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충동적으로 책을 사는 편이 아닌데
좋은 책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는 <어린이라는 세계>)
책 주문하다가 요즘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리길래 같이 주문했다.
1. 금방 읽을 수 있다. (200쪽이 조금 넘으니...)
앉은 자리에서 한시간 조금 넘게 걸려서 다 읽었다.
2. 그렇다고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3. 문장이 간결하고 담백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사람.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
어린시절의 집에 대한 기억과 어른이 되어 서울살이를 하며
거쳐갔던 집에 대한 기억을 글로 풀어놓은 사람.
소설로 등단,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란 르포를 2018년에 내놓았다.
작가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집이란 무엇인가.
태어나서 가족과 함께 살던 최초의 기억.
아무리 남루한 집이라도 내게는 최고의 놀이터, 몸을 누일 수 있고,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모든 게 너무나 당연했던 곳. 내게 주어진 사랑과 관심과 애정이 그저 당연했던 곳.
어른이 되어 혼자 살아보니
집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독립하고나서 썼던 글이 있는데 그 글의 대부분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머니의 무료 가사 노동에 기대어 살아왔던 가였다....
서른이 넘도록 어머니가 해주는 밥, 빨래, 청소에 기대어
너무나 편안하게 살아왔다.
혼자 살아보고 나서야, 먼지한톨 없던 티비장 위의 유리, 마룻바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다.
수북이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아내는 휴일 아침이면
'어머니는 어떻게 먼지 한톨 없이 닦아낼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곤했다.
날마다, 꼼꼼하게 닦았으니 그랬지.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닦을까 말까니까......
빨래.
예쁜 옷을 입히려고 흰색 타이즈를 신기곤했던 어머니.
타이즈, 아버지의 와이셔츠 따위는 꼭 손으로 박박 비벼서 빨았다.
어렸을 때 살던 시골에는 빨래터가 있어서 광주리에 빨래를 한가득 넣고
나무 방망이로 옷을 팡팡 두들기며 빨래를 하기도 했다.
(재미로. 어머니는 어린 시절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추억을 돌이켜보고 싶었던 듯.
쫄래쫄래 따라가서 방망이로 두들겨보고 맨발로 물에 들어가서 첨벙청벙 놀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샘물이 사계절 내내 마르지 않고 흘러내려와 고여있는 곳이라
언제나 동네 사람들의 핫플레이스였다. ㅋㅋㅋㅋ)
밥.
삼시세끼, 일년 365일, 따뜻한 밥을 차려주었던.
시골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밥 사먹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셨던 듯.
(지금이야 안 그러시지만.)
어렸을 때는 중국집에서 짜장면도 먹어 본 적이 없다.
배달음식? 아이구야.....
나 혼자를 먹여 살리느라 밥 하는 것도 귀찮은데
밥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하고 또 밥 하고.....
생각한해도 무릎고벵이가 아프다.
밥 하느라 부엌에 한 두시간 서 있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발바닥과 무릎이 아픈지.....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해선 며느리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26쪽
공간의 분배에서 할머니와 가장 대비되는 사람은 엄마였다. 집안 상황이 좋았을 때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방이, 나와 동생에게는 각자의 방이, 아빠에게는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있었다. 그러나 명문 빌라처럼 방이 넉넉했던 집에서도 엄마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 불공평을 인식한 뒤 내가 엄마만 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집 전체가 다 내 방이지." 엄마의 뜻과 달리 그 말은 엄마의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잇었다. 며느리-아내-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141쪽
지금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어릴 적 집은
시골에서 찍어낸 듯이 똑같이 지어낸 집.
전두환? 시절에 초가집이나 허름한 집 밀어내고 지은 집으로
다락이 있는 집이다.
어릴 때는 다락이 아지트였다.
천장이 낮은 다락에 올라가 지붕 바로 밑 테라스로 내려가
논 밭을 내다보곤 했다. (볼 거라곤 논 밭 산 뿐이었으니까. ㅋㅋ)
삼십여년이 흐른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찍어낸 듯 지은 집이지만 튼튼하게는 지었나보다.
어렸을 때는 연탄보일러를 땠는데
집 오른쪽으로 광이 있어서 그 안에 연탄을 쟁여놓았다.
시커먼 연탄이 몇 백장 들어찬 광은 어두컴컴해서 들어가기 무서웠던 기억.
집 안에 화장실이 생긴 건 나중 일이었나?
바깥에도 화장실이 따로 두 칸 있었다.
어렸을 때는 바깥 화장실에 오줌 누러 나갔던 기억이 나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희미하다.
집 왼쪽으로 증축이랄까
야트막하게 단층으로 한 칸 정도 창고를 지었는데
그 창고 지붕이 딱 작은 방 창문 높이라서
어느 정도 키가 큰 다음에는 창문으로 기어올라가 창고 지붕에서 놀곤 했다.
평평한 지붕으로 어른 키보다 조금 큰 높이.
동네 꼬마들과 모여서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자신의 겁 없음, 대담함을 뽐내곤 했다.
그리고 바깥 화장실 높이랑 비슷해서
지금 생각하면 못 뛸 것 같은 너비를
창고 지붕에서 화장실 지붕으로 뛰어다니곤 했다.
어렸을 때는 그래야 했다!
'나 할 수 있어!'를 펄쩍 펄쩍 뛰어다니며 증명하곤 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창고 쪽으로 눈을 치워서
벽면에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모이곤 했는데
당연히! 어린이라면!
지붕에서 눈더미 위로 뛰어내려야했다. ㅋㅋㅋ
어마어마한 눈더미 속으로 폭!숑! 들어갈 때의 기분이란!
볼과 귀, 코가 빨갛게 된 어린이들이 눈더미에 뛰어내리고 나서
깔깔깔 웃으며 기어나오는 모습이 눈에 선 하다.
아......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어린시절 집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좋은 책.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만드는.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리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나의 서사를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한 번 살아내기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뭉뚱그리지 않기.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 분노, 슬픔, 상실, 결핍을 다시 한 번 겪어내기.
그것은 나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다.
134쪽
내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타인이 내리는 정의, 규정, 낙인을 거부할 수 있다. 내 안에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불가해하고 복잡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나는 '존재하는 한 이야기하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대로 살고 싶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나에 대한, 나를 위한 개인적 기록만은 아니다. 자신 안에 갇히는 나르시시즘적 행위가 아니라 나의 삶을 해석하고 사유하기 위해, 그다음에는 스스로를 무한히 확대하고 다른 존재와 연결되기 위해 나는 쓰고 싶다. 자전적 이야기라도 그 안에는 사회나 시대, 타자와 관계된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내 이야기에서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기 바란다.
135쪽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그 안에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스며들기를 바라기.
좋은 책을 읽었다. (202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