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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우 Feb 01. 2024

2023시즌 최강야구 제작기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쌓여 인생을 바꾼다

독립리그 구단과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당시 최강 몬스터즈는 단 한 경기도 지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선수들의 의지는 충만했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경기는 초반부터 싱겁게 흘러갔다. 3회 말 선발 투수가 무너졌다. 상대팀 감독은 빠르게 투수를 교체했고 마운드를 지키지 못한 투수는 터벅터벅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 때 더그아웃에서 날카로운 다툼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에 담길 정도의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3루 관중석 리액션 촬영을 담당하고 있던 나는 그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지만 감독의 교체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경기 전 사전 인터뷰를 했던 선수라 분명히 기억이 났다. 군 입대를 하기 전 마지막 야구 경기인 만큼 최강 몬스터즈를 꼭 꺾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결과는 3회 말 강판. 입대를 앞두고 실망이 분노로 바뀌지 않았나 싶었다.


점수를 계속 뽑아낸 끝에 경기는 콜드 게임으로 끝났다. 무조건 승리해야하는 경기였지만 콜드 게임으로 끝난 건 다소 싱거운 경기 결과였다. 그렇게 최강 몬스터즈는 독립 구단을 꺾은 이후 2연승을 거두며 다음 시즌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많은 팬들이 환호했고 선수들 역시 기뻐했다. 최강야구의 2023 시즌, 시즌2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모두가 즐기는 그 축제의 끝에 나는 환호할 수 없었다. 내가 즐길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교양 5년차, 예능은 이제 1년차 피디. 이전 프로그램에서 역시나 예능은 어렵구나를 느낀 피디. 9월 말이나 돼서야 최강야구에 합류한 피디로서는 이 파티에 흥을 더하기 어려웠다. 남의 집 잔치를 구경하듯 영혼 없는 박수를 쳤다.


교양에서 5년 동안 제작을 해오던 입장에서 수 백대의 카메라, 수 십대의 오디오를 편집하는 리얼리티 예능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일하는 방식부터 동료와의 협업 모든 게 달랐다. 그 중 편집이 가장 문제였다. 리얼리티 예능 편집이 너무 어려웠다. ‘웃는사장’에서 12부작을 했지만 큰 부분을 맞지 않아서 부담은 덜했다. 하지만 최강야구에서는 모든 부분 부분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했다.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피디로서 쓸모 자체가 없는 것이었다.


역시나 편집은 어려웠다. 처음 편집을 맡은 회차에서는 점수가 나지 않는 7회 편집을 맡았는데 7회 말이 아예 날아가서 결국 3분만 방송에 나가게 됐다. 하지만 다음 회차에서는 점수를 따라가야하는 7회를 맡았다. 타자수만 해도 훨씬 많았고 무사 만루, 1사 만루라는 최대 찬스도 있었다. 겨우 3분을 하던 피디가 갑자기 20분 가까운 분량을 맡았다.


“큰일이네..”

최선을 다해 편집했지만 시사 전 날 팀장님의 피드백은 냉담했다. 당장 내일 시사인데 이 상황이면 사고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아득했다.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시사까지 남은 시간은 9시간, 그

남은 9시간만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보자 되뇌였다. 아니 욕을 했다. ‘내가 한다. 해내고 만다. 어떻게든 한다.’ 내려오는 눈커풀을 치켜세우며 편집을 했다.


‘이 정도에서 그만할까?’

이제 시간은 오전 10시. 시사까지 4시간이 남았다. 이미 너무 졸렸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편집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수 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 몸과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그만두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예 못자는 한이 있어도 제대로 시사에 가져가자. 그렇게 편집의 마무리를 짓고 나니 시간은 12시 50분. 파일을 뽑고 책상에 잠깐 엎드려 자고 시사에 들어간 결과는 성공이었다. “잘했네”라는 CP 선배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3분에서 18분, 18분에서 25분, 25분에서 26분. 자신감 없던 리얼리티 예능 편집에서 점차 분량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그건 아주 한 순간의 이겨냄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죽을만큼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최선을 해낸다는

마음. 그건 30여년을 살면서 수능 날을 제외하고는 느껴본 적 없는 짜릿한 흥분이었다. 그래서 난 그 순간부터 유치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해내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알고 있어도 막상 닥치면 쉽게 그만두는 게 사람인 것 같다. 나 역시도 수없이 많이 빠른 포기를 해왔다. 그래서 후회했던 순간들도 많았고. 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던 그 순간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쌓이면 인생을 바꾼다’

2023시즌 최강야구 마지막 편집에서 쓴 자막이다. 아끼고 아꼈던 그 마음을 나지막히 마지막 편집에 담았다. 편집을 하며 정말 풀리지 않고 포기하고 싶을 때 김성근 감독님의 자서전 <인생은 순간이다>를 읽었다. 그 속에는 상대팀이었던 독립리그 구단 이야기도 나온다. 고양 원더스 감독을 맡았던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인데 선수들의 끈기와 포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쉽게 그만두는 선수들을 보며 감독님이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프로를 거쳤든 대학을 거쳤든 실업팀을 거쳤든, 과거를 잊고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라“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교양에서 5년 일하다 피디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가 다시 피디로 돌아온 나에게. 편집이 어려워 좌절하는 순간 수없이 이 상황을 떠올렸다. 촬영장에서 본 독립리그 선수들의 모습, 어떻게든 데리고 가려는 김성근 감독님의 모습, 그리고 편집실에서 좌절하는 나의 모습. 책을 읽으며 교양을 했든 5년차든 6년차든 일단 지금 맡은 분량에서 내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순간 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 덧 시즌이 끝났고 나는 그전과는 다른 내가 됐다.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진지하게 줄넘기를 넘는 평균 나이 44.7세의 선수들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다. ‘젊은 애들이 이미 22개를 넘어서 우리는 안 돼, 우리가 어떻게 23개를 넘어’라는 의식을 이겨내고 끝까지 해낸다면 결국 완전히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너무 쉽게 포기했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쌓여 인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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