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초등학생 때 즐겨하던 추억 게임 크레이지아케이드를 시작했다. 처음엔 모바일로 하는 조작법이 익숙하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추억의 BGM과 캐릭터에 매료되어 단숨에 레벨업을 시켰다. 요즘엔 한번 하면 1시간은 기본이다.
그런데 문득, 손바닥만 한 작은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내 생활이 볼품없게 느껴졌다. 세상은 저렇게나 넓은데 나는 고작 손 위의 네모난 스크린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무리 집을 예쁘게 꾸민다고 한들, 그런 내게 정작 필요한 건 스마트폰 하나와 편한 침대뿐이다.
퇴근 후 아무 의미 없이 확인해보는 SNS, 자기 전 생각 없이 틀어보는 유튜브, 한 때의 즐거움은 줄 수 있을지언정 정작 끝나고 나면 공허함만 남는 게임과 웹툰/웹소설…
어렸을 적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TV가 바보상자인 이유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익한 정보도 있지만, 사람들이 TV 앞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단순한 오락성 때문일 것이다. 별 의미 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당장은 현실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TV가 가진 중독성에 빠지다 보면 사람은 어떤 문제나 현상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 고찰할 기회가 줄어들기에, TV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의해 억울하게도 ‘바보상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스마트폰은 ‘바보상자 주니어’다. 그러나 이 주니어는 ‘오리지널 바보상자’보다 몇 배는 강력하다. 한 때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던 인터넷은 AI 개인화 추천이라는 알고리즘 기술을 만나 사용자에게 보여주는 콘텐츠가 정교화되었고, 기본적으로 쌍방향/다방향 소통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휴대성이 뛰어나다. 이런 우수함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활용한다면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사용하는 사람이 (예컨대 나 같은) 잠깐의 나태 또는 현실도피에 빠져 하루 24시간의 커다란 부분을 작고 네모난 스크린에 허비한다면 스마트폰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바보상자’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