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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동네에서 국민체조를 하다가

by Blue Moon

우리 동네는 밤 10시면 캄캄하다.


대부분이, 아니 거의 모든 집들의 창가에선 불이 꺼진다. 아마, 9시 30분쯤 되면 슬슬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어? 나도 자야 하나?' 할 정도다.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가장 먼저 불이 커진다. 수업이 일찍 시작되기 때문이다. 겨우 작은 렘프하나만 켜두거나 아예 티브이 불빛하나가 전부다. 이런 희미한 불빛도 10시가 넘어가면서 완전히 없어진다.


동네는 캄캄해진다. 가로등불과 현관의 전등만이 반짝일 뿐이다. 이때, 나는 또 한 번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진짜 자야 하나 봐?"


분위기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뭐, 자는 것까지 분위기를 따라간다는 건, 줏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동네 전체가 캄캄해질 때는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오래전에 미국에 왔을 때, 어두운 동네가 기이하게 여겨졌다. 무슨 일을 하다가 언뜻, 내려다본 동네는 칠흑 같았다. 왠지, 으쓱하고, 이상했다.


"아니~ 이 동네는 사람들이 살기는 한 거야?" 또는 "무슨 잠들을 이렇게 일찍 자는 거지?"

이런 식으로 혼자서 구시렁거릴 때가 많았다.


나중에서야.. 동네가 빨리 캄캄해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개 8시면 잠자리에 든다.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위기가 된다.


아침 일찍 수업이 시작되니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우거나 등교를 시켜야 한다. 출근도 서둘러야 하는 일등 아침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또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집을 '딤'(dim 침침하게)하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생활을 신경 쓰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밤이면 작은 램프나 티브이 불빛만으로 집을 밝힌다.


모두들 집을 '딤' 하게 하니 동네는 컴컴한 것이 당연하다. 집을 '딤'하게 하는 것도 일종의 미국 문화 같다. 환하게 밝힌 집은 한 동네에 한집 정도? 있을까 말 까다.


그런데... 우리 집 거실에서 보이는 건너편 이층 집은 미스터리다. 침침한 것을 넘어 아예 캄캄하다. 할아버지 한분이 사시는 것 같다. 거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낮이건, 밤이건 블라인드가 사방으로 내려져있다. 밤이면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만이 부엌을 통해 새어 나올 뿐이다.


'사람이 살기나 하는 거야? 나~참"


그 집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할 지경이다. 딱 빈집 같다. 불행히도.. 거실에 들어서면 컴컴한 집이 자동으로 보인다.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집이다.


항상 캄캄한 이웃집이 있는 것도 생활정서에 좋지 않다. "뭘까?, 왜지?' 하며 불필요한 관심과 걱정을 하게 된다. 집은 어두웠다가도 반짝거리고 그래야 한다. 나는 환한 집이 좋다. 밤이면 방마다 불을 밝힌다. 특히, 거실의 창문을 가리는 걸 질색한다.


몇 년 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다.

건너편 집이 창문마다 블라인드로 장막을 쳤다. 대신, 우리 집은 마음 놓고 환하게 밝히자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면 거실의 창문을 가리지 않았다. 불도 환하게 밝혔다.


. '어휴~가려줘서 땡큐예요!, " 했을 뿐이다.


그러고선.. 어느 날 밤부터 거실에서 체조를 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체조 같은 것이 하고 싶었다. 유튜브에 '체조'라고 검색을 했더니 '국민체조'가 바로 떴다.


"어? 국민체조야!" 이미 오래전에 오울드 패션이 되어버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다. 그만 향수에 젖고 말았다. 초등학교 때, 매일 아침이고, 런치타임에 수시로 했던 운동 중의 운동이지 않나?


한번 따라 해 보았다. 동작도 단순하고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재미가 있었다. 이때부터 '국민체조'는 나의 '밤 운동'이 되었다. 그날부터 밤이면 거실에 불을 밝힌 채, 열심히 몸을 흔들며 '국민체조'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실에 앉아서 무심코, 건너편 집을 보았다. 좀 심하게 표현해서, 놀래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세상에!, 할배(경상도식의 친근한 표현임) 집 창문에 가려진 블라인드에 약간의 틈새들을 발견했다. 그 틈새라는 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니고 여러 군데였다!.


거실에도 빼꼼~, 부엌에도, 맞은편 방도 빼꼼이가 있었다. 여기서 빼꼼이란, 블라인드가 백 프로 가려져있지 않고 한쪽 끝에 슬~쩍, 쪼끔~기묘하게 열어 두었다는 것이다.


순간, 세상 무서운 것이 사람인 나는,

'혹시.. 저 할아버지 파렴치한 아냐?' 음.. 그러니까 스릴러 영화에서 'I'm watching on you~' 하며 이웃집 여자를 훔쳐보는 그런 괴한? 등등 여러 흉측한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후, 그 뺴꼼이들에 대해 조금 편하게 생각했다. 아마, 그 빼꼼히들이란, 마치 감시용 카메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주위도 살필 겸, 집도 조금 밝힐 겸 해서 열어둔 거겠지?..라는 마음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불이 환하게 켜진 집이 얼마나 잘 보였을까?.. 할아버지가 안 보려고 해도 그냥~ 눈에 뜨였을 것 같다.^


다행인 건, 할아버지집과 우리 집이 약간 비스듬하게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여자가 삐진듯한 자세 같은 위치다. 뭐. 보았자 대충이다. 요란한 춤도 아닌 건전한 국민체조가 아니겠는가! 괜찮다.


그런 후.. 어느 날, 워킹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더 놀라고 말았다. 집집마다.. 가려진 창문에는 한결같이 '빼꼼이'가 있었다!.


어떤 집은 큰 뺴꼼이, 어떤 집은 눈에 뜨일 듯 말듯한 작은 빠꼼이, 아래층 젊은 커플 집 창에는 제법 큰 면적의 빼꼼이가 있었다. 또 싱글인 제니스 아줌마의 부엌 창문에는 아주 치밀하게 열린 빼꼼이가 있었다.


그제야 컴컴한 동네와 빼꼼이는 필수관계라는 것을 알았다. 컴컴한 동네에 '빼꼼이'는 당연한 거야'라고. 뭐, 건넛집 할배네는 진작부터 빼꼼이가 있었던 거다. 뭔가(?)를 보긴 했겠지만 혼자 인상을 쓴 건 오해였다.


그때부터.. 나도 거실 창문을 살짝 가렸다. 밤이면 집안을 '딤'하게 했다. 물론, 빼꼼이도 하나 만들었다. 거실에 있는 창문 중, 건너편 집이 보이지 않는 구석자리다.


가끔, 만나는 지인마다 우스개 소리로 묻는다.

"그 동네 캄캄해요? , 뺴꼼이 절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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