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지역은 없다

일할 곳이 없는 여자들

by 서성우

"절 (서울로) 데려가 주시겠어요?"


소설 <무진기행>에서 중학교 여선생님 하인숙은 무진을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지만 무진이라는 조그만 시골에서는 여성으로서 꿈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인숙은 낙후된 공간으로 그려지는 '무진'의 중학교에 발령받았다. 서울에서 잠시 무진으로 온 제약회사 간부 윤희중에게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청한다.


'무엇이 저 아리아들로써 길들여진 성대에서 유행가를 나오게 하고 있을까?'


하인숙은 무진의 고위직 남성들의 술자리에서 본인이 전공한 '아리아'가 아닌 '유행가'인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여자 음악 선생님이 술자리에서 노래로 접대를 하는 모습은 당시 시골에서 여성의 지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역에서 여성은 고위층에서 속할 수 없었고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하인숙은 윤희중의 동창인 세무서장, 학교 선생님 사이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꺾는 맛도 모르는 유행가를 부르고 있던 것이다. 그런 현실이 하인숙으로 하여금 '서울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촬영 중 만났던 김승옥 작가


<무진기행>은 저자 김승옥의 고향인 순천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안개가 자욱한 순천만을 상상하며 안개가 가득한 '무진'이란 공간을 만들었다. 주인공 윤희중처럼 고향을 답답한 공간으로 생각했던 김승옥의 인식이 서울과 지역이라는 갈등 구조로 소설의 서사를 만들었다. <무진기행>이 처음 세상에 나왔던 1964년으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지역은 하인숙 같은 여성이 마음껏 꿈을 펼칠 공간이 되었을까?



전라남도 여성 일자리 박람회 촬영기

전라남도에서 주최하는 2018 여성 일자리 박람회를 촬영하러 갔다. 이제 겨우 3번째 촬영이라 아직도 아이템이나 주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스쳐가듯 여성 일자리 박람회를 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지역을 잘 몰랐지만 여성만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개최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역에 여성 인력이 부족하거나 여성이 일할 곳이 부족한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과연 지역에서 제대로 된 여성 일자리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인 의심을 품고 촬영을 하기로 했다.


전라남도 여성 일자리 박람회가 열리는 여수시 흥국체육관은 일자리를 구하려는 여성들로 북적였다. 20대부터 어린아이를 업고 온 여성, 할머니까지 모든 연령층의 여성들이 모였다. 각자의 이유들로 일을 구하러 왔을 것이다. 그들의 사연을 모르니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경단녀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인터뷰했다. 이 분은 여성일자리센터에서 섭외를 해준 분이었다. 보통 촬영을 하기 전에는 어느 정도 케이스를 섭외해놓는다. 현장에서 모든 사례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분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이 크면서 다시 일을 하는 경우였다. 그녀는 이전까지 특별한 사회 경력이 없었기에 취업을 위해 8주간의 호텔 룸메이드 교육을 받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관광지가 많은 전라남도 동부권에서는 숙박과 관련돼 일을 할 곳이 많았다. 그녀는 호텔 2곳에서 면접을 봤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호텔 룸메이드 교육을 받은 것과 더불어 주부로 살아온 꼼꼼함과 성실함을 인정받기도 했다.



경력 단절 여성의 경우는 한국이나 일본이 유독 심한 편이다. 일명 W자형 그래프로 20대에 정점이었던 여성 취업률이 30~40대에 결혼과 육아로 뚝 떨어지고 50대에 다시 올라가는 것을 나타낸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그래프가 완만한 곡선 형태를 띠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였다. 경력단절 여성만으로는 지역에서 여성이 일자리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내기가 힘들었다.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20대인 나는 청년의 시선으로 한창 일을 할 젊은 여성이 일자리를 구할 때 겪는 어려움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역 대기업에 들어가기 힘든 여성

박람회장에 20대 중반의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40대 이상이 대부분이었던 박람회에서 20대 여성은 확 튀는 존재였다. 그만큼 지역에 젊은 여성들이 없거나 이들이 일할만한 일자리가 박람회에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대구에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여수 산업단지 기업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산업단지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당장 입사를 할 건 아니고 앞으로 취업을 할 때 준비할 자기소개서와 면접 코칭을 받으려 했다. 취업 전 취업 시장조사를 나온 것이다. 산업단지의 한 업체 직원과 면접을 했다. 실제 산업단지 업체 직원에게서 업체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빨리 면접을 끝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얘기하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었어요?"

"연봉, 근무시간 같은 게 생각했던 거랑 달랐어요. 아빠가 일하는 대기업 업체 기준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공대를 졸업했는데도 여성은 산업단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3%

여수 국가산업단지 업체 정규직원 18,000여 명 중 여성 직원의 비율은 3%이다. 국가산업단지에 여성 직원은 겨우 5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산업단지에는 많은 기업들이 있다. gs칼텍스, lg화학, 롯데케미칼 같은 대기업이 있고 그들과 일하는 1차 원청, 2차 원청이 이어져있다. 이 많은 기업들 중에 조건이 좋은 기업은 소수였다. 지역에서 특히 여자가 산업단지 대기업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이 아니라 은하수 전체를 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박람회의 여성 일자리는 대부분 숙박업이나 요식업 같은 단순 노무에 치중돼있었다. 청소 업체, 육아 도우미 서비스 같은 단순 노동자를 구했다. 단기적으로 취업률은 높일 수 있겠지만 여성이 지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 일자리 박람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여성 일자리 센터 직원분도 그 점을 인정하며 더 큰 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일자리는 국가 단위에서 움직여야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 중심의 지역 언론

산업단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속해있는 여수문화방송도 심각할 정도로 여성 비율이 적었다. 여수mbc 사원 50여 명 중 여성은 3명뿐이었다. 여성 비율은 1.5%로 산업단지보다 더 심각했다. 최근 여성 기자 2명이 입사하면서 나아진 수치였다. 그 전에는 50여 명 중 여성 직원이 1명뿐이었다. 이는 서울에 있는 방송사들에 비하면 참혹한 수치다. 이미 여성 스타 피디와 기자들이 즐비했다. 여성들이 회사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언론에서는 여성 언론인의 활약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언론의 특성 때문에 술자리와 골프 같은 남성 문화에 젖어들지 못하면 여성 언론인이 지역에 녹아들어 취재하기 어려웠다.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한 여성 언론인들이 힘을 얻을 여성 조직이 부족한 것이다.



여성 일자리 부족이 의미하는 것

지역에서 여성 일자리의 문제는 여자가 일할 양질의 일자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었다. 남녀평등이라는 말도 무색할 만큼 남녀는 동등한 입장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제대로 된 기회가 없다. 지역에서 여성의 일자리는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서 제한적인 역할을 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 서울로, 대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다.


대학 후배 중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발전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대학원에서 학문의 끝까지 탐구하려 하고 기업에서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다. 일과 함께 성장하는 그녀들에게 의미 있는 일은 그녀들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는 성별을 나누지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장 상위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상위 욕구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거세당한 채로 살아가게 된다. 생존과 안전을 위한 낮은 차원의 욕구를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자아실현이라는 상위 욕구를 위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여성은 누군가의 아내로 혹은 단순한 노무에 종사하며 생존을 하는데 만족한 채 살아가는 존재로 남아있다. 그게 지역에서 여성으로 살기 어려운 이유다. 자아실현이 배제된 채로 살아가며 낮은 자존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여성 일자리가 없는 환경 때문에 여성은 지역에서 완성될 수 없다.

남녀 일자리 불균형이 의미하는 것

"여기 여자는 미용사, 공무원, 교사밖에 없다."

내가 만났던 지역의 남자들 대부분이 한 번쯤은 했던 말이다. 직업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인프라에 해당하는 미용실이나 공공기관에 일하는 여성들만 지역에 있다는 의미이다. 다양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없으니 여자를 만나도 다 비슷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지역의 남성들 또한 다양한 여성을 만날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역은 남녀 성비가 맞지 않는다. 절대적인 남녀 인구수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에서 여성은 고등학생과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다. 한 창 경제적인 활동을 할 20대 중후반부터 30대까지의 여성들이 지역에는 드물다. 꿈을 찾아 서울로 떠났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많은 산업단지 지역에서 오히려 남자들이 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성이 없는 지역에서는 결국 남성도 살기 힘든 도시가 될 것이다.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녀의 비율이 중요하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야 도시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여성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은 여성이 떠나간다. 여성이 떠나가는 건 남성에게도 큰 문제가 된다. 남성도 여성 없이는 살 수 없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건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일이다. 지역에서는 여자도 만날 수 없고 결혼도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을 위협당하는 일이다. 여성이 떠나가는 도시는 그래서 모두가 살기 꺼려하는 도시가 된다.


지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여성 일자리가 필요하다. 여성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자신을 완성해갈 수 있다. 지역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꿈을 펼쳐간다면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무너져있는 일자리의 남녀 균형추를 제대로 맞춰줘야 한다. 만약 남성들이 자신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여성을 배제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남성인 자신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남녀 일자리의 균형이 맞아야 지역은 지속될 수 있다. 결국 여성 일자리는 도시가 유지되기 위한 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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