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에서 먹은 눈물 젖은 빵

안 먹어본 사람 있나요?

by 건강보험용 라이팅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예측불허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것도 몇 년씩이나 고생 고생 개고생을 하게 되면 사실 그 기간 동안 스스로의 인생에 세밀한 관찰을 통해 '궁극적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개고생'의 몇 마디를 지나게 되면 '깨달음의 장'이 마련되는데 이때 비로소 인생에 내공이 쌓이고 내면의 단단함이 생긴다. '현인'의 열반에 들어서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결과적으론, '성장'이란 단어를 부끄럽지 않게 내세울 수 있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의 '잠용'(이라 쓰고 백수라 읽는다)의 차서가 도래한 것도 팬데믹 발발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현재는 포스트 코로나의 시기를 횡단해 바이러스와 공존하고, 디지털로 연결되는 초밀도 접속을 통해 '범세계적'으로 종횡하는, 내가 또 우리가 존재한다.


이렇듯 모든 만물은 시공간에 따라 변해간다.

산업화, 민주화, 디지털, 코로나 시대의 서사처럼 우리 모두의 상황은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우리네 인생 봄, 여름 가을 겨울 (목화수목토)과 우주와 몸의 음양오행 이 달리하는 것이 있겠는가?


오늘 좋다고 계속 좋은 것도 아니고 지금 나쁘다고 계속 나쁜 것도 아니다 이 말이 하고 싶은 거다.


나는 현재 노이로제의 시달림에서 나름대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감정의 컨트롤도 어느 정도 되는 편이고, 15년 전과 다른 "fast-paced" 한국에서 나 자신과 맞는 시공간, 사람, 생각 및 활동 등 한국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차츰 찾아가고 있으며 나에게 이롭게 작용하고 있다.


'삶의 지혜' 라기보단 그동안 '무지의 늪'에서 허덕이며 살았던 오해가 마침내 해소된 것 같았다.

공부와 취준, 문화적 충격으로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기도 했지만, 사실 개똥밭에서 구르면서 배웠던 지혜 즉, 'street wisdom'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것은 큰 배움 과 교훈의 인생 자양분으로 남아있다.


나중, 어딘가에, 이런 경험들이 분명 쓸모가 있다는 믿음 이 생겼다.


새벽 4시 반 여전히 화는 치솟고, 온몸은 경직되어 반신 마비의 증상을 체험한다. 이유 모를 원망과 분노가 치솟는 이유는 집에 있었기 때문이고, 활동의 제약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타이밍은 어긋나고 취업은 안 됐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를 않으니 화가 일으는 건 당연지사! 원하는 위치와 사회적 서열, 계약= 교환=화폐 와 같은 자산 증식과 같은 유물론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인생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태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혹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되지 말자가 내 최대 신조였다. 즉 내 개인적인 감정 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술도 약도 아예 소용이 없는 건 아닌지라, 가끔씩 반주로 내 속을 달래기도 했고, 낭비와 사치를 부리며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강제가입되기도 했었다.

멍 때리며 유튜브 알고리즘에 내 오감을 유유자적 맡기고는 집구석에서 배달시켜 먹고, 하루 종일 뒹굴어 본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하루 적게는 2만 보, 많게는 5만 보 '걷기'를 통해 몇 년간 '한비야' 뺨치는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에 대등한 길이의 거리를 싸돌아다니면서 내 화를 녹였다.


그것에 대한 훈장으로 내 발바닥에 깊이 박힌 굳은살과 수차례 빠진 발톱이 내가 걸어왔던 시공간의 '행보'를 보여줬다.


그제야 한국에 대한 '수용'의 단계에 겨우 진입한 게 아닐까 싶었다.

대신 '답보' 상태는 아닌 체 말이다. 어떤 상태로든 앞으로 나아갔고 'move on' 했으니 말이다.


두려움과 막막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결국 다양한 책을 읽고 사유하는 과정에서의 깨달음, 그리고 먹물을 먹으며 글을 쓰는 행위,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타자와 말을 하며 직, 간접 경험을 공유했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순환. 이 행위를 통해 나의 신진대사는 원활해지고 막힌 혈기는 매끄럽게 뚫리고 있다.


'관계'에 대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 또한 상당 부분 나 자신이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정도로 약삭빠르고 영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식 '처세술'을 연마하게 된 건데, 이게 참 우습다.

말하자면, 본디 기본이 없고 상식이 부족한 무식한 '저격' '디스' 이딴 거 말이다.

대신 흥분하면 지는 거다. 나는 워낙에 하이퍼 텐션이기도 했고, 감정을 앞세우는 일이 많았기에 더러운 경험을 통해


'내려놓음'과 'I don't give the shit and fuck' 정신을 배웠다. 용감해졌고 담대해졌다.


더럽지만 세상이 이런 걸 나 혼자 우아하고 고상하게 지내라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한방 맥이는' 게 내 인생의 미션이 되는 거였던 거라면 진작이 배워놓을 걸 지금 와서 이런 타산적인 한국 비즈니스 서클에 얽히고설키어서 건강이 망가졌더라면 이런 선택은 애초에 안 했을 텐데 말이다. 욕망과 욕구의 충돌 과 성취욕 그로 인한 스트레스 와 불안이 결국 병으로 귀결된다면 이건 뭐 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참 헷갈린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안 겪어 봤으면 말하지 말라.

누군들 이리되고 싶어서 이리되었겠나 싶다.


"Loser Loser Double Loser Get The Picture DUH!"


사실 책으로 배운 이론이기보단 정말이지 '길바닥 지혜' (street wisdom)였다.

많이 부딪히고 '악으로 깡으로' 내 특유의 '또라이력' 으로 겪었던 '개똥밭에서 구른 경험' 그 '잡채'~였다 ㅋ.


사실, 개똥밭에서 굴러보니 그곳에서 탑재된 '방어력'이라든지 '말빨' 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는데 '대답을 안 해 버린다거나' '시큰둥' 한 어조로 상대방을 복장 터지게 만드는 스킬과 더불어 '나는 그런 거 모른다 배 째라~' 식의 이딴 거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비열하기 짝이 없다만, 나의 타격감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호구지책이었다. 정말 개또라이들한테서 배운 하찮은 것들 다 되돌려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듯하다.

생각건대, 최소한 상업적으로 맺는 관계에서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정쟁과 약탈'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걸 망라한 나의 경험은 이 시대가 진정 '취업전쟁' '경제전쟁'이 확실하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총이나 칼 따위를 안 들었을 뿐이지 '말' 과 '글' 로하는 진흙탕 싸움의 감정 소모전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사실 핵폭탄 말고는 물리적인 전쟁 은 현재 없고 남의 것을 빼앗는 도적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나의 '마음 챙김' 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도 육아도 사업도 관계도 모두 화가 없어야 스무드하게 가는 법이다.


독자분들 중 눈물 젖은 빵 안 드셔보신 분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인생이 우여곡절, 시행착오 하나 없고 승승장구만 했다라고 자신하시는 분 있으시다면 나에게 쪽지 보내주셔라 스타벅스 커피라도 한잔 대접하면서 인생 너무 재미없게 산다고 조롱해 줄 테니 말이다. 행복하기만 한 인생 은 절대 없다는 걸.


예전에 어느 스타강사가 '독설'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사실 나같이 30대에 접어들은 청년에게 그런 사특한 계략은 통하지 않는다. '공감' 과 '이해' 남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휴먼터치가 자본의 풍요 보다 좀 더 좋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