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꿈틀꿈틀] 8. 암캐 - 필라르 킨타나

여성이라는 성, 모성, 채워지지 않는 욕망, 상실, 연대와 배반, 수치.

by 양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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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캐> - 모성애와 소유, 사랑과 폭력의 경계

회사 근처 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에 이끌려 구매했다. 두껍지 않고 크기도 크지 않아 한 손에 쥐고 읽기 딱 좋은 책이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읽고 나서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작가 필라르 킨타나는 1972년 콜롬비아 칼리에서 태어나 성과 폭력, 리얼리즘이라는 주제를 콜롬비아의 특수한 사회 구조 속에서 탐구해 왔다. 2007년 헤이 페스티벌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주목할 만한 39세 이하 작가 39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2017년 발표된 『암캐』는 지금까지 열다섯 개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의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콜롬비아 소설 도서관상과 펜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중년 여성 다마리스가 한 마리의 암컷 강아지를 만나, ‘치를리’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치를리를 향한 다마리스의 애정은 모성애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유와 통제의 욕망으로 전환된다. 짧고 간결한 문장은 사랑과 질투, 죄의식과 폭력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감정의 여백을 남긴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질문이 남는다. 다마리스의 이야기를 단순히 개인의 탓으로만 볼 수 있을까? 그녀가 태어나고 살아온 사회적 환경, 구조적 결핍을 돌아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책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고민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아래 두 개의 인용문은 각각 번역가 최이슬기 님과 디자이너 정해리 님의 글을 가져왔다. 한국어로 옮기면서 제목이 암캐가 된 것, 쪽 번호의 폰트조차 그냥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음을. 한 권의 책이 독자 앞에 놓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숙고가 축적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1.

라 빼라(la perra)는 스페인어에서 개의 여성형 명사로 암컷인 개를 지칭하는 말이다. 스페인어로 개를 빼라라 부를 때는 다른 의미가 끼어들지 않는다. 그저 수컷은 빼로, 암컷은 빼라라 부를 뿐이다. 한국말로는 개가 암컷이라도 매번 성별을 밝혀 '암캐'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빼라'는 대부분 그저 '개'로 옮길 수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여성에게 쓰는 욕이기도 하므로 제목에서는 남겨두어야만 했다. 아마도 이 제목을 듣고 그 생각을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섹스를 파는 여자, 감히 원하는 여자, 자식을 돌보지 않는 여자, 나돌아 다니는 여자.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고 난잡하고, 그리하여 나쁜 여자. 그러니까, 여자.


2.

『암캐』는 남미에서 생활하는 흑인 여성의 일상에 스민 불평등과 인간의 모순된 내면을 아주 솔직하게 서술한다.

...

이 소설의 많은 장면이 축축하다. 날씨와 공간이 다마리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이. 나무와 덩굴로 우거진 숲은 다가가기 두려운 과거의 절벽으로 향하는 길이며, 두려움을 거두고 진흙을 밟으며 암캐를 찾아 헤매는 곳이다.

...

『암캐』의 독자라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숲 안으로 선뜻 걸어 들어가기를 바라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숲을 표지로 삼았다. 숨 가쁘게 넘어가는 종이만큼 쪽 번호도 신경질적으로 내달린다.


출처

필라르 킨타나, 『암캐』, 최이슬기 옮김, 쪽프레스

본문 인용문은 모두 위 책에서 발췌.

책 표지 이미지 ⓒ 고트 goat (쪽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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