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지금 신랑이 딴 년이랑 살림 차려놨는데!

그 여자 그 남자 이야기

by 건강보험용 라이팅

"새댁! 뭐 하고 앉아있어! 신랑 딴 년이랑 살림 차려놨는데!! 얼른 강릉으로 올라와!"

30년 전 지방 발령이 난 아버지가 거주하던 집주인 할머니로부터 서울에 있는 어머니에게 걸려온 다급한 불호령 전화였다.

참 바람 많이 피우던 아버지셨다.
예순도 못 넘기고 급성 심근경색으로 단명했던 우리 아버지.
외적인 건 그 당시 키가 185cm!
선이 굵은 남성적인 얼굴은 아니고, 부드럽고 선한 인상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연예인 '성시경'을 닮았던 거 같다.
남들에게는 '호인'이라는 소리 참 많이 듣고 살았던 나의 아버지.
그러나 여자 없인 못 살던 그가 또 여자들이 그를 줄줄 따랐던 레알 '도화살'의 상징과 다름이 아니었다.

그 인물로 모범적인 가장이었으면 정말 좋았을걸, 친구와 사람 좋아하고 술 엄청 마시던 술고래였다. 나는 당시 꼬꼬마였기 때문에 그런 선하고 친구 같던 아버지가 엄마를 두고 바람을 피울 거란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선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행동;;)

훗날 어떤 분이 말하길 '남자라는 동물은 착한 거 하고 바람피우는 건 상관이 없다'라는 말에 내 무릎을 팍 쳤다!

남자가 술 좋아하면 당연히 돈 문제, 외도 문제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건 공식 아니던가? 한번 지인들과 술 먹는다 하면 진로社 '금복주'는 그 자리서 10병이 기본이었고, 2차 3차 부어라 마셔라 하는 아버지였다.

술 먹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손에 셀 수 없도록 많았고, 엄마가 나를 뱃속에 가지셨을 때도 밖에서 술 마시고 바람피우던 아빠는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인간이었다. 그 당시 아빠는 엄마를 집에 가두어 두었다가 맞는 말일까? 돈은 가져다주지만 아빠를 기다리느라 신경을 끓이고 쇠약해진 '결박된' 엄마였다.
그래서 내가 이리 과민한 성격으로 태어난 건가 의심도 된다.
태교의 영향으로 말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았어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처에게 잔인해도 너무 잔인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술문제, 여자문제 또 유흥비로 어디 (당시에 신문에 나는 돈) 사채를 연 이자로 80%를 빌 려쓰지를 않나, 그 돈 문제로 뒷 감당하다가 엄마까지 속 뒤지게 썩으며 '키친 드링커'로 전락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 답답하고 화병 난 엄마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려고 치면 필사적으로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엄마 바람날까 봐!"
정말 이기적인 남자! 근데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남자!라고 나 스스로 아빠를 평가해 본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바람피우고, 시댁 식구 들은 아빠가 그럴 일 없다며 펄쩍 뛰며 엄마를 미친 여자로 매도했으니 말이다.

엄마가 느꼈던 배신감, 모멸감, 불안 그리고 시댁 식구들의 비정함 등등 젊고 이뻤던 우리 엄마가 감당해야 했을 어려움 은 지금 내가 가늠조차 못하리라. 그렇게 화려하고 고왔던 부인은 남편의 잔인하고 습관적인 외도와 유흥으로 시들고 망가져 갔다.

93년도부터 신도시에 아파트 소유를 하고, 대기업 샐러리맨 아빠, 에이프런을 두른 가정주부인 엄마, 토끼 같은 아들 은 '마이 스위트 홈'에서 핵가족으로, 겉으로 보기에 너무 화목하고 안정된 집에서 같이 살았다. 하지만, 정작 썩을 때로 썩어빠진 사랑이 부재한 그런 규범에서 일탈한 가정 안에서 서로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며 우리 모두는 '어떤 것'에 의해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나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욕망과 욕구를 조절하지 못했던 '방탕'과 '호색'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화폐'와 '섹스'가 결부된 어떤 금융자본주의에 의한 인간의 본질적인 탐욕에서 비롯된 것인가?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그런 저속한 판단과 행동으로 망가지는 결혼생활 속 위태로운 남편과 부인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은 자녀에게 전달되었다.

그사이 엄마는 아빠에게 '빅엿'을 먹이며 '홧김에 맞바람'으로 만난 국민학교 동창 새아빠와 결혼을 하였고, 세월 이 흘러 나는 미국으로, 엄마는 재혼 생활(10년 후 실패), 아버지는 혼자 남아 그래도 '자식'이라는 울타리로 연결되어 우리 '핵가족'은 십수 년 파란만장 한 진정한 '모던 패밀리'로 거듭났다. 나쁘게 말하면 정말 '콩가루' 'dysfunctional family'였다. 역기능 가정에선 참으로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망가진다. 현재는 모르지만 미래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이 진다는 뜻이다.

지금의 나는 대가리도 크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레알 '사회'에 입학한 성인 남자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아빠의 (남자로서의 역할) 힘듦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나. 그래서 아버지는 그 힘듦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여자'와 '술'이 함께한 '유흥'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는 화병으로 '인내'를 상실하여 집을 떠났다.

서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서 미래에 감당해야 할 빚은 더욱더 눈덩이처럼 커졌다.

가끔씩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를 집 근처에서 조우한 적이 있었다. 50대 중년의 어깨에 힘이 빠진 모습이었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그 모습이 생전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구급차에 실려가셨던 그날, 구급 대원들의 한숨소리 와 함께 엄마의 서글펐던 울음소리. 응급실에서 '아빠 아빠 아빠'를 연신 외치며 주저앉아 숨 쉬지 않은 그 새까매진 얼굴을 보며 엄마는 꺼이꺼이 울며불며 '술고래' '바람둥이' 아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언표 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평생을 증 오하고 미워했던 그 바람피우던 신랑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 순간이었으리라.

아빠가 인생을 하직함으로써 엄마를 평생 괴롭혀 왔던 화병과 원망 그리고 미움은 사라졌다.

엄마는 과거 본인의 실수 와 기억으로 여전히 힘들어하신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으로서 나는 나의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엄마의 말처럼 모든 것이 한순간이고 부질없다는 그 말을 지금 나는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미워도 내 신랑, 나의 기둥이었던 우리 아빠. 나를 무조건 적으로 사랑했던 우리 아빠. 사달라는 건 뭐든 사주고, 해달라는 건 뭐든 해줬던 아빠가 보고 싶다. 그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다.

아빠를 추모하며.

그를 닮아있던 성시경의 '너는 나의 봄이다'를 듣는다.


작가의 이전글개똥밭에서 먹은 눈물 젖은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