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https://share.google/eGemkCAQgSSXIlsG1
작가님께는 조금 실례가 될 수 있겠으나, 휴식을 가지고 싶어서 숏츠나 릴스를 보듯 이 소설을 읽었다. 짤막짤막하게 이어지는 전개와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는 설정 자체가 워낙 고자극이라 술술 읽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연인을 죽이고 먹었다는 괴담도 떠올랐다.)
만약 내가 청소년기나 20대에 읽었다면, 담이와 구가 했던 처절한 사랑을 해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소설 속 둘의 애절함은 없던 첫사랑까지 그리워지게 만든다. 그렇게 순수한 감정은 여운을 준다.
동시에, 어린 주인공들에게 세상은 참 가혹하다.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라는 질문을 고작 열일곱 살에게 던지는 어른들의 시선과 말은 잔인하다. 위한다고 건네는 말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생각했다.
어둡고 비참하고 처절하면서도 순수한 사랑, 그게 청소년기의 불안과 순정을 떠올리게 했고 아마 그래서 지금 청소년들이 이 소설에 더 끌리는 게 아닐까 싶다.
1.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뒤 바로 구가 일하는 공장으로 가서 구를 기다렸다.
...
하지만 기다림은 공장 문 앞이 아니라 구와 헤어질 때부터 시작되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학교에 있을 때도 내내 구를 기다렸다. 만날 시간은 분명 정해져 있고,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내 마음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오 분, 삼십 분,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
2.
다른 일보다 몸은 덜 쓰는데, 몸을 덜 쓰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든다고. 그 생각을 불러오고 장악하는 감정은 대개 불안과 초조였다.
...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며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
그렇게 늙어버리는 거 순간일 것 같아.
3.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기분.
...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착해지는 것 같았다.
...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4.
걱정하는 마음?
응. 그게 있어야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
내 마음엔 지금 그게 너무 많은데.
...
온통 걱정뿐이야. 그래서 세상이 완전 흉하게 보여.
...
걱정하는 마음,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내가 내 상처를 겁내는 마음을 가려버렸다.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가려버리듯.
출처
최진영, 『구의 증명』, 은행나무
본문 인용문은 모두 위 책에서 발췌.
책 표지 이미지 ⓒ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