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한 게 없더라. 내 세상은 찌그러진 기분인데
그녀가 죽었다. 삼일장은 깊게 슬퍼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던데, 나는 삼일장을 치르지도, 어디 가서 그녀의 죽음에 슬퍼한다고도 선뜻 말도 못 하는 일반인 1이다.
정말 이상하다. 2년 전에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가 떠나서 기도하기 위해 그렇게 1시간 이상을 걸려서 들어간 길도 이렇게 슬프지 않았는데.
기도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에선 네온사인이 너무 밝고 선명해. 곧 설레는 일들이 있을 것만 같은 얼굴들로 팔짱 끼고 걸어가는 사람들, 근처 학생들도 있겠지, 그냥 신촌을 들른 사람들도 있겠지. 내가 모르는 슬픔이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다들 미워 보일까. 내 세상은 찌그러진 기분인데, 같이 슬퍼할 사람 하나 없다는 게.
옆에 꽃을 들고 가는 저 사람도 나와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사람일까. 잘 도착했어. 기다리지 않아도 되더라. 스태프께서 건네주시는 휴지 몇 장을 챙겼어. 사진 속엔 참 어린 시절엔 닮고 싶던 웃음을 여전히 하고 있더라. 이제 정말 없는 건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추모는 짧았어. 복도엔 2년 전처럼 엉엉 우는 사람은 없었어. 나 좀 오래 슬퍼하고 싶었는데 LCD 모니터에 뜬 사진을 보는데 옆에 경호원이 자꾸 뒤돌아보더라고... 내가 쥔 건 휴지밖에 없는데. 아래에 내려오니 카페야. 한 켠, 1층의 일부.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그냥 전체가 다 카페 같았어. 갑자기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우는 사람 본 적 있어? 나도 못 봤어. 그래서 그냥 바깥으로 나왔어. 약간은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가벼워진 것도 같기도 해.
2년 전에 안타까워서, 후회할 것 같아서 기도하러 갔었을 땐 주변 어른들이 그랬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내가 그렇게 죽은 연예인 가족 중 누굴 닮았대, 가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지. 넌 뭘 그런 델 다 쫓아가냐 했어. 뉴스와 인터넷에선 유가족의 얼굴, 슬픈 동료들의 얼굴이 중계됐으니까 그 얼굴을 본 거겠지. 이젠 그런 소란도 없어. 하나 똑같은 말은 '왜 넌 매번 그런 델 가냐.'는 말은 들었어. 안타깝잖아. 닮고 싶은 사람이었고, 힘이 돼준 노래를 불러준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누구 하나 붙잡고 얘기할 수도 없었어.
연예인 죽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한 달이 넘게 슬퍼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서. 그 이후로는 어떤 죽음에 대한 기사는 제대로 보지를 못 하겠어.
그날 밤에 당신의 밤은 어땠을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난 큰마음먹고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를 사러 백화점에 갔었어. 중요한 날, 특별한 날 그리고 지친 나를 위해서. 마음먹고 갔는데도 생각보다 양이 너무 적어서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뒤돌아서 사기로 했어. 그 사이에 앞에 손님이 와서 오래 기다렸지. 당신 이름이 오고 가는 것 같았는데, 그냥 또 인스타에 사진이 올라왔나 보다 했어. 평상시에 당신 이름을 올리던 댓글 반응들과 별다르지 않아 보였거든. 직원은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몇 가지 샘플을 챙겨줬어. 향수도 시향 해보고 싶다 하니까 옷에 뿌려주더라. 갑자기 먹고 싶어진 쌀국수를 먹으러 간 가게는 맛집이었어. 어찌나 따뜻하고 옷에서 나는 향기는 어찌나 좋던지. 오늘 하루 정말 완벽하다 생각했지.
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매번 지나치던 카페에 갔어. 사장님 친절하시더라 내가 앉은자리가 어두운 자리일 수도 있다며 촛불을 켜주셨어. '비록 작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테이블 사이는 어느 카페보다 더 안정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지난번에 싸인받은 작가의 글은 역시나 재밌었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너무 감동이라 몇 번은 울뻔했지 뭐야. 그냥 제목에 이끌려서 아무 생각 없이 빌려온 책이 이렇게 감동일 수가 있을까. 게다가 이거 유명한 책도 아닌가 보더라고.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었어. 한참을 읽다 시계를 보니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었어. 손님이 나 하나밖에 없더라.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일어났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봤었는데 10분 전부터 정리하는 게 좋더라고.
너무 기분이 좋았어. 좋은 향기에, 마음이 넉넉해지는 말들이 적힌 책을 그렇게 집중해서 읽은 적은 오랜만이었어. 당신의 소식을 보기 전까지.
코를 파고드는 향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진하게 났어. 속보가 올라오던 때가 딱 내가 기분이 좋게 백화점에서 쇼핑했던 때였더라. 오랜만에 나를 위하는 날이라고 핸드폰을 잘 안 봤는데, 그때였더라. 직원이랑 손님이 당신의 이름을 말했던 건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나 봐.
기분 좋은 향의 바디워시는 일주일은 제대로 못 썼어. 당신 생각이 나서. 그때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때에 당신은 너무 아팠었구나 싶어서. 그때 당신 이름이 들렸어도 어느 때와 다름없던 모습, 자기 주관 뚜렷한, 예쁘고 당당한 연예인의 모습만 생각했으니까.
삼일장은 남은 사람들이 3일 동안 충분히 슬퍼하는 기간이래. 3일이 지난 후에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약속한 시간이라고.
그런데 난 3일 동안 슬퍼할 수도 없었어, 어디 가서 당신의 죽음을 얘기하지도 못해.
그냥 앞으로는 함부로 좋아하지 않으려고 해. 함부로 힘 받지 않으려고 해. 함부로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기로 해.
본 블로그에 기재되는 모든 글과 사진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본 글에 첨부된 사진과 인용된 대사/글, 사진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