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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 Spirit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8)

별이 뜨는 들판을 향해

by Blue Moon

9월 8일 파리-바욘(Bayonne)-9월 9일 생장 피드 포드 (St. Jean Pied de Port) -오리손(Orisson)-론세스 바예스(Roncesvalles) -9월 10일 주비리(Zubiri)-9월 11일-9월 13일 주비리에서의 사흘 동안-9월 14일 팜플로나(Pamplona)-9월 15일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9월 15일: 팜플로나 (Pamplona)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23km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통로 쪽으로 켜있는 불빛을 따라 나가 짐을 챙겼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위해

2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올라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간밤에 삶아 놓은 계란 2개와 요구르트 1개와 사과 하나를 먹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자매처럼 보이는 아줌마들이 빙긋 웃으면서 한마디 던진다. "와~ 아침식사로 찐계란을 먹는 것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하며 계란 껍데기를 까서 먹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찐 계란 2개를 먹었더니 밥 한 그릇을 먹은 듯이 포만감이 느껴졌다. 순례길에서는 찐계란을 식사대용으로 챙겨서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의 통증을 완화시켜줄 600mg의 강력한 아이 프로핀을 한알 꿀컥 삼키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골목길을 빠져나가면서 만난 건물


순례길에선 낯선 사람이 길동무가 된다

아직도 어두컴컴한 길이다. 마침 알베르게 앞에서 어제 아침 일찍 출발하면서 만난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것이다. 골목길 여기저기서 순례자들이 걸어 나온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같은 길을 따라 걷는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만 서먹할 것도 없이 그냥 길동무가 된다. 순례길 위에서는 애써 시간을 들이지 않고 누구든지 쉽게 친구가 된다. 특히 나처럼 까칠하고 겁쟁이인 사람에겐 순례길은 왠지 마음을 열게 한다. 무서울 일이 별로 없다. 홀로 가지만 같이 한 길을 걷는다.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노부부의 부인은 꽤 멋진 나무 막대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걷다가 우연히 길에서 주워 지팡이로 사용하고 있는데 튼튼해서 너무 좋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마치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처럼 지성적인 이미지에다 과묵한 유럽 신사처럼 조용했다. 반면 그녀는 다소 완고해 보이고 할머니라고 하기엔 패기도 있어 보이면서 굉장히 활발해 보였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목쯤 되었을까. 어떤 공터를 지날 때였다. 부랑자라고 하기엔 조금은 무리가 있지만 젊은 남자들이 시시덕거리며 우리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이른 아침에 무엇을 하느라 거기에 모여들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때다! 하고 할머니는 자신의 튼튼한 나무 지팡이를 들어 보이며 한마디 한다.


“아씨들! 모두들 지팡이 가졌죠?" 우리 손에 지팡이가 있는 한 , 저런 부랑자들은 문제없다고 대단히 자신 있게 소리친다. 지팡이는 우리 몸을 의지하고 가는 동시에 무기도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여전사처럼 씩씩한 할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라고. 혼자 걷는 순례길이라도 걱정 없다. 순례길에선 낯선 사람들이 힘이 되고 길동무가 된다.


순례길의 짐

마을을 거의 벗어나니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앞에는 굽이 굽이진 산등성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입구에는 마치 "자, 언덕길을 오르기 전 잠시 쉬어가죠~" 하는 느낌으로 순례자들의 발을 들이게 만드는 예쁜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면 한동안 마을이 없다. 노부부와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아침을 먹고 잠시 쉬어간다고 했다. 아침을 미리 챙겨 먹은 나는 비옷을 걸치고 계속 걸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배낭을 메고 순례길을 걸을 작정이었다. 발의 통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비리를 떠나면서 배낭을 보냈다. 사실 거의 7kg이나 되는 배낭은 굉장히 부담되는 큰 짐이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배낭 없이 걷는다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 매달린 사과를 쉽게 따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서운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두고 온 것처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큰 배낭을 보내고 작은 배낭만 메고서 걸었다. 나처럼 발이 불편해서 또는 그냥 무거운 배낭이 힘겨워서다. 순례길은 반드시 배낭을 메고 걸어야 된다는 억지는 없다. 힘겨운 길에서 배낭은 떨쳐버리고 싶을 정도로 짐이 된다.


그 안에는 손쉽게 버릴 수 없는 순례길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수품이 있다. 짐이지만 이래저래 애착이 가니 어쩔 수 없이 매고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한편으론 배낭을 보내 놓고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도 되었다.


순례길과 배낭은 마치 인생과 우리가 쉽게 놓을 수 없는 어떤 운명과도 같은 관계 같다. 소중한 물품들이 가득들은 무거운 배낭을 지고 그렇게 힘든 길을 걷는다. 인생길도 피할 수 없는 것들과 함께 가야만 하는 날들이 있는 것처럼.

배낭을 지고 힘든 길을 걷는 사람들/ 순례길의 이정표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 The mount of Forgiveness)-바람과 별이 만나는 곳

높은 산등성이를 넘고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지났다. 햇빛이 쨍쨍한 돌길을 걸어 숨을 헐떡이며 가까스로 용서의 언덕에 올랐다. 용서의 언덕에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땀에 찌들어 지친 사람들을 대환영하듯 맞아주었다. “수고하셨어요”라고 마치 바람의 여신이 속삭이는 듯했다. 그늘 하나 없는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많은 순례자들이 지친 몸을 뉘어 쉬고 있었다. 이 언덕 위에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는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이동식 푸드 차량 한 대가 간식과 시원한 음료를 팔고 있었다. 차가 올라올 것 같지 않은 이 언덕까지 와서 장사를 하고 있다. 아무튼 잘 된다. 걷다 보면 순례자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비록 장사꾼이지만 지치고 힘든 길에서는 순례자들에겐 반가운 사람들이다.

Alto del pedron-용서의 언덕


용서의 언덕의 상징적인 조형물은 높은 언덕 위,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지평 선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살짝 가린 환상적인 구름 아래에서의 모습은 한 폭의 멋진 그림 같았다.


별을 상징하듯 그위로 매달린 하얀 조각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순례자들의 행렬은 별을 따라 걷는 모습처럼 아름다웠다.


철제 조형물은 오래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순례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996년 Artist-Vincente Galbete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Santiago de Camino를 상징하는 하나의 멋진 조형물로 이 언덕 위를 빛내고 있다.


12명의 순례행렬을 전시하고 있는 조형물은 각기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조형물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Jean Mitchell-Lanham The Lore of the Camino de Santiago(카미노에 얽힌 설화))라는 책은 용서의 언덕 위에 세워진 철제 조형물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고있다.


Gerrit's Camino의 사진 -12명의 행렬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

용서의 언덕 위의 철제 조형물에서 전시되고 있는 행렬은 초기 중세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순례자들과 순례에 대한 다양한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12명의 순례자들 중, 첫 번째 (맨 왼쪽) 순례자는 부지런히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이때부터 초기 순례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뒤로는 세명의 순례자들의 행렬이다. 첫 번째 행렬의 한 사람의 순례자에서 갑자기 세명의 순례자들이 늘어났다. 이것은 카미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순례자들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세명의 뒤를 따르고 있는 다음 그룹들은 말을 타고 있는 상인들과 무역상들이다. 순례자들에게 행상을 하는 중세시대의 상인들의 모습을 또한 이 행렬 속에서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순례자들의 행렬과는 왠지 동떨어져 보이는 소외된듯한 한 사람이다. 14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인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순례길을 걷지 못하도록 제지당했다. 이 형상은 그런 사람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일 마지막(맨 오른쪽) 행렬은 언뜻 보기에 실용적인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멘 현대적인 스타일을 갖춘 2명의 순례자들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순례길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워진 관심과 누구나 걷고 싶은 길로 주목받기 시작했음을 그리고 있다.

The Lore of the Camino de Santiago,

by Jean Mitchell-Lanham 원문 일부 .

번역:블루문


조형물의 중앙에 있는 말위에 새겨진 글이 있다. 마치 아름다운 시의 한 구절 같다.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내 식으로 옮겨보았다.


Dond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de las estrellas

Where the path of the wind crosses the path of the stars-바람이 지나는 길과 별의 길이 만나는 곳


용서의 언덕과 이 글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용서에 언덕에 오르는 것은 고행처럼 힘겨운 일이었다. 그 힘겨움을 깨닫는 순간, 마침내 언덕에 올라섰다.


형량 할 수 없는 서늘한 바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바람은 고행 뒤에 오는 환희와 기쁨 같은 것이었다. 용서의 언덕에 오르는 사람들의 느낌은 제각기 다를 것 같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며 상상이다. 용서의 언덕에 새겨진 바람과 별에 대한.


고행길의 끝인 이 언덕 위에 올라서면, 어깨에 걸려있던 인생의 먼지(힘겨움)들은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가슴을 에워싸고 있던 몇 겹의 상처들도 흔적 없이 소멸한다. 다시 바람이 슬며시 다가와 다독거리듯 마음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어느새 별은 머리 위에서 반짝이며 소망을 선사한다. 바람은 고뇌를 떠나게 하고 별은 희망을 주는 것.


이것이 용서의 언덕이 말하는 바람과 별의 의미가 아닐까. 나는 알 수 없는 신비한 바람에 가슴을 열고, 이 언덕 위에서 반짝이는 별을 품었다. 마치 새로운 꿈들이 나에게 다가선 것처럼.

용서의 언덕은 바람과 별이 만나는 곳이다.


기념으로 사진 한장은 남겨야겠기에 셀카를 찍겠다고 이리저리 사진기를 맞추느라 애썼다. 제대로 찍히는 사진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섰다. 가까스로 사진 한장은 남겼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자갈길의 효능을 알게 되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경사진 돌길(자갈길)을 한참이나 내려가야 했다. 그 길이 힘들었지만 신기하게도 자갈길을 밟고 가는 동안은 발에 통증이 전혀 없었다. 반들반들한 돌이 발바닥의 통증을 완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러다 맨 땅에 발을 디디면 이놈의 통증이 다시 살아났다.


처음에는 자갈길만 나오면 겁을 먹고 무시무시하다고만 여겼다. 이제 자갈길의 대단한 마사지 효과를 알게 된 후로는 길에서 만나면 반가울 정도다. 발바닥 통증에는 자갈길이 최고다!


피할 곳 하나 없는 퇴약빛속에서 여러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 드디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Puente la Reina로 가는길의 풍경들


Taipei (타이페이)에서 온 아가씨- Hunglin을 만나다.

알베르게는 공립이라 단 5 유로에 그것도 내가 원하는 곳에 침대를 정할 수 있었다. 시설도 양호하고, 깨끗했다.

굳이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시간을 들여 알베르게를 예약할 필요도 없다. 물어서 이름 하나만 가지고 와도 대만족이다. 침대가 있는 이층 창문을 활짝 열었다. 잘 정돈된 뒤뜰이 보였다.


이미 몇 명의 순례자들이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무언가를 열심히 노트에 적고 있었다. 창문 높이까지 뻗은 초록의 무성한 나뭇잎들의 향내가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러웠다.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는 여유로운 오후의 평화였다. 잠시 창가에 앉아 운치 있는 뒤뜰을 내려다보는 즐거움에 빠졌다.


보내온 배낭을 풀고 짐 정리가 끝난 후 아래로 내려갔다. 문 입구에는 이제 막 도착한 순례자들로 붐볐다. 그 사이로 동양인이지만 한국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한 아가씨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녀는 “하루 묵을 침대가 있나?”하는 얼굴로 입구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침대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라고 말했더니 냉큼 들어왔다. 오는 대로 침대를 정할 수 있어 마침 아직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내 옆의 침대로 안내했다.


그녀는 타이페이에서 왔다며 Hunglin이라고 소개했다. 작은 키에 여자로선 제법 단단한 체격을 가졌다. 검은 단발머리에 큰 눈이 유독 선량한 이미지를 주는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인상이 참 좋았다.


20대 초반에 들어가 29살의 나이가 되도록 일한 회사에 실망해 하루아침에 사표를 던지고 순례길을 떠나왔다고 한다. 7년간 일한 회사가 월급을 올린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에 대한 배신감만 든다고 했다. 이 말끝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직장 내의 불평등과 불합리적인 일이 그 나라에서도 흔한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직장에서 연봉에 대한 리뷰 (Review-월급 인상을 위한 재평가)를 하는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직장이든 반드시 처음부터 연봉협상을 하고 일을 시작할 것과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월급 인상에도 적극적으로 큰소리 내라고 조언해주었다. Hunglin의 얼굴이 밝아졌다.


힘들었던 나의 20대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선뜻 Hunglin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좀 쉬다가 그녀와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갔다. 사람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한산한 마을의 골목길을 걸었다. 일요일인데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걸까?.. 마음에 드는 식당을 겨우 찾아들어갔다. 손님이라고는 순례자들뿐이다.


그녀는 재치 있게 맛있는 요리를 고르더니 나에게도 권해주었다. 주문한 생선과 치킨요리는 양도 푸짐하고 꽤 맛있었다. 시원한 맥주가 더해진 저녁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휴가라도 월급을 받으니, 내가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Honglin은 약간은 어색해하며 놀라는 눈초리다. 주비리에서 프랑스 아줌마에게 공짜로 파스타를 얻어먹었던 것을 이렇게 갚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마을을 조금 돌아보고 마켓에 들르겠다고 했다. 나는 발이 편치 않아 알베르게로 먼저 돌아왔다.


Puente la Reina에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언제나 저녁 무렵의 이 고즈넉한 느낌이 너무 좋다.


Puente la Reina- 종탑/ 알베르게 (오른쪽)


마술처럼 초콜릿 맛에 빠져들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문득 단것이 당겼다. 주로 식사 후 간식을 하지 않는 나는 웬일이람, 단 초콜릿이 생각난다니.. 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팜플로나의 알베르게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건네준 초콜릿이 갑자기 생각났다. 일명 슬로베니아의 초콜릿이다.


예쁜 포장지에 큰 알사탕 크기만 한 초콜릿 하나를 뜯어 슬며시 깨물었다. 옅은 브라운색의 초콜릿 안에는 땅콩 같은 넛(Nuts:견과류)이 들어있었다. 지나치게 달지 않으면서 우유의 풍미가 가미된 듯,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그 단맛이란 내가 이때껏 먹어본 초콜릿 중의 최고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슬로베니아 초콜릿 맛이 그렇게 유명하단다)


그 맛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좀 무리다. 아무튼 절제된 단맛의 이 초콜릿은 여인으로 비교하자면 질리지 않는 우아한 멋을 가진 사람이 될 것 같다. 현악기로 말하자면 분위기 있는 저음의 첼로 같은 느낌이랄까. 자꾸 먹고 싶어 지는 맛의 초콜릿임은 분명하다.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먹어버렸다. 할아버지가 봉지째 주던 것을 몽땅 챙기지 않았던 것을 무척 후회했다. 이 맛난 초콜릿을 찾으러 슬로베니아를 꼭 여행해야 할 것 같다. 세 개의 초콜릿을 먹고 눈이 확 뜨질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맛난 것을 먹은 아이처럼 비실비실 웃음도 나왔다. 피로도 사라지는 듯했다. 아무튼 행복했다.


어떤 마술에 걸리듯 그만 초콜릿 맛에 빠져들었다.


미국 사람들은 초콜릿을 무척 좋아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평소에 그다지 초콜릿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어쩌다 주위에서 먹는 사람 따라 한 개로 맛보는 정도다.


지난번 글에 오드리 헵번이 파스타를 즐겨 먹었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파스타 외에 그녀의 일상생활에서 빠지지 않고 즐겨먹은 간식거리가 초콜릿이다. 그녀는 항상 식사 후 손수 구운 달달한 초콜릿을 먹었다고 한다. 슬픈 감정이 몰아칠 때도 언제나 초콜릿을 먹었다. 그 단맛이 슬픔을 잠시 잊게 한다고.


나에게도 초콜릿은 (드문 간식거리지만)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꼭 챙겨 먹는 맛나같은 것이 될 것 같다. 단 한 개의 초콜릿으로 사소한 힘겨움도, 슬픈 우울에서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그러는 사이 Hunglin 이 마켓에서 잔뜩 먹을 간식거리를 사 왔다. 저녁을 얻어먹었다고 나에게도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준다. 초콜릿도 있었다!


초콜릿은 이런 것이다. 마음을 열게 하고 차가운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되고, 모락모락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는듯한..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여기쯤에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초콜릿(Chocolate)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쥴리엣 비노쉬와 쟈니 뎁 주연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본 영화 중의 하나다.


눈보라 치는 아주 추운 겨울날, 주인공인 Vianne는 어린 딸과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로 이주하게 된다. 독특한 맛의 초콜릿을 만드는 솜씨를 가진 그녀는 집 아래층에 초콜릿 가게를 오픈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오래된 관습에 마음이 굳어진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만든 초콜릿 맛에 물들기 시작한다. 초콜릿 맛 하나로 마을 전체가 변하고 딱딱하고 냉담한 사람들이 정감 있게 바뀐다는 줄거리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7일간의 순례길은 마치 달콤한 초콜릿 맛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달달함에 취해 힘겨움도 잊었다. 먼저 미소를 짓고, 손을 내밀고 , 말을 걸기도 하면서 좀 더 여유 있는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순례길은 마치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고행과 동시에 즐거움을 만나는 길이다. 달콤 쌉싸름한(bittersweet) 맛의 초콜릿 같은 사랑이 있는 길,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순례길이었다.


알베르게 앞의 종탑에서 어느 때처럼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내일을 위한 종소리다.




순례 여행기를 마치며.


아침 일찍 떠나는 Honglin과는 서로 인스타그램을 공유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처럼 카미노에서는 만남과 이별 연습의 연속이다. 나에게 다가온 운명처럼 단 한 번의 만남이고 이별이다.


발의 통증으로 잠시 여기서 순례길을 접는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기까지 나의 순례길은 계속된다. 마지막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버스를 타고 Logrono에 있는 알베르게서 하룻밤을 묵고 여행 일정에 따라 바르셀로나로 갔다. 발이 불편했지만 미리 예약된 여행 일정을 취소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귀띔해 준 데로 한국 여행 가이드를 통해 신청한 가우디 투어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관람 등, 바르셀로나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 두 가지 명소만은 놓치지 않았다.


9월 중순의 바르셀로나는 한낮에는 초여름처럼 더웠다. 거리는 물밀듯 밀려드는 사람들로 붐볐다. 너무 혼잡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시골뜨기가 도시에 상경해 모든 것에 어리둥절한 느낌, 딱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대도시형 인간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이 더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홀로 바르셀로나에서 3일간을 지내면서 그간 쌓였던 잠도 실컷 자고 피로도 풀었다. 순례 여행기도 끄적거리면서. 버스를 타고 유명하다는 La Rambla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다 Boqueria 시장도 구경했다.


바르셀로나의 느낌은 밝고, 활기찼고 모든 게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 방문기는 후에 이 도시를 제대로 여행한 후에 쓰기로 한다.


내 인생 처음으로 홀로 떠난 길, 순례길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혹 이 글을 읽는 누군가 홀로 떠나는 일이 망설여진다면,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떠나세요! 그러면 그 답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순례길"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yrenees 피레네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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