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와의 만남
#북클럽문학동네 4기 회원을 대상으로 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룬다티로이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초대한다는 공지를 보고, 얼른 신청했다. 첫 작품인 <작은 것들의 신>으로 맨부커 상을 수상, 픽션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님. 인도의 여러가지 사회 문제-카스트 제도, 핵 실험, 카슈미르 학살, 이슬람에 대한 공격, 하나의 인도를 부르짖는 민족주의자 정당에 대한 비판 등-에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왔던 분.
작가 소개란에 활자로 인쇄된, 눈으로 읽어낸 작가님과, 실제로 만나 음성으로, 눈빛을 마주보며 느낀 작가님은, 압도적인 경험차이가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단단한 답을 내놓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평생을 운동가로 살아 온 사람의 단단함, 치열함, 자긍심, 그 안에 빛나는 그 무엇. 아름다웠다, 사람 자체가.
이번 이호철문학상은 2020년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지복의 성자>로 받았다. <지복의 성자>는 아직 못 읽어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카슈미르 학살에서 살아남은 '안줌'이란 주인공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마음이 깨진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은 것들의 신>이 'broken family'지만 멀리서 보면 어쨌든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반면에, <지복의 성자>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broken heart', 'shattered heart'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을 만들어간다고. 그렇지. 이제는 혈연만으로 이루어진 가족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지.
작가와의 만남은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다행히 금요일이라 일찍 일터를 벗어나 부랴부랴 서울로 운전을 했다. 초행길인데다가 살짝 밀려서 늦을까봐 걱정했다. 알맞은 시간에 도착해서 예술회관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키에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인 머리를 뒤쪽으로 땋은 작가님이 로비에 계셨다. '저분이구나!' 식장에 들어서니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서 놀랐다. 정확하게 3시에 시작.
인하대 영문과 박혜영 교수가 사회를 보고, 통역하시는 분이 한 분 더 있었다. 처음에는 박혜영 교수가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현장에는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고, 줌으로는 100명이 지켜보았던 작가와의 만남. 줌으로 질문할 분을 찾았으나 없어서 현장에서 몇 개의 질문을 받아서 답했다.
"이렇게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억을 더듬어서 쓴 거라서 워딩 그 자체는 아님.)
- 사실 인도는 너무나 많은 언어가 존재. 공식 언어와 공식 언어가 되길 기다리는 언어만 해도 수 십개가 넘는다. 그래서 사실 나의 삶은 언제나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switch 하면서, 번역하면서 살아 왔다. 내가 하는 일은 Ocean of language, Ocean of inperfection에서 이것 저것 건져 올리는 것. 내 소설은 written in the language of translation이다. 내가 글을 쓰는데 적이 있다면 그건 현재 인도 정부가 추진하는 '하나의 언어, 하나의 종교'를 주장하는 것이다.
질문이 기억나지 않지만 작가의 대답.
-소설을 쓰는 것은 도시를 짓는 것과 같다. 내 소설은 설계 되기도 하고 설계되지 않기도 한다. (desingned and undesinged.) "You can`t walk past anybody."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해서 작가는,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 그저 스쳐지나갈 수 없다. 언젠가 마주앉아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 "landscape is also character." 건축을 전공한 사람답게, 촘촘하게 도시를 그려내는.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카스트 제도.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 들었는데, 인도의 현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소설에 쓰여있는데 작품 바깥에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 이 안에 있다. 하지만 설명하자면,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모든 곳에 깊숙이 남아있다. 소수의 상위계급이 모든 걸 차지하고 있다. 불가촉천민들은 카스트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종교로 개종하지만, 카스트는 그 모든 종교를 넘어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카스트 제도는 자본주의와 결합해서 소수의 상위계급이 다수의 하위 카스트를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비판을 하니 인도에서 작가를 곱게 볼리가 없지.)
"작가의 인생책"
-대답할 수 없다. 때때로 다르다. 요즘은 러시아 작가의 레닌 그라드 전투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I have to find the way.
가까운 친구 중에는 체포, 구금된 경우가 많다. 한 번 체포되면 20년을 감옥에 있는다.
인도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이 감옥에 많이 갇혀있다. 사실 한국으로 오는 동안에도 아주 가까운 친구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다. 그래서,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솔직하지 못함을 두려워해야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작가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보시다시피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런 팬데믹 시기를 어떻게 지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끊임없이 읽으며 이 시기를 지났는데요."
-지난 2년동안 많이 썼다. 사실 인도의 팬데믹 상황은 너무나 끔찍하고 그 끔찍함이 전세계 알려졌다. 인도에서 셧다운은 밤에 내렸는데, 불과 4시간 전에야 민중에게 알려졌다. 대도시에서 일하던 많은 시골 출신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그들은 고향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경찰에 의해 구타당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확진자가 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부자들도 산소호흡기를 찾아 헤맸고, 길거리에서 사람이 죽어갔다. 길에서 시체를 화장했고, 강을 따라 시체가 떠내려갔다. 나도 얼마 전에야 깨달았는데, 이 모든 것이 내게 트라우마가 됐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정부에 순종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이 시기를 틈타 인도정부는 농업을 사유화하려고 했는데, 인도 농민들이 1년 동안이나 델리 게이트에서 농성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다가올 선거를 의식한 정부가 농업 사유화를 위해 내놓았던 법안을 철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쉽지 않다. 작가님 작품에 성소수자가 많이 나오는데 등장시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안줌은 안줌이다. 안줌은 그녀 자체다. she represent herself.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왜 다른 캐릭터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가? no character has one identity.
마지막 정리 발언으로 박혜영 교수가 아룬다티 로이의 에세이, '상상력의 종말'의 한 구절을 언급했다.
전날 아룬다티 로이가 연설의 마지막에 직접 읽었던 부분.
To love.
To beloved.
To never forget your own insignificance.
To never get used to the unspeakable violence
and the vulgar disparity of life around you.
To seek joy in the saddest place.
To pursue beauty to its lair.
To never simplify what is complicated or complicate what is simple.
To respect strength, not power.
Above all, to watch, to try and understand.
To never look away.
And, never, never, to forget.
Arundhati roy- the end of emagination
마지막으로 아룬다티 로이는 이번 한국행이 broken circle of isolation and depression and sadness라고 했다. 인도 남부에서 자란 내가 이렇게 한국에 와서 독자를 만난다는 것이 such a miracle 이라고. miracle of literature라고.
그렇지.
우리가 2년 동안 버텨낸 시간, 건너온 시간을 생각하면.
작가님은 쓰면서, 나는 읽어내면서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온 짧은 만남을 생각하면.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뭐겠어.
내 질문에, 따뜻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답해주시는데, 왠지 모를 울컥함이 있었다.
지난주에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 북콘서트를 갔었다. 오랜만에 독자들과 만나서 눈을 바라보니 소름이 돋는다고, 눈에서 느껴지는 힘과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고 했었다. 아룬다티 로이 작가와 나눈 짧은 대화에서, 서로 마주보았던 눈길에서 작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만나서야 알 수 있는 어떤 사람.
서울 가는 길은 두 시간, 돌아오는 길은 금요일이라 서울을 빠져나오는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왕복 다섯 시간을 운전했지만, 알 수 없는 힘으로 가득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홍지문 터널에서 조금 울기 시작했고,
터널을 빠져나와서는 조금 더 울었다.
눈물이 나오는 까닭은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하나 적어내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