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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Jul 21. 2019

중년이 어때서

꿈이 있는 중년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더니 들뜬 목소리로 "나~요즘 발레 하기 시작했어!"

"응? 발레를? 와~ 멋지다!!"라고 내가 말했다.


친구의 은근한 이 자랑은 나에게 상쾌한 여름 아침의 풀잎 향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취미 겸 시작한 발레는 몸의 적당한 밸런스와 근력을 키울 수 있어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중년 여성들도 즐겨한다고 한다.

발레슈즈를 신고 하늘거리는 발레복을 갖추어 입고 백조처럼 우아한 몸놀림을 하노라면 소녀적 감성도 생겨날 것 같고 저절로 유연한 몸이 되어 훨~훨씬 날아오를 것 같다.


발레라면 어린 소녀나 젊은 아가씨들만 배울법하다고 여겼던 건데, 색다른 용기며 취미라 나까지 덩달아 흥이 났다.  친구에게  마음속 힘찬 박수를 보냈다. 정말이지, 중년이 어때서!

 

중년이라는 시기는 신체적, 심리적인 변화가 불규칙하게 일어나면서 소위 갱년기 증상을 서서히 또는 다양하게 겪게 되는 사춘기 다음으로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기가 아닐까?.    


사실, 나도 벌써 중년의 대열에 들어섰으면서도 중년이란 말이 나에게 실감 있게 다가온건 얼마 되지 않았다.

갱년기 증세가 서서히 노크를 해 왔는데도, 왠지 말을 걸기 싫은 사람처럼 선뜻 아는 체하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성질이 고약한 노인을 만난 듯 슬금슬금 피하며 그렇게 마주하기 싫었다. "넌 불쑥 찾아온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야!"라고 여기며 차갑게 문전박대하듯 무시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시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등, 여기저기 관절이 쑤시고 이유 없이 온몸이 조금씩 아프다가 괜찮아지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부터 아! 내가 갱년기에 들어선 중년이었구나!라고 실감했다. 그때부터 서서히 중년이라는 나이에 들어선 갱년기라는 이 친구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애착을 가지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안에 있는 새로운 나를 만난 듯.


이런 갱년기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는 "아! 이제 늙는구나,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끝이구나!" 마치 화려했던 꽃이 땅에 떨어져 시들어버리듯. 처음에는 그렇게 중년을 절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갱년기라는 이 친구를 다정하게 맞아들이던 순간부터 중년이란 나이는 그야말로 가장 평온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아닌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성껏 다독거리는 자신과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그것이 중년의 시기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몸이 안 좋다고 느껴지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절친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 이유로) 온갖 증상들을 서로 털어놓는다. 어느 날 우리들에게 침입(?) 해온 갱년기라는 사나운 친구는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밭을 군데군데 들쑤셔 놓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그래도 괜찮다. "그래~맞아! 그거야! 이게 다~ 갱년기 증상이라고! 드디어 올 것이 온 거야! "하면서 그저 담담하게 우리의 나이 들어감을 하하~호호~ 하면서 자축(?) 한다.


다행히 친구들은 예민한 나보다는 성격들이 좋아서 중년의 나이 듦에 위축되거나 씨름 씨름 거리지도 않고

모두들 자기 방식대로 세월의 변화를 멋지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령, 발레와 같은 색다른 취미를 가진다거나,

운동과 피부관리를 열심히 하는 일이며, 여행 등으로 자기들만의 멋진 인생을 꾸며나가는 일들이다.


대개 지금쯤이면 자녀들이 거의 대학 졸업을 했거나 독립을 한 내 주위의 직장선배나 동료들을 보면 마냥 남아도는 시간을 무엇으로 메꾸어 나갈지 고민한다. 이것저것 관심을 기울여보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여유로운 삶을 찾고 즐기려 한다.


어느 날 나는 내 자랑을 하듯, "저, 글쓰기 시작했어요! 취미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해요!" 했더니 "와~꿈이 있는 중년, 멋져! 우리도 뭔가를 해야겠어! 그래, 이대로 늙을 수는 없지!"  " 가만있자, 내가 뭘 잘했지?" 하며 모두들 오랫동안 놓아버렸던 자기만의 꿈 찾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을 본다. 피아노를 다시 제대로 배운다든가, 댄스를 하기도 하며,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며 "꿈 만들기"에 어린 소녀들처럼 신나서 난리들이다.

나의 꿈 자랑이 전염이 되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소중한 그 무언가를 향해 도전해 볼 수 있는 마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즐겁다.


그래서 중년이라는 나이가 의미 있다. 신체적, 심리적으로 한바탕 천둥번개가 치고, 마치 치열한 전쟁과 사랑을 겪은 후의 인생처럼 나이 들어감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다음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기회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 후의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꿈을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 그것이

중년의 시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20대는 꿈을 찾아 떠나는 방황과 숱한 좌절과 힘겨움의 시간이었다. 30대에 접어들어서는 결혼과 함께 직장이란 사회 속에서 오는 또 다른 삶이란 것에 매달리고 시달렸다. 그렇게 조금씩 성숙미를 쌓아가면서 힘겹게 30대를 건너뛰었다. 여성의 삶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많은 인생의 행복과 고비(자녀의 대학 졸업과 가족의 죽음등)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 중년의 나이가 아닐까 싶다. 나도 이때가 되어서야 조금 더 성숙해지고 동시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시작했다.

 

중년은 신체적, 심리적으로 다양하게 변화를 겪지만 그저 초췌해지고 연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움츠린 나를 다시 들여다보고 찾아가는 나이다. 한바탕 정신과 육신이 사춘기처럼 곤욕을 치르면서, 스스로에게 좀 더 극진하게 대접하게 되는 시간들이다.  내 안에서 여전히 나를 흔들고 있는 갱년기라는 이 아픔들이 여성으로서 보다 원숙미를 지닐 수 있는 어떤 심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의 변화와 함께 성품이나 가치관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소 차갑고 까칠한 나의 "기"가 조금씩 꺾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에게도 더 관대해지고 사람들에게도 좀 더 푸근해졌다. 삶이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음 그럴 수 있지" 하며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부드러우며 가슴은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여린 소녀의 심성 같은 여유와 자기만의 삶의 비밀을 가지는 것이 내가 느끼는 중년의 시기다.


"내 나이 여든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변화의 모험을 계속할 것입니다"의 칼릴 지브란의 말은 중년이라는 시간 위에 기운을 잃고 있는 우리 여성 모두에게 던지는 말이 아닐까?

중년이야말로 인생의 빛나는 시기다! 나는 중년이 되어서 홀로 여행을 떠날수 있었고, 길 위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듯 다시 글을 쓰면서 꿈을 품었다. 나는 이제 그 변화의 모험이라는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


꿈이 있는 중년. 중년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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