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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Jan 21. 2021

위로에 열등한 사람

 어떤 행동을 잘한다, 못한다라고 말할 때에 '어떤 행동'에 이것도 포함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난 위로를 잘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꽤 힘든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것 같다는 표현은 지양하고 싶지만 정말 확신이 안 선다.) 조언엔 나름 자신 있는 편이지만 나에게 위로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인지 지인이 나에게 어떤 고민을 털어놓을 때에 무척 긴장한다. 화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해야 하는 언어 평가랑 비슷한 건데, 이 의도는 보통 세 가지인 듯하다. 


1. 진짜 조언을 얻고자 하는 경우

2. 진짜 공감을 바라는 경우

3. 한편으론 공감도 바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조언도 얻고자 하는 경우


 앞서 말했듯 1번은 자신 있다. 감정은 빼고 내가 아는 선에서 팩트에 기반한 조언을 해주면 된다. (근데 이 경우는 거의 못 봤다.) 2번도 괜찮다.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니 등의 통일된 톤 앤 매너로 일관하면 된다. 문제는 3번인데, 이 경우엔 나는 무슨 말을 하든 대화가 끝난 뒤 후회한다. 머리로는 공감과 위로를 건네야 하는 걸 알면서도 후반부에 조언을 말하면서 내가 점점 조언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아차, 조언의 강도가 너무 셌다는 걸 알아차리면서 뒤이어 뒷수습에 가까운 가짜 공감이나 위로로 마감칠하게 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상대가 더 원하는 건 공감이었을 것 같은 기분 탓이다. 


 이게 나의 약점 아닌 약점인 것은 몇 년 전부터 인지를 한 상태였다. 이쁘게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관련 베스트셀러도 읽어보고, 내 생각과 영혼은 꾹 누른 채 소울리스로 대응도 해봤다. 물론 몇 가지 인간관계 고민에 대해서는 나도 이제는 공감을 꽤나 잘해서 묵묵히 들어주거나 주제에 따라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더 많은 대화 주제에선 '적당히 이쁜 포장으로 말을 출력하는 방법' 정도만 할 줄 알지, '이렇게 이쁜 포장의 말이 어떻게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알고리즘은 아직 완성이 덜됐다. 


 최근에도 한 친구에게 엄청난 고민거리를 듣고 내 딴엔 내가 할 수 있는 한 단어의 감탄사를 보냈는데, 이게 그 친구의 심기를 거스르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차례로 넘어온 카톡 바통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이유는 내 말의 의도를 몰라줘서 속상했던 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였다. 대화가 그렇게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그다음 말주머니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것도 회피라면 회피일까..? 역시 난 한참 부족하고, 덜 성숙했나 보다. 그냥 그의 집으로 찾아가 나와서 술 한잔 어떠냐고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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