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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 Spirit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4)

별이 뜨는 들판을 향해

by Blue Moon

9월 8일 파리-바욘(Bayonne)-9월 9일 생장 피드 포드 (St. Jean Pied de Port) -오리손(Orisson)-론세스 바예스(Roncesvalles) -9월 10일 주비리(Zubiri)-9월 11일-9월 13일 주비리에서의 사흘 동안-9월 14일 팜플로나(Pamplona)-9월 15일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주비리에 도착

주비리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무렵에는 비가 그쳤다.

발의 통증은 점점 심해가고 있었고 비에 젖은 몸은 너무 추웠다. 어딘가 빨리 알베르게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만약 없으면? 다음 마을로 택시 타고 가는 수밖에. 일단 마음을 그렇게 정했다.


아침에 함께 출발했던 한국에서 온 아가씨는 “오늘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 수가 무지 많데요!”때문에 늦게 도착하면 알베르게를 구하기 힘들 것 같아 미리 예약을 했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도 별 생각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 생장에서 진작부터 받은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대한 정보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예약은 더더구나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는데 무슨 예약이람?, 그냥 닥치는 대로 하지 뭐"이런 식이었다.

순례길이란 걷다가 그저 발길 닿는 곳에 머무는 것이라는 생각이 컸기에.

주비리 마을 입구의 돌다리


아래로 잔잔한 시냇물이 흐르는 아치형의 예쁜 돌다리를 건너니 아기자기한 마을 모습이 드러났다.

" 이 마을 예쁘네!" 하고 발이 아픈 그 와중에서도 멈춰 서서 사진 한컷을 찍었다.


한쪽 발을 끌다시피 하며 외관이 벽돌로 되어있어 제법 깨끗하고 근사해 보이는 첫 번째 알베르게 문 앞에서 벨을 눌렀다. 얼굴만 쭉 내밀고 문을 연 주인장의 소리는 딱 한마디였다. "이미 다 찼어요!". 아픈 발을 딛고 서있는 나에게 그 소리는 무척이나 차갑게 들렸다.


Albergue Zaldiko-호스트 마리아를 만나다.

그럼, 다음 알베르게로! 거기에서 건너편으로 한 두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아주 작고 아담한 알베르게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이름도 특이하다. Albergue Zaldiko .

몇몇 사람이 잘곳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서 잘 수 있어요? 저, 보세요! 여기서 자야 될 것 같죠? "하며 나는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초라한 행색을 손으로 가리켰다. “방 좀 주셔야겠어요!”라는 생떼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알베르게-Zaldiko

여자인 호스트는 한쪽 발을 약간 절룩거리고, 몰골은 비에 젖어 파김치가 된 듯한 내 모습을 호기심과 연민 어린 눈으로 찬찬히 보았다. "음, 사실 방은 거의 다 찼어요!" 하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먼저 온 순례자들의 방 안내가 끝나고 그녀는 나에게 돌아와 침대 하나가 운 좋게 딱 하나 남게 되었다고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곳은 8개의 침대가 아래. 위로 배열이 되어있는 작은 방으로 남. 녀 혼숙의 호스텔 같은 곳이다. 위층인데 내 발이 불편하니 아래 침대를 쓰라고 했다. 원래 예약이 되어있던 사람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하면서 눈을 찡긋하며 아무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암요! 그렇게 하고 말고요”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자지 못했던 나로서는 생전 모르는 이들과 그것도 남자들이 있는 작은 룸 안에서 함께 하룻밤을 지내는 첫날이 되는 셈이었다. 샤워실과 화장실 모두 남. 녀 공용이다.


방은 작지만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아직까지는 그 방으로는 아무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빨리 샤워를 끝내야 했다. 통증이 심해진 한쪽 발바닥을 겨우 지탱하고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다시피 샤워를 끝내니 살 것 같았다!


비에 젖은 옷가지들은 모두 알베르게의 세탁기에 맡겼다. 가져온 옷이라곤 바셀로나 여행 시 입을 여벌의 셔츠 하나와 아래. 위로 딱 두벌의 옷뿐이었다. 세탁기로 옷이 거의 들어가 남은 옷이란 옷은 겹겹이 다 걸쳤다. 목에 빨간 스카프까지 두른 내 모습은 뭔지 어색하고 우스쾅스러운 옷차림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물에 완전히 젖은 신발이었는데 그것을 본 주인 여자가 신문지로 감촉같이 말릴 수 있는 비법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신문지 꾸러미를 한편에 가득 쌓아 놓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신문지를 하나씩 돌돌 말아 그것을 물에 흥건히 젖은 신발안으로 가득 채워놓고 수시로 갈아 주면 물기가 신문지에 배면서 내일 아침이면 신발이 마른다는 것이다. 놀라운 팁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까지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나에게는 이런 작은 일조차 신기한 일처럼 여겨졌다. 무언가 인생의 오묘한 지혜 하나를 습득한 것 마냥 흐뭇했다.

호스트 마리아는 어림잡아 50대 후반의 나이쯤으로 보였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무척이나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검은 눈동자의 강렬하면서도 예쁜 눈매가 내 눈을 끌었다. 정성 들여 한 듯한 메이크업은 잘 손질한 어깨 길이의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와 잘 어울렸다. 작은 키에 그 연령대의 살이 찐 스페인의 중년 부인에 비해 호리호리한 몸매의 아담한 체격이었다. 꽃무늬가 있는 은은한 칼라의 원피스 위로 여러 개의 화려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 그녀는 한눈에 봐도 꽤 멋을 내는 여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더분한 인상만큼 그녀는 늘 보아 온 사람처럼 다정하고 친근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냥 편안한 큰 언니 같다고 할까. 아뭏든 사람을 마냥 웃게 하는 그런 여인이었다.


약국을 물어보니 세 블록 정도 가야 되는 거리다. 아픈 발로 당장 거기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는건 포기했다. 오늘 밤 이대로 내버려 둔다고 "뭐 어떻게 되겠어?!" 웬일인지 이런 여유 있는 배짱이 생겼다.

발에 물집 사태를 막는 바셀린 등 온갖 약품들을 잔뜩 준비해왔지만 정작 이럴 때 필요한 진통제 한알도 내겐 없었다. "소화제는 챙기면서 진통제는 도대체 뭘 믿고 안 챙긴 걸까?" 발이 아파서 진통제 먹어본 경험이 없기에. 단순히 그런 이유 같다.


걸을 때마다 죽을 인상을 쓰는 나에게 마리아는 가지고 있던 진통제 한알을 주면서 "여기, 발 한번 올려 보세요!” 하더니 통증이 있는 오른발을 제법 전문가다운 손놀림으로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얼음찜질과 함께 효과가 있는 발 운동요법도 알려주었다. "발 통증이 금방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요, 내일은 걷지 않는 게 좋겠네요" 그냥 여기서 하루 쉬어보라고 마리아가 말했다. 나도 그럴 작정이었는데 마리아가 먼저 말해 주니 정말 고마웠다.


평소에 사람복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니 어쩐지 순례길에서는 많은 수호천사들이 곳곳에서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믿음까지 생겨났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을 잠시 만나 그들이 베푸는 인간적인 사랑과 관심이란 나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거리가 될 일들이었다. 순례 길위의 우정이 담긴 앨범이 만들어지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와인 한잔의 저녁

다리를 베개 위로 올린 채 누워서 음악을 들으면서 쉬고 있는 사이, 어느새 방에는 순례자들로 모두 들어찼다. 서로 인사를 하고 돌아보니 내 맞은편에는 스페인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재미있게도 남자와 여자를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배정이었다. 옆에 있던 수다스러운 아주머니 한분이 나를 향해 한마디 툭 던진다 "호호~ 오히려 남자들이 같이 있으니 든든해요~그렇죠?" 그 말에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아 금방 대답했다. "아~그건 그래요"

욱신거리는 발 때문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좀 찡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표정이 남자들을 좀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여겼나? 음.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내 사정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저녁 5시쯤이 되었다. 순례자들은 그새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는 저녁식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아가 식당을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 한쪽 발을 겨우 땅에 딛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알베르게에서 나와 건너편 건물의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니 하얀 벽돌로 된 아담한 식당 하나가 보였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보통 저녁식사는 8시쯤에 시작) 몇몇 사람들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마침 두 명의 여인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들이 무척 반가워했다. 혼자였지만 역시 함께 하는 식사였다.


저녁식사로 치킨요리와 와인 한잔을 시켰다. 와인이 먼저 나와 한 모금을 들이켠 순간, "와! 와인 맛있다!”라는 말이 금새 튀어나왔다. 간밤에 론세스바예스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그냥 들이켰던 맛과는 다른 것이었다. 시카고에서 맛본 그 어떤 와인보다도 훌륭한 맛이었다.


과하지 않는 향과 깔끔하고 신선하면서 시골의 정겨운 맛이랄까. 아무튼 눈이 번쩍 뜨일정도로 맛이 있어 또 한 모금을 벌컥 들이켰다. 와인의 강도에 얼굴이 금방 붉어지고 몸도 기분 좋게 따뜻해졌다. 발의 통증도 사라진 듯했다.


살짝 기분이 들뜬 듯 좋아져 옆의 언니들 (이렇게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해서)과도 수다를 막 떨었다. 내 발을 보더니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통증을 없애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등 진심으로 걱정을 해 주었다. 신이 나서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와인 한잔에 몸이 노곤해지면서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종소리가 울러 퍼지는 알베르게서의 첫날밤

재미있는 저녁 수다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내 방에는 몇몇 순례자들만이 책을 보거나 전화기를 들여다보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발은 아프지만 와인 한잔으로 기분은 좋았다. 그렇게 한동안 잠이 들었다. 꿈결같은 종소리에 잠이 깼다.


땡~땡~땡~하며 가까운 곳 어디선가 종소리가 아득한 추억처럼 들려왔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순례자들도 이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은은한 종소리는 알베르게의 허름한 침대에 누운 고독한 순례자의 하루를 위로하듯 시골 밤하늘에 울러 퍼지고 있었다. 그윽하고 고상한 슬픔처럼.


"내일은 저 종탑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지" 잠결에 내내 그 생각을 했다.


9월 11일-9월 13일: 주비리(Zubiri)에서의 사흘 동안

첫째 날:9월 11일

이른 아침부터 순례자들은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그 소리에 잠이 깼지만 어차피 나는 오늘 쉴 예정이라 눈을 감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복도에서 한참 동안 이런저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조용해졌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되어간다.


누워있을 때는 발의 통증이 별로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걸어보자!" 하고 일어나 발을 바닥에 딛는 순간 휘청거리며 오른쪽 발뒤꿈치에서 어제보다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사지와 얼음찜질에도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하루, 이틀 쉬어서 괜찮아질 것 같지가 않았고 예정대로 "Logrono"까지 걷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얼른 들었다. "여기까지 걷고 정말 떠나야 하나?" "바르셀로나에서의 여행 일정도 있는데.. 시카고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이런 생각들이 조바심처럼 밀려왔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발이 오늘은 아픈 발이 되었다. 그 발을 때릴 수도 없었다.어떻게든 잘 달래서 다시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발이 신체에서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간밤에 시카고에서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 조카, 레베카의 말이 생각났다.

“이모! 발 통증에는 무조건 쉬어야 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순례길은 아프면 쉬어가는 것 아냐?" 간호사라고 제법 신중한 충고를 했다.

"8일을 예정대로 다 걷고 말 거야!" 버리지 못할 욕심처럼 굳게 마음먹은 일들을 마음에서 편하게 내려놓아 버렸다. "그래, 아프면 쉬어 가는 거야"


순례길은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는 거야. 오늘 걷지 못하면 내일 걷고, 일정이란 게 없이 정처 없이 나그네처럼

길을 따라 걷는 거다. 먼 옛날 이 길을 걸었던 순례자들도 피로한 몸을 며칠이고 쉬어 갔을 거다. 우리 삶도 지치면 쉬어가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떠나오지 않았나. 괜찮다. 계획하던 대로 다 걷지 못한다 해도.

여기서 어떤 기쁨을 얻게 될지도 모르잖아?..


완전 거지꼴이 되다- 그 자유로움과 행복감

순례자들이 모두 떠난 자리는 잠시 썰렁했다. 작고 아담한 숙소라 혼자 남았어도 어색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오기까지 몇 시간 정도는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 마리아는 정오가 넘어서야 올 예정이고 청소하는 사람이 오기까지는 샤워실도 화장실도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세면대의 큰 거울도 모두 내 차지다.


먹을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나가야 했다. 몸이 약해지니 갑자기 먹고 싶은 것도 왜 그렇게 많은지. 보글보글 끓여 낸 된장찌개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은 물론이고 파스타까지.


아픈 발을 겨우 디디고 서서 대충 세수를 하고 천천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자고 일어난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었고, 어째 이틀 동안 아주 열심히 먹은 것 같은데 얼굴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핼쑥했다.


게다가, 누가 나에게 얼굴에 주름이 없다고 했던가!양쪽 눈가에는 평소에 숨어있던 주름이 도드라져 보였다. 내 눈가의 주름은 희한한 게 밤에 불빛 아래나 그늘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일단 피곤하면 인정사정없이 튀어나오고 밝은데서는 금방 눈에 띈다. 숨길려는 것이 아니라 장소나 낮. 밤에 따라 이 엄청난 잔주름이 들키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할 뿐이다. 그저 안 보일 때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평소에 그렇게 신경 쓰던 선 크림도 바르지 않았다. 모자 하나만 눌러썼다. 바지 하나로 순례용, 알베르게 실내용, 잠옷으로 했더니 후줄근하게 늘어나 있었다. 실내용 샌들(운동화보다 폭신해서 신었음)에다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내가 보아도 몰골이 많이 이상해 보였다. 샌들에다 양말, 그것 참 이상한 패션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리는 듯했다. 보이는 그대로가 마냥 편했다. 순례길의 매력이다.

순례자 지팡이에 아픈 발을 의지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시골의 아침 공기는 쌀쌀했다. 알베르게들은 텅 비고 순례자들이 떠난 적막한 거리에는 부드러운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9월의 하늘은 깊어진 가을처럼 높고 청명한 푸른색의 바다 같았다. 얼마나 예쁜 아침인지..


그 순간, 너무 편했다. 나의 민낯이, 헝클어진 머리가, 내 눈가의 주름이, 대충 걸쳐 입은 옷 모양새가, 이 여유가. 날아갈 것 같았다! 마치 공식대로 헤쳐나가야 했던 삶의 타래 속에서 벗어나 맛보는 자유와 행복감이었다.


알베르게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 "아침식사 됩니다"라고 한국말로도 적힌 문구를 보고 들어갔다.

여기저기 특색 있는 소품들로 제법 잘 꾸며져 있는 운치 있는 시골 카페였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주인아저씨

한분만이 이른 아침의 첫 손님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Hola (안녕)"

"어~어, 발 때문에 못 떠났네요"

"네, 여기서 좀 쉬라고 아픈 것 같네요" 말했더니 그는 씩 웃었다.

주비리 마을의 종탑

아침에 금방 구워나온듯한 신선한 빵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빵 한 조각으로 어림도 없어 종류별로 하나씩 맛보고 오렌지 주스도 큰 잔으로 한잔 더 마셨다. 주인장 아저씨 눈초리가 "아침에 이렇게 빵 많이 먹는 여자 처음 보네~ "하는 것 같았다. 창가에 앉으니 간 밤에 궁금했던 그 예쁜 종탑이 바로 눈 앞에 보였다. 파란 하늘과 고요한 거리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아침을 먹어보는 것, 얼마나 좋은지.. 계속 순례길을 걸었다면 이런 여유는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시카고에서는 매일 6시면 일어나 직장을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평소에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하는데도 어쨌든 뭐든 찍어 발라야 되고 옷장 앞에서 무엇을 입을까 잠깐 고민해야 된다. 커피만 달랑 들고 차를 타고 아침식사도 주로 차 안에서 해결한다(직장이 50분 정도의 거리라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카고에서의 나의 하루가 까마득히 먼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느껴졌다.


내 생애 가장 거짓 꼴로, 가장 여유 있고 우아한 아침식사를 했다.


약국 가는 길-옛날 것이 좋아.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으니 기운이 났고 살 만했다. 약국을 향해 지팡이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차가 다니는 길가로 나오니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과도 마주친다. 완전한 이방인이었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은 나에게 "올라"하며 약간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우습게도 오히려 내가 그 땅의 주민처럼 당당했다. 발을 절룩거리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나의 씩씩한 말투가. 아마 아침을 배불리 먹었던 이유였을 거다.


약국은 아픈 발로 가자니 꽤 먼 거리였던 건 확실하다. 예쁜 집들이 모여있는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녹십자가 건물 위에서 반짝거리며 대번에 약국임을 알려주었다. 어릴 때 동네 약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녹십자가 문득 정겨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스페인의 시골에서는 많은 것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 있었다.


난 이런 구식의 것들이 좋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앤틱 소품이나 장식품, 가구들이 좋다. 특히 영화, 그린북(Green Book)에서 주인공 토니가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셜리와 연주 여행 내내 미 전역을 끌고 다녔던 클래식 카 (classic car)는 열광적일 정도로 좋아한다.

미국에서는 멋진 클래식 카들이 가끔 판매되는 것을 구경할 수 있는데 칼라나 모양이 너무 독특하고 예쁜 차들이 많다.


크기도 대단하지만 기름이 많이 들고 유지비가 비싸, 주로 부유한 수집쟁이나 돈 많은 은퇴노인들이 이 차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유물 같은 이 차를 차고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가 햇빛 쨍쨍한 여름날에만 몰고 나온다. 무척 관리가 잘 된 번쩍번쩍 광이 나는 차를 보란 듯이 뽐내며 달린다. 부러움과 호기심 가득 어린 눈으로

쳐다보기라도 하면 더 으시대며 달린다. 특이한 건 클래식 카를 몰고 가는 사람은 모두 중년 아니면 노인의 남자들이다. 왜 할머니는 없는가? 한때는 그게 궁금한 적이 있었다. 워낙 자체가 거대한 몸집 같아서 할머니들이 꺼려하는지도 모르겠다. 후에 멋진 할머니가 되어 스카프 날리며 클래식 카를 운전하며 달려보는 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풍경이 있는 창가

클래식 카는 그렇다 치고 옛것을 찾아서 내가 즐겨하는 일이란,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앤틱 샵을 찾아 구경하기도 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다. 일단 앤틱 샵에 들어서면 진기한 물건을 발견한 듯 눈이 반짝 빛나고 막 가슴이 뛴다. 저렴하면서 괜찮은 물건들이 진짜 많다. 예쁜 소품들이나 작은 가구들은 주요 나의 구매 품목들이고 집 인테리어 하는 일은 나의 낙이며 취미이기도 하다.


유럽은 어디를 가도 앤틱 문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돌길과 담벼락, 여러 모양의 종탑들과 성당 , 고풍스러운 집들의 긴 창문이나 장식물, 카페나 레스토랑에 걸려있는 오래된 액자 등 다양한 고대문화와 예술, 이 모든 것이 내가 유럽을 동경하는 진짜 이유다.


앤틱 이야기에 너무 신이 났다. 아무튼 잠시 이런 상념에 젖어 있다 약국으로 들어섰다.

절룩거리는 내 발을 보고 여약사님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아이고~저런, 어떻게 된 거예요?”

내 발을 보더니 바르는 연고와 뒤꿈치를 보호해주는 밑창을 주었다. 진통제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네.

“약사님, 가장 좋은 처방법은 뭔가요?”

“무조건 쉬어야 돼요, 무조건이요!”


그래, 쉬는 거다 쉬자고.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5)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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