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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Oct 06. 2018

우리 집 호숫가의 오리와
백조 이야기

오리에게 너무 먼 그대-백조

여름날의 호수

며칠 전이다.

"드디어 까칠 부부 한쌍이 우리 호숫가에 

나타났어요!"


저녁식사 후, 언제나처럼 호숫가 주변을 걷기 위해 나갔다가 한 주민에게 들었던 소식이다.


시카고, 내가 살고 있는 콘도 건물 중앙에는, 큰 인공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에는 사시사철 많은 

오리 떼들이 오래전부터 살고 있다.

그들은  호수를 독차지하며,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고 호숫가의 주인처럼, 마음 놓고 유유자적

늘 이 물 위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이곳 주민들의 친숙한 이웃이기도 하다.






 호숫가의 오리들


그런데, 여기에 해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 되면, 오리 떼들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 백조 한쌍이 등장한다.


콘도 오피스에서는,  아마  여름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인지, 이 귀한 손님을

호숫가 한복판에다 모셔다 놓으면서, 여름날 호수를 한결 빛 나보이 게  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백조 한쌍은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호숫가를 거닐며 산책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려 호숫가로 화려한 외출을 시작하면서, 오리 무리들을 제치고 우리 호숫가의 새 주인행세를 한다.

그 화려한 날개를 으스대며, 그때부터 그야말로 오리들의 평범한 호수가 백조의 호수가 된다.


근엄한 백조

이렇게 여름의 불청객인 백조의  출현으로, 자리를 내놓다시피 한 오리들은  백조 한쌍에 밀려,

 호수 주변에만  머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실제로도 주민들이 말하기를, "저 놈의 나쁜 백조 한쌍이 오리들을 자꾸 호숫가에서 내쫓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오리들은,  놀 자리를 잃은 듯 이리저리 서성거리는듯해 보이기도 하고, 마치 집을 잃은듯한 우리들의 가족 같아서, 마음이 더 쏠리게 되고 왠지 가여워 보이기만 하다.

"야! 여길 어떻게 감히! 이번 여름 내내, 이젠 여긴 우리 구역이란 말이야!”
하면서 그 빨간 뾰족한 주둥이를 들이대며 다른 곳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콘도 주민들은 매일 산책길에 나와 백조가 있는 호수를 즐기기는커녕, 흰옷을 두른 괴팍한 천사의 모양을 한 백조의 출현으로 자리를 잃은  우리 친구, 오리들을 살핀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우리 호수는 오리들이  물 위로 둥~둥 떠다니는 그림이 더 정겹게 느껴져요"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백조의 기세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오리
백조부부

백조는 말 그대로, 눈부신 그 하얀 떨과 긴 목을 가진 우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기품답게 성품도 고고하고 점잖은 귀족일 것 같은데,   

사실, 그들은 상당히 도도하고, 차가우며, 도전적인 데다 주로 한쌍, 또는 가족 무리끼리만 어울린다.

경계심도 무척이나 강한 편이라, 도무지 친해지기 힘든 무리들이다.

한마디로 "화려한 겉모습에 다가섰다가, 그 성질에 뒤돌아서게 되는 스타일"이다.


한 날은 , 태어난 백조 새끼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지  아빠 백조가

근처에 있던 오리들을 너무 못살게 쪼아대고 내쫓은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광경을 보고

동네 주민인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분이  막대기로 백조를 혼내면서 쫓은 적이 있었다.






백조가족


게다가, 몇 년 전엔 한 조련사가 백조 가족들을 살피기 위해, 호수에 들어갔다가,백조 한 쌍이 심하게 

공격해 배가 뒤집어져서, 익사한 적이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 우리 주민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침없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겉은 멀쩡한 신사, 사회적 조폭 같은 성품을 가진 백조를 더 싫어하게 되었다.










데이트 중인 오리 한쌍

그런 반면 , 오리는 

 백조에 비해 체구도 작고 ,

칙칙한 색깔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얌전하고 별 경계심도 없으며 수수하고 정감이 가는 사람 같다.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걸 그다지 두려워하지도 않고, 항시 가족을 포함한, 동네방네 온 무리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낸다.

오리들의 여름저녁 한 때

희한한 게, 이들은 고작 몇 마리의 백조 가족에게 그들의 안방 같은 호수, 한쪽으로 내 쫓겨난 처지임에도 백조를 "적"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것이, 

마냥 온순하고 성격 좋은 것을 넘어서 "깜찍한 능구렁이 배짱"을 가졌다.

백조에게 다가서는 오리

왜냐하면, 매번 내 쫓기는 대접을 받는데도, 

백조의 화려함과 그 까딸스러움에 전혀 개의치 않고 백조 가까이로 당당하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어이 얘들아~ 괜찮아,  우리 좀 친해보자고~너희 구역 좀 오픈해~" 하면서.

백조의 반발로 등돌린 오리


그러나 백조는 이내 "안돼! 가까이 오지 마!" "너희들은 우리랑 칼라 자체가 틀리단 말이야! 하면서, 역시 그들의 접근을 저지하면서 쫒는다.

손을 내밀고 찾아온 오리들을 앞에서 문전박대하니 , 백조는 정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들이다.

오리를 쫒는 백조

이런 백조는 기고만장 , 그 성깔로 매번 으스대지만 "친구나 하자고 다가서는 오리들을 쫓는 것을 보면 오히려 내면은 정말 연약한 겁쟁이로 보인다. " 

자기 칼라와는 다른 친구들을 배척하며 , 왠지 가진 것을 나누질 못하고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자기 세계를 공유하길 꺼리는 사회적 변두리 같은 존재 같다.

자기가 꾸며놓은 울타리 안에서만 삶을 유지하려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화려함만 있는 외톨이가 백조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오리들의 하루

백조의 부문별 하고 이기적인 텃세에,  호숫가에 오리 떼 무리들이  어디론가 이주했는지,  사라져 버리고들 그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 여름이 끝날 무렵, 여름의 우리 호숫가의 불청객이면서 난동꾼인  , 백조 부부가

떠날 것이다.  누구도 그들을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백조가 있는 호수는, 그 하얀 색상의 눈부심으로 진기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한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 그러면서도 열려있는 아량으로 백조에 당당하게 다가서는 짙은 브라운톤의 칙칙한 오리들의 무리가 오히려 "우리에게 더 정감 있는 사람처럼, 친구처럼 언제나 저 호수의 주인이 되어주기를

환영한다고." 


겉으로 화려하고 고고하여 긴 목을 가진 항상 거만한 백조와 겉으론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수수하고 온순한 오리.

그들은  Love Bird


우리네 삶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오리와 백조의 모습들이 아닌가.


나 스스로를 향해, 자신 있게 "그래 난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

내 안에 있는 나를 거울로 들여다보면, 가끔은 나도 사람을 가리고, 내 일상의 시간에 누군가를 들이기를 

과감히 꺼릴 때도 있으며, 스스럼없이 마음이 주는 차별을 당연시 여기며,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 들위로 고개를 쳐들고 마는 거만함.

나에게도 백조의 건성이 군데군데 있다.

 

고고한 척 돈과 명성으로 치장한 채 그것을 무기 삼아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주인 노릇을

거침없이 해대는 백조가면을 쓴 사람들, 비록 재물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하루살이에서도 우리는

나보다 연약하고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온순한 자리로 침범해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드는 사납고

못된 백조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의 사람으로 남을까.


눈에 띄지 않지만 , 늘 사람들에게, 우리 호숫가의 오리처럼 한 곳에 , 가까이에

오래 남길 바라는 사람,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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