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말하기
클레어 키건의 중단편 『맡겨진 소녀(foster)』는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 동안 친척 집에 맡겨지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짧은 시간동안 함께 하지만, 그 시간이, 우리는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를 어떻게 영원히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 쪽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집으로 가는 날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다. 아이는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킨셀라 아주머니, 아저씨는 어떤 사람일지 상상한다. 되도록 좋은 쪽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척집에 살러 가는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지 짐작이 간다. 미리 나와서 기다리던 존 킨셀라는 아버지 댄과 이야기를 나누고 에드나 킨셀라는 아이를 밖으로 꺼내서 입부터 맞춘다. ‘입맞춤을 받은 내 얼굴이 아주머니의 얼굴과 맞닿은 채 뜨거워진다.(13쪽)’ 아주머니는 처음부터 아이에게 “들어가자, 아가.” 라고 부른다. 집으로 들어와 얼른 밥을 먹고 금방 돌아가려고 하는 무심한 아버지하고는 다르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초가 참 잘됐다고 거짓말을 한다. 사실은 돈이 없어서 아직까지 건초를 못 해놓았다. 아이가 에드나에게 이미 말했기 때문에, 아이는 그 자리가 더욱 불편해진다. 작가는 댄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 아이 어머니(메리)에게 가져다주라며 챙겨준 루바브 줄기가 떨어져도 절대 줍지 않는 사람이다.(에드나 또한 절대로 줍지 않는다.) 서둘러 가느라 아이의 짐도 내려주지 않고 가버리는 사람이다. 도박으로 암소를 잃어 식구들을 가난에 쪼들리게 하는 사람이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뜨거운 물에 깨끗이 싹 씻긴다. 그리고 집에 있는 낡은 옷(바지와 체크무늬 셔츠)을 입혀 우물에 데려간다. 생각보다 깊은, 차갑고 맑은 우물을 컵으로 뜨는 동안, 아주머니는 아이가 빠지지 않도록 바지 벨트를 잡아준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30쪽)
아이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세례를 받는 것처럼, 시원한 우물물을 마시며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잊으려고 한다. 새로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지내야 하지만,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시원한 우물물을 마시며 새롭게 태어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말을 찾으려고 한다.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 스스로, 이곳에 있어도 되는 까닭을 찾아냈다.
아이가 앞으로 쓸 방 벽지에는 색색의 기차가 달리고 있고, 군데 군데 작은 남자애가 그려져 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밤이 깊은 뒤에 아주머니가 들어와 아이 곁에 앉는다. 그리고 ‘아이가 불쌍하다.’고 ‘네가 내 딸이라면 절대 모르는 사람 집에 맡기지 않을 텐데.' 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아이는 자다가 오줌을 싼다. 눈치 챈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을까 걱정하지만 아주머니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매트리스를 마당으로 끌고 가 깨끗하게 빨아 말린다. 그걸 본 아저씨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아이가 온 지 겨우 이틀째 인데, 아저씨는 “꼬맹이 거기 있니?” 하고 부른다. 그리고 진입로 끝에 있는 우편함까지 힘껏 뛰어갔다 돌아오라고 한다. 아이가 잘 달린다고, ‘이번 여름이 끝날 때쯤이면 순록처럼 달리게 될 거’(42쪽)라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저녁 뉴스를 보는 내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맨발을 느긋하게 어루만진다. 발가락이 길고 멋지다고 말하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귀지를 파준다. 머리빗으로 백까지 세며 머리칼을 빗어준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오줌을 싸지 않고 일어난다.
아이의 삶은 두 부부와 함께 흘러간다. 일상을 살아내는 종교의식 같기도 한, 단정하게 삶을 살아내는 일들. 아침을 먹고, 루바브를 뽑아 타르트를 만들고, 거미줄을 걷어내고, 빨래를 걷고, 스콘을 만들고, 욕조를 문질러 닦고, 계단을 쓸고, 가구에 광을 내고, 양파를 끓여 소스를 만들고, 꽃밭에서 잡초를 뽑고, 해가 지면 여기 저기 물을 준다. 저녁을 먹고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잠에 든다. 단단한 어른이 주는 단단한 안정감이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절대 서두르지 않지만 쉬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19쪽)이기 때문에, 아이도 덩달아 그렇게 살아간다.
어느날 오후, 존 아저씨는 아이에게 새 옷을 입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아주머니는 그 말에 위층 욕실에 올라가 운다. 아주머니의 반응에 예민해진 아저씨는 아이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지고 만다.(“시내에 나가려면 너도 손이랑 얼굴을 씻어야겠다.”, “아빠가 그 정도도 안 가르쳐줬니?”) 시내에서 아저씨는 집에서 한 말에 대한 미안함으로 1파운드 지폐를 건네고 셋은 그 돈으로 산 간식을 함께 먹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옷 가게 점원은 아이와 에드나가 닮았다고 말하고, 에드나는 “우리 집안은 다 커요.”라고 말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웃집 장례식에 간 아이는 지루함에 밀드러드 아주머니 집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따라 나선다. 밀드러드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자질구레한 질문을 퍼붓다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옷장에 아직도 그 애 옷이 걸려 있어?” 킨셀라 부부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개를 따라서 거름 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빠져 죽었다. 두 사람이 고통으로 하룻밤 만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는 것도 알게 된다. 곧 뒤따라 온 부부를 따라 집으로 가는데 밀드러드가 무엇을 묻더냐는 질문에 아이는 솔직하게 답한다. 존은 커다란 달을 램프 삼아 아이와 바닷가에 다녀온다. 그리고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해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 멀리 보이던 불빛은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났다. 마치 두 사람과 아이처럼.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
어느 목요일, 편지가 오고, 아이는 가슴이 철렁한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아이는 알면서도 “그럼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라고 묻는다. “그렇지만 너도 알고 있었잖니?”라고 말한 아주머니는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여기서 영영 살 수는 없잖아.”를 덧붙인다. ‘가짜 부모’라는 말은 마지막에 아이가 하는 행동과 대비되어, 두 사람과 아이의 유대관계가 얼마만큼 끈끈했는지를 보여준다. 두 부부가 이웃을 도우러 집을 비운 사이, 아이는 아주머니를 위해 홀로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간다. 처음 왔을 때보다 물이 많이 불어난 우물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물에 빠지고 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 돌아온 아이를, 두 부부는 정성껏 돌본다. 마침내 다시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가니 언니들은 전보다 더 말랐고,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는 재채기를 하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질 못했다’고 비난한다. ‘본인도 아시잖아요.’라는 비수를 꽂는 말에 킨셀라 부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는 그 순간, 제일 잘 하는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을 한다. 아이는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 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96쪽) 심장을 손에 쥐고 달리던 아이는 아저씨를 따라잡고, 아저씨는 아이를 보자마자 딱 멈추더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 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 든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이 느껴지고 숨이 헐떡거리더니 심장과 호흡이 제각각 다르게 차분해진다. (97쪽)
아저씨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아버지를 보며 아이는 한 마디 내뱉는다. “아빠.” 하고. 아이는 더 이상 ‘에’라고 답하지 않고 ‘네’라고 답한다. 아이는 자전거를 탄 사람도 못 쫒아올 정도로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아이는 더듬거리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는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고, 신발끈을 묶어주고, 무릎 위에 앉히고 하나도 무겁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
1945년에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40년 동안 태어난 아이의 일생을 조사한 종단연구 결과는 널리 알려져있다. 집안환경이 좋지 않은 고위험군 201명 가운데 무려 72명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어떤 차이가 결정적이었는지를 살펴보니 그건 바로 집안에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단 한 명이라도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말을 들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아이는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아이는,
몇 달 동안 킨셀라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말하지 않고도 전해지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래서 아이는 언니들이 ‘잉글랜드에서 온 사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멀뚱히’ 볼 정도로 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거듭 물어보는 엄마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자기 심장을 손에 쥐고 바람처럼 달려가는 아이로 자랐다.
작가는 짧은 분량의 소설에서 아이와 두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 하나 쌓으며, 마지막에 아이가 달려갈 수밖에 없는 인과성을 만들어낸다. ‘잘 쓴 산문 한 조각은 잔디에 놓인, 손으로 아름답게 색칠한 연과 같’고 ‘인과성은 그다음에 나타나 그것을 공중에 띄우는 바람’이라는 조지 손더스의 말이 생각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이, 그 일을 어찌나 탁월하게 해 내는지, 마지막에 아이가 달릴 때, 마치 나도 같이 뛰는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나도 내 심장을 쥐고 달려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