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구질구질해.."
이 말은 정말이지 그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방금 아버지란 존재가 세상에 없느니만 못해진 그에게.
결혼 준비를 하면서 예민해져 있었다. 남들 다 하는 A급 스드메나, 프러포즈용 다이아 반지는 사치여서 생략하자고 내가 먼저 부득부득 우겼지만, 왜인지 내 모습이 조금 초라해서랄까.
나도 내가 웃겼다. 먼저 안 한다고, 그런 사치 난 관심 없다고, 그런 거에 연연 않는 쿨한 여자 친구 코스프레를 해놓고 막상 생략하니 우습다니. 이런 모순적인 내 모습이 '구질구질'한 큰 이유기도 했다.
"뭐가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져?"
지친 내 목소리에 조금은 놀란 듯한 그가 조심조심 물었다. 예산에 쫓겨 스드메의 급을 내리고, 살고 싶은 집을 못 사는 게, 주에 한 번쯤 연락 와서는 본가의 이런저런 안 좋은 상황들을 하소연하는 엄마, 비슷한 시기에 양가의 큰 도움으로 수월하게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 이런 내 상황을 절대 뒤엎을 만한 월급을 주지 않는 회사. 모든 게 다 구질구질하며,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못 가진 것만 보면서 투덜거리는 내 모습이... 제일 형편없노라. 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성인이 된 후 이미 여러 번 아버지의 사건 사고를 경제적으로 수습해준 그였다.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런 일들은 네이트 판에서나, 댓글조차 달리지 않는 시답잖은 인터넷 뉴스에서나 읽었지, 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그날 들은 사건은 참으로 '구렸다'. 이 단어 말고는 뭐라 설명할만한 형용사가 없었다. 핸드폰 해킹을 한 피싱 업체로부터 협박당했다나 뭐라나. 그는 차라리 흔한 사연처럼 사업을 말아드신 여느 아버지가 차라리 부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그 케이스는 우리 아버지가 이래서 내가 힘들다고 말하기가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지 않냐며.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안쓰러워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 내가 처음 마음을 준 그 모습이지.' 그날도 담담하게 본인의 힘들었던 가정사를 고백하는 그에게 내가 후천적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천적인 가족 때문에 (그에 비하면 아주 조금) 힘들었기에 나에게 그가, 그에게 내가 서로가 선택한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다.
다 내 욕심이다. 1억 도 없으면서 10억을 가지고 있는 배우자를 바라는 것. 우리 집도 우당탕탕 바람 잘날 없으면서 온화한 가정에서 자란 상처 없는 배우자를 바라는 것.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바라는 것. 그건 재고의 여지없이 희망 아닌 욕심이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욕심은 그날 하루만큼은 온전히 나의 위로가 필요했을 그가 내 불만을 들어주길 바란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말로 불평해봤자 상황은 나아질 것이 없다는 걸. 우리보다 훨씬 적게 시작하는 신혼부부도 많다는 걸.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을 뿐 꽃길인 순간들도 많았는데 가시밭길일 때만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 거냐며 불평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말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참 부끄러웠다. 웃긴 건 우리의 상황도 다른 타인이 보기엔 가질 만큼 가진 것처럼 보여 부러움을 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의미한 비교란 말인가.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내 가족이다. 그동안 살아오며 한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하는 후회는 할 만큼 했다. 이제 내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하나씩 내 욕심을 욕심 아닌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내가 할 일의 전부다. 내 노력으로 극복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은 내려놓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그와 우리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