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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 Spirit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5)

별이 뜨는 들판을 향해

by Blue Moon

9월 8일 파리-바욘(Bayonne)-9월 9일 생장 피드 포드 (St. Jean Pied de Port) -오리손(Orisson)-론세스 바예스(Roncesvalles) -9월 10일 주비리(Zubiri)-9월 11일-9월 13일 주비리에서의 사흘 동안-9월 14일 팜플로나(Pamplona)-9월 15일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약국에서 돌아오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녀와 몇 마디를 나누고 내 침대로 돌아왔다. 순례자들이 몰려오기까지 몇 시간이 남아있다. 지난 이틀 동안 걷느라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없었는데 이렇게 여유가 생겼으니 걸어왔던 길을 회상하면서 글을 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그 느낌들을 한순간씩 떠올리면서 글을 쓴다는 건 지나온 길로 다시 되돌아 가는 느낌이랄까. 추억을 더듬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다 음악을 듣고 잠도 보충하면서 급할일이 전혀 없는 스페인 시골에서의 느긋한 정오를 맞이했다.


바깥 창을 내다보니 순례자들은 벌써부터 도착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알베르게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마리아가 도착해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첫 순례자들이 막 들이닥친 듯 웅성거렸다. 이제 고요했던 마을은 순례자들을 맞이하면서 활기찬 오후의 시작을 알린다.


마리아가 순례자들에게 방 안내가 끝나자, 나에게로 달려왔다. 아직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빈방에 있는 나를 향해

"지나! 괜찮아요?"

"아뇨~별로 나아지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며칠이 더 걸릴 것 같은데요.."

마리아는 내 발을 보더니 괜찮아질 때까지 여기에 있다가 자신 있게 걸을 수 있을 때 가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배려해주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껴안으며 "고마워, 마리아~"하고 애교를 부렸다. 마리아는 검고 매력적인 눈을 한번 찡긋하며 웃어주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파스타와 치즈가 곁들인 저녁

어느새 알베르게는 순례자들로 가득 들어찼다. 남아도는 침대 하나 없이.

나는 통증이 있는 다리를 베개 위에 올려놓은 채 줄곧 누워만 있었다. 마치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 느긋하게 피로를 풀고 있는 것처럼.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마을을 돌아보고 저녁식사를 위해 친구들을 만들어 나갔다. 내 방도 조용해졌다.

지팡이를 잡고 발을 절룩거리며 복도로 걸어 나가는데, 침대에 누워 있던 한 아줌마와 아가씨가 대뜸 걱정스러운 얼굴로 동시에 고개를 쭉 내밀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발이 안 좋아 보이네요"

"네, 발바닥이 아파서 쉬고 있어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함께 저녁식사로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하지 않는가! 나는 단연코"예스"였다. 움직이는 것이 힘든 나로서는 사양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두 사람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마켓에 가서 페네 파스타(penne pasta: 짧고 굵직한 튜브 모양의 파스타), 와인 한 병과 후식으로 오렌지를 사 왔다. 식사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더니 얼마 들지 않았다고 "오늘 저녁은 우리들이 사는 거야”라고 한다. 이래저래 고마웠다.


전자레인지와 간단한 부엌용품들만 구비하고 있는 알베르게서 초스피드로 파스타를 삶아내고 그 위에다 사 온 치즈가루를 뿌렸다.


프랑스에서 온 아주머니 “린”은 직접 가져온 햄을 잘게 썰어 파스타 위에 곁들였다. 별다른 파스타 소오스가 없이 치즈가루와 햄만으로 아주 맛있는 유럽식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워낙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는 먹으면서 공짜 저녁이라 그랬나? 아무튼 그 맛은 어느 파스타 못지않게 맛있었다. 거기에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프랑스산 치즈를 한입 베어 먹어보았다.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깊고 진한 우유의 맛이랄까. 그 맛 또한 정말 훌륭했다.


눈치도 없이 몇 조각을 연거푸 집어먹었더니 "와~잘 먹으니 좋아요" 하면서 남은 것도 마저 먹으라고 했다. 스페인 시골에서 먹는 소박하고 정겨운 식사로 파스타와 치즈, 와인은 환상적인 저녁 메뉴였다.


오드리 헵번처럼 파스타를 즐기다.

국수만큼 파스타는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즐겨 가는데, 그 이유는 유럽풍의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좋아서고, 무엇보다 파스타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다.


그중에서도 각종 해물이 들었거나 또는 치킨이 곁들여 나오는 스파게티는 내가 선호하는 파스타다. 거의 매번 같은 종류의 스파게티만 고집한다. 어떤 땐 막무가내로 다른 것을 시도해 보았다가 이상한 모양의 파스타가 나오기도 해서 그냥 무조건 스파게티로 밀고 나간다.


세기의 여배우였던 오드리 헵번도 “중독성일 정도로 파스타 광이었다”라는 기사를 어느 잡지에서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집에서도 늘 파스타를 먹었고 심지어 식당에 가서도 그녀를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다른 음식을 마다하고 굳이 파스타를 시켜 먹었을 정도란다.


그녀는 결혼을 하여 한 아이의 엄마로 살게 되면서 부자연스럽고 복잡한 요리법에서 벗어나 좀 더 단순하고 맛있는 요리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녀가 파스타를 열심히 만들고 또 먹기 시작한 이유다. 심지어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할 때도 "자, 여기가 내 집이고 난 이렇게 살아요, 나한테 다른 걸 기대하진 말아요"라며 그녀의 메인 요리인 파스타만을 대접했다.


파스타는 올리브 오일을 넣고 적절하게 요리를 해서 먹는다면 생각보다 살이 별로 찌지 않는다고 한다. 오드리 헵번이 매일 파스타를 먹었어도 그렇게 늘씬한 몸매를 유지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파스타 요리를 해 먹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들를 때마다 스파게티를 시켜먹는다. 오드리 헵번의 "중독적인 파스타 사랑"에 비할 것도 아니지만 무지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로마에 갔을 때는 거의 매 식사 때마다 파스타를 먹었을 정도다. 일단 유럽으로 날아가면 매일 먹는 한국 밥처럼 파스타 먹기를 탐한다.


정겨운 프랑스 아주머니 "린"과 예쁜 이탈리아 아가씨, "마리"는 오늘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오게 되었다고 한다. "린'은 순례길을 사랑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길을 걷게 되었고 "마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이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와인잔을 기울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골의 밤이 깊어진다. 사람들의 소리도 잠잠해지고 모두가 약속한 듯이 내일의 길을 위해 제각기 잠자리로 흩어진다. 매번 시각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온 마을에 물결치듯 울러 퍼진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마치 아득한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하다. 종소리는 언제 들어도 너무 좋다. 저런 종탑이 시카고에도 있었으면.. 지나가는 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별이 떨어지는 환상을 꿈꾼다.


둘째 날: 9월 12일

순례자들의 하루

대개 아침 6시면 알베르게의 기상이 시작된다.

시계 알람이 울리듯 누군가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배낭과 소지품을 모조리 복도로 들고나간다. 거기는 이제 막 순례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때쯤이면 나도 잠이 깨어 멀치감치서 그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느끼고 듣는다. 적어도 8시 전에는 모두가 알베르게를 떠난다.


일찍부터 걷기 때문에 그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시간적 여유가 많다. 어떤 이들은 낮잠을 자기도 하고, 조용히 침대에 앉아 일기를 쓰는 사람, 또 어떤 이들은 마을을 돌아보기도 한다. 카페에 모여 앉아 낯선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길 친구가 되어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순례길에 쌓인 여독을 푼다. 일찍 걷고 빨리 도착해서 느긋하게 오후 시간을 즐기는 것이 순례길의 문화가 된 것 같다.


순례자들의 하루는 동이 터기 전 이른 아침부터 새벽 묵상처럼 조용히 시작된다.


시골 아침 향기 속에서

순례자들이 모두 떠난 이 작은 마을은 다시 고요에 빠진다. 어제처럼 마을로 들어설 순례자들을 기다리며.

홀로 남은 알베르게에서도, 문을 열고 거리를 나서는 순간에도 느껴지는 그 적막한 슬픔이 나는 왠지 좋았다.


시골에서의 아침은 초가을처럼 매번 싸늘하고 추웠지만 마치 이슬이 뚝, 뚝 떨어져 내리는듯한 청량한 아침 같았다. 맑은 공기와 하늘을 본다는 것, 축복 같은 일이다.


여전히 발 통증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악화되지도 않았다. 아침 식사를 위해 어제와 같은 카페로 들어갔다. 어제보다는 여유 있게, 동네의 단골손님처럼 주인장과도 눈짓으로 반가운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어? 오늘도 못 갔네요"

"네, 그냥 잘 쉬고 있어요~"

커피와 크로샹으로 아침을 먹고 주인장이 괜찮다고 해서 그대로 1시간 이상을 앉아 있었다. 텅 빈 듯이 조용한 카페 안은 완전 내 차지였다.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글을 끄적여 보았다. 이런 여유가 사치스러울 정도로 행복했다. "오래전 순례자들은 지쳐서 쉬어갈 때 무엇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긴 아침식사와 여유를 즐긴 다음 “마켓에 들러볼까”하는 생각으로 카페 맞은편에 있는 마켓으로 들어갔다. 몇몇 주민들이 와서 장을 보고 있었는데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이곳에서는 누군가를 볼 수 있다는 건 꽤 반가운 일이다. 간식거리로 사과와 유난히 달고 신선하기로 유명하다는 스페인의 오렌지를 몇 개 샀다.

이리저리 마켓 안을 둘러보느라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동네 여인들이 주인과 물건을 놓고 흥정하는 모습도 정겨웠고, 세밀하게 장을 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알베르게의 호스트처럼

아침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마켓에 들렀다가 동네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마리아가 예정보다 좀 더 일찍 도착했다. 오늘 하루의 시작이다. 내 발의 상태를 보더니 혹시 걸을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며 친절하게도 발에다 압박 붕대를 돌돌 감아준다.


그냥 지나칠 인연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순례자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그냥 시골 여관집 주인이 아니다.

다시 순례길을 걷게 될 때 일부러라도 여기를 방문해서 그녀를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나의 순례길에서의 친정 같은 곳이랄까. Zaldiko Albergue는 그만큼 편안한 곳이 되었다.

Zaldiko Albergue의 흔적들


그녀와 수다를 떨다 보니 순례자들이 막 들이닥치길 시작했다. 침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늘의 순례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마리아 옆에서 그들을 향해 “어서들 오세요! 주비리 오는 길 힘들었죠?” 하고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웬 동양 여자가 인사를 하니, “어? 이 여자는 뭐지?”하는 얼굴이었지만 금방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도 구경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침대에 조용히 앉아있었던 어제보다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호스트 노릇이 훨씬 신나고 재미있었다.


그런 틈에 한국 말소리가 나서 보니, 막 들어선 60대로 보이는 한인 부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들은 상당히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는데 (마치, 잘 곳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표정이었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한국분이세요? 혹시 여기서 일하세요?" (아까부터 마리아 옆에서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언뜻 그렇게 생각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뇨, 발이 아파서 못 걷고 쉬고 있는 중이에요" 했더니,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드니 도와 달라고 했다.


모든 침대는 그들에게 차례가 오기 전에 꽉 찼다. 그 부부는 내가 있는 곳에 꼭 묵었으면 했다. 마리아에게 혹시 다른 방이 있나 하고 물었더니, 세 사람이 잘 수 있는 아파트가 가까이 있는데 렌트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격도 비싸다.


마침 옆에는 이들과 길에서 만나 함께 걸었던 타이완 아주머니 한분이 있었는데, 세 사람이 함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그들은 도움을 받아 고맙고, 한국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갑다고 연신 즐거워하셨다. 아주머니는 "혹시 이따 저희 셋이랑 저녁식사 같이 할래요?" 하고 물어왔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파트까지 세 사람을 안내해주고 온 마리아가 농담조로 "지나! 호스트 노릇 잘하네, 알베르게 호스트 해 볼래요? "대뜸 그 말에 마음이 확 끌렸다. "그럴까요? 은퇴하면 알베르게 나한테 넘겨요~"라고 나도 한마디 던졌다.


마리아는 이 알베르게를 15년 전에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 당시에 딸과 아들이 조그만 꼬마들이었는데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모두들 독립했다. 잠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알베르게에는 그녀의 삶과 추억이 묻어있었다. 바깥에 놓여있던 의자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빼어물고 하늘을 한 순간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을 창 너머로 보았다. 세월의 덧없음과 아픈 상흔의 그림자들이 그녀와 함께 지내온 알베르게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듯했다.


마리아의 장난스러운 조언처럼 후에 스페인 시골로 들어와 누구처럼 눌러앉아 알베르게나 운영할까?

낮에는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호스트로, 은은한 종소리가 고운 선율처럼 울리는 밤이면 하늘이 환히 보이는 큰 창가에 앉아 별을 보며, 때로는 빗소리를 들으며 순례자들에 대한 스토리를 쓰는 작가로 사는 것, 어떨까?.


순레자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고독한 가을과 깊은 겨울이 오면, 먼곳에서는 나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찾아들고, 나는 웃으며 그들을 위해 따뜻한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쁠거야. 느긋한 저녁식사가 끝나면 맛있는 차를 마시며 밤새도록 옛이야기에 젖어 잠 못 이루는 긴 밤을 보내겠지.. 시골 밤의 차디찬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 본다는 것, 가슴이 설렌다. 상상은 무한하고 자유롭고, 행복함을 준다.

상상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에. 난 언제나 상상하는 일이 좋다.


고향 친구처럼-한국인 부부와 타이완 아주머니

알베르게서 묵은 이틀 만에 한국사람을 처음으로 만났다.

5시에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해서 한국인 부부와 타이완 아주머니가 알베르게로 오셨다.

첫날부터 저녁식사 때면 단골처럼 갔던 식당으로 안내를 했다. 오늘은 왠지 많은 순례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시원한 맥주와 와인으로 무언지 한창 즐거운 대화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누군가 함께하는 저녁식사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거리가 될 일들이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그들의 문화와 삶은 순례길에서 꼭 챙겨야 할 물건과도 같이 소중한 시간들이기에.


한국에서 온 부부는 60대라 하기엔 너무 젊고, 패기가 넘쳐 보였다. 아주머니는 식당에 앉자마자 그 분위기에 무척 신이 나셨다.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자 "야~너무 좋은데요, 그놈의 영어만 빼고는 걷는 길이 무척 아름답고 재미도 있어요!" 하며 흥분조로 말씀하신다.


아저씨는 막 은퇴를 하셔서 순례길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맥주를 연거푸 두 잔을 마시며 기분 내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는 타이완 아주머니는 영어를 곧 잘했고 차분한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특이하게 긴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예쁜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는데 참 잘 어울렸다. 그녀 역시 남편이 순례길이 싫다고 해서 "걷기 싫으면 관둬요!" 하고 혼자 떠나왔다고 했다.


두 분은 서로 번갈아 아저씨가 공무원으로 은퇴한 이야기부터 생활의 소소한 간증 거리들을 쏟아내셨다. 저녁식사를 하는 내내 맥주에 이어 와인까지 마시며 무척 즐거워하셨다. 그 모습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다정한 이웃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이 잘 통하는 유쾌한 저녁식사였다.


세 사람은 마을을 더 배회하기로 했고, 발 통증 때문에 나는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주비리 마을에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있었다. 어김없이 시골 저녁에 울러 퍼지는 종소리가 내 귓전을 울리며 다가왔다.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6)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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