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종속된 지방의 경제
금요일 서울행 ktx는 단 한순간도 매진이 아닌 적이 없었다. 3년여간 여수에 살면서 금요일 퇴근 후에 탈 수 있는 6시와 6시 47분 서울행 ktx는 항상 매진이었다. 8시 기차도 매진일 확률이 높았다. 서울에 가기로 한 주말은 미리 ktx를 예약해놓거나 그게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갔다. 처음에는 ktx 배차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라선 ktx는 몇 년째 동일한 배차로 이뤄지고 있었고 코레일이 적당한 배차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내 상식에는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서울에서 여수로 여행을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여수행 ktx가 매진인 건 이해가 갔다. 그런데 여수에서 서울로 가는 ktx가 항상 매진인 게 신기했다. 여수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걸까. 얼마나 많길래 항상 매진일까.
3년여 동안 전라선 ktx를 타면서 생각을 해봤다. 왜 서울행 ktx가 붐빌까. 내가 내린 결론은 다수의 지방근무자들과 소수의 지역주민들이 서울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서울행 ktx를 타는 것이었다. 이 결론은 전라선 ktx를 타고 서울로 가며 바라본 풍경을 바탕으로 한다. 전라선은 여수에서 출발해 여천-순천-구례-남원-전주-익산-공주-오송-천안-광명-용산을 지나간다.
여수와 여천에는 공단에서 근무하는 지방근무자들이 많다. 이들은 본사에서 여수로 발령 난 직원들이어서 서울과 수도권에 원래 집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여천역에서 한 무리의 공단 직원들이 올라탄다. 다들 피곤하지만 주말에 볼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에 표정에는 묘한 기대감이 내비친다. 다음으로 순천역에 도착하면 여수와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순천에도 역시 공단 근무자들이 많이 산다. 구례와 곡성, 남원은 조용히 지나간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다 전주역에 도착하면 꽤 많은 사람이 탄다. 비교적 서울과 가까운 전주는 전주에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전주에서 일하는 지방근무자들이 혼재돼있다. 전주에도 역시 혁신도시가 있으니 지방근무자가 꽤 보인다. 다음 역인 익산과 공주도 조용히 패스한다. 오송에 도착하면 공무원들이 무리 지어 탄다. 세종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다. 오송이야 ktx를 타면 용산에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공무원들은 항상 주말에 서울에 오는 것 같다. 천안은 직장인보다는 서울에 잠시 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직장인 특유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지하철 타고 서울에 가는 느낌이 난다. 이는 ktx를 타며 바라본 정차역의 인상인 동시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타는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본 것을 바탕으로 했다.
결국 서울행 전라선 ktx는 지방근무자들과 지역주민들이 서울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한 통로였다. 그래서 금요일은 항상 매진일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서 돈을 벌지만 정작 주말마다 서울에 가서 소비를 하는 것이다. 금요일 서울행 ktx가 매진되는 현상은 지방이 서울에 종속되는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저서 <지방식민지 독립선언>에서 "지역에서 소비를 하지 않고 주말마다 서울에 가서 소비를 한다. 지역의 경제는 서울에 종속된 착취적인 경제구조다."라고 말했다. 강준만 교수의 말처럼 지방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서울에서 가서 시간을 보낸다. 지방에 놀 게 없으니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은 서울로 간다. 금요일에 항상 매진인 ktx은 서울에 종속된 지방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은 어떻게든 서울과 '최단시간'으로 '연결'되기 위해 노력한다. 서울과 연결되는 ktx가 지방 사람들을 서울로 빠르게 실어가 지방에서 번 돈을 서울에서 소비하게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방은 서울과 어떻게든 연결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서울과 연결되기 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다. 만약 어떤 지방이 서울과 ktx가 연결되지 않았다면 서울로 빠르게 가고 싶은 주민은 해당 지방에 거주하려는 마음을 지속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대신 ktx로 서울과 연결된 근처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다. 주민이 빠져나가면 지방은 작아진다. 지방이 작아지면 경제가 축소되고 결국 지자체의 권한도 작아지게 된다. 서울과 연결된 ktx가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오송 드리프트로 유명한 오송역은 서울과 연결되려는 지방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례다. 오송역은 지도를 놓고 봐도 일직선이 아니다. '드리프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꺾여서 돌아가는 지점임에도 오송역이 ktx역으로 선택이 됐다. 이는 충북에서 ktx를 열망하는 주민들이 있었고 그 열망을 실현시키려는 충북 지역 정치권의 호응으로 생긴 결과다.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충북 사람들에게 오송역이 생김으로써 생기는 파급효과는 크다. 서울과 빠르게 연결되면서 충북에 거주하는 이점이 추가된 것이다.
이미 ktx가 연결된 지방도 최대한 서울과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살고 있는 전남동부와 진주, 통영 등이 속한 서부경남이 그 예이다. 서부경남 ktx는 2019년 예비타당성 검사에서 면제됐다. 기존에 진주까지 가려면 대구와 부산을 거쳐야 했지만 서부경남선이 연결되면 김천에서 바로 진주로 가게 된다. 시간은 1시간이 단축된다. 전남동부권 역시 시간 단축을 위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라선은 노후화된 노선으로 익산부터는 180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서울까지 3시간이 걸리는 이유다. 20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에서는 전라선 ktx 고속화 사업을 말하는 공약이 나오고 있다. 익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 서울까지 2시간에 갈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또 목포와 부산을 연결하는 경전선 고속화를 추진하면서 여수에서 광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노선을 개발해 기존 3시간에서 2시간 20분대로 단축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까지 40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서울까지의 시간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메시지가 지역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게 전달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지방 입장에서 지역 주민들이 서울로 자주 간다는 것은 지방의 부가 유출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지방은 어떻게든 서울과 연결되려고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지방의 경제를 흡수하는 서울과 어떻게든 연결되려는, 이런 착취적인 관계를 더욱 가속화하려는 노력을 지방단체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떨어지면 주민들이 떠나고 주민이 없는 지방은 자립할 수 없게 된다. 지방단체가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서울과 떨어지면 지방은 자립할 수 없고 쇠퇴하게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상황을 통해 서울이 갖는 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서울과 너무 가까워지면 모든 것이 서울에 흡수되고 너무 멀어지면 지방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방은 하고 있다. 지방 경제, 지역 주민 등 지방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블랙홀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지방이 자체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진부하지만 결국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서울의 힘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노력이 어떻게든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쉽지 않아 보이고 지방 소멸은 심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울의 힘을 나눠 지방에 이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모두가 서울로 향한 사람들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다. 서울로 향한 힘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다 보면 언젠가 지방도 자립할 힘이 생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ktx도 여유롭게 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