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탈을 벗고 하얀 턱수염과 빨간 삼각모를 준비하는 11월 15일. 나는 25살의 마지막 한 달을 앞두고 있는 청년으로서 취업 포털을 뒤지는 중이었다. 수없이 많은 회사와 구인 공고들. 문득 집은 많은데 그중 내 집은 없어서 허탈해하던 어느 날의 야경이 떠오른다. 동시에 취업이란 깔때기 같단 생각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서류에서 여과되고 면접으로 흘러 취업이란 입구로 향하는 것은 몇 방울이 전부다. 여기서 나는 그 여과에서 걸러지는 찌꺼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네가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라고 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단연코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나는 수십 번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너는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다고 외쳤다. 단지 목이 터져라 외쳐서 다 쉬었을 뿐이다. 지쳤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디자이너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 일기의 초장이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단계란 것은 보통 상승을 그린다. 가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범주 안에 있는 사람이라 그들의 낙하하는 즐거움을 알진 못한다. 대신 낑낑거리며 커다란 돌산에 계단부터 깎아야 한다는 운명은 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관련 전공'이라는 우대 조건일까. 아무튼 난 포트폴리오라는 곡괭이를 들고 돌산을 깎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곡괭이는 타인이 보기엔 너무 낡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걸 든 내 곡괭이질이 볼품없었던 모양이지. 그렇게 자존감이 발을 헛디뎠다.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요즘, 여러 생각이 사무친다. 부모님의 간병으로 보내버린 1년만 없었다면 더 수월했을까. 모두가 있는 사무실에서 날 지적하고 학력과 능력을 깎아내리던 상사만 아니었다면 더 오래 다녀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이 모든 게 쓸모없는 생각이란 걸 안다. 바뀌는 것이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저 억울한 거다. 나는 정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정말 잘할 자신 있는데. 그렇게 자존감이 고갤 떨어뜨렸다.
면접을 가면 항상 물어보는 것이 공백기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프로젝트를 접한 적도 없다. 그 사이에 무얼 하셨어요? 한다면 '간병'이요. 이 말밖에 못 하는 나 자신이 참 못나 보였다. 하지만 사실인데. 구태여 무어라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사람이란 사람은 다 만나고 다닐 인사 담당은 초년생의 어설픈 거짓말 따위 쉽게 알아챌 것이다.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력서에 공란이 늘어날수록 자괴감도 배수가 되었다. 이 나이 동안 대체 뭘 했지? 나름 창작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직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늘 글을 썼으니까. 잠깐, 나는 늘 글을 썼다.
사실 스스로에게 '정말로 디자이너로 살고 싶어?'라는 질문을 한다면 내 대답은 '모르겠다.'일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UI/UX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여러 사례를 찾아보고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이거다.' 싶은 직업은 아니었다. 할 줄 아니까 그중 최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동네 디자이너로 살다가 그저 그런 프로젝트만 하다가. 그렇게 스러져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적지근한 열정을 억지로 용광로에 올려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만들었다. 망치질을 거듭할수록 망가져가는 꼴을 보면서도 미래의 성취감 하나를 위해 모른 척했다. 아니, 이제는 알겠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해보면 디자인과를 선택한 이유도 경제적인 부분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글은 돈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림을 좋아했으니 디자인도 좋아할 거야.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미련한 기대감을 가져버린 듯했다. 그래,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포기하자. 적당한 직장을 다니며 안정적으로 살면서 쓰고 싶은 글을 쓰자. 막연한 성취감에 쫓기지 말고.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려보다가, 글을 쓰다가. 커피 한 잔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