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당신만큼 따뜻할 수 없다.
별이가 죽었다. 15년 함께한 나의 동생이자, 아플 때 유일하게 곁을 내준 별이가 떠났다. 오래전부터 생엔 끝이 있다고 생각했고, 늘 다짐해왔지만 죽음 앞에선 받아들이는 것도, 보내는 것도, 보낸 이후도 쉬운 게 없었다. 죽음을 많이 생각하면 덤덤할 줄 알았지만 죽음엔 쉬운 게 없었다.
별이는 오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듯 젖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도 별이가 없었던 때가 없었는데 이제 계절을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은 참 따뜻했다. 매일 다짐하면서 쓰다듬던 머리도, 오직 별이 만을 위해 비워져 있던 자리도, 별이 만을 부르던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날 지켜보던 눈빛, 행동, 몸집의 크기 모든 게 다 기억나는데 이젠 만질 수도 부를 수도 없었다. 달려 나갈 듯이 발을 구르던 모습, 매번 죽음을 예상하면서 본 증상 중의 하나였는데도 무서웠다. 아까까진 따뜻했던, 15년 내내 곁에서 따뜻함을 주었던 몸인데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게 죽음이구나. 미간을 쓰다듬으면 올려다보던 눈이었는데, 이마는 손끝이 시릴 정도로 너무 차가웠다. 너무 고생이 많았다.
죽음에 차가운 인상이 생겼다. 죽는다는 것은 따뜻했던 기억보다 추위가 더 빠르게 오는 거다. 너무 차갑고 추워서 어느 것을 덮어주어도 돌아오지 못하는 거다. 살아생전 아무리 소중하다, 사랑한다, 너의 의미를 읊었어도 죽음 앞에선 너무 황망하다.
화장터에선 그램 수로 가격을 책정했다. 바득바득 우겨서 얻은 장례였다. 생애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아서. 때때로 정성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저 함께한 시간은 그보다 적었으니까, 무수히 기다렸을 너의 밤에 난 비겁했다. 15년을 함께했는데, 죽음은 참 순간이었다. 작은 체구보다 더 작은 함에 들은 별이를 들고 저녁 미사를 드렸다. 햇볕은 따뜻하고, 어린 시절부터 밟았던 성당 복도엔 뉘엿뉘엿 저녁볕이 들어왔다. 영혼 하나가 주는 울림은 살아생전 체구보다 더 큰 울림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을 바꿔놓는다.
죽음을 준비하며 죽음은 참 쉬운 말이었는데, 쉽지가 않아졌다. 죽음을 먼저 발견할 사람에게 추위를 주고 싶지 않아졌다. 따뜻했던 기억보다 차가움을 선물하고 싶지 않아서 평소의 이타적인 선택을 죽음까지 가져가기로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어짐이다. 고통은 끝나지만, 소중함은 잃을 수가 없다. 살아있어도 고통은 끝난다. 언젠가? 아니 2년에서 3년 안엔 다 끝난다. 너무 길다고? 당신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잘 보내왔다.
모두를 구할 수 없지만, 나는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다. 그렇게 밤을 견디고 있다. 이 밤들이 지나면, 해도, 바람도, 좋아하던 향도 맡을 수 있는 날도.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날들도 분명히 올 테다. 분명 행복은 짧겠지만, 죽음 가까이에 가본 사람들은 안다. 커다란 행복보다 보통의 평범한 날들이 주는 힘이 더 크다는 것을. 당신이 너무 많은 표현을 하는 건 그래서 힘든 거다. 다른 사람들은 죽음을 못 봤지만, 당신은 끝을 알아서 중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그 어떤 날에도, 모든 순간에도. 그땐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당신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지금 밤이 힘겨워도, 죽음은 유예하고, 당신이 가진 온기를 느끼며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제아무리 겨울이라 하더라도 침범못하는 따뜻함이 당신에겐 있다. 당신은 언제든지 뜨거워질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란 것을 당신이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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