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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May 25. 2019

시어머니와 옷장

추억을 만드는 옷장 속의 비밀

시어머니에겐

유난히 다독거리고 애착을 가지는 것이 있다.

긴 외출에서 돌아오면 그리운 사람을 만나듯 매번 열어보고 반기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그녀의 옷장이다.

이 옷장은 그녀에겐 보석함과도 같이 소중하고 매번 열어보고 가슴 뿌듯하게 여겨지는

그런 진기한 물건들이 있는 곳과 같은 것이다.


그녀의 옷장은 지하실에서부터 방마다 온갖 종류의 형형색색의 옷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쌈짓돈이나 각종 중요한 문서들을 은밀히 감추어놓는 등

온갖 집안의 소중한 소품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거실 한편에 보기 좋게 놓여 있는 이 한국식 옷장은 그 안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옷들과 함께 오래전 이민 올 때  태평양을 건너온 유서 깊은? 물품 같은 것이다.

그야말로 이 옷장은 그녀에게 보물 1 호인 셈이다.


그래서 항상 그녀의 옷장은 마치 "부모에게 물려받은 진기한 물건"처럼 그녀에게만

오픈되는 비밀스러운 곳이었고 언제나 광이 나도록 닦고 매만지는 특별한 것이었다.

왜냐면 수십 년간을 힘께 해온 옷장 속의 옷들은 그녀에겐 삶의 스토리와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녀의 옷에 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예를 들어, 매번 한껏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에 내가,

"어머 어머님! 그 옷 색상이 너무 예뻐요!  요즘도 그런 스타일 유행이에요, "라고 찬사를 던지면,

"응, 이건 우리 아들 중학교 졸업식 때 입고 간 옷이야!"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떤 장대한 역사적인 스토리를 이야기하듯 그 옷에 얽힌 추억의 이야깃거리를

즐거이 늘어놓으셨다.


내가 알기론, 어머님은 이민 때 가져온 수많은 맞춤 정장과 원피스와 그에 걸맞은 통굽과

샌들 외에는 미국에서 옷이나 구두를 단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다.

내가 사 드린 옷들은 예의상 딱 한 번만 입으셨다. 그리고 그 옷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후로는 더 이상 옷을 사 드리지 않았다)


옷장 속에 잘 관리되어 온 그녀의 옷들은 항상 돌고도는 복고풍 패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 시대의 프랑스의 전설적인 톱모델인 브리짓 바르도 (Bridget Bardot)의 패션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옷 한 벌을 사지 않으시고 거뜬히 버텨낼 정도로  멋지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스타일리시한 부인이 될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삶의 추억과 스토리가 배어 있는 그 옷들을 입는 것이

그녀에겐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기에 굳이 다른 옷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 년간을 그녀와 함께한 그 옷들은 그녀가 걸치는 순간

"그리운 사람들과의 추억의 삶을 되새기는 순간 들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어머니가 그녀의 옷들만 고집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의 그녀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대단한 멋쟁이 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귀밑까지 오는 약간의 층이 있는 세련된 짧은 단발머리와 짙고 검은 눈썹과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 중간 굽의 예쁜 컬러의 맞춤구두와 선명한 컬러의 러블리한 블라우스와 매치한

단아한 정장과 때론 화려한 꽃무늬가 박힌 미디 원피스는 요즘 트렌디한

최고의 복고풍 패션이었다.

그런 모습은 한눈에 보아도 그 시대는 물론이고, 지금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세련된

패션니스트였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어머니가 매주일마다 교회에서 선보이는 패션은 클래식한 정장과 판탈롱 바지,

화려한 색상의 원피스는 내가 딱 선호하는 복고풍의 스타일이었다.

이런 그녀의 의상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흥미롭게 끌어당겼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느 날부터  그녀의 옷장이 너무 궁금해졌다.

그 이후로 마치 무슨 기밀이라도 빼내기로 작정한 염탐꾼처럼 호시탐탐 그녀의 옷장 속을

탐방할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사실, 어머니는 그녀의 옷장을 나에게  열어 보인적이 없었기에)


드디어 나의 소원대로 시어머님이 며칠 집을 비우게 된 때가 있었다.

그때 남편이 바깥에서 잔디를 깎고 있는 틈을 타 , "기회는 이때다!" 하고

지하실에서부터 일층 까지 조용히, 그리고 비밀스럽게 그녀의 옷장 탐색?을 시작했다.


옷장 속에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옷가지들에서부터

누구나 탐낼만한 빈티지룩의 코트와 쟈켓,  양쪽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간

핑크, 빨강 등의 예쁜 컬러의 스웨터들과 같은 옷들로 넘쳐났다.

모두가 맞춤옷들이었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새 옷처럼 반짝거리며

나를 유혹하며 그곳에 있었다.


나는 마치 우연히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무척이나  흥겨운 마음으로

어머니 옷장 속의 옷들을 샅샅이 탐색하기 시작했다!

전신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긴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걸쳐보기도 하면서 ,

"음, 이건 나한테 딱이야! " 하면서 마음에 드는 옷들은 미리 점을 찍어두었다.

남의 옷들로  신나게 패션쇼를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줄이야~..

더 신났던 건, 대부분의 옷들이 어머니와 체격이 비슷했던지 마치 내 것처럼

몸에 딱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이건 지금도 비밀이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신 어느 해 추운 겨울 때였다.

목에 멋진 털이 달리고 큰 벨트가 달려있는 빈티지룩의 소가죽 코트를 한번 슬쩍

걸쳐 입고 나간 적도 있었다.

 " 이렇게 멋진 옷을 그냥 옷장 속에 묵어두는 건 옷에 대한 예의가 아니냐!"라고 핑계를 대면서..


어머니께서  이처럼 옷들을 특별히 좋아하고 애착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었다.

20대에 남편을 떠나보낸 홀어머니 아래서 3명의 형제들과 힘겹게 살면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했다 한다.

유독 어머니에겐 먹는 것보다 헐벗음에 대한 슬픔이 많았다.

그래서 옷에 대한 "한"같은 것이 있었다.

끼니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 "옷"이란 그녀에겐 "꿈" 같은 환상의 세계 같은 것이었다.


후에 그녀가 성인이 되어 공무원직이라는 탄탄한 직장을 가진 뒤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보너스를 받을 때마다, 동네의 한 의상실을 정해놓고

온갖 종류의 유행하는 옷들을  마음껏 맞춰 입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온 가족들의 의상 담당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것이 되었다 한다.(지금도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먹는 것보다 입는 일을  더 중요시 여길 만큼 좀 덜 먹고 더 좋은 옷들을 맞추어 입는

소원풀이를 마음껏 하시게 되었다 한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옷을 무척 좋아했다.

한번 눈에 꽂힌 옷은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할 때까지 엄마를 향해 집이 떠나가도록

울면서 데모?를 했을 정도다.

아마 시어머니께서도 나와 같이 패션을 따르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어머니와 내가 유일하게 가진 공통 관심사는 옷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입은 옷차림에 대해 칭찬하고 관심 가져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로 난 어머니가 입으신 옷이 마음에 들면 "와~ 이 옷 너무 잘 어울려요!

넘 마음에 들어요"라고 은근히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께서는 선뜻 대놓고 그녀의 옷장을 공개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옷들을 하나씩 기부하시기 시작했다!

연세가 들어가면서 옷들을 조금씩 정리해가시는 듯하셨다.


당신이 애착하시는 옷들을 정리한다는 것은 어머니에겐 어떤 삶의 일부를                          

떠나보낸다는 의미와도 같은 일이다.

그런데, 어머니에게도 결국 그런 결단의 순간이 왔다.


재작년 가을 무렵,

이민 오면서 사시던 집을 정리하고, 드디어 노인 아파트로 이사해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사시던 하우스에 비해 훨씬 작은 사이즈의 방 한 칸의 아파트였다.

가구에서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모든 짐을 정리하고 줄여야 했다.

문제는, 그 많은 옷가지들이었다!

어머니는 직접 아파트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 다른 살림살이는 버리는 한이 있어도 옷은 몽땅 가져갈 테야!”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앞으로 사시게 될 아파트를 돌아보신 후, 결국 어머니는 결단하셨다.

옷들을 과감히 줄이기로!

어머니는 집안의 여인들을 총출동시켰고, 마침내 그녀의 옷장 정리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어머니 집에 모인 그녀의 여동생, 조카딸과 나는 백화점에서 대방출된 듯한

옷 더미를 거실 바닥에 산처럼 쌓아놓고 어머니와의 거래?를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는 새 아파트로 가져가실 옷가지들을 먼저 챙기셨고 그런 다음에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옷들을 기억하셔서 챙겨주셨다. 모두들 각자 필요한 옷들을

마음껏 골라 가져 갔고 나머지는 구세군으로 넘어갈 옷들이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집 옷장 곳곳에 걸려있던 옷들을 정리하는 대작업이 끝났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가져와 수십 년간 그녀의 옷 지기였던 그 낡은 옷장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새 아파트로 옮겨갔다.

그녀의 옷 속에 담긴 그녀의 삶의 스토리들을 여전히 그곳에 걸어두고 싶어서.

그것이 비록 인생의 역경이라든가 슬픔이었다 할지라도, 오로지 행복으로 추억하고

싶어서.


 처음엔 어머니께서 옷장을 왜 그토록 애지중지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매번 "저 옷장 속엔 무슨 큰 쌈짓돈이 있는 게 분명해!"라고만 여겼다.

옷장속의 그 많은 옷들은 어머니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여전히 들려주고 있었다.


추억은 그저 오래된 앨범 속의 사진들속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처럼 내가 걸치는 옷들 속에서도 삶의 추억은 빨간 장미처럼, 때론 아련한 수국처럼,

고독하게 홀로 피어있는 아름다운 들꽃처럼 각양각색의 컬러의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오랜만에 옷장을 열고, 오래된 옷가지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렸다.

지나간 삶의 페이지가 한 장씩 열리듯 나에게 은근한 미소로 다가왔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옷가지들도 거기에 있었다.

나와 함께 다른 삶의 추억거리를 만들 준비를 하듯 나를 반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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