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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Jul 08. 2022

영화 두 편.

가족과 기억에 대한.

영화 두 편,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음악과 대사 한 줄. 

닷새를 사이에 두고 본 영화 두 편은 가족과 기억에 대해 말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에서 지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다룬다. 어떠한 모습이라도 가족일 수 있다고 말한다. 코고나다 감독은 <애프터 양>에서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난 뒤, 그 상실을 헤쳐나가는 가족을 그려낸다.   

   

“소영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일본인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함께한 영화에서, 한국어로 전하는 말.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바꿔서 생각하게 된다. 일본 감독이라서, 감독의 지난 영화들을 꾸준히 봐 와서 그런지,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감독이라 어색함을 꾹 참고 보니, 여전한 감독만의 시선이 느껴졌다. 인물을 조금 빗겨서 담아내거나, 눈그늘이 짙지만,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가만히 받아내는 여배우의 얼굴이라거나, 모텔 화장실에서 씻어 엎어놓은 분유병을 가만히 보여주거나, 창문 밖으로 똑똑 떨어지는 전날의 빗방울을 어루만지는 손을 가까이 보여주는 장면이 그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감독이다. 가만히 지켜보거나, 물끄러미 담아내는 시선은 그런 발자취에서 비롯된 것 같다. 감독은 처음부터 가족, 상실, 기억에 대해 꾸준히 다뤄왔다. <환상의 빛>에서는 갑자기 자살한 남편을 잃은 부인을,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죽은 뒤 일주일동안 머무르는 ‘림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병원에서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 아버지를 다룬다. 감독 스스로는 ‘홈드라마’ 라고 부르는 장르.      

 


제게는 ‘이것이 홈드라마’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가족이니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데 아니라, 이를테면 ‘가족이니까 들키기 싫다’거나 ‘가족이니까 모른다’ 같은 경우가 실제 생활에서는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 한마디로 말해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시다.’ 홈드라마는 이러한 양면을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26쪽,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바다출판사, 2017)     


<브로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혈연 관계는 소영과 베이비박스에 버렸던 소영의 아기, ‘우성’ 뿐이다. 낡은 세탁소 봉고차를 타고 떠나는, 조금은 이상하고 느슨한 형태의 가족 구성원은 모두 다섯.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과 베이비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 둘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데려와서 아기가 필요한 부부에게 돈을 받고 판다. 버려진 아기를 좋은 가족에게 인도한다는 말로 둘러대지만, 스스로도 안다. 이 일은 불법이라는 것을. 그래서 비오는 날 베이비박스에 버린 우성을 다시 보러 온 소영이 경찰에게 전화를 하려 하자, 세탁소로 데려와 계획을 말한다. 결국 돈 때문에 하는 일 아니냐며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소영은 우성의 새로운 부모를 찾는 길에 함께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형사가 나타나고, 동수가 자랐던 보육원에서 이들을 몰래 따라온 꼬마 해진까지. 낡고 털털거리는 봉고차를 타고 길을 떠난 다섯은 어느새, 가족의 모습을 닮아간다. 2018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어느 가족>과 비슷하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약 제 영화에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386쪽, 같은 책 )     



사소한 일상. 모텔 방 한 칸에서 다섯이 몸을 눕히고, 밥을 먹고, 휴게소에서 풍선 터뜨리기를 하고, 밤에는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거나,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하는 사이. 감독은 꾸준히 말한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이는 가족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고. 다섯 사람이 제법 가까워졌을 때, 유일한 ‘엄마’인 소영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해달라고 한다. 조금은 겸연쩍어서, 불을 끄고 누운 남자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하는 말. 소영 곁에 바짝 붙어 누웠던 해진이, 소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이어 말한다. “소영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극장에서 조금 울컥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답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넌지시 둘러 말하지않고, 눈 앞으로 말을 던지는 느낌이 들었다. 담담하게 영화를 마저 보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운전을 할 수 없어서 길 옆에 세웠다. 뒷골이 확 땡겨서 입으로 후후 숨을 내쉬며 숨을 조절했다. 한참을 울었더니 윗입술이 쥐가 난 것처럼 딱딱해졌다. 어느 정도 울음이 잦아들어서 출발했다가 이내 엉엉 울면서 집까지 갔다. 너무 많이 울어서 힘이 쪽 빠졌지만 다음날, 언제 울었나 싶게 아무렇지 않았다. 세찬 소나기가 내리듯이 퍼부은 감정은, 고여있지 않고 말끔히 사라졌다.     



<애프터양>은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단편 ‘saying goodbye to Yang’이 원작이다. 가까운 미래, 형제 노릇을 하는 AI로봇이 가족처럼 자리 잡았다. 양은 제이크 가족의 AI.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를 위해 중고로 샀다. 부부는 중국의 문화와 언어, 뿌리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은 미카를 ‘메이메이’로 미카는 양을 ‘카카(거거)’로 부르며 서로를 챙기고 따른다. 어느 날 갑자기 양은 작동을 멈춘다. 축 늘어진 양을 어깨에 둘러매고 여러 곳을 다니던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불법 수리공을 찾는다. 로봇을 분해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양의 가슴팍을 열어서 기억장치는 손에 넣는다. 양의 기억은 짧지만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하나씩 불러내 기억을 더듬으며 제이크는 양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는다. 회사 일로 바쁜 아내와 서서히 멀어지던 사이도 양의 기억을 공유하며 다시 가까워진다. 영화는 담담하게, 심심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AI가 가족이 될 수 있는가?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가족이란 무엇인가?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AI와 사람의 기억 사이에 미묘한 차이는 인간과 AI의 차이인가?’


기억을 더듬어가던 제이크는 양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최근의 기억을 열어보던 제이크는 오래된 알파 기억을 열어본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던 최근 기억과는 달리, 알파 기억은 마치 은하계의 별처럼 뭉쳐있다. 열어보는 순간 폭죽이 터지듯 사방으로 퍼지는 기억은 마치, 초신성이 폭발하는 듯, 우주를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기억이라는 우주. 이 장면에 흐르는 연주 음악이 ‘MIZUIRO.’ 일본어로 水色.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가락을 첼로가 연주하다가 맑은 피아노 소리가 합쳐지는 음악이다. AI로서 만난 첫 가족과 그곳에서 만난 첫사랑의 기억이 음악과 함께 흘러간다. 어리던 남동생이 자라 어느새 어른이 되고, 젊고 아름답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다. 모든 걸 지켜보는 양은 로봇이기에 늙지 않는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양의 표정은 AI같지 않은 피로와 슬픔이 언뜻 비친다. 영화는 양이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아닌지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양이 작동을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가족을 잃고 우리가 기댈 곳은 기억뿐인 것처럼, 양을 잃은 슬픔을 기억을 더듬으며 이겨낸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음악이 흐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책 제목을 무수히 되뇌었던 것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음악을 떠올린다. 떠올릴 때마다 살짝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마음을 잘 갈무리해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내 몫이다.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신’ 가족.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두 편의 영화가 이토록 마음에 남은 것은, 중년에 들어서면서 부쩍 가까워진 가족의 죽음과 미처 풀지 못한 채 나아가는 삶에 대한 버거움 때문이다. 살짝 살짝 가라앉는 기분을, 조금씩 쳐 올려가며 산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라는 말. 생각보다 들은 적도, 누군가에게 해 준 적도 없는 말이다. 나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종종 말해야지. “○○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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