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무급휴직 -가난한 여유 부리기

집에서 떠나는 나만의 마음 여행

by Blue Moon

지난주 회사로부터 무급휴직 이메일을 받았다.


코로나가 이탈리아를 강타하고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것을 본 지 10여 일이 지났다. 지금 코로나는 미대륙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그 여파로 약국, 마켓처럼 어센셜(essential:생활에 필수적인)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회사는 주지사의 방침대로 셧다운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다시 오픈할지 미지수다. 수백만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비누와 헤어제품인 샴푸 등을 제조. 판매하는 우리 회사는 어센셜(essential)에 해당하지만 오더 물량이 대폭 줄었다. 더구나 유럽에서 대부분이 들어오는 인터네이셔널 오더도 거의 정지되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2주간 격일제로 재택근무를 해왔다. 더 나을 기미는커녕, 미국 내 코로나 위험수위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며칠째 사장님의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회사는 임시로 직원 감소를 단행했다. 지난주부터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오피스 직원들에게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무급휴직을 통보했다. 5월 초까지다. 무직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다. 각 부서의 매니저와 회사 운영에 필요한 몇 사람들만 그룹을 만들어 당분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바이러스라는 질병으로 언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보장이 안된 무급휴직은 또 난생처음이다. 1930년대 미국을 덮쳤던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의 어두움이 사회와 직장, 가정에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당분간 무급 휴직이야!" 하고 선언하듯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지금쯤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 예감한 얼굴이다. 정부에서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보조금(stimulus money)과 실업수당을 신청해서 그것으로 알뜰살뜰 꾸려나가야 한다. 주택 융자금(mortgage)과 각종 공과금(utility bills)들도 한 달간 연체가 가능할 수 있는 등 회사마다 여러 옵션들이 주어지고 있다.


아무튼 월급 없이 집콕만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미국에서 직장생활도 20년이 넘는다. 아주 오래전 은행을 그만두고 3개월 쉰 게 가장 큰 휴가였다. 그 이후로 10년을 넘게 달려왔다.


"한 달간 쉬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소원처럼 생각한 적이 많다. 남편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휴가가 생겼으니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뭐, 어떻게 되겠지!"라는 믿음으로 가난한 여유 부리 기를 제대로 하기로 작정했다.


이런 오기 아닌 배짱은 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것이다. 30대 중반쯤 은행을 그만두고 3개월을 쉴 무렵에는 마음 편히 지내질 못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잘 지나갔다. 버텨보기전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죽을 정도의 위기가 아니라면 그냥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면 된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 세계의 사람들 모두가 전쟁 중인 전사들이다. 누구나 어려운 시기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전우애처럼 서로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한 동지 같다. 이런 일이 닥친 건 끔찍하지만, 함께 나누는 공감과 격려가 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매일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와 확진자에 대한 통계를 주시하고 있다. 사실,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그 숫자를 확인하는 것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어느 날부터 굳이 통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들, 그 전투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을 생각한다. 여기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고맙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나의 자리에서 "가난한 여유 부리기"를 제대로 하는 일이 아닐까.


시간이 생겼지만 어디라도 갈 수 없다. 집에서 잘 놀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집에 머물며 나만의 마음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집 앞에 개나리가 활짝 피고 나무에는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기온이 올랐다가 눈이 내리는 등 날씨는 오락가락하면서 여전히 쌀쌀하다. 아직도 두터운 겨울 스웨터를 입고 있을 정도다. 시카고의 봄은 아직도 먼 것 같다.


매일 출근을 위해 6시면 울려대는 알람을 꺼버렸다.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 마사지도 안 했건만 그 덕에 피부가 윤이 나고 정말 매끈해졌다.


아침이면 허겁지겁 출근하기 바빠 아침을 먹을 여유가 없었다. 이제 정성스레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커피를 내리며 그 향을 음미한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모닝뉴스를 본다. 아, 이런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완전한 쉼이다. 휴가 때면 언제나 바삐 어딘가로 떠났기에 누릴 수 없는.


집에 있으면 이상하게 부엌일에 매여있게 되고, 집안 구석구석을 눈여겨보면서 자질구레한 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일쑤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는 대신, 소소한 일이나 청소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고, 운동이 필요할 때 한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 문득 오랜 추억 속 이야기들이 그리워졌다.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고 잊혀왔던 낡은 박스 하나를 찾아냈다. 10대 사춘기 시절부터 써온 수십 권의 일기들이 거기에 있었다. 미국에 오면서까지 챙겨 온 내 마음의 보석상자들이다. 일기장들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마치 남의 비밀을 훔쳐보듯 재미있다. 다시 그 옛날 나에게로, 나를 찾아가는 시간들이다. 10대, 20,30대의 나를 회상하듯.


집에 있으니 사람들이 그리웠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이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난 정말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쓰지도 않으면서 차라리 편지가 좋다는 변명을 하면서.


여기저기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연락이 되자, 반가웠는지 어떤 지인은 손수 마스크를 만들어 주었다. 여분의 마스크도 챙겨주었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은 어쩜 이럴 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낮에는 틈틈이 밀린 독서를 하고, 비가 내리면 글을 끄적거리고,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듣듯 빗소리를 들었다. 저녁이 되면, 맛있는 요리를 하고 남편이 야간 일을 가면 다시 글을 쓴다.


늦은 밤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락시간, 영화보기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근 일 년간을 제대로 영화를 보지 못했다. 적어둔 영화 리스트만 잔뜩 길어져 있었다. 얼마나 영화가 그리웠는지 모른다. 남편하고 취향이 완전히 달라 그가 없는 날에 혼자 영화보기를 탐색하듯 즐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내가 느끼기엔 근사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The Guernsey-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건지-"감자 껍질 파이"문학클럽)로 2018년에 제작된 영화다.


1946년경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때였다. 런던의 유명한 한 여류작가와 세계 2차 대전시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던 Guernsey Island(건지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일어나는 로맨틱 드라마 영화다. 결국 두 남. 녀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인간의 내적 상처들이 치유되어가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의 시대적 배경과 건물, 영화 속 인물들의 반할만한 빈티지 패션과 그림 같은 예쁜 집들, 해변가의 언덕, 북클럽, 낡은 타자기의 등장은 아주 먼 곳으로 멋진 여행을 떠나게 해 주었다. 영화의 실제 배경지인 영국의 Bideford -in Cornell, England)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영화와 그 영화 속으로 떠난 여행, 환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편지를 쓰는 일이 낭만적이다라는생각이 새삼 들었다. 오래전에 잊혀진 추억처럼 다가왔다. 편지를 쓰고 주고받던 그 시절이 얼마나 좋았던가..

가족, 친구들이 보낸 수많은 편지들이 나의 일기장 박스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빛바랜 누런 일기장 사이사이에 끼워둔 편지들을 발견할 때면 흠칫 놀라며 가슴이 뛴다. 마치 연애편지를 받은 소녀처럼.

그런 기분에 젖는다.


SNS가 널리 퍼지면서 더 이상 편지들을 쓸 일도 없고 쓰지도 않게 되었다. 심지어 생일카드도 전자카드로 대신한다. 뉴올리언스에서 뒤늦게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있는 독신녀인 대학 친구가 있다. 그녀는 바쁘다는 이유로 매번 전자카드로만 안부를 대신한다. 어느 날은 호통을 쳤다. "야! 미안하지만, 전자카드 사절이야! , 너의 안녕이란 말이 듣고 싶단 말이야!" 그 후로는 매번 "안녕~" 만으로 안부를 전한다. 급하면 전화다.


이메일도, 카톡도 아닌 편지를 쓰고 싶어 졌다. 서울에서 코로나로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을 엄마, 이메일도 없고 카톡도 잘 못하시니 그녀에게 긴 글을 써야겠다. 몇 년 전 미국을 떠나갈 때, 화장 대위에 편지 한 장을 슬며시 올려놓고 갔던 엄마에게 이제 내가 글을 쓸 차례다.


나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왔던 글 솜씨가 뛰어난 둘째 언니에게도, 남편이 하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힘겨운 하이스쿨 단짝 친구, 나의 글을 좋아라 하며 반갑게 읽어주었던 그녀에게도 긴 글을 써야겠다.


매일 어느 때든 마음이 내키면 집 앞에 있는 팍으로 산책을 나간다. 1시간가량 걷는다. 나는 보통 걸을 때 이어폰을 끼고 뮤직을 듣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의 애견도 마주한다. 잔디밭의 쫑긋 서있는 다람쥐도 만난다. 웬일인지 홀로 떨어져 있는 귀여운 오리에게도 눈길이 간다. 길 옆으로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도 흘낏 쳐다보고, 어느 집 앞의 벚꽃처럼 눈부신 하얀 꽃나무에도 시선이 머문다. 산들거리는 바람도 느끼고, 하늘도 하염없이 본다.


작고 사소한 것들, 모두가 소중하다.


한 달치 월급이 없어(더 길어질 수도 있지만) 4월은 가난하지만 여유 부리기, 이만하면 여유가 가난을 이길 것 같다. 가지면 없어지고 비어있으면 묘하게 생기는 법이 이제껏 내가 살아오면서 조금씩 터득하고 있는 삶의 모습이다.


곧 하늘은 더 푸르고 창밖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연초록 새잎들이 활짝 피어나리라. 세상은 온통 희망찬 초록으로 물들고 뜨거운 날이 오면 전 세계를 덮고 있는 암울한 구름도 사라지겠지. 코로나와의 싸움은 고통과 슬픔을 가져다주었고, 동시에 사소한 라이프가 주는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해 주었다.


그간 사람들의 발길로 곳곳마다 몸살을 앓고 있는 피폐해진 지구촌도 잠시 숨을 쉴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의 발자국이 남겨진 세계 각 곳이 공해가 물러나고 다시 천연의 아름다움으로 소생하길 바란다.


아주 오랜만에 누리는 잠깐 동안의 휴식이 주는 가난한 여유가 나에게로 가는 행복한 여행이 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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