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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Jun 15. 2019

서울 나들이

신나고, 달콤하고, 행복한.


"저, 이번 휴가 때 한국 가요!"라고

내뱉는 말은 미국 생활에서 주위 사람들에겐 부러움이 담긴 최고의 휴가지가 된다.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서울인데, 미국에서는 왠지

머나먼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수천만 리 떨어진 곳이 한국이다.


미국 이민생활에서, 한국은 가고 싶다고 비행기 티켓만 사서 훌러덩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비행기 티켓에 드는 비용과 가족과 친지들의 선물 마련도 해야 되고, 또 현지에서 쓸 수 있는

여유 있는 경비도 필요하다. 한번 가려면 오래전부터 계획해야 한다.

시간적인 여유도 문제지만, 온 가족이 한국 방문을 계획한다면 재정적인 부담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몇 년간 열심히 적금을 들어 목돈을 마련하여

한국 방문의 기회를 갖는다. 특히 목돈마련이 힘든 직장인들에겐 한국 방문을 위해

별도로 꾸준히 저축을 한다든가 아니면 적금통장이 필수다.


가정을 꾸려가는 주부들은, 온 가족의 한국 방문의 작은 소망을 위해 몇 년에 걸쳐

절약해서 적금이 만기 될 때까지를  기다린다.

적금통장의 금액이 쌓여가고 만기가 조금씩 다가오면서, 고향집 그 어딘가에

살짝 걸쳐놓은 그리움의 색채는 점점 짙어간다.

이런 즐거움은 또한 꿈을 이루듯 행복한 시간들이다.



이처럼 한국 방문은 미국 생활에서 누구나 손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처럼, 그저 먼~땅이고,

여행지로 치자면 경비가 쾌 들어가는 여행지다.

그러나 이런 비싼 경비를 들이고서라도 거침없이 가고 싶은 곳이 한국이다!

그곳에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있기에.


미국이란 타향살이에서 한국행은 마치 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가 있는

고향을 향하는 것과 같다.

설렘과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한국 방문은 교포들에겐 아주 특별하고도 최상의 여행지가 된다.


사실상, 한국 방문이란 비행기 티켓을 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마치 명절을 앞두고, 그리운 고향집 방문을 기다리듯 하루하루를 카운트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밤을 보낸다.

이때부터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위한 선물 리스트가 작성되며, 그들의 선물꾸러미를 장만하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지면서 갑자기 즐겁게 분주해진다.

명절을 지내기 위해 고향집 방문을 바로 앞둔 것 마냥 생활의 패턴은 갑자기 활기를 띠면서

행복 모드로 바뀐다.

조용한 집에 잔치라도 생긴 듯이. 마치 결혼을 앞둔 들뜬 아씨의 마음 같은 것이랄까..

확실히 그렇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가는 것을 미루고 가지 못했다.

한국행은 무슨 복병처럼 14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언제나 고충이기 때문이다.

좁은 의자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서 팔과 다리를 수시로 이리저리 비틀어대야만 하고,

맨 정신으로는 남들처럼 신나게 잠에 골아떨어지는 일은 더더구나 없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서는 와인이라도 벌컥 들이마셔야만 한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온 몸이 노곤해지면서 취해야만 잠을 잘 수 있다.

최악인 건 14시간이란 비행으로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온몸은 절인 파김치처럼 되어버린다.

적어도 하루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행은 나에겐 설렘보다는 비행기를 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큐리티 첵을 빠져나가야만 하는 것과 같은 만성두통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늘 가고, 오는 길에서는"아~ 다시는 안 갈 테야! 너무 힘들고 지겨워~"라고

굳은 결심에다 스스로 맹세까지 할 정도다.


그런데.. 희한한 게, 또 2-3년쯤 되면 그런 다짐은 귀신같이 사라진다.

아랫집의 고약한 마리아 할머니의 변덕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야! 한국 한번 가야지!" 하고  

선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되었다.

바로 한국이 내 고국이고 고향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또 한국행 티켓을 샀다! 거의 4년 만의 한국행이다.

올해의 첫 번째 휴가지를 한국으로 급히 변경했고, 급기야 나도 적금을 털어 계획에도 없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덜렁 샀다.

어느 날 문득, 서울이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남편과 조카 레베카는 미리 정해진 방문 계획에 따라, 나 보다 일주일 전에 먼저 한국에 도착해 있었다.

직장 업무상 월 말에 빠질 수가 없었던 나는 혼자 비행기를 타야 했다. 혼자 떠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그야말로 한국행이고 서울 나들이다!


아직 5월 초의 햇살은 쌀쌀했지만, 하늘은 청명했고 햇살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빛났다.

간만의 서울 나들이를 환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14시간의 무시무시한 비행이 그다지 힘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4편 보면 한국 온다!"라는 남편의 귀띔에 열심히 영화에 빠졌고 그러다 보니,

정말 한국에 가까워져 있었다.

아무튼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서울이었다!


서울은 그대로였다.

분주한 사람들로 복잡한 거리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좁은 도로 위의 수많은 차량들..

전철역 입구에서부터는 막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만 들려도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놓칠세라 신발이 벗겨질 듯 무지막지하게 달려가는 것도.

지나치는 길목마다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그위를 색칠하듯 온통 덮고 있는

형형색색의 간판들도.

모두 그대로의 모양으로, 이 도시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 골목마다 곳곳에 들어서 있는 온갖 종류의 식당들은 간판만 보아도 입맛을 다시게 했다.

눈으로 언뜻 보기에도 이전보다 더 많이 생겨났다.

만두와 순대, 김밥, 칼국수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맛깔스러운 먹거리들도 여전히 주위에

사방천지로 널려 있었다.

아! 지난 몇 년간 서울의 음식들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시카고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임에도 L.A와 비교하자면, 맛있는 한국음식을 하는

식당을 찾기도, 먹기도 힘들다.

그래서인지 시카고에선 "한국 간다!" 하면, 모두들 한결같이 "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인사다. 돌아오면 역시 되묻는 인사가 "맛난 음식 많이 먹었어?" 다.

그러면  무슨 의무감처럼, 어떤 답사지에 대한 보고처럼 제법 구체적으로 답해줘야 한다.

어떤 식당에서 무슨 음식들을 먹었는지 늘어놓는 것이 "어디를 구경 갔다 왔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흥미를 끌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며 자랑거리가 된다.


먹는 것 하면 풍부한 나라,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간다면 모두들 하는 인사가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니 좀 우습긴 하다.

그것은 바로 고향의 나라, 고국의 음식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나들이는 사람들과 음식이 어우러진 만남이었다.

이전에는 한국에 가면, 음식 맛보기를 즐겨하기보다 남대문, 동대문시장을 휩쓸고

다니며, '어머~ 이건 미국에선 귀한 것들이야!" 하며 쇼핑하는 재미에만 빠져 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취향이 바뀐 걸까? 체력도 이전보다 훨씬 딸린다.

모이고 먹는 즐거움이 더 좋아졌다.

그냥 마구 한국음식이 당겼다. 그간 시카고에서 제대로 입맛대로 먹어보질 못했던

음식 리스트를 체크하며 한국 먹거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나에게 군침이 돌게 하는 음식들이란 근사한 레스토랑의 훌륭하고 비싼 음식들이 아니었다.

엄마 손맛 같은 맛깔스러운 동네 식당의 음식들-칼국수, 김밥, 순대, 만두, 찐빵.. 과 같은 것들을

맛보는 것이었다.

주로 이러한 먹거리들은 동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맛보는 우리 점심의 주 메뉴였다.


먹기 위해 모이고, 모이기 위해 먹거리들을 찾아다녔다.

거의 매일 저녁이면 젊은 조카들의 안내로 동네 맛집들을 순행하듯 돌아다녔다.

시카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싱싱한 생선회부터 구수하고 쫄깃한 막창구이는

너무 맛있어서 숨도 안 쉬고 먹어댔다.


바지락이 흠뻑 들어간 얼큰한 칼국수와  곁들여 나온 맛깔난 김치와 깍두기.

난생처음 먹어보는 쫀뜻하면서도 기름기 없는 산뜻한 맛의 "찹쌀 탕수육"은 살짝 튀겼는데

정말 맛있었다!

지인이 대접한 점심메뉴였던 고기와 해산물로 이루어진 전통 샤부샤부 맛은 일품이었고

냄비 바닥이 보일 때까지 깨끗이 치워버렸다!

동네 식당의 유명한 한 숯불갈비는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서 녹아지듯 그 달콤하면서도  

연한 살집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리고 몇 날 며칠 동안이나 저녁식사가 끝나면, 한국에서 인기를 타고 있는 후식으로 다양한 맛의

"설빙"을 맛보았다.

“야~ 이건, 아직 시카고에서는  맛볼 수 없는 빙수야~”하며 촌티를 내면서.

설빙의 맛이란 마치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고, 시원해서 초여름 저녁을 위한 최상의 후식이었다.


우리셋 (남편, 조카 레베카, 나)은 후진국도 아닌 선진국에서 그동안 마치 무슨 기아에 허덕였던

사람들처럼 마냥 식탐에 빠졌다.

사실 우리 셋이 한국에 도착할 무렵, 가족들이 우리에게 던진 한마디 말은

 "어머 왜 그렇게 다들 말랐어?!"였다.

그런 우리들의 얼굴이 서울을 떠날 때쯤, "광택"이 날 정도로 윤기가 흘러났고 토실해졌다.

거의 매일 사람들과 만나고, 잘 먹고, 웃고, 즐겁게 잘 놀아서.



5월의 봄 볕이 화창한 하루는 , 우리에게 최고의 이벤트가 있었다.

여인들의 경복궁으로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그 주변에 있는 한복집에서 모두 한복을

렌트해서 입고 경복궁을 반나절을 거닐며 봄 날을 즐겼다.

막내인 나를 포함한 우리 세 자매들과 그녀들의 딸들이 함께 뭉친 여인들만의 흥겨운 놀이였다.

일명, "한복 입고 경복궁 체험하기"가 그 날의 우리들의 놀이 주제였다고 하면 될 것 같다.

한복마다 그  색감과 분위기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하고, 선녀들의 하늘거리는 옷 같기도 하면서

마치 예쁜 꽃 분홍 자수를 놓은 듯, 화려한 한국의 드레스처럼 “한국만의 얼과멋"이 담겨있었다.


내 생전 처음으로 느꼈다. 한국의 한복이 이처럼 우아하고 매력적인 자태를 드러내는 옷이라는 것을.


사람들과 만남과 음식.

웃음과 여유 그리고 이곳에서의 잠시 멈춤.

우리는 고향땅에서 그간  희미해져 가던 추억들을 선명한 사진처럼 새로운 앨범에다 장식했다.


여행이-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모르는 사람들 틈으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일종의 쓰릴 있는 탐험 같은 것이라면,

서울 나들이란, 익숙해있는 곳에서 친근한 사람들과 만나서 먹고, 놀고, 사랑과 우정을

확인하고, 추억을 만들기 위한 그리움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나의 이번 서울 나들이에는 자랑거리가 꽤 많을 것 같다.

잘 먹고 잘 놀아서 얼굴에 윤기도 자르르 넘치고, 무엇보다 한국 음식 자랑도 길어질 것 같다.


한국으로의 기나긴 비행도 1-2년이 지나면 다시 깡그리 잊어버리고, 또 그리워질 것이

분명하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의 그 거리가.

동네 입구의 식당에서는 여름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와 찐빵이 가득 들어 있는

큰 가마솥이 놓여있는 그 정겨운 풍경들이.  그곳의 엄마 손맛 같은 많은 먹거리들이.

우리들의 막 웃음이. 그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서울 나들이가 다시 그리워질 것 같다.


경복궁 - 한복 나들이

재래 시장과 한국의 먹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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