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프로그램을 맡다
나는 전라도 PD다. PD가 전라도에 있든 경상도에 있든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지역방송사 PD는 그 지역방송사가 위치한 지역이 매우 중요하다. 전라도 PD는 지역에 있는 모든 것을 촬영하고 지역시청자들이 볼 것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사실 지역 그 자체가 지역방송사와 PD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라도에서 일하는 전라도 PD라는 건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순간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명제이다. 다시 한번 나는 전라도 PD다.
전라도 PD라는 살벌한 포부를 밝혔지만 입사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예고 한 번 만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맡은 프로그램도 없었다. 3개월 동안 이어진 파업과 곧바로 이어진 제작거부로 눈칫밥만 먹으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2018년 1월 드디어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 MBC 본사와 지역MBC는 모두 새로운 경영진으로 교체됐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을 때가 왔다. 드디어 전라도 PD로서 전라도를 누비며 촬영을 할 시간이다. 지겹도록 시간이 안 갔던 수습기간 동안 그토록 바라 왔던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정말 프로그램의 결과로 나를 보여줘야 할 때였다.
나는 매거진 프로그램인 <생방송 전국시대>에 배정됐다. <생방송 전국시대>라는 프로그램은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MBC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역MBC는 한 방송사에서 매일 60분 분량의 vcr을 제작할 여건이 안됐다. 그래서 16개 지역MBC에서 각자 vcr을 제작하고 공유했다. 각 지역에서 제작한 vcr을 방송하면 말 그대로 '전국'의 내용을 다루게 됐다. 보통 지역사에 신입 PD로 들어가면 매거진 프로그램부터 하게 된다. 지역을 누비며 촬영을 하는 매거진 프로그램 특성 덕분에 빠르게 지역사회를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여수MBC에는 TV프로그램이 2개밖에 없었다. 모 아니면 도이기에 프로그램 배정은 간단하게 이뤄졌다.
매거진 프로그램은 KBS의 <6시 내고향>이나 MBC의 <생방송 오늘아침> 같이 다양한 정보를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매거진 프로그램을 보통 맛집이나 시골의 할머니가 나오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지금 시기에 먹으면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있고 고향에 있는 할머니들을 보며 뜨듯한 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관심을 따라가다 보니 매거진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이라는 게 생겼다. 그렇지만 맛집이나 시골 촬영 같은 틀을 넘어 매거진 프로그램 PD로서 생각할 건 오로지 시청자들의 관심이었다. 사람들이 어느 포인트에 반응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특히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지역방송사는 더 좁은 범위인 지역 사람들이 지금 어떤 것을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했다. 내가 일하는 여수MBC는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 고흥군이라는 소위 전남동부권에 방송을 송출했다. 3개시 1개 군의 인구는 총 75만 명 정도이고 여수MBC는 이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만들어왔다.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이들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을 생각해야 했다.
매거진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10분 분량의 VCR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매거진 프로그램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스튜디오 토크와 VCR 영상이다. 스튜디오 토크는 MC들이 대본을 읽으며 정보를 제공하고 앞으로 나올 VCR을 볼만한 이유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VCR 영상은 한 편의 완결된 구성을 갖춘 형식의 영상을 말한다. 도입 - 타이틀 - 주요내용 - 클로징으로 구성된다. 신입 PD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으로 모든 방송프로그램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 매거진 프로그램 VCR 영상으로 일을 배우고 나중에는 더 긴 호흡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다.
너무 막막했다. 같이 프로그램을 하게 된 선배는 우선 네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라고 했다. 아무것도 괜찮으니 만들고 싶은 걸 생각해서 기획안을 써 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방송에 ㅂ자도 몰랐다. 도대체 어떤 걸 해야 방송이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역에 뭐가 있는지는 알아야 방송을 만들 수 있는데 지역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우선 방송 아이템을 정하기로 했다. 어떤 걸 찍을지 정하고 나면 그로부터 아이디어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다시 한번 나는 전라도 PD, 특히 전라남도 동부권 PD이기 때문에 전남 동부권에서 무엇을 찍을 것인지 찾아 나섰다. 네이버에 '여수 볼거리', '광양 볼거리'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 정보를 얻었다. 전남 동부권은 자연환경에 특히 강점이 있다. 여수의 바다, 순천의 순천만 갯벌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사실상 관광객과 다를 것 없었다. 그만큼 지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검색의 결과로 기획안을 만들었다. 여수에 섬이 365개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섬을 주제로 기획을 했다. 간단하게 말해 '여수의 무인도'를 찍는 것이었다.
[기획의도]
여수의 섬은 총 365개, 이 중 유인도는 49개뿐. 나머지 300여 개의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 곳 무인도에서 어떤 삶이 가능할까? 오직 여수에서만 즐길 수 있는 원시의 삶, 무인도만의 매력으로 빠져들어간다.
[연출 방향]
인디애나 존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같이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컨셉으로 연출한다. 무인도에서 발견하는 신비한 동식물, 풍경 등을 소개한다. 섬에 관한 책을 썼던 이재언 연구원을 따라 무인도를 소개한다.
[구성 방안]
<오프닝>
오프닝은 조난 상황에서 시작한다. 조난된 연기를 하다 태연하게 걸어와 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섬 소개를 한다. 화면 전환되면서 본격적인 프로그램 시작.
<교통>
무인도의 위치와 교통편을 소개한다.
<캠프사이트 선정>
무인도에서 주거지로 적정한 캠프사이트를 찾는다. 평평하고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곳을 선정한다. 캠프사이트를 찾으면서 무인도 지리와 특성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식량 수급>
저녁 식사를 위해 식자재를 탐사한다. 식자재를 얻기 위해 섬을 구석구석 탐사하고 이때 섬의 특성을 함께 보여준다.
<대동섬지도>
1박 2일 동안 무인도에서 지내면서 연구원이 느낀 무인도에 대한 특성을 책에 소개하는 느낌으로 총평한다.
기획안이 두루뭉술하다는 평을 받았다. 무인도를 찍는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무인도를 보여줄 것이고 무인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디테일이 없다는 것이다. 무인도에 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제공하는 거는 기자의 리포트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무인도를 어떻게 보여줄 건지 PD다운 상상력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조난당해서 살아남는 걸 찍을 거면 아예 조난을 부각해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로 강력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었다. 무인도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무인도에 대한 정보가 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들고 갔던 기획안이 까였고 다음 기획도 그다음 기획안도 까였다. 기획안이 계속 까이다 보니 자신감도 까였다. PD로서 기획 능력에 의문이 생겼다. 사실 나는 애초에 PD적인 기획 마인드가 부족했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PD가 된 이유는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던져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PD를 준비하면서도 시사교양PD와 기자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PD를 준비하는 주변 사람들이 쓴 기획안에는 확실히 재미라는 요소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재밌는 콘텐츠를 본다.' 이 당연한 사실을 PD를 준비하면서도 거부하고 싶었다.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라면 주목하겠지라는 자기 암시만 있었다.
머릿속에는 온종일 아이템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 퇴근을 하고 동네를 산책하면서도 주변을 관찰했다. 네이버에 나오지 않는 정보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퇴근하고 도서관을 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자리에 앉았더니 여수 바다가 보였다. ‘여수에는 도서관에서도 바다가 보이네’라는 생각이 스쳤다. 바다가 사방에 있으니 도서관뿐만 아니라 학교, 공원 등 다양한 곳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여수의 다양한 오션뷰'라는 주제를 기획했다. 여수에서 바다가 보이는 다양한 곳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까였다.
"여수 사람들은 바다 보이는 거 당연하게 생각해."
선배와 작가님이 오션뷰 아이템을 두고 피드백을 줬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바다가 보이는 게 당연해서 도서관에서 보이든 학교에서 보이든 그게 방송 아이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지역 사람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봐야 방송을 만들 수 있다. 아직도 지역에 스며들지 못했다. 아직도 관광객처럼 타지의 시선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수에 사는 사람은 여수 밤바다가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서울에서 여수에 관광을 오려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정보겠지만 말이다. 지역방송사 PD는 서울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한번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나는 전라도 PD다.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역 사람의 시선이라는 필터를 장착하고 다시 정보를 찾았다. 정보를 그냥 찾으면 막연하기에 전형적인 프로그램의 형식을 기준으로 찾았다. 맛집을 소개하는 건 매거진 프로그램의 클래식이다. 음식을 소개하고 장사가 잘되는 비결 같은 정보를 전달한다. 일단 처음 촬영하는 거니까 부담 없이 맛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수 맛집', '순천 맛집' 이런 키워드로 다시 네이버를 헤엄쳤다.
음식점을 찾다 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이 지역에는 오래된 음식점이 꽤 많았다. 지역은 아무래도 변화의 속도가 수도권에 비해서 느리다. 이 말은 전통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오래된 가게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다. 오래된 식당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주인장의 인생 스토리가 있을 수 있고 <백년식당의 영업비밀>이라는 책처럼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었던 비법을 들을 수도 있다.
식당을 이용했던 지역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오래된 음식점에는 오랜 시간만큼 찾아와 준 손님들의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래된 가게를 중심으로 순천 사람들의 추억을 조명해보기로 했다. 평소 사람 냄새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던 성향 때문에 맛집도 휴먼 다큐멘터리스럽게 만들게 됐다.
<순천의 소울푸드를 찾아서>
타이틀에는 '소울푸드'라는 키워드를 걸었다. 소울푸드는 추억의 음식이나 영혼의 음식이라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순천의 오래된 가게 3곳을 선정했다. 30여 년 된 동네 빵집, 50여 년 된 대학가 김치찌개 식당, 곱창골목의 곱창전골 식당이었다. 촬영은 크게 3가지로 구성했다. 첫째, 사장님이 장사를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어보고 다음으로 음식의 비결을 듣고 마지막으로 손님들의 가게에 대한 추억을 찍어보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있었다. 손님들이 가게에 별다른 추억이나 기억이 없을 수 있었다. 식당에 그냥 밥 먹으러 오는 거지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문이 들었다. 손님들을 인터뷰해보고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빠르게 방향을 바꿔 음식을 열심히 찍는 방법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촬영을 나갔다.
첫 장소는 빵집이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빵집으로 90년부터 장사를 한 곳이었다. 햇수로 30년, 사람으로 치면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한 시간이다. 30년 동안 동네에 있었던 빵집이면 동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어느 정도 기억이 있지 않을까, 그 아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돼 빵집을 찾지 않을까 기대해봤다.
크게 감동적인 추억이 있지는 않았다. 동네에서 맛있는 빵집이어서 어려서부터 자주 왔고 지금도 오고 있다고 했다. 어떤 분은 이사를 가서도 빵 사러 멀리까지 온다고 했다. 손님들을 인터뷰해보니 '동네 맛있는 빵집'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빠르게 음식을 중심으로 촬영했다. 빵을 어떻게 만들어야 오랫동안 동네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찍었다.
다음 촬영 장소인 대학가 앞 50년 된 김치찌개 식당으로 이동했다. 김치찌개 식당은 인테리어만 봐도 한눈에 올해 된 곳이었다. 모든 게 80년대에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는 손님들의 추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됐다.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20대 대학생부터 50대 아저씨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한 명씩 인터뷰를 요청했다.
추억의 맛이죠. 대학생일 때 돈 없어서 찌개 1인분 시켜놓고 물 부어먹고 라면 사리 넣어먹으면서 막걸리 마시던 곳이에요. 아주머니가 밥 마음대로 퍼먹으라고 할 정도로 정이 있는 곳이에요. 지금도 가끔 생각날 때 와요.
이야기가 될만한 인터뷰가 나왔다. 50대 아저씨는 식당과 관련된 대학생 때의 추억을 이야기해줬다. 50여 년 동안 돈 없는 대학생들에게 정을 나눠줬던 공간이었다. 다른 손님으로 엄마와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연애시절에 오던 곳인데 이제는 아들과 함께 온다고 했다.
지역의 오래된 가게는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의 기억이 켜켜이 쌓이는 공간이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건 음식도 가격도 아닌 주인과의 유대감이었다. 한 마디로 주인의 '정'이 손님의 추억이 됐다. 마지막 촬영 장소인 곱창전골 식당에서도 손님들의 다양한 추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변수 가득했던 첫 촬영을 마쳤다.
2018년 2월 28일 처음으로 내가 만든 영상물이 방송에 나갔다. 겨우 10분짜리 영상을 편집하는 데 거의 2주가 넘게 걸렸다. 그것도 방송 3일 전부터는 거의 연속으로 밤을 새웠다. 밤새 편집하고 아침에 선배한테 수정받고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방송은 아침 8시에 시작했다. 밤을 새우고 아침 7시에 완제 테이프를 넘겼다. 10분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내가 만든 영상은 끝나 있었다.
세상은 조용했다. 오랜 시간의 고민과 노력의 시간을 들였지만 10분짜리 영상이 방송에 나가도 세상은 평온했다. PD를 꿈꾸며 내가 만든 방송으로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다. 피디수첩처럼 방송이 나가면 세상이 들썩이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방송이 나가서 좋든 싫든 반응이 있었으면 했다. 감동적이었다거나 옛날 생각이 난다는 정도의 반응을 바랐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첫 영상물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10분 만에 휘발됐다. 그래서 좀 허무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d4-pLpm3Qk&t=258s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오래된 식당의 은은함처럼 유튜브에서 조금씩 반응이 왔다. 1달 만에 조회수가 만 회가 넘었고 2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5만 회가 됐다. 많은 조회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만든 영상을 만 명이 봐줬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매일 조회수 확인하는 기쁨이 있었다. 노력해서 만든 첫 제작물이 그래도 아주 의미 없지는 않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조회수만 나온 게 아니었다.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반응이 댓글에 남겨져있었다.
'정일분식 아주머니 아직도 장사하시네. 언젠 한 번 찾아가서 점심이나 한 끼 해야겠다.'
'평소 지나가기만 했는데 이런 맛집이 있었네요.'
'역시 옛날에 먹었던 기억이 최고여!'
오래된 식당에 대한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댓글이었다. 지역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지역에 살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도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남겼다. 또 순천에 살고 있지만 식당을 몰랐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간직한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반응이었다. 오래된 식당의 추억이 그래도 잘 전달된 것 같았다.
첫 제작은 정말 어려웠던 기억으로 가득했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 그리고 방송 이후 피드백까지 뭐하나 부드럽게 진행된 게 없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빠르게 지역방송사 PD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지역에서 아이템을 찾고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만드는 직업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작은 방송국이고 큰 반응은 없지만 지역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의미가 있었다면 지역방송사 PD는 충분히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첫 촬영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전라도 PD에 가까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