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직면한 미국을 바라보며
3월 중순이 넘어섰는데 간 밤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반가워야 할 눈이 왜 이렇게도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지.
약국과 마켓만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가게는 문을 닫았다. 학교도 오래전에 수업이 정지되었고, 많은 회사도 재택근무 또는 현장에서의 업무를 스톱했다. 우리 회사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학교와 데이 케어센터가 문을 닫아 어린 자녀를 둔 직원은 일을 하지 않는다. 2주간 유급휴직이다. 우리 부서는 업무 특성상, 2명씩 교대로 근무하기로 결정되었다. 지금 대기 중이다. 순번이 되면 회사에 나가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COVID-19와 전쟁 중이다. 내 평생에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와 대란은 처음이다. 이제 막 미국도 바이러스라는 적으로부터 무자비한 폭격을 당하듯 침입을 받기 시작했다.
무기에 의해 살생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엄청난 힘을 가진 바이러스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전쟁 (invisible war)이다. 그 어떤 무기로도 대항할 수 없고 결정적으로 치료제도 없다.
위대한 나라라고 자부하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맞서 싸워야만 한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 공포를 다룬 영화처럼 지금, 미국은 바로 두려움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얼마 전 중국 우한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한국에서도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을 때도 “어떻게 되려나?”하고 먼 나라 불구경하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코로나란 남의 일처럼 일상의 이슈였고, 교민들은 그저 한국을 걱정했다. 미국인들에 비해 교민들은 그때부터 한국에 상륙한 바이러스의 확산 조짐을 알아차렸다. 조금씩 위기감에 몰린 사람들은 "무슨 준비라도 해야 되지 않나?" 하며 전투태세를 갖추는 듯 긴장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사재는 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설마, 저 바이러스가 미국까지.. 미국인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올 것이 왔다!
코로나가 이탈리아를 강타하고, 전 유럽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미국도 그 바이러스란 정체와 직면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그야말로 미국은 전국이 동시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백 명이 자정까지 마트로 몰려들어 사재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소문으로 들었다.
아수라장, 난장판이라는 말을 들으니 ”아, 뭐라도 사러 가야 되나?”라는 생각 대신 딱, 나서기가 싫었다. 무엇보다 당장 급할 것이 없었다. 대충 넉넉하게 남아있는 쌀과 어느 정도의 식품이 있었다. 나까지 그 아수라장에 굳이 합세할 이유가 없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비장한 생각마저 드는 게 평소에 겁이 많은 나 같지가 않았다.
그 난리가 시작된 이틀 뒤,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마켓에 들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사재기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가는 곳마다 화장지와 세정제가 없었고 식품이 동이 났다. 평소에는 식품으로 빽빽하게 메워져 있던 선반은 텅 비어 썰렁했다. 사람들은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남아있는 식품들을 쓸어가기 바빴다. 누구도 돌아볼 자세나 마음의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식품점에 나타난 무기 없는 전사 같았다.
죽음을 몰고 온 바이러스는 전쟁 이상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서운 바이러스 전쟁이었다.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는 사람들 앞에 마주 선 어떤 괴물이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시는 어느 내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 사람들의 얼굴에 서려있었다.
겸손과 배려, 이해와 관용을 중요시 여긴다는 미국인들의 엄청난 사재기를 보면서 놀랬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공포감을 주었다. 미국인들은 어떤 땐 현실에 바보스러울 정도로 충실하다. 평소에 직장에서 시큐리티 훈련이 있다 하면 뒤로 새는 일없이 적극적으로 참석한다. 계절과 상관없이 겨울에도 따뜻하면 여름옷을 입고 나오고, 여름이라도 조금 서늘하면 겨울 코트를 입어 대는 미국인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시와도 같은 비상 선포가 바로 현실을 직시하게 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민들도, 미국인들도 모두 오로지 가족을 생각하며 일제히 나서 사재기를 한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 아들, 딸이 있는 엄마였다면, 아마 더 많은 식품이 필요했을 것이고, 급기야는 사재기 대열에 끼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마트를 몇 바뀌나 계속 돌았다. 구부정한 허리를 한 어떤 할머니는 느린 걸음으로 이것저것 식품을 막 집어 카트에 싣고 있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드라이 푸드 수십봉지를 장바구니에 마구 채우는 걸 보았다. 온 가족들이 모여들어 식품을 사는 일에 사방팔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떤 노파는 페이퍼 타월과 빵 하나를 위해 몸부림치듯 달려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자기 카트에 실린 페이퍼 타월 하나를 노파의 손에 쥐여주는 것을 보았다. 어느 한쪽에는 베이비푸드를 사려고 모여든 엄마들로 투쟁이었고, 남자들은 무거운 물병과 식품꾸러미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냉동식품고 앞에는 무슨 구경꾼들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물건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직원들은 물건을 바쁘게 채워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카터를 넘치도록 채우고 있었고, 직원들은 마스크도,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물건을 채워놓느라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이 두 장면은 극하게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불안과 공포, 그 순간 속에서도 자기 직업에 충실한 사람. 전쟁 속의 피난민과 그들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
바로 사람들과 식품점 안의 직원들이었다.
정작 사려고 했던 오트밀도, 식용유도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술이 잔뜩 진열된 선반은 거의 빈자리가 없었다. 그곳만 유일하게 한산했다. 마침, 와인이 떨어졌다는 게 생각이 났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 한그루를 심겠다"는 말이 있지 않나, "어디, 이 난장판에도 오늘 저녁은 파스타에 와인 마실래"라는 오기가 발동했다. 마음 한구석으론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잡고 흔들었다.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달랑 와인 두병만을 들고 전시 같은 마트를 급히 빠져나왔다.
"음, 사재기도 언젠가는 끝이 날 거야, 당분간 필수품만 가지고 있자고" 남편과 단둘이라 사둔 음식으로 당분간은 충분했다. 굳이 사재는 일은 하지 않았다. "뭐, 먹을 것이 바닥이 나면 사재기가 없는 한국이 보내주겠지.."라는 농담까지 하면서.
사실, 내가 사재기에 좀 느긋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웃지 못할 사건 하나가 있다. 아주 오래전일이다. 1999년도 말경에 2000년을 얼마 앞두고 많은 소문들이 있었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모든 시스템이 멈출 거라는 지구종말을 예견하는 이상한 설이 떠돌았다. 이때도 세상은 난리였다.
1999년 마지막 날에서 2000년을 넘어가는 순간에 일어날 일에 대비해 많은 교민들과 미국 사람들이 그때도 사재기를 했었다. 나 역시 쌀과 부탄가스를 구입하고 평소에는 먹지 않는 캔 음식을 30여 개나 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2000년 1월 1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컴퓨터는 한치의 이상 없이 작동했다. 모든 시스템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참 허망한 일이었다. 곧바로 사재기했던 캔 음식 모두를 구세군에 도네이션 해야 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뒤집고 있다.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서 희생되었다. 이 질병과의 전쟁은 일상생활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참상을 본다.
대적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백신 대신 강한 면역력 정도다. 도피처도 없다. 세계가 같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기에. 겨우 미생물에 불과한 바이러스 앞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보았다.
모든 비즈니스를 셧다운 하라는 주지사의 오더. 사람들이 잠적한듯한 까만 도시의 적막감, 스타벅스 카페도 맥도널드도, 던킨도넛도, 레스토랑도, 동네 피자헛도 모두 불이 꺼졌다.
일상의 평온이 깨졌다. 며칠간은 잠을 설쳐야 했다.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생명이란, 삶이란 죽음 앞에서 얼마나 처절해지는가? 지금이 그 시점이었다.
나에게도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질병이다. 시한부 인생이란 이런 느낌일까? 나에게 얼만큼의 삶이 남아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에게 소중한 삶의 핫 리스트는 무얼까?라는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샴페인(일리노이의 소도시)에서 간호사로 있는 조카, 레베카에게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밝은 목소리였다.
건강 잘 챙기라고 했더니, 그녀는 "뭐 20대라, 괜찮아!"라고 무서울 거 없다라는듯 호언장담한다. 모든 간호사들이 코로나 환자 증가에 따라 배치되기 위해 대기 중이란다. 용감하고 건강한 20대와 염려로 가득 찬 육신적인 나이가 중년인 내가 바라보는 죽음의 위기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에 쓴웃음을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 선포가 내려진 후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야 손세정제도 타이레놀도 구할 수 있었다. 마켓의 텅 빈 선반에는 사재기로 바닥이 났던 식품과 물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가족끼리도 사랑의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혼자 지내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집에 음식이 배달되고, 그로서리가 배달되고 있다. 누군가는 홀로 있는 이웃집 노인을 위해 문간에다 음식을 매달아 놓고 간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닥칠지 모르는 바이러스 확산이 커질수록, 소리 높여 커지는 울림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미소를 짓고, 이웃을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사랑의 언어들이었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여기저기서 안부를 묻는 전화들을 하고, 받느라 바빠졌다. 사랑의 대화가 쏟아졌다.
당뇨를 가진 직장 선배 언니는 오래간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생전에 전화 한 통 없는 아들을 향해 "무심한 놈"이라 욕을 해대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갑자기 걸려온 아들 전화를 받은 것이다. "엄마~괜찮아? "라고.
그 한마디에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우리 아들 학자금을 갚으려면 아무렴, 건강히 버텨야 돼. 엄마는 강하다고!"라고 나지막이 외치면서.
어느 가족은 엄마와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녀의 집 문 앞에 모였다. 문 입구에 선 그녀를 향해 멀치감치 거리를 두고 모두가 생일 축하송을 불렀다. “Happy birthday! mom, we love you~ stay safe!(엄마, 사랑해요! 몸 조심해요)”라고 전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멀리 있지만 마음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사랑하기에 멀리서 바라보는 소중함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직원들도 이전보다 더 많이 서로를 다독거렸다. 바이러스의 난동에도 아주 약간의 거리만 두고서 서로 얼굴을 보며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실시간으로 안전 정보를 나누고 "우리는 운명 공동체!"하며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한동안 연락이 없던 후배에게서도 걱정 어린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미국 괜찮아?, 별일 없지?”
사실, 괜찮지 않았지만, 나는 선뜻 "응, 괜찮아!" 했다. 그 순간, 희한하게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바탕 웃어대니 긴장하고 있었던 마음이 풀어졌다.
가장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한 유럽 현지에 있는 직장의 고객들도 많은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코로나의 심각성을 주시하면서 그들이 처한 사태에서도 오히려 위로와 걱정이 담긴 사랑의 말들이었다.
"Hope you and your family are staying safe and healthy" /너와 가족들 모두 무사하기를 바래.
"stay safe and stay well" 건강히 잘 지내(무고하기를).
위로의 언어들은 다양했지만 모두가 사랑이 담긴 말들이었다. 잠시 우울했던 마음에 햇살이 비치고 들어왔다.
넘치는 파워력을 가진 사랑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난 믿는다.
무수한 사랑의 말들이 거친 회오리바람을 지나가게 할 것임을. 그 사랑의 힘이 흉측한 바이러스를 끝내 이겨낼 것임을.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품게 하는 건, 사랑임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여느 때처럼 창가에 놓인 데스크에 앉아 밤하늘을 보며 틈틈이 글을 쓸 것이다.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키친에서는 맛난 요리를 하며 콧노래를 부를 것이다.
사랑의 말들을 되새기면서.
엄청난 희생자로 투쟁 중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전 유럽과 세계의 모든 나라들, 진통을 겪고 있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생명을 위해 죽음의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 봉사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