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타자화하는 서울의 시선
여수의 관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였다. 나는 외국인 2명과 여수를 여행하는 부분을 맡았다. 외국인이라는 낯선 사람의 시선으로 여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의도였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사람이 와서 ‘여수를 보니 마치 제 고향에 있는 베네치아를 보는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이 유발하는 ‘낯설게 다시보기’와 같은 효과다. 작가와 이야기해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그 사이에 커피와 디저트로 하루를 꽉 채운 촬영을 계획했다. 그리고 이들의 배도 꽉 차게 될 예정이었다.
아침 10시 여수엑스포에 외국인 출연자 2명이 도착했다. 한 명은 크리스 존슨으로 일명 크서방이라 불리는 미국 사람이었다. 한국 여성분과 결혼해 고려대 옆 응암동에 살고 있다고 했다. <백년손님>으로 크서방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tv와 라디오를 가리지 않고 방송가를 누비는 프로 방송러였다. 당연하게도 한국말은 한국 사람보다도 맛깔스럽게 잘했다. 반면 같이 온 독일에서 온 출연자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대신 잘 웃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니 그냥 웃어넘기는 것, 나도 해외에 나가서 자주 해봐서 아는 반응이었다. 큰일 났다. 반응을 촬영해야 하는데 한국말을 못 하는 출연자가 와버렸다. 이 프로그램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처럼 통역사가 따라다니며 통역해주는 촬영이 아니었다. 외국인 출연자의 방송 출연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을 담당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이 생겼다. 이 회사 대표가 추천을 해줬는데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런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델 포스의 독일인 출연자는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아침 식사 촬영을 하러 갔다. 메뉴는 여수식 백반이었다. 지역에는 지역마다 특색을 가진 백반이 있다. 여수는 해산물이 풍부해 백반에도 바다가 담겼다. 게장, 꼬막, 이름 모를 생선들과 나물, 제육볶음까지 한상 떡 벌어지게 백반이 차려졌다. 촬영은 프로방송꾼인 크리스가 주도해나갔다. 한 상 가득한 차림을 보며 입을 쩍 벌리는 리액션을 뽑아줬고 왕꼬막을 먹을 때도 그냥 먹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에 맛스럽게 먹었다. 그러면서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독일 출연자를 함께 끌고 나갔다. 게걸스럽게 왕꼬막을 먹는 게 방송 거리가 될 거라 판단했는지 독일 친구에게 한 입에 먹으라고 ‘원샷’을 건했다. 그리고선 건배를 하고 같이 왕꼬막을 ‘원샷’했다. 다음으로 방송인 크리스는 “역시 여수 해산물이 싱싱해요. 바로 앞바다에서 잡았나. 진짜 여수 백반 최고예요.”라는 편집에 필요한 멘트를 쳐주었다.
그런데 독일인 친구가 왕꼬막을 먹자마자 표정이 안 좋아졌다. 잠시 씹다가 고개를 돌려 왕꼬막을 휴지에 뱉었다. 왕꼬막이 비린 건지 아니면 해산물을 잘 못 먹는지 싶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채식주의자란 답이 돌아왔다. 오 마이 갓.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는 촬영에 채식주의자인 출연자를 보냈다니. 이건 출연자의 문제가 아니라 매니지먼트 대표의 잘못이었다. 출연자 입장에선 채식주의자라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는데 회사에서 촬영을 가라고 해서 ktx를 타고 여수까지 갔더니 못 먹는 음식을 먹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못 먹는 음식을 먹는 척해야 해서, 게다가 한국말도 못 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해서, 그리고 제작진한테 미안한 마음에, 서럽고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도 육류만 안 먹는 소프트한 채식주의자였다. 해산물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여수는 해산물에 강점이 있는 도시라 고기는 메뉴로 고르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 것만 먹고 그것에 대한 평가를 말해달라고 했다. 한국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면 몸을 쓰든 영어를 쓰든 해서 어떻게든 느낌을 전달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크리스가 옆에서 잘 이끌어줬다. 워낙 방송을 잘하니까 한국말 못 하는 독일 친구를 놀려가며 방송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상하게 그 독일인 출연자가 마음이 쓰였다. 심성은 착해 보였는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침과 점심 식사를 촬영하고 거기다 전통시장에서 팥빵과 떡볶이, 김밥까지 먹고 커피 먹는 장면을 촬영하러 갔다. 쉴 새 없이 음식을 먹어야 했던 출연자 입장에서 단비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촬영팀은 여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고소동 카페로 이동했다. 루프탑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켰다. 외국인 출연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여수의 아름다운 바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 장면을 촬영하고 촬영팀도 잠깐 쉬기로 했다. 제작진도 커피를 시켰고 배가 불러 힘들어하는 외국인 출연자분들도 쉬라고 했다. 나는 촬영을 하며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바라본다. 카메라가 꺼진 그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기억해뒀다가 촬영에 다시 들어가면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연출한다. 그러면 연출을 하더라도 만들어낸 작위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고 느낀 모습이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외국인 출연자들은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정말 관광객이 된 것처럼 즐기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그러다 영상통화를 걸어 독일 친구를 아내에게 소개해줬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같이 오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는 것, 정말 여행자가 되어야 할 법한 일이다. 독일 출연자는 사진을 찍었다. 바다를 향해서 셔터를 누르다 크리스도 사진으로 찍었다. 그러다 바다가 아닌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렌즈가 가리킨 방향은 바다와 정반대의 공간이었다. 바다도 없고 카페도 없는 그 공간에서 독일 출연자는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한국말도 할 줄 모르고 살아있는 생물은 잘 먹지도 않는 채식주의자인 독일인에게 여수의 무엇이 그의 관심을 샀을까.
촬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방송까지 시간이 많이 없었다. 지나간 촬영의 기억은 묻어두고 지금 당장 내가 편집할 수 있는 영상만 쳐다보았다. 촬영해온 영상 속 독일인은 여전히 한국말을 못 했고 해산물을 먹을 때 전혀 맛있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젠장. 다행히도 우리의 방송인 크리스가 있었다. 많은 멘트로 상황을 살려준 크리스를 믿고 편집실에서 밤을 밀어냈다. 컷 편집을 끝내고 마무리 단계인 종편을 하는 단계였다. 독일 출연자가 촬영하면서도 사진을 많이 찍어서 우리는 방송에 그가 사진을 찍는 여행자라는 콘셉트를 살리기로 했다. 씬의 마무리를 그의 사진으로 정리하듯이 맺기로 했다. 독일 출연자가 찍은 사진을 메일로 받았다. 그가 찍은 사진을 천천히 둘러봤다. 잘 못 먹는 해산물 배반을 열심히 찍었구나. 전통시장에서 뜨거운 팥빵을 먹는 크리스의 표정은 참 재밌다. 여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는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아름답게 잘 담았다. 그리고 촬영 날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 사진을 발견했다. 바다를 등지고 렌즈가 담은 풍경은 여수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옥상에 빨래와 생선, 오징어들이 마르고 있는 풍경이었다. 여수 바다가 보이는 루프탑을 내버려두고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이 어느 주택 옥상에 널려있는 것들이라니. 나는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방송에는 담지 못했지만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순도 100% 외국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 주민들의 삶이었다. 옥상에 빨래를 널고 바짝 마른 서대 따위를 널어놓는 그 장면이 그에게는 여수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세련된 루프탑 카페가 아니라 바다 마을의 삶이 묻어있는 허름한 옥상이 여행자에겐 진짜 여수였다. 독일 출연자는 전혀 관광지 같지 않은 그 모습에 왜 관심이 갔을까.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는 여행자가 여행을 하는 세 가지 방법이 나온다. 첫 번째 여행은 여행자가 여행지를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는 1인칭의 '여행'이다. 여행지에 가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박물관을 가고 음식을 먹는 것이다. 여행을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는 장면이다. 이런 여행이 아닌 여행도 있을까?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 대신 여행의 정보를 얻어주는 '비여행'이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는 금강산에 오르지 않고 노비를 대신 시켰다고 한다. 육체적인 에너지를 쓰지 않고 대신 아래사람이 가서 보고 온 것을 전해들은 것이다. 두 번째 여행은 오로지 한 사람의 정보만 전달받는다. 마지막 세 번째 여행은 여러 사람의 다양한 여행을 종합해 여행지에 대한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탈여행'이 있다. 여러 사람이 가져 온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가공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는 낭만이, 뉴욕에는 열정이, 로마에는 휴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파리는 사실 깨끗한 도시가 아니지만 여행자는 1인칭의 '여행'보다 누군가 종합해놓은 '낭만'의 도시로서 파리를 여행한다. 세 번째 여행 방법인 '탈여행'으로서 여행은 콘텐츠가 된다.
김영하 작가가 말한 세 가지 여행은 여행자의 시선에 따라 나뉜다. 첫 번째 여행은 나의 시선으로 하는 여행, 두 번째 여행은 남의 시선으로 하는 여행, 세 번째 여행은 창조된 시선으로 하는 여행이다.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을 촬영하며 가장 이색적인 여행을 했다고 말한다. 김영하 본인이 여행한 것은 1인칭의 여행이었고 출연자들이 따로 여행을 하고 저녁을 먹으며 말해준 여행은 '비여행'이었다. 그리고 <알쓸신잡> 방송을 보며 출연자 모두의 여행을 관찰한 제작진이 창조한 여행은 '탈여행'이었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공유되는 현대 사회에서 '탈여행'의 시선은 더 빠르고 강하게 창조된다. 인터넷에 누군가 정리해놓은 여행 코스를 통해 누군가는 여행한다. 또 누군가의 여행은 블로그 후기로 생산된다. 한 번 굳어진 여행지에 대한 인상은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고 강화된다. 하나의 시선으로 유통되는 관광지가 탄생한다.
나는 반골 기질이 있는 여행자였다. 파리에 가서도 에펠탑에 등을 돌리고 여행한다고 할까나. 여행지의 유명한 장소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생겼다. 결국 나의 선택은 '개고생'이었다. 간단하게 하드코어한 여행의 약력을 적어보자면 서울에서 해남까지 무전여행, 인천 - 부산 자전거 여행 2번, 강원도-부산 자전거 여행, 내일로 자전거 여행 등이 있다. 우선 거리가 꽤 길다. 걷거나 자전거 타고 가기에 먼 거리를 부지런히 고생해가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계획이 없었다.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었다. 가는 도중에 배가 고프면 어느 곳이든 들어가 끼니를 때웠고 해가 지면 숙소를 정했다. 나에게 여행 중의 식사는 주로 편의점과 김밥천국이었다. 그러다 간혹 저녁 특식으로 지역 특산물을 먹기도 했다. 그 때 그 소중한 한 끼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여행지에서 얻은 것은 그 지역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었다. 단순히 관광지 한 곳으로 여행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며 걸으며 길 위에서 봤던 지역의 풍경과 사람들이었다. 특히 지역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건 그 지역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경주역에서 문무대왕릉까지 자전거로 가던 길이었다. 지도상으로는 50km정도 거리였기에 3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길이 산을 가로질러 가는 길인 줄은 몰랐다. 자전거로 산을 오르고 내린 끝에 해가 다 저문 동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6일동안 경비가 30만원뿐이던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주로 찜질방에서 숙소를 해결했다. 하지만 후미진 바다마을에 찜질방이 있을리가 없었다. 민박을 잡아야했는데 왠지 그 때는 민박이 바가지의 대명사처럼 느껴졌다. 조심스레 가격을 물어봤다. 3명에 5만원이라고 했다. 한 번 깍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기에 5만원에 아침도 줄 수 없는지 물었다. 어차피 아침 장사를 하니 아침을 차려주겠다고 했다. 거래를 성사시키고 우리는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횟집에서 컵라면을 사다가 먹는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주인아주머니는 김치와 밥을 주셨다. 그 때는 단 돈 천원 아끼는 게 큰 일이라 횡재했다며 넙죽 받아먹었다.
다음 날 식당으로 내려가니 맑은 지리탕이 끓여져있었다. 도시 사람들에겐 맑은 국물의 매운탕이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한 숟갈을 떠먹고 나선 말을 잃고 그릇을 비웠다. 어떤 곳에서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보다 기억에 남는 인생 음식이었다. 자전거 여행으로 몸이 힘들었고 잘 먹지 못해 서글펐다. 물론 시골의 인심이라하기엔 너무 싼 가격에 그들의 장사를 방해한 것만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구질구질한 여행자에게 문무대왕릉 근처 바다마을의 지리탕은 최고의 음식이었다. 유명하지도 번화하지도 않은 여행지의 한 끼 식사는 여행자로서 나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있다. 민박집을 나올 때 감동한 우리들은 주인집의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남겼다. 이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여행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반골기질의 여행자로서 나의 자부심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배제한 채로 여행한다. 남의 시선이나 누군가 만들어놓은 시선을 따라가는 여행을 한다. tv프로그램에서 여행지에 대한 인상을 얻고 인터넷에서 구체적인 여행 정보를 얻는다. 보통 여행을 가기도 전에 모든 계획을 만들어놓는다. 첫 번째 날 점심은 어디에서 먹고 숙소는 어느 곳으로 갈지, 두 번째 날은 또 어디로 갈지, 이처럼 우리는 가보지도 않은 곳의 정보를 얻어 계획해놓은 길을 따라간다. 여수를 여행할 때 점심에는 간장게장 백반을 먹고 저녁에는 여수밤바다가 보이는 낭만포차를 가곤 한다. 여행자는 여행지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정해놓은 여행지의 총체적인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여행은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이 맞는 걸까?
물론 아무런 정보 없이 여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여행지가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여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여행자는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어야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여행 코스를 안전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함께 촬영을 했던 독일인 출연자가 찍은 사진은 온전히 그의 시선이었다. 한국어를 잘 못할 정도로 한국 문화와는 거리가 먼 외국인의 입장에서 독일인 출연자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본인이 바라보고 싶은대로 여수를 이해했다. 그의 눈에 여수는 집 옥상에 빨래와 함께 생선을 말리는 곳이었다. 그런 어촌 풍경이 외국인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것이다. 반골 기질을 가진 여행자로서 모두가 시선을 주지 않는 곳에 셔터를 누른 독일인 출연자를 보며 나는 묘한 동질감과 대견함을 동시에 느꼈다. 본인만의 방식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수에 오기 전 낭만포차를 꼭 가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3일>에서 본 낭만포차에는 여수 바다의 낭만과 포장마차에서 열심히 장사하는 사장님들의 열정이 있었다.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이 순수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묘하게 응원을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낭만과 열정이 어우러진 낭만포차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열정적인 기운을 받고 싶었다.
낭만포차가 있는 종포해양공원은 10년 전, 스무살에 여행을 갔던 곳이기도 했다. 그 때 그곳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해양공원에는 공사가 미처 끝나지 않아 타일이 깔리다 만 채였고 가로등도 드문드문 켜져 있어 어두운 망망대해 한 가운데 서있는 것 같았다. 주변에 있던 수산시장마저 불이 꺼져 있어 분위기는 흡사 조폭들이 마약을 거래하는 인천 부둣가처럼 삭막했다. 그럼에도 여수에는 바다가 있고 야간 어업을 나가는 배가 떠있었다. 해운대처럼 휘황찬란한 바다는 아니었지만 여수의 바다는 그 나름의 활기로 넘실거렸다. 실망도 감탄도 없이 공유 자전거를 타며 바다 마을로서 여수를 느꼈다. 스무 살 때 느꼈던 바다 마을 여수를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바다가에 있는 한적한 낭만포차를 떠올렸다.
여수 mbc에 합격하고 엄마와 낭만포차에 갔다. 스무살 군대가기 전에 친구들과 갔던 그곳으로, 이번에는 부모님과 함께였다. 10년 사이에 여수 바다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포장도 안돼있던 도로는 반짝이는 조명으로 근사하게 꾸며져있었다. 그 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여수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낭만포차에도 역시 사람이 많았다. 어느 포장마차나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엄마는 평소 줄을 기다려가며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취업시키고 난 뒤라 마음이 후해졌는지 흔쾌히 줄을 기다려가며 낭만포차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이 술을 마셨다. 낭만포차의 대표 메뉴인 해물 삼합을 시켜놓고 엄마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오징어, 관자에 김치와 삼겹살을 같이 구워 먹는 해물 삼합은 바다 앞에서 먹어서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처음 마시는 술, 바다 앞, 딱 좋은 날씨, 누군가 낭만이 뭐냐고 물어보면 지금 이 정도면 꽤 낭만적이지 않냐고 대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스무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취업 후 엄마와 함께했던 낭만적인 여수의 바다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수라는 여행지에 사는 게 생각보다 불편했다. 점심을 먹으러 여수의 관광구역인 종포해양공원과 구도심 지역으로 가면 차가 자주 막혔다. 복잡한 차량 행렬을 뚫고 식당에 도착했지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미 관광객들이 자리를 차지한 후였다. 점심 시간에 잠깐 오는 것도 불편한데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어떨까. 여수에 사는 나조차 여수의 관광지에 갈 때면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아 못내 미안해졌다.
관광지에 오버 투어리즘이라는 주제가 화두가 됐다. 여수 밤바다에, 전주 한옥마을에, 강릉 커피거리에, 제주 애월에, 과거에는 없던 관광지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비명은 관광지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관광도시에 사는 시민으로부터 조금씩 새어나왔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된 것이다.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졌고 차가 지나갈 수 없을만큼 교통량이 많아졌다. 이를 감내해야하는 건 아무런 혜택도 없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여수에 살게 되면서 불편을 피부로 느꼈다. 나는 관광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살았다. 여수에 살았지만 여수 바다는 잘 보지 않게 됐다. 관광객이 많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수 해양공원은 차가 너무 많아서 주말이면 그 근처는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던 구도심의 2차선 도로는 택시라도 서게 되면 그 뒤로 정체가 이어졌다. 주차 문제는 더 심각했다. 골목 사이사이 댈 수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주차가 돼있었다. 사실 낭만포차가 있던 해양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여수가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아졌다. 종포해양공원은 사실상 노상 포장마차가 됐다. 여수에 산 지 오래되지 않은 나조차도 휴식 공간을 관광객들에게 빼았긴 기분이 들었다. 공원이라는 시민의 휴식이 피하고 싶은 회피의 공간이 된 것이다.
관광지에 사는 주민이 되면서 이런 모든 불편함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아마 '시선'을 느낄 때인 것 같다. 관광객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관광지를 바라보고 있다는 그 거대한 시선 말이다. '탈여행'으로 창조된 낭만의 공간 여수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방향으로 향한다. 관광지에 씌워진 시선 속에 관광지는 물론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마저 같은 시선 속에 놓이게 된다. 낭만의 공간에 사는 낭만적인 주민들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관광지 주민의 일상은 관광객의 시선만큼 낭만도 온정도 없이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관광지에 대한 시선 속에 주민들은 지속적인 압력을 느끼게 된다. 주민들에게는 오래동안 살아온 터전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그 점이 관광지에 사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가장 큰 불편함이자 생존의 문제가 된다.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감천마을, 피난민들이 비탈에 집을 지어살던 달동네였다. 그런 곳이 순식간에 관광지가 되면서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감천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다. 갑작스레 동네가 관광객들로 붐비게 된 상황이 주민들은 당황스러운 것이다. 감천마을의 한 주민이 말했다. 자존심이 상한다고.
주민들은 자신의 시선을 빼앗겨버린 공간에 살게 됐다. 수 십년동안 일상을 살아왔던 공간에 관광객의 거대한 물결이 덮쳤고 주민들의 공간은 이전의 공간이 아니게 됐다. 주민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복잡하고 다양한 지역에 대한 시선이 관광객들의 '탈여행'의 시선 속에 모두 묻히게 됐다. 그 공간은 낭만이고 로맨스고 힐링의 공간이 됐다. 누군가 주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낯선 시선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 거대한 관광지의 시선 속에 주민들은 자신의 시선을 잃게 됐다. 자신의 시선을 빼앗긴 주민들은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낭만의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낭만적이라고 느끼지 않는 곳이 낭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 살아보니 주민들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낭만포차의 낭만, 여수밤바다의 낭만이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낭만은 여행지를 편리하게 소비하기 위한 도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시선을 만든 그룹이 다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쪽의 의견이 타당할 거라고 믿는다. 사회에 통용되는 다수의 의견을 거스르기 어려운 인간은 그래서 다수의 시선 속에 자유로울 수 없다.
관광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관광객이 관광지를 하나의 시선으로 덮친다. 소수의 주민들은 거대한 사회적 시선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사회적으로 소수인 집단이 다수에게 저항하려면 힘이 있어야한다. 조용히 살던 주민들에게 관광객의 침략을 거부할 연대가 없는 것이다.
관광지가 아닌 곳은 어떨까. 내가 살던 구리시를 생각해보면 관광지가 아닌 도시는 주민들의 시선이 더 강력한 곳이다. 서울 바로 옆에 있는 구리시는 관광객보다 압도적으로 주민이 많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동구릉 정도가 관광지인데 이곳도 관광객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구리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볼 수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인구가 약 1000만 명 정도인데 관광객도 비슷한 수준이다. 주민들과 관광객의 힘의 균형이 맞아들어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은 그들의 시선으로 관광객의 시선에 대응한다. 서울 시민들에게 서울은 아직 그들의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지를 바라보는 힘의 논리는 서울과 지방이라는 구조에도 적용된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나머지 인구가 전국에 퍼져있다. 그래서 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의 힘이 지방에 대한 시선을 결정할 수 있다. 인구가 곧 힘이 되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힘은 지방을 바라보는 시선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지방을 타자화하는 서울의 힘인 것이다. 서울 사람들에게 여수밤바다는 낭만이 있고 부산에 가면 첫사랑이 떠오르는 곳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다른 곳과 다를 곳 없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일 뿐인데 말이다.
지방의 낭만은 서울 사람이 만들어내는 편리한 쉼터이다. 부산에 가면, 여수밤바다, 다 어딘가에서 그곳으로 가야 한다. 삶이 힘들면 주말에 하루 이틀 가서 쉬고 오는 곳이다. 낭만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지자체는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그걸 이용한다. 낭만적 지방은 그 속에 살아가는 낭만적이지 않은 시민들에게 조금의 자부심을 주는 동시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맛보게 한다. 낭만은 이곳에 있지 않다. 서울의 빼곡한 만원 전철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 있고 도서관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서울을 잠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낭만이 지방에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낭만은 여기에 없다.
여수는 여수 밤바다라는 곡으로 일약에 낭만 도시로 올라갔다. 시에서도 낭만이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관광지를 개발했다. 그러면서 여수는 제주도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여수의 낭만을 무엇으로 정의할 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급작스럽게 여수라는 도시가 부상하면서 관광지 개발도 급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관광지로 주목 받는 것은 도시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이다. 지금의 기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로서 낭만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낭만을 채워야할 시간이다. 그래야 관광객도 여수라는 도시를 낭만으로 소비할 수 있을 것이다.
낭만의 실체를 만드는 방법은 여수 주민의 삶에서부터 차근차근 찾아가야한다. 주민들의 시선과 괴리되지 않은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관광지의 상처받은 주민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방법이다. 동시에 여수라는 실체를 관광 콘텐츠로 만드는 방법이다. 지역의 문화는 지역 특유의 환경에서 주민들이 삶을 이어온 역사이다. 그렇기에 지역의 관광 콘텐츠는 주민들이 만들어온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다. 관광지에서 행복한 주민들, 그곳을 여행하는 관광객이 주민들의 긍정적인 기운을 얻고 가는 관광지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