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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Nov 25. 2019

6호선 기관사의 5분 프러포즈

승객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 5분을 뺏겠습니다.

2012년 4월 6일 주말을 낀 금요일 밤. 10시가 지나 사람들은 집에 도착했을 길. 개강한 지 얼마 안 되어 후배와 함께 선배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카페에 들러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금요일 늦은 밤 6호선은 한산했고, 모처럼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른 오후 수업에서 만나 저녁까지 이어진 가시지 않은 흥은 문자를 주고받으며 풀고 있었다. 더 못한 얘기는 다음에 하자며. 배터리는 어느새 3%에 가까웠고, 월곡역에 도착한 열차는 한참 문을 닫지 않았다.  출발해야 하는 전동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곧이어 중년 기관사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 5분을 뺏겠습니다.


낭만적인 프러포즈라 생각했다. 잠시 후 시작한 방송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승객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 5분을 뺏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기관사님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할 이야기를 녹음해서 언론사에 제보해주길 부탁하셨다.

3월 12일 5호선 이재민 기관사가 공황 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선로를 뛰어내려 순직했습니다. 열차 업무를 할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시켜 죽게 만들고 차장, 본부장, 운전 팀장, 어느 하나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개인의 개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전직만 시켜줘도 고인이 되지 않았음을 잘 아는 그들은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아 고인은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20여 일을 시체로 있다가 박원순 시장님께서 직접 조문하시고 산재 인정이 되어 지금은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제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도시철도 기관사로 1995년 입사한 17년 차 기관사이며 현재 6호선에서만 12년째 근무하는 연봉 5천의 배부른 정규직입니다. 오늘이 6호선 근무 마지막 날입니다. 어제 출근했더니 7호선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고 했습니다. 소문은 제가 원해서 갔다고 어처구니없게 나 있더군요.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얼마 전 전출 오신 이**소장님께서 소통을 강조하셨는데, 그래서 못 마시는 술도 마시고 알랑방귀 뀌었는데 이**소장님, 김** 총괄 차장님, *** 차장님, 그리고 인사권을 마구 휘둘러 대는 전** 팀장님, 이** 본부장님 기관사 그만 죽이세요.

그동안 죽은 기관사들과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 기관사를 포기한 그분들, 벌써 잊으셨습니까. 앞으로 도시철도 운전 분야에서 저와 같은 인사이동 하지 마시고, 정중히 대화와 소통을 요구합니다. 부탁입니다. 시민 여러분 거듭 사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


흐느끼는 기관사의 목소리와 함께 스크린도어가 닫혔다. 출발한 전동차 너머에 울음을 몇 번이고 토해내지 못하고 목에 가두었을 기관사가 그려졌다. 긴 시간 고민하고 퇴고했을, 수많았을 선택에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객실에선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한 안타까운 한숨이 들려왔다. 가슴이 뛰었다. 울분이었을까. 그간 지나쳤던 포스터들이 기억났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내용의 포스터. 기계는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이 중요하다 외치는 목소리가 담긴 포스터였다.

 

ⓒ 서울메트로

예전 지하철 입구는 직원과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장소였다. 표를 나눠주는 역무원이 있었다. 무인자동화기기가 들어서면서 사람이 나눠주던 표는 기계가 대신해서 나눠주었고, 역무원은 사람들에게 기계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점점 지하철역엔 사람이 줄어들었다. 그리곤 공익근무요원이나 상시 근무하는 역무원 한두 세 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가끔 직접 사람에게 물을 수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기계의 속도에 맞춰져서 불편함은 그새 지나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포스터도 가볍게 지나쳤었다. 지금 파업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여론처럼 그냥 어른들의 불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포스터 담겨있던 메시지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무인시스템은 인간을 완벽히 대신할 수 없었다. 완벽한 정상 운행을 위해 사람은 갈리고 있었다. 고통받다 죽은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은 그곳에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녹음은 앞부분밖에 되지 않았다. 최대한 내용을 기억해서 아는 방송사에 다 제보를 하고, 녹음 파일을 만들기 위해 메일을 만들었다. 사정을 들은 가까운 친구의 추천에 파급력이 큰 포털사이트인 네이트 판에 글을 올려 녹음파일을 모으기로 했다. 곧이어 시간이 지나 많은 시민들이 제보를 해왔고, 녹음 파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료 기관사가 그렇게 방송할 수밖에 없던 자세한 이야기들도 듣게 되었다.



당사자들로부터 받은 기관사의 처우는 생각보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냉난방 시설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질병조차 낙인찍힐까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아프다고 말하면 서로 아픈 곳이 다른 사람들끼리 팀을 묶어 지하철 운행을 강제했다. 기관사 1명이 5,000명에 가까운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충격적인 내용의 연속이었다. 나의 편함은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꼭 이런 시위가 있을 땐, 어떤 시민들은 시민을 인질로 잡지 말라고 하는데, 시민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꼬박 새벽을 보냈다. 오후 수업이 있던 날이라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었다. 오후를 준비하며 계속해서 제보받은 내용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넣었다. 게시글은 네이트 판 랭킹에 올라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티비 뉴스엔 뉴스 꼭지 하나 없었다. 그러던 중 거실에선 너무 짤막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별거 아닌 듯이 6호선 기관사가 자신의 마음대로 열차 운행을 중지했고, 인사이동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내용이었다. 화가 났다. 혹시나 온라인 기사들이 올라오진 않았을까 하여 바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6호선 기관사'가 올라가 있었다. 순위가 오르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보도는 크게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관련 기사로 찾을 수 있는 글은 5, 6개뿐이었다. 그마저도 상세한 이유는 언급하지 않고 '울면서 한탄, 억울함, 눈물의 하소연' 등의 헤드라인의 부정적인 글이 더 많았다.


그리고 정오가 지나 뉴스 보도가 많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검색어에서 '6호선 기관사'는 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하루는 갔어야 하는 네이트 판 랭킹에서도 내려졌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보던 이슈는 그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뉴스엔 항의한 승객이 없었다는 내용과 단순한 인사이동일 뿐인데 본분을 망각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대가에 대한 징계를 암시하는 도시 철도 관계자의 내용이 있었다. 5678 도시철도 관계자의 입장을 보도한 뉴스는 단 두 곳뿐이었다. 뉴스1과 노컷뉴스에 따르면 '이에 대해 서울지하철 5, 6, 7, 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 관계자는 "해당 기관사는 비교적 근무 여건이 좋아 기관사들이 선호하는 6호선에서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7호선으로 인사 배치를 받은 것뿐"이라며 "본분을 망각해 시민들께 불편을 초래한 만큼 경위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현장에서부터 글을 올리기까지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보도였다. 하물며 저렇게 기사를 냈다면 기사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겐 단순한 '투정'으로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어떤 연민으로부터 비롯된 걱정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류가 더 많았다. 그들은 좀 더 기관사가 '왜 방송을 통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공감했다. 반면, 기관사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기관사의 행동에 대해 굉장히 '배부른 사람의 한탄'이라 했다. 그들의 시선에서 기관사는 높은 연봉을 받는 정규직에,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들에겐 그 정도 인사 배치조차 못 하는 노동자였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양극단의 입장 차이가 나는 것일까. 기관사의 입장을 이해한 나와 다른 사람들은 기관사가 아니다. 단순히 역지사지해도 난 완벽히 기관사의 입장이 되어볼 수도 없다. 반대편의 입장의 의견은 나로선 분노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의견이 '틀렸다'고 하기엔 근거는 부족해 보였다. 취업난도 심한 이 와중에 그는 연봉도 높고 안정적인 직장인은 맞다. 하지만 기관사는 그 높은 연봉도, 안정적인 직장도 포기했다.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에 사람들은 공감했다. 인간적 처우에 관한 '인권',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키지 못하고, 개선시킬 수 없었던 인권에 대한 압박감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공감했다.


나는 혹시 이것은 한국 사람의 '정' 때문은 아닐까 궁금했고, 나에게 영향을 준 사회적 환경 조건을 벗어나 다른 나라의 친구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주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른 국가의 친구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독일인 친구 S는 피고용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사측에 잘못이 있다고 했고, 노동에 대해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같은 상황에 대해 똑같이 분노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 친구 H는 매우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관사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이 문제는 노동에 관한 법률적 문제가 분명하고,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승객의 안전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기관사들의 심리적 부담이나 공황장애 여부가 걱정된다고도 말했다. H도 자신의 나라에서 만일 이런 일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방송 내용을 듣고 이해했을 거라고도 했다. 광고가 아닌 부탁이었기에 5분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다고. 자신 또한 사건의 소식을 기록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 했다.


검색어가 내려지고 점차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사람들은 게시물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댓글을 남기고, 반대 입장의 댓글들에 자신의 의견을 나누었다. 무엇이 이토록 같이 분노하고 행동하게 만들었을까.



첫 번째, 정의에 대한 갈망 속 공정함에 대한 기대와 정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공정성과 정의에 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무심한 사람들 속에서도 일부의 사람들은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를 소신껏 외친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바로 절차에 있다. 사회적 결정을 내릴 때 절차가 공정해야 그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절차가 공정하게 지켜지는 ‘절차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사회 실현은 가능한 것인가?


정의사회에 대한 개념은 프랑스혁명 때 겨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유, 평등, 박애’가 그것이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진정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이승만 정권 때 사람들은 죽을 때도 “빽! (back, 배경)”을 외치며 죽는다고 했다. 든든한 뒷줄인 배경이 없으면 평생 사람 노릇 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시대가 많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과 자식들이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좀 더 가까워져 있을까.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베스트셀러 종합 1위, 1981년 교보문고 개점 이후 종합 1위에 오른 최초의 인문서다.


기관사의 방송내용은 이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가 무너진 사례라고 생각한다. 정의론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만큼, 기관사의 이야기에 목소릴 들은 것도 ‘정의’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정의를 원하는 것만큼 이 사회에 정의롭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추천순으로 나열된 네티즌의 의견을 보면 분명 기사는 많은 내용을 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배경에 관심을 가졌다. 사람들은 그 이상을 궁금해했고 추측했다. 기관사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순한 인사이동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기관사의 이야기에 공감한 사람들은 물질이 아니라 ‘처우’에 집중했다. 기관사는 정규직과 월급이 사회적 지위가 되어버린 현세대에서 연봉 5천이나 정규직이란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물질적 보상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지키고자 했고 사람들은 공감했다.    



두 번째, 기관사의 절박함은 우리가 처한 사회의 정의의 위치였다.     


높은 액수의 연봉에 ‘배가 불렀다’는 의견이 있었다. 기관사와 기관사에 공감한 사람들의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의 의견은 대부분은 그런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으면 좀 더 편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전부일까. 기관사가 알리고자 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관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것은 절박함이었다. 가장 가까운 동료가 일하다가 얻은 질병조차 산재 처리 받지 못하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관리자 이상의 공권력이 개입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던 근로환경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 을의 입장에서 노동자란 이유로 개선 의견조차 묵살당하는 상황, 보통의 중년 나이에 가장으로서 현재의 편안한 삶을 포기할 만큼의 절박함이었다. 그 절박함은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한 노동자의 외침이었다.      


베스트셀러 10위에 든 책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답게 살고 싶은지를  ⓒ 교보문고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 나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데서 그 의미를 먼저 찾고자 한다. 개미나 벌의 집단 사회는 오직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회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성과 정서와 의지에 따라 인간들끼리 합심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을 형성하여 역사를 발전시켜 가고 있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목적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잘 놀기 위한 것이다. 현대인은 인간다움을 망각하고 있다. 인격이 잊힌 곳에선 사회정의는 의미를 상실한다. 정의란 민주주의 사회의 윤리적 기초가 되는 덕목이다. 정의에서 인격이 배제되면 전적으로 의미를 잃는다. 기관사가 겪은 부당함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지만 알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이자 우리의 현실이었다.

(참고 : 강영계(2011), “청소년을 위한 정의론, 해냄 출판사, pp 71-75)



세 번째, 지하철이란 ‘수단’이 아닌 운행하는 ‘사람’에 귀 기울였다.     


 ‘시민의 발’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의 하나인 지하철, 사람들이 정차해있던 5분이 아닌 지하철 기관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항의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는 귀찮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5분이란 시간 동안 단순히 ‘지하철’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지하철을 운행하는 ‘사람’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로조건의 기준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 헌법

우리나라는 헌법 제32조 제3항의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근로자 보호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이하 근로기준법에서도 근로자의 직장에서의 모든 대우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기준을 정해 근로자를 보호한다.



인간의 존엄성 - 이등 국민은 없다


헌법에서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관하여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나, 일단 "인간의 본질로 간주되는 존귀한 인격 주체성"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근로조건의 기준을 결정하고 결정된 근로조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헌법상의 이념인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의 보장이 개별적 근로관계에 실제적으로 적용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부작용을 해결함으로써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참고 : "알기 쉬운 근로기준법", 한국노동교육원)


"일등 국민은 내가 할게, 이등 국민은 누가 할래?" 그리곤 아무도 없었다. ⓒ CJ ENM

여러 철학자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그중에서도 칸트가 강조한 인간의 존엄성은 현대의 보편적 인권 개념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인간 존엄성의 이유를 칸트에서 찾았지. 오-! ⓒ CJ ENM

칸트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로서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봤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존중하고 개인의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칸트는 인권엔 이등 국민은 없으며, 천부적으로 가진 자유권에 대해서 실제로 자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들 - 정신적, 물질적,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자유권은 종이 쪼가리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난 여전히 2012년의 4월, 스크린도어가 닫히던 객실의 승객이 된다.


지하철 역사의 계단을 내려갈 때, 나는 포스터를 무심하게 지나쳤던 201N년 어느 즘에 머무른다. 아직도 2012년의 절규는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포스터 다들 한 번은 보신 적 있으시죠


2012년에 나는 한 사람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라 생각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한 사람보다 다수의 보통의 영웅들을 믿는다. 동백꽃의 이야기처럼, 열혈사제처럼. 연대와 이해가 내일로 갈 수 있는 힘을 만든다고 믿는다. 오늘 조금 불편하더라도 불편 너머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에게 조금 너그러운 사람을 꿈꾼다. 그 속에서 종이 쪼가리가 아닌 인간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앞으로 겪을 사회에서 정의를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켜졌으면 한다. 당신과 나의 존엄을 위해서.


▼  [5분 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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