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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 Spirit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3)

별이 뜨는 들판을 향해

by Blue Moon

9월 8일 파리-바욘(Bayonne)-9월 9일 생장 피드 포드 (St. Jean Pied de Port) -오리손(Orisson)-론세스 바예스(Roncesvalles) -9월 10일 주비리(Zubiri)-9월 11일-9월 13일 주비리에서의 사흘 동안-9월 14일 팜플로나(Pamplona)-9월 15일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9월 10일: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주비리(Zubiri) 21.5km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잠이 오질 않아 결국 아침이 오기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을 보고 너무 빨갛게 충혈되어 흠칫 놀랬다. 오늘 하루는 거의 온종일 비가 올 예정이어서 아래, 위는 비옷으로 완전 무장을 했다. 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세 자매님께서 눈을 뜨고 말았다.


어젯밤에 미리 인사를 해서 조용히 가려고 했는데.. 캐런은 하룻밤 숙박비에 포함되었던 아침식사를 기억하고선 함께 나누지 못하니 대신에 가는 길에 식사하라고 돈을 따로 챙겨주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라고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는데 가방에 푹 찔러주질 않는가. 우리는 서로 어깨를 감싸며 작별인사를 했고, 캐런은 나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피레네의 세 자매님! 아디오스(Adios-good bye)!


주비리를 향해

호스텔을 나온 시각은 7시경. 밤새도록 세차게 퍼붓던 비는 조금 누그러져 가늘게 내리고 있었고 거리는 여전히 어두웠다. 사람들은 길을 막 떠나고 있었다. 저만치 보이는 거리는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가는 길을 쫒아가는데 마침, 주황색의 긴 비옷으로 전신을 두른 아가씨와 딱 부딪혔다. 한눈에 한국사람 같아서 "혹시, 한국분인가요?" 하고 말을 걸었더니, "예! 어머~ 반가워요, "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캄캄한 어두운 길이었는데 함께 걸을 수 있어 서로 좋았다.


그녀는 퇴사를 했고 새로운 직장에 입사하기 전에 시간이 있어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이 아가씨는 걷는 일이 좋다고 말하면서 너무나 잘 걸었다. 옆에서 헐떡거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어머~잘 걸으시네요”

솔직히, 그 속도를 맞추느라 내 나름대로 기를 얼마나 썼는지 모른다. 그녀는 확실히 20대와는 다른 내 나이를 보란 듯이 실감 나게 했다. 뭐, 그런 것 가지고 기죽을 나는 아니지. 저 나이땐 나도 뛰어다녔으니까!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부슬부슬 가을비처럼 내리는 비속으로 뿌옇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촉촉한 이른 아침을 길 위에서 맞이하는 그 느낌! 너무 좋았다. 여전히 온몸은 욱신거렸고 잠은 자질 못해 눈은 퀭하고 얼굴은 핼쑥했지만 그 아침의 싱그러움에 마음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길 위에는 오로지 순례자들 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도착한 작은 마을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그녀와 헤어지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는 주인장인 듯 할아버지 한분만이 들이닥친 순례자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서 음식을 주문받고 만들고 해야 했기에 주방에 들어가서는 한참만에 음식을 갖고 나왔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작은 콧수염에 약간은 치켜 올라간 짙은 눈썹은 익살스러우면서도 뭔지 카리스마가 있는 듯해 보였다.


주문과 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은근 재촉을 하자, 할아버지께선 당장 정색을 하셨다. “어~어 젊은 양반들! 왜 그러슈? 이렇게 고요한 시골길을 걸으면서. 순례자들의 마음이 그렇게 급해서야! 명상하듯 조용하고, 느리게, 오케이?!”라고 한마디 던지셨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한 톤이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얼굴을 보며 그만 빙그레 웃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유쾌한 충고처럼 순례자의 마음으로 느긋하게 기다려 차분한 아침식사를 했다. 그의 따끔한 한마디는 순례길을 걷는 내내 마음의 지표가 될 것 같았다.


순례자의 길은 그저 발자국을 따라 명상하듯 느리게 가는 것이었다.


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서.

걷기 시작하여 얼마 동안은 자갈이 있는 평평한 흙길을 걸었다. “ 오늘은 좀 쉬운 길이 되려나?”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치는 순례자들과도 “Buen Camino(good way-좋은 길)! 하며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었다. 후에 닥칠 무시무시한 산등성이를 예측하지 못한 채.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지나치는 마을은 순례자들의 말소리와 양손에 잡은 지팡이가 땅을 치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정말 사람들이 저 집들마다 살고 있기라도 한 걸까?"라고 생각될 만큼 적막했다.

일을 가느라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이도 없었다. 아기자기한 예쁜 집들의 창가에 매달린 꽃들은 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나오는 이도 볼 수 없었다.


어느 예쁜 집앞에서.


비 내리는 이 아침, 어떤 이는 침실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순례자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커튼이 드리워진 부엌 창을 살짝 여미며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아침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그들의 아침은 어쩜 매일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이런 마을에서 며칠간 묵고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나중에 은퇴 후 다시 걸으면서 시간에 매이지 않을 때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아쉬움을 남긴다. 아쉬움은 그리움 같은 것이기에.


마을을 지나고 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잠시 멈춰 서서 비 내리는 초록의 넓은 들을 바라보았다. 코끝에 스며드는 풀내음은 맑은 이슬 같았다. 얼굴을 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았다. "아, 얼마만인가! 이 비를 맞아본지가." 비를 맞는다는 것. 그냥 너무 좋았다.


비를 제대로 맞고 걸어본 것도 처음이다.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머리에 젖는 것이 싫어 조그만 부슬비에도 우산을 쓰야만 한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순례길에서 한 번쯤은 꼭 비를 만나고 싶었고 흠뻑 맞고 싶었다. 비 내리는 날이면 문득문득 내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어느 해 여름날이었을 거다. 장마비가 거세게 내리던 날이었다. 언니 둘과 나는 하나의 담벼락을 두고 나란히 있던 이웃집의 언니와 두 오빠들이 "야~놀자~"라고 부르는 소리에 뛰어갔다.

우리들은 장독대가 놓여있던 큰 마당 앞에 모여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한동안 넋놓고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두 오빠들이 윗옷을 벗어던지고 비속으로 뛰어 들어가 첨벙첨벙거리며 물놀이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우리들도 덩달아 비속으로 들어가 온몸이 젖은 채로 깔깔거리며 정신없이 놀았다. 비속에서 치러진 여름날의 멋진 향연이었다.


그 비는 온 집들을 쓸어버릴 듯이 무섭게 쏟아져 내렸지만 눈부시도록 하얀 장대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후로 내가 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20대에는 비 내리는 날이면 예쁜 우산을 쓰고 홀로 거리를 막 쏘다니기도 했고, 밤이면 창을 때리는 그 소리에 마냥 우수에 젖어 글을 끄적거리면서 비를 즐겼다. 지금의 나이에 내가 비를 즐기는 것이란 차를 몰고 나가 조용한 길을 드라이브한다든가(걸을 수 있는 길이면 걷겠다), 한적한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를 마시며 비 내리는 소리와 그 거리를 감상하는 일이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겠다.


인적 없는 조용한 시골길에서 만나는 비는 낯선 도시의 밤만큼 아름다웠다.

비내리는 마을을 바라보며.


숲길과 돌길

곧 울창한 숲길이 시작되었다. 숨을 헐떡이며 점점 가파른 산길을 오르게 되었다. 무지막지한 오르막길과 가파른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힘든 길을 계속 걸어야 했다. 더구나 비가 내리는 돌길의 내리막길은 미끄러질 위험이 있어 발에 잔뜩 힘을 주어야 했다. 그 길을 걸으면서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숲길이었다. 양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나뭇잎들 위로 뚜-두둑, 뚜-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비 내리는 숲길은 마치 맑은 아침의 정원을 걷는듯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돌길과 숲길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삶이란 이처럼 눈물 나게 힘겨움의 연속이지, 하지만 우리가 견디고 호흡할 수 있는 건 소망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숲길이 있었기에 그 힘든 돌길을 견디며 걸을 수 있었다.


울창한 숲길을 걸을 때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갈 때도, 내가 사람들을 앞서 갈 때도 있었다. 어떤 땐 한참 동안이나 홀로 숲 속을 걸을 때도 있었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조금은 겁도 났다. 앞. 뒤로 보이지 않는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걷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사람들은 등에 진 배낭의 무게를 견디며, 그 비를 맞고도 힘든 길을 잘도 걸어 나갔다. 모두들 앞을 향해 열심히 걸어갈 뿐, 느긋하게 숲길의 정취를 느끼며 쉬엄쉬엄 가는 이 가 없었다.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힘겨워 어서 빨리 저 길을 넘어 그 짐을 내려놓고 싶은 것처럼 그들은 걷고 있었다.

마치 마음에 품은 애절한 소원들이 저 길을 넘으면 이루어질 거란 열망을 가지고 걷고 있는 듯도 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어? 청승맞게 웬 눈물이람?" 하고 묻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막 흘러내렸다. 한동안 나에겐 눈물이 없었다.

언젠가 친구가 말 한적이 있다."현주야! (나의 본명) 가끔 눈물은 필요해"라고. 그 눈물을 위해 작정하고 슬픈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마구 흘린 적도 있었다.

난 이 눈물이 그냥 고마왔고 반가웠다.

순례길을 걸으며 제대로 눈물 좀 흘려봤으면 했기에. 비속을 걸으며 흘리는 눈물이란 꽤 괜찮은 일이었다.

걷는 내내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방수 재킷이었건만 서서히 비가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속에 입었던 셔츠까지 젖어들었고 신발 역시 물이 조금씩 스며들더니 나중에는 걸을 때마다 물이 배여 나왔다. 바지와 배낭만 무사했다.

“어? 이거 완전 방수 아니었나?” 재킷과 신발만은 신뢰할만한 제품이어서 완전한 방수가 되는 것으로 믿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제품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의 모습은 점점 물에 빠진 생쥐꼴로 변해가고 있었다. 순례길위에서는 그런 꼴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순례자들만 보이는 마을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주비리에 도착하기 1시간 전쯤부터 오른쪽 발 뒤꿈치가 땅에 닿을 때마다 통증이 시작되었다.

발을 조금씩 절룩거리며, 몇 시간씩이나 비에 젖은 몸을 덜덜 떨면서 주비리 마을로 들어섰다.

시간은 오후 1시를 알리고 있었다.


이처럼 순례길에서는 갑작스레 닥치는 인생의 역경처럼 준비가 덜 된 계획에 차질이 생겨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고 , 전혀 예감하지 못했던 일들에서 현실을 실감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4)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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