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바람도
20분을 돌아 환승역에 도착했다. 일부러 그랬다.
널널한 지하철을 타고 나니 가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었다. 더위에 지친 탓일까 그냥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가 키오스크 게시판도 눌러보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와 반대 방향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하는 방향의 지하철을 기다린다. 카카오맵엔 1-1이 가장 빠른 환승구간이라고 하지만 5-3쯤에 멈추어 선다. 내리고 나서도 뛰지 않기로 한다. 가는 동안 그간 찾아놓았던 라디오 노래를 듣는다. 그때 그 사연을 떠올리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시간에 는 이은미의 라디오가 선곡이 아주 좋다는 걸 떠올리고 라디오 앱을 켠다. 터덜터덜 환승역 구간으로 내려온다.
더 편하게 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 길로 가려면 높은 확률로 수상한 전단지 알바생이 있다. 부담스럽고 무서운 남자애다. 멀리서부터 아무 표정도 초점도 없이 전속력으로 눈 앞까지 달려와 전단지를 들이민다. 그 어떤 눈인사도 없다. 부담감에 받지 않는 날이면 죽일 듯이 노려본다.
자주 먼 길을 잘 가게 해주었던 버스는 몇 주동안 불친절하고 난폭했다. 많은 버스가 오가는 도로 중간에 승객은 치여도 좋을 것만큼 정차한다거나 입석으로 가득 찬 승객들을 비집고 나오는 틈바구니 안에서 나온 승객에게 빨리빨리 안 나오냐며 볼멘소리를 한다거나.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안다. 한 달 전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년들의 이야기를 다큐에서 본 적이 있고, 익히 들어 버스 기사들의 노동강도가 얼마나 센지도 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딘가 독기 어리게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소리라도 못 뱉는 건 못참겠다는 듯 기필코 하고 말겠다는 악착감이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다.
사람의 악이 차오르는 풍경을 봐서 그럴까 더 이상 치열해지고 싶지 않아졌다.
손 선풍기가 꺼졌다.
신림동에서 있는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저녁에 나와 2호선 순환 열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강남역 환승구간. 지하철에서 사람이 우르르 쏟아졌다. 어디로 가야겠다는 자유의사가 무의미할 정도로 계단을 에스컬레이터처럼 무리 지어 올라가게 됐다. 열차를 타기 위해 막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도착한 열차는 이미 만원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더 탈 수 있을 것처럼 밀고 밀쳤다. 공포스러웠다.
약속 장소에 10분 정도 늦는다고 문자를 했다. 내가 줄 선 앞 구간 몇 명이 탈 수 있을 만한 지하철이 왔다. 그런데 오른쪽에 서 있던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었다. 너무 할 정도로 이제까지 본 '밀침'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악을 써서 자기를 욱여넣고 있었다. 곧이어 열차가 온다는 방송이 전광판에 나오고 있는데도 그는 마치 이 열차에 타지 않으면 죽을 사람처럼 아니 이렇게 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처럼 웃으며 자신의 몸을 밀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 죽어요! 그만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이들에게 이 모습은 너무 당연해 보였다. 어쩌면 규칙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 사람들은 매번 이 시간이 되면 이렇게 줄을 지어 서고 이렇게 밀쳐지고 가끔은 악쓰는 사람들로 인해 불쾌할 정도로 낑겨서 집으로, 회사로 오고 가는 건가. 나도 회사를 오게 된다면 이곳으로 올 텐데. 행복할까.
맨 앞자리에 온 나는 일반적인 밀쳐지고 밀치는 승객이 되었다. 뭐? 개인의 영역? 기사에서 본 미국인은 몇 미터 일본인은 몇 미터 이런 건 다 배부른 소리다. 지금 내게 주어진 personal area는 -(마이너스)다. 지금은 왜 여름이라 반팔을 입었는지, 왜 때마침 선풍기는 꺼졌는지, 옆 사람과 불필요하게 살결이 닿고 약냉방 칸인지 바람은 불지 않았다. 간신히 가드를 올리고 열심히 방어하다가 내려야 했다. 이어폰은 거추장스러워서 뺀 지 오래였다. 4정거장. 4정거장만 참으면 됐다. "실례합니다. 내릴게요!"를 연신 외치며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다시는 이곳에 이렇게 필사적으로 오고 싶지 않다는 인상과 함께.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인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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