 철저한 설정을 갖춘 배우 전도연의 섬세한 연기, 새벽과 파란 색을 잘 잡아낸 색감, 너무 일상적이지만 뻔한 음악 아닌 진중함이 있어 보이도록 한 무게감 있는 OST(조영욱 음악감독)가 있었기 때문에  <무뢰한>은 특별해졌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무뢰한>은 일상의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천만 원 대의 금액이 오고 갔어야 할 거래가 48만 원에 헛웃음나고, 벤츠나 못해도 BMW로 대우해야 할 것 같은데 국산차로 모시는 것들. 현실감있다. 가끔 어떤 영화는 없는 일상을 평범하게 만드느라 이상할 때도 있는데 <무뢰한>은 너무 동시대에 살고 있어서 무서울 정도다. '누아르'라는 장르로 꾸며내고 있지도 않다. 뭐, 굳이 꾸며냈다면 재곤과 중길의 싸움장면일까. 수컷들의 싸움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는데 너무 잘 다져진 사람들의 싸움 같아 어색했다. 형사니까, 범죄자니까 저렇겠지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게 피곤할 정도로 <무뢰한>은 너무 일기 같다. 재곤이 영업부장으로 들어와 준길이 친구라고 으스대며 "여기 와서 앉아봐."라면서 허세 떠는 장면이 튀어 보여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무뢰한> 속 상황이라면 그럴 것 같으니까.


정재곤, 저거 입고 2002년에 응원했을 것 같다. ⓒ 영화 <무뢰한> 스틸컷


이 분위기, 마치 사주팔자


준길이 잡힌 후에도 혜경은 시궁창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 재곤은 그런 혜경을 도와주려는 마음 조금과 함께 업적달성을 위해 골목에서 기다리다가 틈 봐서 현장을 덮친다.


"나쁜 새끼."
"잘 들어. 난 형사고. 넌 범죄자 애인이야. 난 내 일을 한 거지. 널 배신한 게 아니야."
"나쁜 새끼…."


ⓒ 영화 <무뢰한> 스틸컷


혜경은 자신을 속였던 이영준이란 이름을 부르며 재곤을 찌른다. 덮치고 덮친다. '그래. 그렇지. 그대로 보내선 안 되지.'란 바람처럼 혜경과 관객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만일 여기서 혜경이 울거나 갑자기 재곤과 사랑에 빠졌다던가, 재곤이 동정으로 혜경을 도와주었더라면 뻔한 노란장판 감성의 영화와 별 다를 바 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으이구. 뻔해.'란 말을 끌끌 찼을 테지만, '그랬구나. 그랬어.'라고 캐릭터를 연민하고,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재곤의 사랑을 생각한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아라. 씨발○아."라고 말하는 재곤에게 결국 혜경은 인간 '혜경'보다 술집창녀 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범죄자의 애인을 '잠깐' 사랑하고, 형사란 원칙을 지키는 진심이 있었을 재곤에겐 결국 혜경은 사랑의 을, 죄를 만드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혜경이 복 많이 받는 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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