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알라딘 중고서점

지역에 부족한 인프라

by 서성우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르는 취미가 있었다. 필요한 책이 있을 때는 그 책이 있는 지점을 경유해서 갔다. 딱히 갈 일이 없으면 약속을 만들어서라도 갔다. 가성비 좋게 한 번 움직일 때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르는 것은 그곳에 가는 주요한 이유가 아니었고 가는 김에 가는 밑반찬 정도였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려고 중요한 일을 일부러 만들기도 했다. 항상 곁가지라는 존재를 유지하지만 그럼에도 곁가지라서 더 가벼운 마음로 들를 수 있는 곳이 알라딘 중고서점이었다.


가장 좋은 코스는 대학교와 집 사이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는 것이었다. 대학교가 있던 상도동과 구리시 사이에는 7호선 건대점이 있었다. 다른 경로인 2호선으로 가면 잠실점이나 강남점도 통학길에 있었다. 내가 원하는 책이 저 지점에 있으면 그 날은 윤활유를 막 바른 엔진처럼 하나의 마찰 없이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를 수 있는 날이었다. 할 일을 하다가 집을 가는 길에 잠시 들르면 됐다. 그런데 필요한 책이 종로3가점이나 신림점에 있으면 길을 돌아가야 했다. 굳이 그 책을 위해서 수고스러운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책에 목마른 사슴이 서점을 찾아가야 했다. 저 지점들도 많이 가다 보니 나중에는 종로3가점을 들려서 집에 가는 길도 익숙해졌다. 지하철 노선이나 버스 번호까지도 다 알고 다니게 됐다.



그렇다고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지는 않는다. 영화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니까 인생의 적당한 부분만 책 읽는 데 쓰고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밥 먹듯이 다니는 것에 비하면 책을 많이 읽지도 않는다. 아직도 사놓고 한 번도 읽어보지 않는 중고 책들이 꽤 많다. 그럼에도 알라딘 중고서점이 좋았던 것은 책을 사면서 느끼는 지적인 만족감을 저렴한 가격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성비가 좋다. 책을 읽을 때 좋은 감정을 느끼고 인생에 도움되는 지식을 얻을 때 느끼는 쾌감도 더 크다. '아 이렇게 좋은 말들을 싸게 얻었구나.' 지적 쾌락의 크기는 같을지라도 비용이라는 분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중고서적이 주는 가치는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수에는 알라딘 중고서점이 없었다. 알라딘 중고점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지역에 왔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이제 퇴근 후에 정처 없이 떠돌았던 서점 투어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스스로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니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어느 날 광주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충장로에서 알라딘 중고서점을 발견했다. 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오랜만에 중고서점 투어를 시작했다. 소설을 읽은 지 오래돼서 감성이 푸석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재밌는 소설을 몇 권 집어가기로 했다. '거의 빠짐없이 읽었던 김애란의 산문집도 나왔구나, 베스트셀러였던 김영하의 소설이 꽤 싸게 파네 한 번 읽어보자.' 이런 생각으로 거침없이 소설을 집었다. 너무 흥분해서 많이 골라버렸더니 그중에 몇 개는 빼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알라딘 베스트셀러 칸으로 가서 요즘엔 어떤 주제의 책들이 인기를 끌지 찾아봤다. '박찬일 셰프의 '오사카는 서서 먹는다' 이 책 사고 싶었는데 반값이네 사야겠다.' 또 책을 주워 담았다. 사다 보니 5~6권은 우스웠다. 그렇게 중고서점에서 플렉스를 하고 나오니 무거운 책만큼이나 두둑한 지적 보람이 있었다. 아직 한 글자도 안 읽었지만 이미 뇌는 배부른 느낌. 그런 느낌을 안고 광주에서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수에는 백화점이 없어"

서울에서 여수로 처음 이사를 올 때 동기는 아쉬움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여수에 백화점이 없다는 것에 실망했다. 여수로 오기 전에 백화점이 있는지 검색해봤는데 없다고 했다. 여기는 백화점이 없구나. 나는 백화점이 있는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백화점에 자주 가긴 했지만 꼭 백화점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물품을 백화점에서 샀다. 브랜드 제품을 거의 안 사서 백화점을 대신할 수 있는 쇼핑 공간들이 그래도 없지는 않았다. 정 없으면 인터넷에서 시키면 됐다. 요즘 한국 어디나 로켓배송이 하루면 가니까. 하지만 동기의 생활 루틴에는 백화점이 포함이 돼있었다. 백화점이 주는 쇼핑 공간의 느낌, 사람들이 가득한 느낌, 동기는 이런 것들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이라는 사소한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처럼.


사람들은 각자 삶에 루틴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샤워를 할 때 꼭 샴푸를 하면서 양치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린다. 자기 취향에 따라 순서를 정해놓고 사는 건 삶을 지탱하는 일상성이다. 하나가 흐트러지면 하루에 균열이 가는 느낌이 든다. 별 건 아니지만 그게 개인의 생활에는 필요한 행동이다. 사소한 하나만 달라져도 일상이 흔들리는데 사는 공간이 달라지면서 생기는 변화는 삶의 태도마저 바꾼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오면서 겪은 환경의 변화는 평소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게 만든다. 서울과 지역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서울에만 17곳이 있다. 지역에는 인천을 제외하고 16곳이 있다. 경기, 인천까지 합치면 수도권에 29곳이 있다. 29대 16이다. 인구는 반반인데 알라딘 중고서점은 수도권이 2배가 더 많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특별한 지표는 아니다. 하지만 알라딘이 상업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기업은 시장의 사이즈를 보고 접근을 한다. 서울과 수도권이 갖는 시장의 힘이 지역에 비해서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다른 기업들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효율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지역에 대한 구분이 아니라 오로지 '시장이 충분히 큰 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수도권에는 저 작은 땅에 오밀조밀 많은 인프라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것이다.


도시의 인프라는 생각보다 피부와 밀접한 부분에서 다가온다. 알라딘 중고서점처럼 서울에 있을 때는 있는지도 몰랐던 지하 서점이 지역에 있을 때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도시의 인프라는 내가 그것이 필요할 때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면 된다. 언젠가는 내가 저걸 사용할 거야. 그런 심리적인 안전장치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10년 된 니콘 카메라 렌즈가 고장 나서 수리를 받으려고 했다. 여수 근처에는 니콘 수리센터가 없었다. 광주 지점이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광주는 그래서 광역시고 전라남도에서 핵심 도시로서 역할을 한다. 알라딘 중고서점, 각종 회사의 공식 as센터, 공공기관의 지역 사무소 등 광역시에는 필요한 것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었다. 지역에서 광역시는 최소한의 도시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다.


그런데 지역 광역시는 계속해서 인구가 줄고 있다. 지역에서 그래도 살만하다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가는 것이다. 부산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서울로 움직이는 흐름은 몇십 년 동안 바뀌지 않고 있다. 결국 수도권 인구 비율이 최근에 50%를 넘게 됐다. 광역시에서조차 서울과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는 이유를 인프라의 시선으로 보면 결국 모든 건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그 모든 '가능성'의 집합된 공간이다. 꿈의 가능성이 있고 재미의 가능성이 있고 사랑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인프라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공간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이뤄가는 결과물들, 그걸 우러러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서울이라는 가능성은 점점 커져갈 수밖에 없다. 꿈의 인프라가 넉넉한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한 번 태어난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펼쳐보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다. '알라딘 중고서점도 있고 백화점도 있고 대학병원도 있는데 왜 광역시에서 서울로 가?'냐고 묻는다면 '그 이상의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접근 가능성을 서울은 가지고 있기'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도시의 환경을 구축할 때 그래서 시민들의 심리적인 고려도 필요하다.


지역에 살면서 답답함을 느낀 순간은 내가 정체돼있다고 느낀 순간이다.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하루하루의 시간을 밀어내며 월급만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은 하고 있지만 개인의 발전이 없었다. 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나를 자극시키는 새로운 감각들이 부족했다. 알라딘 중고서점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쇼핑 시설도 없었다. 생활 반경이 한정적이니 감각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브런치에라도 글을 쓰면서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자극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리적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심리적인 가능성이라도 키워보려고 한다. 주말에 광주에 가는 김에 알라딘 중고서점을 돌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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