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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Aug 02. 2021

안 힘들었어요

슬기로운 자가격리생활

7월 8일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데 반 어린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오면 마음이 바짝 졸아든다. 11년 전에 제자를 잃었던 경험이 떠올라서 그렇다. 1학년 어린이들이라 더 가슴이 덜컹한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손발이 차가워진다. 아버지가 어제 저녁에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방금 확진 전화를 받았단다. 나머지 가족도 검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걱정 마시라고, 검사 잘 받고 결과 알려달라고 하고 학교로 갔다. 우리반 여자아이, 3학년 오빠, 어머니 이렇게 셋이 검사를 받는다. 제발 확진이 아니기를 바랐다. 방학이 일주일 남짓 남았다. 함께 마무리하고 싶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년 연구실에서 선생님들과 결과를 기다렸다. 1시 반 쯤, 학년부장 선생님이 연구실 문을 열고 “확진이래.” 한다. 다른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작년 11월에 밀접접촉자라서 자가격리를 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올해는 우리반 어린이 모두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이 일을 어쩌나. 일단 교실로 돌아가 청소를 마저하고, 쓰레기통을 비웠다. 아침마다 읽었던 《화해하기 보고서》를 챙기고, 심윤경 작가의 다른 책도 챙겼다. 1학기 마무리로 내보내기로 했던 행복성장평가서도 챙겼다. 어린이들이 이미 집으로 갔다. 교과서를 챙겨 보내지 못했다.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하나. 곧 학교에 선별진료소가 열렸고, 급식시간이 겹친 학년과, 학원이 같은 어린이들이 검사를 받았다. 나도 검사를 받고 바로 집으로 왔다. 다음날(금요일) 할 수업을 준비해서 클래스팅에 올리고 나니 밤 11시. 


다음날 아침, 검사를 한 학생, 교직원 모두 음성 결과를 받았다. 우리반 어린이들은 자가격리라서 일단 줌으로 아침인사를 하고 클래스팅에 올려놓은 수업을 했다. 줌으로 《화해하기 보고서》를 읽어주었는데 생각보다 귀 기울여 들었다. 그래서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줌으로 수업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 아무래도 줌으로 만나면 교실에서 말 잘하고, 잘 놀던 어린이들이 조용해진다. 입을 떼기가 어렵다. 반대로 교실에서는 내 눈치를 보느라 조용했는데 자기 집이라서 꽥꽥 소리를 지르고 의자 위에 올라가는 어린이도 있었다. 

“주말 잘 보냈어요? 안 답답했어요?”

“안 답답했어요.”

“안 힘들었어요?”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그래? 나는 토요일에 갑자기 답답해져서 힘들었는데. 너희는 참 대단하다. 잘 참았다니 대견하네. 역시 우리 1학년 8반 어린이들이야.”

아닐텐데. 답답하다고 부모님에게 짜증을 부렸을텐데. 아니라고 하니 믿어야지. 책을 읽어주고 이어서 화면공유로 파워포인트를 보여주며 수업을 했다. 화면공유를 하면 어린이들의 모습이 노트북 화면 한쪽으로 치우친다. 네 다섯명 정도 밖에 보이질 않아서 어린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공부를 하는지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인데. 아이들 몸이 슬슬 비틀리는 것을 보고 10분 쉬자고 했다. 쉬자고 했는데 “선생님!”하고 부르는 아이들. 교실처럼 내가 가서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나를 부른다. “쉬는 시간이라고 했잖아. 나도 쉴 거야.” 하고 물을 끓여 커피를 만들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더니, 어린이들이 온통 자기 인형을 들고 친구에게 보여준다. 인형자랑 대잔치가 열렸다. 나도 질 수 없어서 소파에 놓아두었던 인형을 들어 보여주었다. 공부하는 동안 집에서 함께 사는 개 달봉이가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다음 쉬는 시간에는 어린이들이 함께 사는 강아지를 보여주느라 바빴다. 다음날에는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약속했다. 줌으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조금이라도 재미있으면 덜 힘들겠지. 집에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같은 동네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죠스바를 사두었다. 


다음날 아침. 책 읽기 시간. “아이스크림은 언제 먹어요?” 웃음이 나왔다. 어린이들은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싶구나. “지금은 아침이잖아. 조금 더 더워지면 같이 먹자.” 어린이들이 얼른 먹고 싶다고 해서 10시 조금 넘어서 줌 화면으로 서로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슨 아이스크림야?” 묻고 아이스크림 이름 맞추기 놀이를 했다. 집에 있는 물건 찾아오기 놀이도 했다. 파워포인트 화면에 초성힌트가 나오면 그 물건을 찾아오는 놀이다. 여름을 나는데 필요한 물건, 장화, 모자, 우산, 양산 따위다. 선글라스를 찾아와서는 멋지게 쓰고 화면캡쳐도 했다. 수요일부터는 흥미와 집중력이 뚝 떨어졌다. 이미 월, 화요일 세 시간씩 컴퓨터 앞에만 앉았던 아이들이다. 처음에야 재미가 있었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눈 앞에 선생님이 있어도 실제가 아니니까 집중하기도 힘들었을게다. 어른인 나도 줌으로 만나면 자꾸 딴 짓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짧게 짧게 쉬는 시간을 자주 주었다. 중간에 15분 쉴 때는 어머니들에게 부탁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말고 다른 곳에 가서 쉬다 오게 해달라고. 


금요일은 방학식이라 2교시면 끝이다. 이날 어린이들은 집중력이 정말 떨어진 모습이었다. 너무 지겨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마지막에는 “엄마, 이거 언제 끝나?” 라고 묻는 어린이도 있었다. 방학동안 할 일, 여름방학을 안전하게 보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인사를 했다. 그동안 고생하신 어머니들도 화면에 함께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방학은 했지만, 자가격리는 이어진다. 그래서 다음주 월요일, 수요일에도 줌으로 아침 인사를 하기로 했다. 화요일은 아침에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를 하기에 건너 뛴다. 그렇게 월요일, 수요일 아침도 줌으로 만나고 드디어 자가격리가 끝났다.


“안 힘들었어요.” 라고 말했지만, 얼굴을 보고 말했다면, 솔직한 마음이 술술 나오지 않았을까? 답답했다고, 무지개를 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고. 의젓한 얼굴로 작은 줌 화면 너머로 보내오는 너희들의 목소리가 한결같이 “괜찮아요” 라서 더 슬펐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이 살아갈 앞날이 걱정돼서 그랬다. 이게 끝이 아닐 거라고, 예전과 같은 삶을 살지 못 할 거라고, 때때로 나를 내리누르는 어두운 생각에 눈물이 솟기도 했다. 그렇지만 너희가 괜찮다는데 내가 날마다 울면 안 되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밥 해먹고 운동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만나면, 그때 우리 정말 잘 버텼다고, 칭찬 잔뜩 해야지. (20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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