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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Jun 11. 2019

목줄을 길게 해주세요. <기생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전 이 영화가 정말 싫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검색에 걸리지 말라고 또 한 번 씁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전 이 영화가 정말 싫습니다.


1. "목줄을 길게 해주세요. 애가 좀 활발하거든요. 아! 다송이랑 같다고 보시면 돼요."


기우를 덮친 올가미 = 목줄 ≒ 다송


연교(조여정 분)는 다송이의 생일파티를 위해 집을 떠나며 그간 남겨질 강아지들의 산책에 관해 충숙(장혜진 분)에게 일러둔다. 그중 한 아이는 목줄을 길게 해주라고. 다송이 같다는 말을 하면서. 문광(이정은 분)의 등장으로 인해 지하실이 드러나고 이야기가 급 전개된다.


기우(최우식 분)는 수석을 품에 안고 지하실에 내려간다. 기우의 뒤로 올가미가 씌워진다. 문광의 남편, 근세(박명훈 분)의 살인계획이 이뤄지는 순간, 기우는 양옆으로 길고, 앞뒤로도 긴 그곳에서 도망치려 애쓴다. 머릿속에 그 말이 다시 울렸다.


"목줄을 길게 해주세요. 다송이랑 같다고 보시면 돼요."




기우는 아무리 활발해도 목줄 있는 삶이다.



"애, 여기랑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기우는 기정(박소담 분)이 욕조에서 스파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마치 여기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파티가 한창인 밖을 내다보며 기우는 딴 생각한다.


“나.. 여기 잘 어울려..?”


기우와 기정이 좋은 환경이었으면 다송이었고, 다혜였겠지.



2. 어울린다는 건 가지지 못하는 쪽이 하는 말


"넌 참, 여기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비싼 것을 먹고, 입고, 호화스런 곳에 가서 으레 나는 이곳이 나와 잘 맞는 곳인지 확인한다. 저마다의 형편을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는 틈에서 농담으로 말한다. "나 여기랑 잘 어울리지 않아?"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들이 박사장네 집에 앉아 파티를 열 때는 범죄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들이 할 만한 행동은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일도 없을테니까. 충숙이 며느릿감을 운운하며 기택의 가족 모두가 다혜(정지소 분)를 따질 때도 마음은 아프지 않았다. "부자인데도 착해." "부자라서 착한 거야." "앤 여기 참 잘 어울리더라." 하는 말들은 낮은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돈이 많은 친구들은 구김살이 없더라, 부자라서 (마음의) 여유가 있어. 라는 말들은 우스갯소리로 많이 했던 말들이니까 웃기라도 했다.


'여기가 참 잘 어울리더라'하는 말은 칼이 됐다. 나를 떼놓을 수 없는 말이었다. 웃을 수가 없었다. 무엇을 살지 입을지 고민한 날엔 내 마음에 들고 말고보다 남들 앞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함을 따진 날이 더 많았으니까. 상당수의 나날엔 고까운 시선으로부터 당당해지길 바라는 부적들을 사는 마음이었으니까.


인스타에서 스크랩한 찬란한 배경과 그럴듯한 공간은 우리집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공간을 소비하는 이유는 곧 그 공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잠시나마 빌림으로써 공간이 주는 여유를 느껴보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그런 빌린 공간들로 살아가며 그 공간들을 겪은 경험에 기대어 생활을 빚내고 있었다. 그 공간이 호화스럽든, 사치스럽든 간에 나는 이런 곳에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 기대가 헛된 마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어울림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은 그런 말조차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3.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저는 근본적인 계획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계획은 곧 평가지표다.


무계획이 최선이라는 말. 새롭지 않다. 계획이 헛된다는 것, 모르는 사람 보단 아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하지만 타인을 평가내리는 시선엔 그런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다. 가난할수록 계획이 없다는 것은 "네가 그래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야."라는 말을 불러오기 딱 좋은 말이다. 그 계획마저라도 있는 삶을 살라고. 하지만 당장 내일과 이달의 월세가 급한 사람들에게 계획은 허황된 꿈에 가깝다.



오늘 접을 상자엔 계획이 필요 없다.


가난한 환경에서 계획은 헛수고에 가깝다. 무너진 계획을 메꿀 여유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기우가 아버지를 찾으러 갈 것이라고 내놓은 계획은 근본적인 계획에 더 가깝다. 그저 친구가 가져온 돌멩이 따위보다 먹을 것이 더 중요하고, 오늘 접을 상자가 더 중요한데 사실 이런 것들엔 계획이 필요 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보다, 독을 막는 게 낫고, 독을 막는 것보단 더 튼튼한 독으로 갈아치우는 게 물(돈)이 더 빨리 모일 테니까.  오늘 접을 하루 상자 갯수를 채우는 것이 계획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동작이나 임무에 가깝지 나를 실현하는 행위로서의 계획은 아니다. 어줍잖은 곳에서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다간 잘못 접어 불량품만 잔뜩 내놓는 기택이 되고 말 것이다 .


피자상자 고이 접어 불량 낼라



4. (부자면, 뭐 하나 모자라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하시죠?


숱한 콘텐츠에서 그려진 오해들은 건조하다. 부자면 아내와 남편의 사이가 좋지 못할 것이란 오해. 뭐 하나는 우리보다 부족할 것이란 오해. 봉준호 감독은 편견을 깨고 싶다 했나. 섹스리스처럼 보이는 연교와 박사장은 아들을 지켜보다가 사랑을 나눌 정도로 메마른 사이는 아니었다.



5.  존경해봤자야.


문광의 남편은 지하실에서 고장 난 램프처럼 정확한 신호를 보낸다. 다송은 이 처절한 메시지를 읽다가 잠들어도 좋을 뿐. 신실하게 신호를 울려도 고장나 보일 뿐이고, 망가져 있을 뿐이다.




6. 가난의 냄새


부자들은 냄새부터 다르다. 가끔 선물 받은 옷엔 그 사람네 집에서 머문 냄새가 난다. 촘촘한 향기를 맡으면 그 사람이 사는 집과 옷이 머물렀던 서랍장 등이 떠오른다. 그 향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못 찾았지만, 그게 어떤 섬유유연제일 거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오랜 습관이 배인 향기는 쫓아가려고 해도 내 방에 담아낼 수 없다. 자주 청결히 하고, 외출 시에 숨길 수 있는 향수로 부족한 공간에서 온 나를 숨길 뿐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변하는 호르몬, 그동안 먹은 것들로부터 엮어진 신체가 뿜어내는 냄새. 나는 냄새날까.



고고한 부자


박사장은 기택앞에서 티 내지 않았다. 기택이 들었을 뿐이지. 그래서 기분이 상했을 뿐이지. 박사장은 고고했다. 냄새는 피할 수가 없다. 알아차린 순간부터 더 진하게 난다. 그런데 그런 뛰어난 후각과 예민한 신경을 지닌 박사장은 집 곳곳에 디퓨저라도 놨었나?


후각이 민감하신 박사장님 댁에 디퓨저 하나 놔드려야겠어요. ⓒTheRada



7. 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영화.


짜파구리란 OST를 듣는 동안, 충숙이 고기를 썰던 장면들이 지나간다. 긴장들 위로 급하게 지나가는 장면들은 신날정도다.


기생충에 대한 의도를 많이 찾다 보면 '상생'이란 키워드가 많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영화를 보고 부자가 상생을 더 많이 생각할 것 같진 않다. 가난은 곱씹는 건 부자가 아니라 그 계층에 속해있거나, 걸쳐있는 사람들일 테다. '아. 참. 안타깝네.'하고 집에 돌아가서 인디언 놀이를 계속 즐길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처절한 계급을 한 번이라도 겪은 이들. 둘 중에 누가 더 이 영화를 많이 생각할까.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거슬리는 사람의 자리는 오해로 박탈시키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로맨스를 읊으며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주거침입자들과 냄새가 아무리 났어도 딱히 내색하지 않았던 남편. 많이 넣었다고 하면서 몇만 원 뺀 아내가 있는 가족? 이 정도라도 내가 살만한 집을 내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다른 하층민? 누가 더 이 영화를 많이 생각할까.


이 영화를 목격한 나는 저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들었어야 했을까. 가난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연민을 갖춰야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먹고 살 수 있을 만함에 만족하고, 부()에  존경을 외치고, 헛된 상상을 말하는 이들의 지긋지긋함들로 어떤 상생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또렷한 결론이 아니더라도, 극한 악인이나 선이 아니더라도, 어떤 상생을 누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봉준호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잘 그려냈고, 어떠한 희망도 주지 않았다. 이 시대상을 잘 표현한 것 이상·이하로 어떤 의미를 관객으로서 가져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픔과 구역질 가득한 가난을 다시 느껴야 했음에 나는 이 영화가 싫다.



8. 그럼 이 영화가 없어야 했을까?


음악, 미술, 영상 다 좋다. 지루하거나 뻔한 것도 없다. 좋다. 많이 생각난다. 많이 생각나고 남아서 상을 주었다는 그런 이야길 보았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고 어디서 극찬을 받았다고 내게 최고가 아니듯, 내겐 영화 이상으로 더 좋게 해석할 순 없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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