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
런던에서 샤프츠버리 행 기차를 타다
시카고를 떠난 비행기는 7시간 만에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저녁 먹고 영화 2편 보고 잠깐 졸다 보니 영국땅이었다.
비행시간이 적당해서 여행 피곤증은 없었다. 게다가 이른 아침이라 입국수속도 재빠르게 끝났다. 문제라면 심카드였다. 출국 전날에서야 미리 사둔 심카드를 도착 3일 전에 어디에 등록을 해야 영국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심카드를 런던에서 다시 사야 했다. 마침, 히드로 공항터미널에 심카드 가게가 있었다. 카드를 사면 폰이 작동되도록 서비스까지 해 주었다.
말썽이 된 건, 새로 교체한 심카드가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다. 3번째로 교체하고 옆에 있는 손 빠른 직원이 다시 최종 점검했다. 그때서야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한 시간가량을 지체했다.
재빠르게 택시를 타고 워털루 기차역 (Waterloo Train Station)으로 갔다. 미리 예매한 기차는 정확한 시간에 떠날 예정이었다. 우왕좌왕한끝에 기차에 무사히 올라탔다.(안내하는 직원이 없어서 어느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혼동) 좌석은 일등석을 예매하길 잘했다. 쾌적하고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참고로, 일반석은 승객이 많아 좁고, 시끄럽다. 안락함이 좋다면 돈을 쪼금만 더 들이는 것도 괜찮다.)
샤프츠버리를 가는 데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잠깐 바깥 풍경에 넋 놓고 있는 사이, 기차는 순식간에 길링 함(Gillingham)이라는 작은 역에 도착했다. 호스트 Sue가 알려준 로컬 택시를 타고, 마침내 샤프츠버리에 도착!. 긴 하루였다.
Sue's Cottage -'수'의 시골집
택시기사인 할아버지는 ‘아 sue의 집!’ 하며 (시골은 이래서 좋다^) 15분 만에 나를 내려 주었다. 문 입구는 'pump yard'라고 쓰여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에 한 채와 양쪽으로 3채의 집들이 들어서있다. 중앙에는 잔디 위로 물 긷는 펌프가 장식처럼 놓여있다. 그래서 타운 홈의 이름이 'pump yard' 다. Sue의 에어비앤비는 내가 상상했던 대로 영국식의 예쁜 시골집이었다.
문 앞에서 Sue 할머니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의 첫마디는 들뜬 목소리로 ‘집이 너무 예뻐!’였다. 꾀죄죄한 얼굴을 좀 가리려 뉴스보이 모자를 쓴 나를 본 Sue의 첫마디는 ‘너 아티스트야?’라고 했다. 뭐, 그럴싸해 보였나 보다~.
그녀의 첫 인사에 나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샤프츠버리에 빠져들었다.^
Shaftesbury-샤프츠버리
샤프츠버리는 영국 Dorset 지방에 있는 작은 타운이다. Dorset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힐탑 위에 정착한 마을이다. 그런 이유로, 샤프츠버리에는 기차역이 없다. 언덕 위에 세워진 타운이라 철로를 만들기에 어려움이 있었단다.
여기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길링엄(Gillingham) 기차역을 이용해야 한다. 거기서 주중에 운행되는 마을버스와 로컬택시를 이용해 샤프츠버리로 올 수 있다. 굳이 차를 렌트하지 않고도 이곳으로 얼마든지 여행이 가능하다.
Gold Hill
골드힐은 1970년경 영국 빵, 호비스의 선전이 촬영된 곳이다. 한 소년이 빵이 실린 바구니를 자전거에 싣고 언덕을 오르는 장면이다. 이 모습이 티브이선전에 나가면서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골드힐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그림 같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고대의 향기가 묻어있는 돌길은 얼마나 운치가 있는지. 파란 하늘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 저 멀리 펼쳐진 녹색의 필드는 골드 힐을 한층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골드 힐에 서면 고요한 바람이 필드에서 불어온다. 묘한 적막감이 주는 쓸쓸함이 왠지 좋다.
골드 힐은 Sue의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이 길을 지나면 바로 타운을 만난다. 타운을 만나는 지름길이지만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려면 숨이 헐떡일정도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언덕길을 혼자 걸어도 좋을 만큼 멋진 곳이다.
그래서 매일 이 언덕을 지나다녔다. 다닐수록 새롭고, 또 지나고 싶은 언덕길이다.
가끔은, 양쪽으로 들어선 아기자기한 집에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골드 힐 언덕에 다다르면 조그만 카페가 있는데 이곳은 골드 힐 전경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명당자리다. 매일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골드 힐을 감상하는 것을 더 즐기는 것 같다.
좋은 건 , 카페가 5시쯤이면 문을 닫는다. (다니다가 알게 됨) 그때가 사진 찍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바깥에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
Park Walk
샤프츠버리에는 골드 힐외에 특별히 볼거리나 할 일은 없다. 골드 힐 입구에 작은 뮤지엄과, 타운으로 들어서면 샤프츠버리 수도원(Shaftesbury Abbey)이 있는 정도다. 재미있게 즐길 일들이 많지 않은 작은 타운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아쉽지 않도록 두 곳이 잘 관리되어 있다.
매일 아침식사가 끝나면,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빈다. 그러다 골드 힐을 지나고, 타운으로 들어선다. 팍 워크는 타운입구에서 한쪽으로 길게 나 있는 산책로다.
언덕 위의 마을이라 산책로에 서면 앞이 훤히 트였다. 그런 길을 걷노라면 힐링이 저절로 된다. 초록의 필드에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이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 같다.
울창한 초록 나무와 들꽃, 특히 안개꽃이 만발하다. 개를 산책시키는 할아버지, 어디선가 나들이를 온 듯한 가족들, 홀로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독서하는 멋쟁이 할머니를 만났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길 고양이 한 마리가 희한하게 나를 떠나지 않고 졸졸 쫓아다녔다.^ 고 녀석이 내가 맘에 들었는지 나랑 사진도 찍어주었다. 한 순간은 자기 사진을 부탁하듯 꽃밭에서 포옴을 척~하니 잡았다. ^
샤프츠버리에서 별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사진 찍고, 빈둥빈둥 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니다 쉬고 싶을 땐 타운의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낯선 사람들과도 말을 주고 받으며 즐거웠다. 그저 신날 뿐이었다. ‘음, 쉬는 건 이런 거야~’하면서.
Salisbury -솔즈버리에서의 하루
샤프츠버리에 있는 6일간 하루는 가까운 도시인 솔즈베리를 방문했다. 1일 여행이기도 하지만 '나들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사실, 호스트 Sue가 '하루여행을 제안했다. 한때는 그녀가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단다. 기차역에서부터 타운까지 가는 길이며, 맛집, 성당등을 포함해 들를만한 곳들이 표시된 지도까지 상세하게 그려주었다.
샤프츠버리에서는 동네 버스로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대략 1시간 걸린다. 하루 여행지로 무난한 거리다. 자동차로는 30분 정도 소요될 만큼 가까운 이웃동네다. 그래서 샤프츠버리의 사람들은 수시로 솔즈베리로 샤핑을 나간다.
솔즈버리는 윌셔주의 남부에 있는 소도시다. 멋진 중세풍의 대성당(salisbury cathedral )과 스톤헨지(stonehenge)가 대표적인 볼거리들이다.
솔즈버리의 기차역에서 입구로 나가면 스톤헨지로 가는 버스가 있다. 나는 아쉽게도 스톤헨지행을 하지 못했다. 아담하고 예쁜 솔즈버리의 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니 샤프츠버리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에 맞춰야만 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솔즈버리의 구시가를 돌아보고 시티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 주변을 서성거리기도 하면서 솔즈버리에서의 나의 하루 여행이 그렇게 흘러갔다.
샤프츠버리에서의 음식
샤프츠버리에는 그들만의 톡특한 음식은 없다. 주로 매꼼하면서 달꼼한 중국 음식, 타이, 인도의 커리요리등이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즐겨오는 음식이다. 그 외에 햄과 생선요리, 튀긴 감자 등이 내가 맛본 음식들이다.
Sue의 집에서는 음식을 할 수 없었다. 대신 아침은 Sue가 준비해 준 토스트와 커피, 과일이며 요구르트를 먹었다. 런치는 타운을 돌아다니다 주로 오후 늦게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거나 베이커리에서 여러 종류의 빵을 맛보는 재미도 좋았다.
저녁을 숙소에서 먹어야 할 때는 타운의 맛집에서 음식을 넉넉하게 투고했다. Sue는 특히 매운 타이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가 추천한 동네 맛집인데 맛이 훌륭했다. 내가 베푸는 저녁에 Sue는 '이거 진짜 공짜야?, 이런 게스트는 처음이야~'했다. 감동의 눈물이라면 좀 지나친 표현이지만 사실 그랬다. ^
그녀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싶었다. 무엇보다 친구 같은 인연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런 나의 마음이 전달된 거 같다. 내가 에어비엔비를 숙소로 정한 이유다. 함께 나누고 그들의 삶을 배우는 것들이다.
그다음 날부터는 Sue가 차려주는 아침식사가 놀랍게도 풍성해졌다.^ 그녀는 아껴먹는 꿀이며, 맛난 치즈등 온갖 진기한 음식들을 여기저기서 꺼내 놓았다. ‘지나! 이것 맛 좀 봐!’ 하면서. Sue는 함께 나누는 식사를 정말 즐거워했다.
그 외에 Sue와 나눈 영국인의 특식인 잉글리시 크림티와 스콘에 대해 좀 이야기하려고 한다.
잉글리시 크림 티와 스콘 먹는 법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에프터눈 티를 마시면서 스콘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영국의 전통이 되면서 간단한 모임에서는 대개 티와 스콘을 즐긴다고 한다.
Sue가 알려준 바로는 크림티를 즐기는 방법에는 두 지방식을 따른다고 한다. 데본셔(Devonshire) 지방과 콘월(Cornwall) 지방식이다. 데본셔에서 티를 마실 때는 스콘을 반으로 잘라, 클라릿 크림(clotted cream)을 바른 다음 잼을 올려서 먹는다. 콘월에서는 반으로 자른 스콘 위에 잼을 바른 다음 크림을 듬뿍 올려서 티와 먹는다고 한다.
듣고 보니 나는 데본셔 스타일이고, Sue는 콘월 스타일이다. 크림티와 스콘의 조화는 기가 막히다. 약간 텁텁한 맛의 티와 부드럽고 , 달달한 맛의 스콘은 정말 맛이 좋다.
아무튼 이때부터 나는 티가 가진 풍미와 은은함, 그리고 스콘의 매력에 단단히 빠졌다.
호스트, Sue와의 만남
Sue는 첫눈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가진 할머니다. 아직은 젊은 할머니라고 해도 된다. 건강하고, 씩씩하다. 게다가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다. 실내인테리어로도 일했고, 지금까지도 페인팅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그룹에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한다.
잘 꾸며진 빈티지풍의 예쁜 시골집을 보더라도 그녀의 인테리어감각은 수준급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의 시골집에 푹 빠져버렸다.
Sue는 'Marco'라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와 벗하며 살고 있다. 이 녀석은 어찌나 얼굴을 가리는지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게스트가 있을 때는 온종일 돌아다닌다. 먹이가 필요할 때만 잠시 들른다. 희한한 게 Sue가 잠들 무렵이면 정확하게 집으로 들어온다. 가까이에는 외동딸과 손녀들이 살고 있다. 홀로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Sue는 사람을 좋아하고, 대화를 즐겼다. 에어비엔비 호스트가 제격인 듯하다.^ 주로 저녁식사가 끝난 후, 혼자 빈둥거리다 함께 티브이를 시청하기도 하고, 티를 마시면서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 때가 많았다. 부모님과 외동딸, 사랑과 이별에 관한 그녀의 애잔한 라이프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도 눈물이 맺혔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랬나?.. 그녀의 마음을 나누어 주어서 고마왔다. 사람이 사는 모습이란, 어디서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영어는 강한 영국식 악센트가 있었다. (시골은 런던보다 악센트가 더 강하다고 함) 첫날에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영국식 발음이 듣기가 좋았다. 그녀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은 더 재미가 있었다.
Sue는 평범한 할머니가 아니다. 아티스트인지라 감성도 풍부하다. 뭐든지 잘 통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나 그림을 그릴 것이고, 그런 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당히 멋쟁이다. 옷을 센스 있게 잘 차려입었다. 내가 걸치고 나가는 옷차림에도 소녀처럼 관심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Sue는 떠나기 전날에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 그녀가 즐겨가는 인도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특별한 맛의 커리요리에 맥주를 곁들인 저녁이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영국 왕실이야기며, 이전 수상인 보리스 존스를 좋아하며, 영국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등 등 온갖 수다를 떨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떠나는 날 아침, Sue가 나를 위해 택시를 불러주었다. 무거운 캐리어가 있어서 ‘힘 잘 쓰는 젊은이 보내줘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첫날엔 할아버지 기사라 캐리어를 움직이는데 힘들었음). 그녀는 문 앞에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나! 나 오늘 솔즈버리로 샤핑 갈 거야!, 예쁜 원피스 사러~' Sue할머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