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원들은 친구가 없다
어느 날, 늘 보이던 여직원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사퇴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둘이 동시에. 좀 자세히 알아보니 거의 해고에 가까운 사퇴였다.
본인들의 말로는 매년 연봉리뷰에서 올라간 페이가 고작 1달러였다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두 직원이 바로 사표를 내던진 이유였다.
두 사람은 한국부 직원으로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연령도 비슷해서 둘이 꿍짝이 잘 맞아 금세 친해졌다. 언니, 동생 하면서 직장에서는 물론,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절친이 된 사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가 된 것은 두 사람이 항시 붙어 다니는 것이었다. '친하게 지내는데 무슨 문제야?'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좀 지나칠 정도였다.
단둘이 식사는 기본이요, 근무 중에 잠깐 물을 가지러 식당에 갈 때도 함께 간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같이 다닌다. 이런 식으로 업무 중에 한 사람을 불러내어 함께 자리를 뜬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은 주위사람들의 눈총을 톡톡히 받았다.
"재들 뭐야? 물 뜨러 갈 때도 같이 다녀? "하고 빈정대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그야말로 두 사람은 회사의 인물(?)이 되었다. 진작부터 인사과에서는 직원 트레이닝 시간에 간접적으로 염려스러운 경고를 몇 차례 보냈다.
"여러분! 직원끼리는 그냥 잘 지내세요! 여기는 직장입니다!"
바깥에서는 알바 아니지만 직장에서 개인적인 친분을 과도(?)하게 드러내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나마 사장님이 한국분이라 그동안은 두 사람을 조금 눈감아 주었던 셈이다.
인사과에서는 직원끼리 뭉쳐 다니는 것도 염려되고, 절친이 되는 것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죽고 못살듯이 지내다 한번 일이 생기면 둘이 한꺼번에 그만두는 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는 무슨 원수지간처럼 변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회사의 매니지먼트에서는 좀 골치가 아프다.
'회사에서 친구 만들지 않기'라는 말은 맞다. 미국인들은 직장에서 분명한 인간관계를 갖는다. 우리 부서만 해도 한국인은 선배(언니)와 나뿐이고, 모두 미국인이다. 이 친구들은 서로 친절하고, 협조적이고, 상당히 매너가 있다. 런치친구를 만들지도 않는다.
순전히 업무상인 관계다. 일과 개인의 선이 분명하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선을 지키고 있다. 나와 언니뻘인 선배 역시 언니, 동생 하며 찐한 사이가 아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경계선을 넘지 않고 있다.
그당시 사장님은 회사의 직원은. 한 솥밥을 먹는 가족’ 이라는 의식? 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보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터를 잡은 것은 아니다.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다.
한국인 직원이 대다수였고, 런치 때면 함께 밥을 해 먹는 등 가족처럼 지냈다. 게다가 여직원들끼리는 연령이 많은 사람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나는 막내라 모두를 언니라고 불러야 했다.
“아니, 무슨 직장에서 언니라고 불러야 돼?” 하며 속으로 황당했다. 참 어색한 일이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언니~'라는 말은 오로지 친정언니들에게나 하는 말로만 알고 있었다. 낯선 여인들을 향해 '언니~' 하고 부르는 일이 나에게는 도대체가 힘든 일이었다.
융통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나는 단번에 유들유들하게 돌변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여우처럼 금방 언니~라는 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미세스'와 '언니'를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급기야 '언니~'소리를 하게 되었다마는.
사실, 그들은 상당히 '언니'라는 호칭을 좋아했다. 가령, 내가 ‘언니’라는 호칭을 제대로 쓰면 화색이 도는 얼굴로 금방 반응을 한다. 어쩌다 미세스 김.. 어쩌고 해 버리면 즉시 굳은 얼굴이 되어 버린다. '어머? 쟤 왜 저래?' 이런 식이다.
그때는 이런 호칭에서부터 직원끼리 가족처럼, 회사는 집처럼 이라는 느낌이 많았다. 분위기상 왠지 친해져야 하는 그런 직원들 사이가 되어야 했다.
문화의 차이가 있지만 '격'이 없는 관계가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가족처럼 가까운 건 때론 일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 내 업무도 너의 일, 너의 일도 나의 책임등 매너와 경계가 없는 직장생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 그런 분위기속에서 회사는 쑥~쑥~ 성장하여 큰 기업이 되었다. 언니 그룹과 부서가 다르니 우리는 서로 보기도 힘들어졌다. 더 이상 공식적으로 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직원들끼리는 그냥 프로폐셔널한 관계가 편하다. 그 일 이후로, 인사과에서는 다시 한번 슬로건처럼 오더를 내렸다.
"회사에서는 친구 만들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