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파제트병
지난 몇 년간은 병원 다니는 일과가 내 일상 전부를 차지했던 것 같다.
유방암 수술, 시험관 시술, 산부인과 그리고 다시 유방외과.
유방암 수술 후 나는 임신을 위해 자연치유를 선택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부작용이 많은 호르몬치료와 항암치료같은 사후치료를 포기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아이를 꼭 가져야만 했다. '재발될 확률이 5% 정도라는데 나한테 그런 불행이 오겠어?'라며 대책없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시험관 시술 2차만에 쌍둥이를 품었다. 배아 1개를 이식했는데 그 하나가 분열을 했고, 일란성 쌍둥이를 품게됐다. 이젠 나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에 정말 뛸듯이 기뻤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행복했고 벅찼다.
임신과 동시에 고위험 산모가 되는 쌍둥이 임신은 항상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살게 했지만 매주 잘 커가는 쌍둥이들 덕분에 늘 행복했다. 남편은 물론 가족들, 친구들 심지어 동네 슈퍼 사장님까지도 나를 공주 대접해주며 온 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남편이 이렇게까지 '다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남편은 대문자T이다)
아이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고, 언제든 부를 수 있는 호출벨을 만들어 주는 모습에 무척 놀라우면서 살짝 얄밉기도 했다. 동시에 그만큼 아이를 바랐지만 나에게 말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임신 기간 동안 사실 내가 언제 암이란걸 걸렸었나 싶게 이것저것 먹고 싶은대로 먹었다. 여기서 패착이 일어난건지 아니면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호르몬 변화가 컸던건지, 아니면 원래 생길 암이었던 건지...
여하튼 임신 8개월차에 수술한 쪽 유방이 재발되었다.
12주쯤부터 유난히 유두에 각질이 많이 생겼지만 임신하면 그렇기도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유방암 재발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간헐적으로 통증이 생기고 유두에서 피가 났다. 그때에도 재발됐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임신하면 몸에서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며 별거 아닐것 같다는 산부인과 의사 말이 맞길 바랐지만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유방외과 의사의 말이 맞았다.
어쩐지 요즘 너무 행복하더라니... 이건 뭐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도 아니고. 왜이렇게 행복한가 했다...
결국 출산을 한 달 남기고 유방암 재발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출산 후 수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불행의 늪에 깊게 빠지려고 할 때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배냇짓을 해대고 미소를 날려준다.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아이를 끌어 안고 아이와 달콤한 눈빛과 뽀뽀를 나눌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아이들이 깊은 좌절에 빠지려는 나를 항상 구원해준다.
재발 판정에 망연자실했지만 아이들이 또 한번 힘을 내게 만들어줬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막막하다는 말은 방법이 없을 때나 쓰는거지. 심란한 건 사실이지만 막막하진 않다.
나에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고, 해나갈 의지가 있고, 도와줄 사람이 있다.
산이라면 넘고, 강이라면 건너자.
우리 고다 고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