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이 되니 날이 금방 어둑해진다.
4시면 벌써 컴컴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밤이다.
'이거 벌써 들어가야 하나?'라고 경보를 슬쩍 알려온다.
하지만, 두 번째 런던여행이다. 거리도 익숙해졌다.
런던은 적당히 안전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혼자 돌아다니는
여자 천지다. 그냥 숙소로 향할일은 아니다.
런던의 밤을 모험하기로 했다.
나도 어둠 속에 좀 묻히고, 동화되고 싶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안개 낀 런던의 밤은 질퍽거린다.
그래도 낭만이 있다.
걷다 보니, 저쪽 어딘가에 멋진 노랫소리가 들린다.
가던 발길을 돌리게 했다.
거리의 버스킹이다.
런던에서 버스킹을 즐기려면 내셔넬갤러리 앞의 트라팔가광장과
피카딜리 서커스 쪽 에로스 동상이 있는 광장이 좋다.
마침, 만남의 광장으로 알려진 에로스 동상 앞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에 걸맞은 허스키한 노랫소리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매력적이고, 감성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그의 버스킹공연 앞에 멈춰 섰다.
허름한 듯, 그것이 오히려 멋이 있어 보이는 싱어(버스커)다.
거리의 예술쟁이들은 대개가 궁색 맞아 보인다. 낡아빠진 옷을 걸치고, 뭔지
초췌한 듯, 우울한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감성에 호소하듯 짙은 음색과 남루한 그들의 행색은 거리의
예술쟁이들의 독보적인 패션인 것 같다.
아무렇게나 걸친 모습에서
꾸미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난 그런 것들을 즐긴다.
오히려 그들을 보면서 패션을 본다.
아무래도 나는 예술쟁이들을 사랑하고, 거리의 악사를 흠모하는 사람이라
이런 얘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왜 버스킹의 싱어는 항상 남자일까?.. 2년 전에 런던을 찾았을 때도
그 많던 버스킹의 싱어는 거의 남자였다.
기억으로는, 딱 한 명의 여자 싱어를 보았다.
남성복장을 한 아씨였다. 짧은 커트머리에 영국식 뉴스보이 캡을 썼다.
남성복에 가까운 보이시한 신사차림이었다. 빈티지한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녀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한참을 서성거렸던 적이 있다.
버스킹의 세계에서는 남자버스커들이 단연 인기가 많나 보다.
뭐, 그런 이유로, 남성버스커들이 더 많은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별생각을 다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을밤, 싱어는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노래만 불렀다.
나처럼 혼행자인 경우, 버스킹을 즐기는 일이란,
그야말로 티켓을 사지 않은 프리 음악회를 관람하는 것과 같다.
싱어가 노래실력이 상당하다.
난 그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싱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위치만 조금씩 이리저리 옮겼다.
그 덕분에 다양한 각도에서 노래를 감상했다.
어쩌면,
거리의 멋진 버스킹을 보기 위해, 런던으로 날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비 내리는 런던 밤거리에서 생음악을
듣는 일은 끔찍하게 좋다.
혼행이라면 버스킹 관람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
꽤 근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