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제주도로
청년은 지방으로

지역을 바꿀 청년이라는 가능성

by 서성우

지역에서 뭘 찍어야 할까

2018년 5월 프로그램 개편을 하기로 했다. 기존 프로그램이 전국적인 정보를 다루는 <전국시대>였다면 이번에는 우리 방송이 나가는 지역 이야기만 하기로 했다. 우리 지역,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하는 게 지역 방송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제목이 <어바웃 우리동네>였다. “우리 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어요!” 같이 아주 작은 이야기도 담아보자고 했다. 서울에 있는 방송은 자본을 많이 투입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서울에 비하면 연예인 출연료 1회 분도 안 되는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지역 방송국은 서울 프로그램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역 방송국이 서울 방송국과 경쟁하려면 서울 방송국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게 바로 너무 작아서 주목하지 않는 우리 동네의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작고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보자며 '초밀착 근접 매거진' <어바웃 우리동네>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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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2명에 외주 감독님 한 분이 10분짜리 영상을 하나씩 맡기로 했다. 선배 피디는 지역 음식점을 찍는다고 했고 외주 감독님은 지역의 동아리, 동호회를 찍기로 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할까.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봐. 아무것도 상관없어.” 선배는 이제 막 들어온 신입피디를 자유롭게 풀어줬다. 지역에 대해서도, 방송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작고 여린 신입피디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개편 준비할 동안은 회사에 와서 지역 뉴스들을 찾아보고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정보가 궁금한지 물어봤다. 당시 <도시어부>라는 프로그램이 꽤 인기가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여수에서 낚시를 주제로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수에는 갯바위, 섬 등 낚시 포인트들이 많았기에 충분히 지속 가능한 주제였다. 그런데 관심이 안 갔다. 내가 낚시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만 작고 여리지만 패기 많던 신입 피디는 방송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낚시 프로그램으로는 물고기가 풍부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지만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럼 내가 관심 있는 건 뭘까. 뼛속까지 진지한 다큐멘터리스트였던 신입피디에게는 기발한 생각이나 창의적인 발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160km의 꽉 찬 직구를 미트에 꽂아 넣듯이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만 생각했다. 지역에 필요한 이야기가 뭘까. 어떻게 하면 지역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될까. 이런 생각들이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했던 생각의 전부다. 그러니까 낚시로 지역을 바꾸려면 좀 많이 돌아가야 한다. 내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오직 꽉 찬 직구뿐이었다.


지역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내 영감의 원천은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살아가며 주변을 보고 들으며 느낀 것들을 나는 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지역에 필요한 이야기 중에 내가 직접 경험한 것, 이 교집합 안에서 내가 만들 프로그램이 정해질 예정이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온 28살 남자에게 지역의 무엇이 가장 눈에 띄었을까. 그건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다녀도 내 또래의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심심했다. 같이 놀 젊은 사람들이 없었다. 지역에서 터를 잡기 위해서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매번 보던 사람들만 만났다. 그러니까 심심했고 젊은 사람들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냈던 과거처럼 지금도 젊은 사람들은 한 번뿐인 인생 큰 물에서 놀고 싶어 서울로 떠나간다. 대학 친구들을 봐도 창원 완도 광주 순천 다양한 지역에서 서울로 모였다. 그리고 한 번 서울로 온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한 번 친구에게 지역에서 서울로 왔을 때 어땠는지 물었다.


“설레고 기뻤지.”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어?”

“그냥 좋던데.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서울 가서 살고 싶었으니까.”


지역에서 살던 젊은 사람들에게 서울은 설레고 재밌고 가능성이 있는 도시다. 그리고 살고 싶은 도시다. 반면 지역은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다. 놀 거리 없고 문화 시설 부족하고 일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러니까 지역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고 서울에는 젊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방은 서울로 끊임없이 새 피를 공급해준다. 피는 지역으로 순환되지 않고 피를 공급받지 못한 지역의 심장 박동은 멈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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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관에서 ‘한국의 지방소멸’을 발표했다. 2039 여성인구와 65세 이상 고령인구를 비율로 지수를 만들었다. 젊은 여성이 부족하면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동시에 고령인구는 사망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전라남도 강원도 경상북도는 새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노령화와 청년 인구의 유출로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지역이었다. 반면 수도권은 초록색과 연두색으로 싱그럽게 피어있었다. 마치 잘 자란 나무에서 피어난 튼실한 잎사귀 같았다. 소멸위험지역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지도만으로도 서울의 미래, 지역의 미래는 확연히 구분됐다.


지역에 사는 나에게 소멸위험지역은 충격이었다. 지역에 인구가 줄어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시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게 재미없고 심심해서만이 아니라 지역이 사라질 수도 있게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젊은 사람이 지역에 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내가 심심해서가 아니라 도시가 미래에도 존재하려면 지역에도 청년들이 살아야만 한다.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가 방송으로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낚시 프로그램보다 재미는 없겠지만 사회는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놀 곳이 많아지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된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젊은 사람들이 살만한 지역을 만들어야 했다. 인간이 사는 이유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어서다. 미래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 희망이 없다면 냉동시설이 꺼져있었지만 냉동창고에 갇혀서 얼어 죽은 사람처럼 고통 속에 살아간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나치 수용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처럼 일상을 버텨나갈 힘이 생긴다. 희망과 기대는 사람에게 연료와 마찬가지다.


지역의 젊은 사람들에게 지역에서 살아갈 희망과 기대 그리고 가능성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건 지역에서 어떻게든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다른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롤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살아보니 지역에서도 충분히 재밌게 살 수 있어. 야 나도 했어. 야 너도 할 수 있어. 뭐 이런 거다. 그래서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젊은 사람들을 촬영하기로 했다. 같이 프로그램하는 선배도 흔쾌히 해보라고 했다. <어바웃 우리동네>에서 우리 동네의 청년들을 찍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다 어디에 있나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런 청년들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찾을 것인지였다. 첫 촬영은 선배가 기존에 알고 있던 분으로 순천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청년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공연도 하고 재밌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시장을 어떻게 활성화할지도 고민하는 멋진 분이었다. 그렇게 찍고 방송도 했는데 다음 촬영할 사람이 없었다. 부랴부랴 작가님이 시청 청년과에 추천을 받았다. 그렇게 촬영을 했는데 사실 썩 내키지 않았다. 촬영을 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 뭔가 주도적으로 지역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크게 눈에 띄는 활동도 없었다. 관에서 추천해주는 사람의 한계였다. 관에서는 본인들 사업과 연관된 청년들만 알고 있다. 그러니 시 사업에 관련된 청년들만 리스트에 있었다.


다양한 경로로 청년을 찾기로 했다. 우선 촬영을 다니다 낙후된 구도심에 특이한 상점이 있으면 들어가 봤다. 젊은 사람이 굳이 왜 이곳에서 이런 특이한 걸 하는지 물어봤다. 서울에서 살아봤지만 그래도 고향에서 살고 싶었고 기왕에는 재밌게 살고 싶었다. 이런 대답을 들으면 오케이. 나중에 촬영을 하자고 명함을 건네고 돌아왔다. 가장 많이 활용한 건 인스타그램이었다. 인스타그램은 모두에게 홍보의 수단이기 때문에 자신의 활동을 잘 포장해서 올려놓는다. #순천#여수#광양#고흥을 검색해 들어가면 지역에 있는 다양한 일들이 올라온다. 그중에 재밌는 일을 하는 것 같으면 이야기를 해보고 섭외를 했다.



고흥 빨간 버스와 순천 옥리단길

촬영을 했던 청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서울에서 고흥으로 와 카페를 차린 여자분이었고 한 명은 서울로 떠났다가 다시 순천으로 돌아와 핫한 가게를 차린 남자분이었다. 고흥에서 카페를 차린 분은 인스타그램에서 신기한 사진을 보고 알게 됐다. 분명 카페라고 사진을 올려놨는데 빨간 버스 사진이 있었다. 모양으로만 봐서는 오래된 버스를 개조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특이한 빨간 버스는 후미진 고흥에서도 후미진 곳에 있었다. 도대체 왜 저 사람도 없는 언덕 마을에 빨간 버스를 개조해서 카페를 차렸을까. 그게 궁금해 연락을 했고 26살의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사연으로 고흥에서 저런 짓(?)을 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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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후미진 곳에 있었다. 가면서도 이런 데 카페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진짜 언덕 끝에 빨간 버스 카페가 있었다. 사장님을 만나보니 수줍은 20대 여자였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웃으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는 여성이 고흥 구석에서 카페를 하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니 사장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셨다. 작은 카페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아버지는 이내 밭으로 사라지셨다. 이야기를 해보니 궁금증이 해소됐다. 먼저 부모님이 고향인 고흥으로 귀향하셨다. 그리고 고흥에 있는 부모님은 일산에서 패션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딸에게 계속 고흥으로 오라고 꼬셨다고 했다. 그때마다 딸은 ‘고흥 그 시골에서 뭘 하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끈질긴 부모님의 구애와 패션디자인 회사에서의 생활에 지친 딸은 잠시 쉬로 고흥으로 오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원래 할머니가 살던 집 한편을 개조해서 카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부족한 공간을 버스로 만들었다. 이게 고흥에서 빨간 버스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는 서울 출신 여자 사장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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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카페에는 손님이 있었다. 언덕 밑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러 왔고 동네 할머니들도 가끔 와서 초코라떼를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고흥 시내에 있는 공무원이나 선생님들이 색다른 공간을 찾아 일부러 후미진 곳까지 차를 타고 왔다. 이렇게 재밌는 공간이 고흥 사람들에게도 필요했던 것이다. 그걸 서울에서 온 이 수줍은 여자 사장님이 만들어낸 것이다. 시골에 있다 보면 서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와 확실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젊은 사람의 감각으로 만든 색다른 카페는 시골 사람들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후미진 시골에서도 장사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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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졸지에 고흥에서 카페를 하게 된 젊은 여자분은 지금 삶이 만족스러울까? 고흥 사람 입장에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줘 반가운 일이지만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삶이 힘들다면 모두의 행복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된다. 그녀에게 서울에서 내려와 고흥에서 사는 게 힘들지는 않냐고 물어봤다.


“너무 힘들어서 아예 싹 다 정리하고 서울로 갈까 생각한 적도 많아요. 그래도 기왕 고흥으로 온 거 최선을 다해보고 결론을 지으려고요.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고흥으로 온 지 1년이 된 그녀는 버티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여수로 온 지 1년이 됐던 나도 버티는 중이었다. 같은 마음에서 그녀를 응원했다. 나도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으리. 결실을 맺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지역에서 살아보자 다짐했다. 그녀의 카페도 고흥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잡길 바랐다. 그게 고흥이라는 소멸위험지역에 청년들이 살 수 있는 곳이라는 하나의 가능성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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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젊은이는 순천에서 식당을 하는 20대 남성분이었다. 공학을 전공한 그는 수원에서 꽤 괜찮은 회사에서 괜찮은 월급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천이 그리워 다시 순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된 그의 다양한 일들. 플리마켓 디자인 회사 카페 등을 거쳐 지금은 핫한 레트로 식당을 하고 있다. 레트로 식당은 폐업하는 보일러 가게 간판을 가져와 ‘귀뚜라미’라고 그대로 붙였고 내부는 자개나 델몬트 주스잔 같이 레트로풍으로 꾸며졌다. 그게 묘하게 순천의 옥천이라는 오래된 곳과 어울렸다. 분명 매력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에게도 호응이 있었다. 그의 가게는 지금 순천 옥천을 일명 ‘옥리단길’로 바꾸는 시작이 됐다.


“제가 생각하는 순천의 옥천이라는 공간을 손님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이 옥천이라는 곳의 멋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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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 공간을 자신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세상에 선보였다. 그 콘텐츠가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오래된 도시에서 그가 보여준 성과는 지역의 젊은 사람들에게 아주 선명한 가능성이 됐다. 그 가게가 잘되면서 주변에도 젊은 사람들의 신선한 시각이 담긴 가게가 하나둘씩 자리 잡았다. 옥천은 이제 이전의 낙후된 이미지를 벗고 오래된 것의 가치가 담긴 신선한 공간이 됐다. 마치 서울의 익선동 같은 곳처럼 말이다. 그 젊은 사장님이 만들어낸 결과가 너무 신기해서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지역에서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던 나조차도 그를 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이런 젊은 사람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 부른다. 지역의 자원을 젊은 사람의 시선으로 새롭게 창조해내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결과물이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례들에서 확인했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지역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지역 사람들이 소비하고 그걸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는 수익을 얻는 구조가 생긴다. 그건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구조다. 사막같이 메마른 지역 공간에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그걸로 돈도 벌 수 있다. 먹고 살기 팍팍한 요즘 어쩌면 로컬 크리에이터가 보여준 가능성은 젊은 사람들에게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줬다. 지역에서도 재밌는 거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구나. 그 하나의 가능성이면 충분하다. 재미있고 돈도 되는 것. 그게 지역에는 여태 없었으니까.


30여 명의 지역 청년들을 촬영하면서 나는 앞으로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개성과 취향의 시대에 하나의 일자리에서 월급만 받고 평생을 사는 것은 더 이상 지금 세대에게 맞지 않게 됐다. 마음만 먹으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자신의 제품을 팔 수 있고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면서 인플루언서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다. 공간의 제약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고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공간들이 부족하다. 비어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지역에서 젊은 사람들의 개성이 꽃피울 수 있다. 심지어 그게 돈도 된다. 앞으로 지역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걸 보고 많은 젊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와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갈 것이다. 포화된 서울이 아니라 오히려 비어있어서 더 많은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곳. 그곳에 가능성이라는 씨앗을 심어주면 다양한 청년들이 와서 물을 주고 꽃을 틔울 것이다. 지역은 청년들과 함께 앞으로 더 재밌는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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